이경미
Chesco Korea Co., Ltd 이사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시인 나태주의 ‘풀꽃’이라는 시다. 관계의 본질에 대해 말하는 이 시의 제목 ‘풀꽃’을 살짝 ‘치즈’로 바꾸어 봐 도 그리 생뚱맞지 않은 것은 수천가지의 온갖 다양한 맛과 오묘한 향을 지닌 치즈도 자세히 들여다보고, 알 면 알수록 그 매력에 매료돼 사랑하지 않을 수밖에 없 는인류의오랜연인이기때문이다.
약 4천 년 전 아라비아의 한 상인이 양의 위로 만든 주 머니에 염소젖을 넣고 사막을 건너고 있었다. 허기도 지고 목도 말라 주머니를 열고 마시려고 보니, 물 같은 액체(유청, whey)와 하얀색의 굳은 덩어리(커드, curd) 가분리돼있었다. 액체도상큼하고, 흰덩어리도고소해 먹을 만 했으리라. 양의 위 점막에 남아있던 응유효소 인 레닌(rennin)이 주머니 속 젖을 응고시켰던 것인데 이우연한발견이치즈의기원이라는설이유력하다.
현대의 공장식 치즈는 우유에 스타터(유산균, 곰팡이) 와 우유 응고 효소인 레닛(rennet)을 첨가해 액체인 유 청을 제거하고 남은 고형분 덩어리인 커드를 응고시 켜 형틀에 넣어 모양을 만들고 소금물에 담가두었다가 적당한온도의그늘진곳에서숙성시켜만들어진다.
유구한 역사를 갖고 있으며 인류가 멸망할 때까지 함 께 할 최후의 식품으로 꼽히는 치즈는 ‘신이 내린 최고 의 선물’, ‘식품의 황제’ 라는 애칭을 가지고 있다. 치즈 에는 10배의 우유가 농축돼 있기에, 필수 아미노산이 풍부한 고단백 식품이며 칼슘의 보고다. 또한 불포화 지방, 비타민 A와 B, 유기산들이풍부한데야채나과일 과 함께 곁들여 먹으면 비타민 B1과 C를 보충할 수 있 어, 더할나위없이완벽에가까운식품이다.
내가 15년 전쯤 유럽의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우리 36 Lecture Note II 나라 사람의 입맛에 맞는 치즈를 찾아다닐 무렵, 지인 중에서도 치즈와 버터의 차이에 대해 아는 사람은 그 리 많지 않았다. 다행히 요즘 심심찮게 치즈가 우리 식 탁에 오르기도 하지만 아직 활용법에선 걸음마 수준 이다. 피자용 모짜렐라를 치즈의 대명사쯤으로 여기 거나, 치즈를 단순히 와인이나 맥주의 안주쯤으로 대 우하는 건 안타깝다. 치즈는 샐러드, 과일, 잼 등과 함 께 곁들이거나 조금만 창의력을 발휘하면 제과 제빵 류 뿐만 아니라 찌개, 나물무침 등에도 얼마든지 활용 이 가능하다. 다이어트가 미덕으로 여겨지는 게 현실 이지만, 자칫 뼈까지 다이어트 할 우려가 크기에 고강 도 다이어트 하는 사람은 치즈로 칼슘의 흡수량을 높 이면서 운동을 병행하는 것이 중 요하다.
지역의 풍토와 문화를 배반하는 먹거리가 있을까만 은 치즈는 특히 나라별로 특징이 두드러진다. 이탈리 아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Parmigiano Reggiano), 모 짜렐라(Mozzarella), 고르곤졸라(Gorgonzola), 프랑스 의 브리(Brie), 까망베르(Camembert), 콩테(Comte), 큐 포르(Roquefort), 잉글랜드의 체다(Cheddar)와 스틸톤 (Stilton), 네덜란드의 가우더(Gouda), 에담(Edam), 마스담(Masdam), 스위스의 에멘탈(Emmental)과 그 뤼에르(Gruyere), 독일의 콰크(Quark), 그리스의 페타 (Feta), 사이프러스의 할루미(Hallumi)등 그 나라만의 독특한 지역적 요소나 식문화에 의해 각양 각색의 치즈가 생산 되고 소비된다.
북유럽의 치즈는 슴슴하고 염도가 낮으며, 프랑스의 치즈는 예술성과 성질 급한 국민성을 대변하듯 발효 과정을 촉진시키느라 각종 곰팡이를 커드에 직접 분 사시켜 만드는 것이 많다. 영국의 대표적 치즈인 체다 는 그 모양과 맛이 단호하고 거만하다. 독일의 치즈는 담백하고, 네덜란드의 치즈는 수출을 고려해 운반이 쉽고 품질의 유지가 용이하다. 더운 지방의 치즈는 저장성과 염분 섭취의 필요성 때문에 비교적 염도가 높다.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기준이었던 스위스의 치즈, 전통성 없는 모방 중심의 미국 치즈, 종교적 이유로 소의 위에서 얻는 레닛으로 치즈를 생산 할 수 없기에 프레쉬 치즈가 주종인 인도의 대표적인 치즈는 파니르 (Paneer)이다.
현재 치즈의 최대생산국은 미국이고, 일인당 최고의 소비는 그리스로 한 사람이 연간 30kg 이상의 치즈 를 먹는다. 우리 국민의 일인당 쌀 연소비량 이 70kg 이하이니 서양에서 치즈가 얼마 나 중요한 식품인지 미루어 짐작할만 하다. 치즈는 발효 미학의 결정체다. 미생물 이 유기물을 분해시키는 과정을 발효라 고한다. 발효와 부패는 비슷한 과정에 의해 진행 되지만 분해 결과 유용한 물질이 만 들어지면 발효, 악취가 나거나 유해한 물질 이 만들어지면 부패라고 한다. 혼탁하고 급하기만 한 현실에 발효라는 시간적 정신적 영양적 가치를 가 진품격 있는 자연식품인 치즈가 주는 메시지가 있다. 잘 발효된 치즈는 오래 사귄 벗처럼 두고두고 곁에 둘 일이다. 커피 한 잔과 과일 한 쪽, 치즈 한 조각이 있는 풍경은 내 영혼에 대한 작은 위로, 내 몸에 대한 소박한 배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