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농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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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릉이 이야기 하는 것들

 

칼럼1.jpg

  윤덕균

  한양대 명예교수

 

유네스코 문화 유산에 등록된 조선왕릉은 북한에 있는 2기를 제외 한 40기로 조선의 역대 왕과 왕비, 추존왕들의 묘를 총칭하는 말 로, 1897년에 수립된 대한제국의 역대 황제와 황후의 무덤도 포함 된다. 그러나 반정으로 추출된 연산군과 광해군 묘는 포함되지 않 는다. 일반적으로 조선 왕릉은 길지 중 길지로 생각하기 쉽다. 적 어도 길지였기에 조선사 500년 자손 대대로 왕이 출현했다. 그래 서 이론적으로는 당대 최고 풍수학의 전문가들의 지혜가 집약된 길지로 평가된다. 풍수에 대한 조선왕조의 신봉은 광적일 만큼 강 했다. 왕릉 자리를 정할 때 풍수로 명당을 선택하는데, 왕릉 길지 를 살피고 점혈(點穴)하는 관리를 상지관(相地官)이라 한다. 풍 수지리설에 따라 북현무, 남주작, 좌청룡, 우백호로 둘러싸인 곳 끝머리 황룡이 있는 곳이 왕릉 터가 된다. 양쪽에서 명당수가 흘러 내리는 배산임수의 이런 명당자리를 길상지라 한다. 상지관이 왕 릉 자리를 점혈하면 다시 의정부 당상관이 주위 나무를 베어내고 산세를 살핀 뒤에 왕에게 보고한다. 왕은 직접 현지를 답사하거나 도면을 본 뒤 최종 확정한다. 그러나 이렇게 철저하게 명당을 선정 해 왕릉을 조성하지만 조선 왕조가 항상 순탄했던 것은 아니고 피 비린내 역사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길지와 험지가 교차했다. 이들 왕릉을 조선실록과 대비시켜 관찰하면 왕릉은 순수한 풍수지리학 의 결정이 아니고 고도의 정치 행위이기도 하고 인간관계의 인과 물인 측면이 강하다.

 

 

홀아비 왕릉에서 수신제가의 실패를 본다

 

칼럼2.jpg

 

조선 왕릉을 보면 실록에 기록되지 않은 살아 있는 역사가 기록되 었다는 점이다. 수신제가가 되지 않았을 때 최종적으로 집합돼 나 타나는 것이 왕릉의 조성과 천장이다. 왕릉은 크기와 위치, 모양이 저마다 다르다. 조선 왕릉의 형태는 단릉, 쌍릉, 합장릉, 동원이강, 삼연릉으로 분류할 수 있다. 단릉이란 말 그대로 능이 하나만 있는 것을 말한다. 왕릉 중에서 단릉 즉 홀아비 능은 태조의 건원릉, 중 종의 정릉, 단종의 장릉이 이에 속한다. 이 단릉에 묻힌 왕, 즉 태 조, 중종, 단종의 공통적인 특징은 수신제가에 완전히 실패한 왕들 이라는 점이다. 태조의 건원릉은 억새로 머리는 산발하고 보살핌을 받지 못한 홀 아비 신세 그대로이다. 태조에게는 신의왕후 한씨와 신덕왕후 강 씨가 있다. 신의왕후 한씨 능은 제릉으로 개성에 있고 신덕왕후 강 씨의 능은 정릉으로 서울 성북구에 있다. 우리가 역사에서 주지하 는 데로 태조는 한씨 소생의 다섯 왕자와 강씨 소생의 두 왕자 중 에서 가장 어린 막내인 방석을 세자에 봉함으로서 2차 왕자의 난 을 자초했고 왕자의 난으로 왕위에 오른 태종은 강씨를 후궁으로 강등하고 정릉을 파헤쳐서 그 난간석을 청계천 다리공사에 활용 케 했다. 그리고 태조의 묘를 강씨와도 한씨와도 합류치 못하게 하 고 홀아비 왕릉으로 조성한 것이다.

