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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깊이 읽기

 

신종원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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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삼국유사』는 왕력편을 제외하면 모두 이야기(narrative) 형식으로 되어 있다. 제목에서 드러낸바 삼국시대(통일신라, 후삼국 포함)의 인물이나 사실에 관한 서사다. 창작 행위의 하나인 이야기의 속성은 문학(신화라고 해도 좋다)이고, 과거 어느 시점의 특정 인물들에 대한 기록은 역사다. 신화는 사물이나 세상을 제삼자의 처지에서 보지 않고 ‘지금 나’의 문제로 풀어나가는 반면, 역사는 객관적 사실을 인과론에 따라 추적한다. 문학과 역사 두 가지 속성을 지닌 『삼국유사』는 고려 시대 후기 사람들의 언어와 이해방식으로 겨레의 삶을 그 시작부터 풀어나간다. 우리는 『삼국유사』가 모아놓은 이러한 질료를 통해 한국인의 본질을 잘 이해할 수 있다. 어찌 보면 지금도 삼천리강산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보따리’로서 무작위의 선량함이다.
 우리는 『삼국유사』에서 고려 시대 고승 일연이 사랑해 마지않던 겨레와 강토를 읽을 수 있다. 그 가운데서 세속·시정 이야기만 모으면 역사가 되고, 나머지는 시대와 중생을 구하려는 법문집이다. 우리의 제1고전 『삼국유사』에 대한 기존의 입문서, 해설서는 옛 책을 시민 모두에게 살갑게 다가가게 하는 데 공이 컸다. 아쉽다면 농익은 풀이나 치열한 논쟁서는 드물다. 저자는 이를 겨냥해 책을 쓰되 원전 읽기를 통해 판을 벌였다. 이지적 ‘놀이’가 될 것이고, 그 놀이터를 일러 ‘마당/과장(科場)’이라 한다면 『삼국유사』 읽기는 잔치요 향연이다. 당연히 여흥이 뒤따르는데 놀이판을 뒤돌아보고 마무리 짓는 학문적 시각과 성과를 ‘뒤풀이’라 이름해 거두었다.


책을 닫기 전에 글쓴이 일연과 『삼국유사』라는 책에 대한 개설도 챙겼다. 고전을 제대로 읽히려는 최소한의 예비지식이다. 열 번 잔치의 내용은 저자 자신이 흥미를 가지고 ‘깊이 읽기’에 힘을 쏟았던 문제이자 조목들이다.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1) 우리 겨레가 생겨나서 나라를 열었다는 단군신화. 단군의 가계도는 어떻게 이어지며 ‘신시’가 저잣거리이고 도읍이라면 이미 여러 사람들이 살고 있지 않은가. 왜 우리의 생태 및 문화 속 제1짐승인 호랑이가 실격되고 곰을 환웅의 배우자로 만들었는지?

 

(2) 신라 궁정에서 불공드리는 스님(분수승)이 불륜을 저지르다가 죽임을 당했다. 소지왕 때 정치·종교의 지형은 어떠하며, 여기에 등장하는 쥐와 새(까마귀)는 어떤 존재인가? 국왕의 생사를 가르는 ‘수수께끼’라니….

 

(3) 서라벌에 도깨비가 판친다. 이들 귀신은 다리도 놓고, 그 우두머리인 비형은 위대한 조형물 황룡사구층탑도 감독했다. 귀신들은 비형의 이름만 듣거나 보아도 도망간다고 하는데, 그는 신라 중대(中代)의 첫 임금 무열왕의 아버지다. 이즈음 신라 왕통은 성골과 진골로 갈린다.


(4) 경주 서쪽 교외의 선도산에서 비구니 지혜 스님은 봄·가을로 점찰법회를 연다. 이 참회수행은 세속오계를 설한 원광스님의 가르침이다. 지혜 스님은 이 산에 터 잡고 살던 천신이나 산신을 부처님 아래로 거두었으니 비로소 불교는 토착신앙과 더불어 살게 됐다. 다종교 시대의 오늘날 우리가 배워야 할 덕목이다.


(5) 우리 역사상 최대의 여주인공(heroine)은 선덕여왕이다. 이웃나라 황제가 추파를 던졌다고도 하고, 여왕 자신은 족집게같이 예언을 했단다. 여성에 대한 편견을 극복하려고 역대급 공사를 마무리하고 부처님과 같은 신성한 혈통(성골)임을 내세웠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녀의 죽음에 대해서도 이야기는 남아돈다.


(6) 신라 양지 스님은 자신의 지팡이에 주머니를 걸어놓으면 지팡이가 스스로 날아다니면서 시주를 받아왔다. 그는 손재주나 예술 감각이 뛰어나 영묘사의 불상을 비롯하여 탑도 쌓고, 절의 현판도 손수 썼다. 이때 장안의 남녀들은 환희심으로 흙을 나르면서 노래를 불렀으니 곧 ‘풍요(風謠)’라는 향가다. 하지만 그가 살았던 석장사터에서 ‘民貢’이라 쓰인 기와가 출토된 이상 풍요를 공덕가로 보기 어렵고 노동요로 보는 것이 사실에 가깝지 않을까.

 

(7) 문화재청의 ‘문무대왕릉’ 설명이다.

