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노트

조회 수 124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바하.jpg

 

 

클래식 친구되기, 바흐를 중심으로

 

정윤수 (성공회대학교 외래교수)

 

 

바흐는 젊은 날에 아른슈타트와 뮐하우젠에서 오르간 연주자로 일했으며 바이마르 공작의 예배당에서는 오르간을 다뤘고 서른이 넘어서는 쾨텐의 궁정악장을 맡았다(1717-1723년). 쾨텐 시절에 바흐는 교육용 클라비어곡들과 궁정의 유희를 위한 기악 합주곡을 다수 작곡하게 된다.

 

이 때에 이미 바흐는 각종 악기의 모든 신경계통을 완벽하게 조율할 줄 아는 외과의사가 되었다. 독일왕정의 일시적 평안과 맞아 떨어지는 [브란덴부르크협주곡]의 화사한 선율, 첼로의 무한한 가능성의 극한을 이끌어낸 [무반주 첼로 모음곡], 교육용 소품이자 당대의 거장들이 예술가적 운명과 자존을 걸고 정면승부를 펼치게 만드는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그리고 수많은 오르간 곡집과 협주곡들. 이 쯤에서 바흐가 음악적 일생을 마쳤다 해도 그는 음악사의 한페이지를 굵은 고딕체로 장식하고도 남을 만하였다. 그러나 바흐는 중세의 겨울이 자신에게 맡긴 유산을, 아니 그 자신이 근대의 첫 봄을 살아갈 후예들을 위해 스스로 쌓아나갈 유산을 이 쯤에서 멈추지 않았다. 30대 중반에 취임하여 1850년에 숨을 거둘때까지 봉직했던 성 토마스 교회 칸토르 시절이야말로 위대한 유산의 거대한 보고가 아닐 수 없다.

 

1723년의 라이프찌히는 인구 3만 명을 헤아리는 소도시였지만 전통적인 독일 패권주의를 상기한다면 그다지 적적한 곳은 아니었다. 게다가 독일의 각 지역이 남쪽의 유럽 국가들에 비해 문화적 자산이 넉넉치 않았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두어 개의 극장과 오페라 하우스, 그리고 음악적 재능이 넘치는 자를 악장으로 모셔오는데 주저함이 없었던 성 토마스 교회로 인해 라이프찌히는 비교적 음악 활동이 활발한 곳이었다. 바흐는 30년 가까이 이 도시에서, 고결한 성직자적 태도와 새로운 음악에 대한 폭포수같은 정열로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음악적 유산을 오늘날에 남겨주었다. 칸토르에 취임한 이듬 해 [B단조 미사]를 봉헌한 바흐는 수많은 칸타타와 기악곡들, 그리고 필생의 대작 [마태수난곡]을 뿜어냄으로써 가차없이 음악사의 최고 반열에 올라섰다.

 

이러한 종교음악뿐만 아니라 바흐는 [평균율 클라비어곡집]과 [푸가의 기법] 등을 통해 서양음악의 기초를 탄탄하게 굳혔으며, 이러한 기악곡은 음악에 처음 배우는 어린아이에서 꽤 수준있는 감상자들, 그리고 기악으로 일가를 이룬 거장들까지도 지금 이순간 지구 곳곳에서 맹렬히 도전하고 있는 곡이 되고 있다. 바흐 건반음악에 주목할 만한 연주를 남긴랠프 커크패트릭은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을 일컬어 ‘음악의 성서’라고 칭하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 작품집은 전세계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다시 말해 이 작품은 수용하는 이방에 따라 모든 이들에게 각기 다른 의미를 부여해 준다고 할 수있다. 요컨대 사람들은 이 곡들을 통해 영원히 마르지 않는 음악적 샘물을 길어올릴 수가 있다. 피아노를 연습하거나 작곡을 공부하거나 음악 분석을 시도하는 등 음악에 관한 모든 경우를 망라해서 그렇다는 말이다.”

 

어떤 음악사가는 바흐가 독일 국경을 한번도 넘지않았다고 말한다. 바흐 연표를 면밀히 살피면 이 사가의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다. 앞서 보았듯이 성토마스 교회는 바흐에게 하루 4시간 씩 학생들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음악과 라틴어)과 교회의 각 예배에 맞는 음악을 준비할 것을 요구하였고 허가 없이 함부로 도시 바깥으로 나가지 말아야 한다고 엄격히 경고하였다. 바흐와 그의 시대, 좁게 말해서 독일의 소도시 라이프찌히의 바흐를 우리는 역사상 유례가 드문 ‘조화로운 공간’으로 파악하는 것이 올바르다고 하겠다. 노예제를 바탕에 깔면서도 찬란하게 빛났던 그리스 문화의 그것처럼 바흐와 라이프찌히는 중세와 근대의 틈새에 피어난, 특수하지만 있을 수있는, 대단히 조화로운 공간이었음이 분명하다. 루터파 프로테스탄티즘이 사회의 밑바탕에 전면적으로 깔리고 곧 ‘합리적 이성’의 거목 임마뉴엘 칸트가 자라날 독일의 환경은 성실하고 근면한 바흐에게는 사회적 대립감을 느끼지 않아도 될 조화의 공간이었다.

바흐는, 종교적 신념으로는 이미 근대를 살고 있으되 정치적 구조와 생산력 발달 수준에 있어 아직 중세에 머물러 있던 독일의 상황에 걸맞는 비탄에 찬수난곡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라이프찌히라는 조화로운 공간에 몸담았던 바흐는 자신의 시대, 곧 이념적으로는 이미 근대의 초석이 깔렸으나 사회적 환경으로는 그 어떤 지역보다 낙후해있던 독일에게 자신의 모든 재능을 아낌없이 바쳤다.