 

칼럼3.jpg

 

또 다른 사례가 중종의 정릉이다. 중종은 조선 조에 유일하게 3명 의 왕비가 있었다. 정비인 단경왕후는 온릉에, 첫 번째 계비인 장 경왕후는 서삼릉의 희릉에, 그리고 두 번째 계비였던 문정왕후는 태릉에 안장됐고 중종 자신은 강남의 선정릉에 홀아비릉으로 안 장됐다. 중종은 주지하는 바와 같이 중종반정으로 왕이 된 후에 공신들의 강압에 단경왕후 신씨를 폐서인했다. 그리고 장경왕후 윤 씨와 재혼했다. 장경왕후는 사후에 곡절을 거쳐 서삼릉에 희릉으 로 안장됐고 곧이어 중종도 사후에 희릉에 합류됐다. 그러나 중종 의 두 번째 계비였던 문정왕후는 풍수를 이유로 장경왕후와 나란 히 묻혀 있는 중종을 성종의 선릉 옆으로 천장했다. 실질 이유는 자신이 중종 옆에 묻히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새로 천장된 정릉에 서는 장마 때면 물에 잠기곤 해서 문정왕후는 정릉에 묻히지 못하 고 멀리 떨어진 태릉에 묻히게 됐다. 결과적으로 수신제가치국에 실패한 중종의 묘는 단릉이 된 것이다. 더욱 아이러니 한 것은 임 진왜란 당시 중종의 정릉은 파묘돼 빈묘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수신제가에 성공한 왕의 무덤은 다르다

 

동구릉은 동쪽에 있는 9개의 릉이라고 해서 부쳐진 이름이다. 그 9개 릉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능이 숭릉이다. 숭릉은 조선 18대 현종과 명성왕후 김씨의 능이다. 숭릉은 하나의 곡장 안에 봉분을 나란히 배치한 쌍릉 형식이다. 멀리서 보아도 부부 금슬이 좋아 보이는 왕릉의 형태를 띠고 있다. 현종은 효종과 인선왕후 장씨의 아들로 1641년(인조 19년)에 청나라 심양 관사에서 태어난 조선 역대 임금 중에 유일하게 외국에서 태어난 왕이다. 1659년에 효 종에 이어 왕위에 올랐다. 현종은 어려서부터 효심이 지극하고 사 려가 깊었다. 청나라 심양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나이에 부모보다 먼저 본국으로 먼저 돌아왔는데, 해가 떠오르는 것을 볼 때마다 하루빨리 아버지인 효종이 돌아오기를 기도했다. 새로 맛있는 음 식을 대할 때, 효종이 있는 지방에서 생산되지 않는 것이면 바로 보내게 하고 나서야 맛을 볼 정도로 부모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컸 다고 한다. 효자로서 현종의 가장 큰 특징은 조선조에 후궁을 두 지 않은 유일한 왕이다. 명성왕후와의 사이에서 1남 3녀를 두었는 데 그 1남이 바로 제19대 숙종이다. 현종은 후궁들의 꽃들의 전쟁에 서 가장 자유로운 왕이었으며 아들 숙종의 치세에 큰 보탬이 됐다.

 

조선왕릉은 조선실록보다 더 살아 있는 역사 기록이다

 

조선 왕릉 총 40기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것은 한 왕조의 무덤이 완전하게 보전된 사례가 전세계에서 찾아 볼 수 없다고 한 다. 그런데 더욱 중요한 것은 조선 왕릉을 통해서 역사 기록에서 누락된 진실을 규명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수신제가가 복잡 한 왕들의 능은 계곡이나 언덕을 사이에 두고 왕과 왕후, 계비의 무덤이 있는 형식인 동원이강 능의 형태로 되어 있다. 대표적인 동원이강으로 조성된 능으로는 세조와 정희왕후의 광릉과 선조와 의인왕후, 계비인 인목왕후의 무덤인 목릉이 있다. 그리고 한곳에 3기의 능이 있는 삼연릉도 있다. 헌종과 효현왕후, 계비인 효정왕 후가 함께 잠들어 있는 동구릉의 경릉이 유일한 삼연릉이다. 태종 과 원경왕후가 묻힌 헌릉과 인종과 인성왕후의 효릉이 쌍릉이다. 합장릉이란 왕과 왕후가 하나의 무덤에 함께 묻힌 능이다. 최초의 합장릉은 세종과 소헌왕후의 영릉이다. 고종과 명성황후의 묘인 홍릉과 순조와 순원왕후가 묻힌 인릉, 순종과 순명효황후, 순정효 황후가 묻힌 유릉도 합장릉이다. 명당이 후손의 발복을 보증한다 는 증명은 없지만 발복한 후손이 명당을 만든다는 증거는 왕릉을 보면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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