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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심은 한국문화

 

 

글 정 영 호

단국대학교 석좌교수

 

 

일본이 오랜 역사 속에서 우리의 문화를 전수받아 성장, 발전함으로써 오늘의 일본을 이룩했다함은 양국 국민이 잘 알고 있는 일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말하기를 「가까운 이웃이면서도 먼듯한 일본, 수 천 년 간 우리의 문화를 받아들였던 나라인데도 서먹한 일본」이라고 한다. 그러나 現今의 우리는 모든 점에서 멀리해서만은 안 될 일본인 것이다. 그래서 일본을 알고 우리의 자세를 확립해야 할 필요가 어느 때 보다도 크다는 것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한국과 제일 가까운 일본 영토는 쓰시마(對馬: 대마도)이다. 부산에서 직선거리로 48km에 불과한데 일본 본토와는 150km이다. 그런데 3세기의 기록인 『三國志 魏璡夷傳』의 「倭人傳」에 의해 일찍이 일본 영토였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한국의 문물이 對馬를 거쳐 九州에 전해지고 본토인 近畿지방에 전하여 정착했는데, 이러한 문화 전파의 길목에는 우리의 발자취가 역력함을 볼 수 있다.

 

우선 對馬의 서북 해안 고시다까(越高) 패총의 출토 유물들은 신석기시대의 빗살문토기부터 모두 부산의 東三洞 패총 유적과 똑 같다는 것이다. 역사시대에 이르러서는 더욱 빈번한 교통으로 많은 사적지가 남아 있으니 오늘에까지 세운 다음과 같은 10基의 「한국 先賢현창비」들이 여러 가지 내용들을 말해주고 있다.

 

大韓人崔益鉉先生殉國之碑(1986.8.3) 朝鮮國譯官使殉難靈位碑(2003.3.7)

新羅國使朴堤上公殉國之碑(1988.8.8) 朝鮮國通信使李藝功績碑(2005.11.21)

朝鮮國譯官殉難之碑(1991.3.20)        朝鮮國翁主墓及石碑(2006.10.31)

朝鮮通信使之碑(1992.2.13)             百濟國王仁博士顯彰碑(2007.5.27)

李王家德惠翁主碑(2001.11.10)         通信使黃允吉顯彰碑(2011.12.3)

 

이밖에도 한국적인 유적, 유물이 많으나 뒤로하고 對馬에서 九州로 건너가면 청동기시대의 支石墓群과 石箱墳들이 있고 사가(佐賀)현의 간사끼(神埼)에는 王仁박사의 사적이 전한다. 특히 다자이후(太宰府)의 미즈기(水城), 土城, 大野城은 한국과 직결되는 유적이며 후나야마(船山)고분은 백제석실고분 그대로이고 우즈키(臼杵)불상군, 우사(宇佐)신궁의 신라종은 명문이 있어 더욱 주목된다. (天福四年甲子: 904A.D) 시모노세끼(下關)의 아까마(赤間)신궁은 조선통신사들의 숙소로 사용된 관계 등으로 유명한 곳 이다.

 

일본의 고대문화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선각자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선진 문물을 전해주면서 그 기틀이 잡혔다. 이 무렵 오오사카(大阪), 나라(奈良), 교토(京都) 지역은 갈대가 무성한 미개지였으며 가와치(河內)일대는 잡목 숲으로 덮여 있었다. 넓은 평야를 개척하려면 오오사카의 요도가와(淀川), 아쓰카와 나라의 야마도 가와(大和川), 교토의 가쓰라가와(桂川) 등 주변에 제방을 쌓고 황무지를 개척하여 논이나 밭으로 가꾸어야하며 특히 논농사에는 수로를 만들어야 했다.

 

또한 들판을 개척 하는데는 철로 만든 괭이와 쟁기, 톱 등 농기구가 대량으로 필요했으며 관개 용수를 공급하기 위해서는 저수지와 용수로를 만들어야만 했다.

 

그러나 이것은 자연적인 관개만 의지하던 재래의 벼농사 기술보다는 질적으로 한 단계 높은 것으로서 새로운 토목과 관개사업, 제철기술 등을 종합적으로 다룰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야만 했으니 이 새 기술을 가지고 나타난 사람과 기술자들이 바로 우리 조상들이었던 것이다. 학문을 전해준 우리 조상들의 업적이 알려져 있듯이 불교 역시 우리 조상이 전해 주었다는 사실이 일본 측 문헌에 잘 나타나 있다.