 

음악적으로 이미 근대를 살고 있었던 바흐. 그는 중세의 두꺼운 외투를 벗어던지고 근대의 찬란한 햇살을 맞이하고자 했던 창조적 인간이었다. 미술사학자보링거는 고딕 건축의 완벽에 가까운 견고한 축조성을 두고 ‘숭고한 노이로제’라는 표현을 썼는데, 음표와 음표 사이의 순간적인 공간 속에도 전율에 가까운 중세적 긴장을 가득 채워버린 바흐의 탄탄한 악보들이야말로 중세에서 근대로의 인류사적 발전을 음악적으로 표현한 위대한 음악가의 ‘숭고한 노이로제’의 영롱한 결정체에 다름 아니다.


  1. 지리를 알면 여행이 더 즐겁다. - 정경숙

    지리를 알면 여행이 더 즐겁다. 글 정경숙 이화여대 평생교육원 강사 前 숭의여대 관광과 교수 관광은 오늘날 국가의 주요산업이자, 많은 사람들이 추구하는 생활의 활력소이다. 단순한 놀이나 소비행위가 아니라 좀 더 깊이 성찰한다면 우리에게 잘 살아갈 ...
    Date2016.05.08 Views266
    Read More
  2. 차문화와 다례 - 이일희

        세계를 크게 2개의 문화권으로 나누면 서양문화와 동양문화로 나눈다. 차문화는 동양문화권에서 주도해왔으며, 차문화의 발생과 완성, 그리고 보급시킨 곳은 한중일 동양 삼국이다. 한국은 東方之禮道로서 禮와 茶를 곁들여 하는 것이 茶禮의 특징이며 단...
    Date2016.05.08 Views184
    Read More
  3. 러시아 문화의 이중적 구조 - 이인호

    러시아 문화의 이중적 구조   이인호 前 러시아 주재대사 서울대 명예교수       러시아 문학이나 러시아 사람들을 만날 때 우리에게 다가오는 느낌은 영미 독불의 경우와는 다르다. 어딘지 모르게 동양적이라는 느낌을 받게 될 때가 많다. 그것은 결코 이상한...
    Date2016.05.08 Views3229
    Read More
  4. No Image

    인생 2막, 삶의 성공전략 - 공병호

      인생 2막, 삶의 성공전략  공병호 경영연구소 소장     거리에는 점점 나이든 분들의 모습이 늘어나고 있고, 베이비 붐 세대의 은퇴가 본격화 되면서 이제 ‘제 2의 인생’혹은 ‘이모작 인생’은 특별한 사람에게 해당하는 단어가 아니라 보통 사람들에게 주어...
    Date2016.05.08 Views38
    Read More
  5. No Image

    沈默의 염증 - 장준홍

    沈默의 염증   장준홍 의학박사   20세기에 등장한 약 중에서 가장 놀라운 약은 아스피린이 분명하다. 아스피린의 폭넓고 뛰어난 효과 덕분에 적용분야가 점차 확대되고 있다. 진통해열의 효능을 뛰어넘어 심장마비, 뇌졸중 등의 혈관질환으로부터 치매까지 예...
    Date2016.05.08 Views109
    Read More
  6. 명화는 스스로 말한다 - 서정욱

    명화는 스스로 말한다   서정욱 서정욱갤러리 관장     말을 풀어보면 명화란 뛰어난 걸작 또는 유명한 그림을 말하는 것이고, 감상이란 그것을 천천히 살피고 느끼고 즐기는 행위를 뜻한다. 다 안다. 그런데 모르는 것이 있다. 바로 <명화 감상>속에 숨어있는...
    Date2016.05.08 Views162
    Read More
  7. 한국경제, 성장이냐? 침체냐 ? - 윤계섭

    한국경제, 성장이냐? 침체냐 ?   윤계섭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우리나라 경제가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닮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많이 하고 있다.   과거의 고속성장에 비해 2% 내지 3%의 경제성장은 국민들에게 큰 실망을 안겨주고 있다. 정...
    Date2016.05.08 Views35
    Read More
  8. 영원한 젊음의 서사시 - 강헌

    록 음악의 역사는 짧다. 엘비스 프레슬리라는 멤피스의 젊은 트럭 운전사가 로큰롤 폭풍을 일으키던 때가 1956년이니 고작해야 오십여 년의 나이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록 음악은 탄생하자마자 수천 년 동안 진행된 인류의 음악사를 단숨에 뒤흔들었...
    Date2016.05.08 Views63
    Read More
  9. 왜 ‘자유주의’여야 하는가? - 조동근

    우리는 ‘경쟁과 개인, 시장’에 거부감을 보이는 반면 ‘연대와 협동, 단결, 공동체’등의 단어에는 친숙함과 편안함을 느낀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인류의 역사에 답이 있다. 수백만 년의 인류 역사를 24시간으로 환산할 경우, 시장이나 경쟁이 나타난 시간은 ...
    Date2016.05.08 Views11340
    Read More
  10. 고흐 작품 감상해 볼까요? - 서정욱

      요즘 바쁘지 않은 사람이 없다. 그래서 보는 것 까지는 어떻게 해보겠는데 감상을 해보기란 쉽지 않다. 그러다보니 감상이란 말 또한 점차 사라진다. 영화감상실이 DVD방이 되고, 음악 감상실은 역사 속으로 들어가는 중이다. 감상이란 단어가 왠지 촌스러...
    Date2016.05.08 Views193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5 6 7 8 9 10 11 12 13 14 Next
/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