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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순.png

 

 

 

 

 

 

 

 

 

 

 

김영순

前 송파구청장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줄 알았지.”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명


 

조지버나드쇼.png

모르긴 몰라도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묘비명은 영국 극작가 조지 버나 드 쇼(1856~1950)의 것이 아닐까 한다. 노(老)작가의 위트가 담뿍 묻어 나는 이 명문은 몇 년 전 국내의 한 이동통신사에서 광고로 활용한 이 후 다양하게 인용되고 있다. ‘찰나의 승부’로 불리는 광고에 채택될 만 큼 임팩트가 큰 이 묘비명을 나는 오래전 신문에 실린 연극 연출가 오 태석 씨의 인터뷰에서 처음 보았다. “연극계 발전을 위해 하고 싶은 일 이,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던 그는 “버나드 쇼가 말이지, 묘비명에 어 영부영하다 이럴 줄 알았다고 적었다는데 내가 꼭 그런 기분이라고. 할 일이 너무 많은데 시간이 아쉬워. 너무 아쉬워”라고 말했다.

 

연극계의 거목인 오태석씨의 인터뷰도 인상적이지만, 그가 소개한 묘 비명이 하도 강렬했던 까닭에 나는 그 뒤로 묘비명이라는 장르에 관심 을 갖게 되었다. 직접 썼든, 남이 썼든 한 사람의 인생과 가치관을 단 한 줄로 요약해낸 ‘인생의 에센스’를 구경하는 재미가 남달랐기 때문이다. 특히 서양의 묘비명은 유머와 재치가 넘치는 것에서 시니컬한 풍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여 읽는 이에게 큰 즐거움을 준다. 작품성이 빼어난 문구도 대단히 많은데 학자들에 따르면 ‘에피그램(epigram)’이라는 문 학의 갈래가 여기서 나왔다고 한다.
 

당연하겠지만 버나드 쇼를 위시한 작가들의 묘비명은 그 자체가 한 편 의 작품이다. 19세기 프랑스의 대문호 스탕달은 생전 ‘썼노라, 살았노라, 사랑했노라’라는 비명을 미리 썼다. 아일랜드 출신 시인으로 노벨문학 상을 수상한 예이츠의 비에는 ‘삶과 죽음에 차가운 눈길을 던져라. 마부 여. 지나가라!’는 멋진 문장이 새겨져 있다. 현존하는 프랑스 최고의 작 가로 꼽히는 미셸 투르니에는 ’내 그대를 찬양했더니 그대는 나보다 백 배가 많은 것을 내게 갚아주었도다. 고맙다, 나의 인생이여!‘라는 비명 을 준비해두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문인들의 비명 중에서도 근사한 것 들이 많다. 조병화 시인의 비에는 ‘나는 어머님 심부름으로 이 세상에 나 왔다가 이제 어머님 심부름 다 마치고 어머님께 돌아왔습니다’라는, 담 담한 고백이 있는가 하면, 박인환 시인의 비에는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 는 것’이라는 아련한 문구가 새겨져 있다.
 

프랑수아.png

묘비명 중 가장 많은 내용은 한 사람의 업 적이나 생의 철학을 뽑은 것이다. 미국 민 주주의 초석을 놓은 16대 대통령 에이브러 햄 링컨의 비에는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 민을 위한 정부’라는 그의 불멸의 명언이자 민주주의를 향한 신념이 새겨져 있다. 발명 왕 에디슨의 비에는 ‘상상력, 큰 희망, 굳은 의지는 우리를 성공으로 이끌 것이다’라는 그의 성공 비결이 담겨 있다. 이순신 장군 의 비에 적혀 있는 ‘필생즉사 필사즉생(必 生卽死 必死卽生)’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 고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친 그의 기개를, 김 수환 추기경의 비에 적혀 있는 ‘나는 아쉬 울 것 없어라’라는 시편 구절은 김 추기경 의 숭고한 삶을 기린다. 

 

그런가 하면 인생의 의미가 희망을 되새기 게 하는 주제도 눈에 띈다. 노벨문학상을 받 았던 프랑스 소설가 프랑수아 모리아크의 비는 살아 있는 자들에게 ‘인생은 의미 있 는 것이다. 행선지가 있으며 가치가 있다’는 격려를 전하고, 영국의 낭만파 시인 바이런 의 비는 ‘그러나 나는 살았고, 헛되이 살지 않았다’며 살아 있 는 자의 분발을 촉구한다. 미국 시인 에밀리 디킨슨의 비는 ‘돌아오라는 부름을 받았다’는 말로, 프랑스 소설가 모파상 의 비는 ‘나는 모든 것을 갖고자 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갖지 못했다’는 말로 언젠가 돌아오라는 부름을 받기 전까지 진정 소중한 것을 먼저 하며 살아가라고 우리들에게 속삭인다. 또 팝의 거장 프랭크 시나트라의 비에는 ‘최상의 것이 앞으로 올 것이다’라는 희망을 전하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헤밍웨이.png

고인에게는 죄송하지만 슬그머니 웃음이 나는 묘비명 시리 즈도 많다. 대문호 헤밍웨이는 ‘일어나지 못해서 미안’이라
며 유머러스한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기행으로 유명했던 중광 스님은 비문에서 ‘에이 괜히 왔다’며 끝까지 해학적인 모습을 견지했다. 일본의 선승 모리야 센얀은 ‘내가 죽으면 술통 밑에 묻어줘. 운이 좋으면 술통 바닥이 샐지도 몰라’라 는 농담으로 후대에 두고두고 웃음을 선사한다. 묘비명에 관심을 가지다 보니 내 것 네 것을 가리지 않고 그럴듯한 묘 비명을 상상해보는 취미도 생겼다. 예컨대 미국 수영 황제 펠프스라면 인터넷에서 회자되었던 유머 ‘그는 인간의 탈 을 쓴 물고기였다’를 그대로 묘비명으로 삼아도 좋을 듯하 다. 내 묘비명으로는 여러 후보들을 생각해두고 있는데, 이 를테면 ‘열렬히 산 그녀, 이제야 눈 좀 붙인다’ 같은 것들이 다. 그런데 뉴스를 보니 나 말고도 비슷한 사람들이 부쩍 늘 었다고 한다. 국가적으로 큰 인물들이 잇달아 세상을 떠나 면서 인생을 성찰하려는 목적에서 자신의 묘비명을 써보려 는 사람이 많아졌고, 관련 강좌도 늘었다는 것이다. 삶과 죽 음이라는 거창하고 철학적인 차원이 아니더라도, 묘비명 상상은 자신의 삶을 객관적으로 점검하는 도구로 꽤 괜찮 은 취미인 것 같다. 헤드헌터들이 직장인들에게 이직과 관 계없이 6개월에 한 번씩 이력서를 써보라고 조언하는 것과 같은 차원에서다.
 

이력서가 자신이 어떻게 일하는지, 경력 관리 차원에서 무 엇이 부족한지를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기회라면 묘비명 상 상은 좀더 넓은 눈으로 자기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어 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차분히 응시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꼭 묘비명이 아니어도 좋다. 지금껏 당신이 살아온 인생을 한 줄로 정리한다면 무엇이라 적겠는가. 또 10년 후, 무엇이 라고 더 써넣을 수 있을지 한번 상상해보자. 


- 저서 ‘최초는 짧고 최고는 길다’(위즈덤하우스, 2010)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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