 

일본.jpg

 

그리하여 한국고대문화의 주류가 불교예술이었던 것처럼 일본 고대문화의 주류 또한 불교예술이라 하겠다. 일본에 불교가 전해진 것은 「538년 백제로부터였다」는 설과 「552년에 백제로부터였다」라는 두 가지 주장이 있는데, 이 문제는 일본 학계에서 팽팽히 맞서고 있으므로 논외로 하겠으나 538년이던 552년이던 백제로부터 불교가 전해진 것만은 분명하다.

 

백제로부터 불교가 전해진 후 일본 각지에서는 우리 조상들에 의해 사찰의 창건 불사가 일어나게 되었다. 쇼토쿠태자(聖德太子)가 607년에 호류지(法隆寺)를 건립했을 때 여기에 귀족들의 상당한 지원이 있었으며 같은 때에 우리 조상들에 의하여 교토에 고류지(廣隆寺), 나라에 다이마데라(當麻寺), 오오사카에 시덴노지(四天王寺)가 세워진 사실은 너무나도 유명하다.

 

그 결과 624년에는 사찰의 수가 46寺에 달했고 승려의 숫자도 385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이 시대에 속하는 아쓰카(飛鳥)시대의 기와는 九州의 후꾸오카(福岡) 지역으로부터 나고야(名古屋) 지방까지 50여 곳에서 발견 조사되었는데, 이들 사원의 대다수가 우리 조상들의 마을에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현재 오오사카의 야추지(野中寺)에는 백제식의 목탑지와 금당지가 잘 남아 있어 우리 조상들이 창건한 사찰임을 곧 알 수 있으며 다께노우치가이도(竹內街道)는 백제인들이 오오사카의 가와치와 아쓰카로부터 나라의 아쓰카 지역으로 문물을 전해주었던 개척로로 유명하며 현재도 그 흔적이 잘 남아 있다.

 

나라의 도다이지(東大寺) 바로 위에 있는 가라구니(辛國) 신사도 우리의 조상을 모시고 있으며 오늘날 일본에 남아 있는 불교유적과 유물 중 우리 조상들의 손에 의하여 조성된 불교건축, 조각, 공예, 회화, 미술 등이 전국적으로 얼마나 많은지 헤아릴 수 없다. 예컨대 대표적인 것을 들자면 당시 일본의 중심지를 벗어난 곳으로 시가(滋賀)현의 이시도지(石塔寺)와 구다라지(百濟寺), 후꾸이(福井)현 오바마시(小濱市)의 북고꾸지(佛國寺) 등이다.

 

이시도지는 고대 양식의 석탑이 중심을 이루고 있어 붙여진 명칭인데 여기에는 백제식의 3층석탑이 건립되어 있으며 전형적인 일본식 석탑과는 전혀 다른 형태를 보이고 있다. 이 석탑에 대하여 일본 학계에서는 「쇼토쿠태자가 건립하였다」, 또는 「인도 아쇼카왕(阿育王)의 팔만사천탑의 하나이다」 혹은 「백제의 귀화인 칠백여명이 고국의 양식에 따라 세웠다」 등등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그러나 이 석탑이 백제양식의 석탑임은 쉽게 알 수 있다.

 

즉 널찍한 탑구를 마련하고 지대석 위에 탑신부를 받고 있는데 각층의 옥개석과 탑신석의 구성으로 보아 부여의 정림사5층석탑과 흡사함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양식의 석탑은 일본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으며 일본에 전해지는 모든 기록이나 현지의 상황과 주민들의 증언들을 종합해 볼 때 백제인들에 의한 백제석탑임이 분명한 것이다.

 

또 한가지 일본 국보 1호로 자랑하고 있는 고류지(廣隆寺)의 목조 반가사유상이 일본 불상이 아니고 한국에서 조성하여 모셔갔다는 일본 학자의 학설이 발표된 후 오늘날 신라 조성의 반가사유상으로 알려지고 있다. 즉 1977년 모오리 히사시(毛利 久)교수에 의해 논문이 발표되고 1984년 『佛像東漸』이란 저서를 발행하여 본인의 주장을 한층 더 굳혀놓은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이밖에도 일본의 양심 있는 학자들에 의하여 한국 조성의 유적유물에 대한 발표가 끊이지 않고 있는 오늘의 실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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