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문화의 이중적 구조
이인호
前 러시아 주재대사
서울대 명예교수
러시아 문학이나 러시아 사람들을 만날 때 우리에게 다가오는 느낌은 영미 독불의 경우와는 다르다. 어딘지 모르게 동양적이라는 느낌을 받게 될 때가 많다. 그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지리적 위치로 보나 문화발전의 경로로 보나 러시아는 흔히 ‘서구적’이라고 불리는 것과는 구분되는 아시아적 요소를 지닐 수밖에 없게 운명 지어진 나라이다.
종족과 언어로 볼 때는 러시아인들의 선조인 슬라브족은 유럽계 언어 족에 속한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국가형성이 시작되기 전에 북유럽의 중심적 위치에서 밀려나 드네프르강 유역을 중심으로 삶의 터전을 닦았고 아시아 쪽으로부터 밀려오는 유목민들의 침공을 받으면서 혼혈도 상당 정도 이루어졌다. 칭기즈칸의 후예들이 세력을 서쪽으로 확장하면서 러시아 일대는 몽골-타타르의 정치적 세력권으로 편입되었고 문물과 제도도 큰 영향을 받았다. 몽골-타타르 세력이 와해되면서 러시아는 그들의 지배에서 벗어났지만 이미 동양적 전제군주 제체의 특성을 많이 갖추고 있었다.
17세기 러시아는 독립국가로서의 존속을 위해 폴란드 및 스웨덴과 사활을 건 싸움을 했지만 18세기 초 표트르 대제 때에 이르러서는 그 두 위협세력을 누르고 북동구의 제일세력으로 부상했다. 그러나 문화적으로는 이미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을 거친 역사를 가진 서쪽의 이웃들에 비해 매우 낙후된 상태였으며 표트르 대제는 부국강병을 목적으로 서구를 모델로 하는 과감한 개혁을 추진하였다. 그 때 부터 유럽과는 다른 특색을 지닌 러시아의 토속적 기층문화와 정책적으로 도입된 지배계층의 서구식 고급문화 사이에는 큰 괴리가 발생했다. 러시아는 사회계층에 따라 문화가 완연히 다른 이중구조를 갖게 되었고 그것은 의식의 분열로 연결되기도 했다. 곧 농노제가 유지되는 덕분에 무위도식을 하며 수입된 서구의 고급문화를 향유할 특전을 누리던 귀족이 프랑스혁명에 박수갈채를 보내는 현상이 빚어지기도 했다. 겉모습은 서양식 신사지만 내면의 의식구조나 습성은 러시아의 무지한 촌민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귀족들이 흔히 풍자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프랑스혁명 이후 러시아 지식인들의 고민은 어떻게 유럽처럼 자유를 누리는 사회가 되도록 개혁을 추진하면서 러시아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잃지 않는가 였다. 유럽은 항상 흠모의 대상이자 질투와 경계의 대상이었고 칭기즈칸이나 훈족 대장 아틸라로 상징되는 아시아는 공포의 대상인 동시에 경멸의 대상이었다. 20세기 초에 이르러서는 유럽과 아시아 두 대륙에 걸쳐 있는 러시아의 유라시아적 특성을 긍정적으로 받아드리자는 ‘유라시아주의’운동이 일기도 했지만 혁명으로 태어났던 소연방 시대나 그 혁명이 실패로 끝났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 지금까지도 러시아 인들에게 ‘아시아적’인 것은 ‘유럽적인 것’보다는 열등한 것, 그러나 자기들의 삶에서 지워버릴 수는 없는 특성으로 남아 있다.
물론 어디까지가 유럽적인 것과
아시아적인 것 사이의 대비이고
어디 부터가 전통과 근대,
또는 현대 사이의 차이인가를 구별해 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러시아의 문화구조가
중층적인 것만은 틀림없고
그것이 러시아 문화가 지니는 매력인 동시에 외지인들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