사적 제158호, 1967. 07. 24 지정.
대왕암은 자연 바위를 이용하여 만든 것으로 그 안은 동서남북으로 인공 수로를 만들었다. 바닷물은 동쪽에서 들어와 서쪽으로 나가게 만들어 항상 잔잔하게 했다. 수면 아래에는 길이 3.7m, 폭 2.06m의 남북으로 길게 놓인 넓적한 거북 모양의돌이 덮여 있는데 이 안에 문무왕의 유골이 매장되어 있을 것이라 추측된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왕이 죽으면서 불교식 장례에 따라 화장하고 동해에 묻으면 용이 되어 동해로 침입하는 왜구를 막겠다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그의 아들 신문왕은 동해 근처에 감은사를 세워 법당 아래 동해를 향한 배수로를 만들어 용이 된 문무왕이 왕래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문무대왕릉 → 경주 문무대왕릉으로 명칭 변경되었습니다(2011. 07. 28 고시). 

 

지정 시기는 호국정신을 한창 부르짖던 제3공화국 때. 이 중요한 사안을 ‘추측’으로 했단다. “용이 되어 왜구를 막겠다”는 유언은 『삼국유사』 문무왕법민조 내용이다. 『삼국사기』에는 전혀 없는 내용인데 두 역사책을 혼동·조합했다. 이런 난센스는 오늘날도 변함이 없고, 잘못된 고증과 믿음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문무대왕릉’을 ‘경주 문무대왕릉’ 으로 바꿨다니 다른 지방에도 문무대왕릉이 있는 모양이다.


(8) 옛 기록을 그대로 베껴놓거나 듣고 본 대로 적어두기가 『삼국유사』의 본령이다. 그러므로 어느 한 사건이나 테마의 자료일지라도 조목을 달리 하거나 편목이 다른 데 실린 예도 더러 있다. 기이편 <효소왕대 죽지랑>조와 탑상편의 <백률사>조는 각각 모량부의 몰락과 사량부의 약진을 알려준다. 익선 아간이라는 개인의 불미스러운 일로 왕비족 모량부(점탁부) 사람들이 연좌죄를 받았다는 문헌 내용이 석연치 않던 차에 <단석산신선사조상명기>는 많은 것을 밝혀준다. 서악(선도산)의 ‘잠탁(점탁)’부 사람들은 왕권에 버금가는 불사를 조영하여 견제를 받은 것으로 이해된다. 


(9) 〈욱면비염불서승〉조에 나오는 중심인물로는 시대를 전후하여 발징(팔진)과 욱면 두 사람이 있다. 종래의 연구는 팔진이 곧 (발)징(옮겨 적기의 차이)임을 알지 못하여 욱면만 대상으로 삼았고, 따라서 이 조목은 번역조차 안 되는 사료로 버려두었다. 강주(剛州, 경북 영주시) 주변에 사는 욱면은 귀진의 계집종(婢)으로서 주인 몰래 지극정성 염불하여 서방정토에 왕생했다. 그녀가 왕생할 수 있었던 것은 1차 결사 때 구제하지 못한 중생을 내세에 제도해준다는 약속 덕이라는 재생의 모티브다. 욱면의 왕생이란, 신분을 망각하고 불사에 몰래 참여한 죄로 처형당한 것이 사실에 가깝다. 욱면왕생의 결정적 증거는 그녀가 기도하던 채로 왕생한 통로, 즉 법당 지붕에 뚫린 구멍이다. 욱면의 육신등공을 이보다 더 생생히 전할 수는 없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화재를 막아준다는 대형 구슬 화주(火珠)가 내려앉은 자취다. 


(10) 무왕과 미륵사·서동요는 국어국문학계에서도 익히 논의된 테마다. 근년의 순차적 발굴을 통하여 『삼국유사』 <무왕>조의 절 지은 기록이 대부분 사실과 합치됨을 확인했는데, 마지막 단계에 미륵사 서탑에서 사리기가 발견됨으로써 미륵사를 창건한 사람들의 이름과 그들의 염원까지 엿볼 수 있게 되었다. 사리기에 적힌 발원자는 뜻밖에도 왕비 ‘사택’씨이므로 이제 선화공주에 대한 미련은 버려야 한다. 그렇지만 중앙 탑이나 동탑 사리기에 선화공주가 언급되었을 ‘기대론’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은 지금까지 쏟아 부은 공력이 아깝기 때문은 아닐까. 


서동과의 결혼 이야기 또한 설화를 빌려 무왕의 즉위를 설명한 것에 지나지 않는데 지금까지 너무 역사학적으로 접근했다. 그 설화성이란, 횡재/운수대통이 즉위 · 절 짓기로 이어지는데 이 모두가 ‘셋째 딸/공주’의 타고난 복 때문이라는 서사를 말한다. 이러한 전개야말로 사실과는 별개로 존재하는 ‘이야기 문법’이다. 당대의 기록 사리기는 미륵사 조영에 대해 친절히 기록하지 않는다. 당시에는 모두가 아는 사실이기 때문에. 2016년 익산 쌍릉 발굴에서 유골과 치아가 나와서 해석이 분분하다. 그러니 <무왕>조 연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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