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조회 수 55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1 (9).jpg

 

 

 

우리역사를 되돌아보면 우리 조상들이 너무 안이하게 살았다는 데에 화가 난다. 여기엔 큰 두 가지 사실을 상기하지 아니할 수 없다.

 

그 첫째는 오끼나와섬 문제다. 지금은 오끼나와로 불리며 세계 제2차 대전 이후 일본의 중요한 전략 포인트가 되어 있지만, 이 섬은 중세까지는 유구(琉球)왕국이라는 독립국가였다. 오끼나와는 사쳐시마섬(先島), 다이도(大東)등 3개의 큰 섬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일본 본토와는720Km, 한국과는 700km의 거리에 있어 일본보다는 한국이 가까운 위치에 있다. 그래서 인지 유구왕국은 이조왕조에 사신을 보내 화친 교섭을 했다. 그러나 이조는 청나라에 그랬듯이 알지도 못하는 이 나라와 화친할 수 없다는 이유로(청나라와는 오랑캐라는 이유)거절했다. 무주공산이 되어버린 이 섬 왕국은 결국1609 일본의 가고시마(鹿兒島)영주 시마스(島津氏)에 의해 무혈 합병 되었고 그 이후메이지와 미국군정을 거쳐 계속 일본 영토로 존속 되고 있다. 우리가 이들의 사신을 거두어 주었 다면 유구는 오늘의 위치에서 훨씬 바뀌었을 것이다.

 

2 (9).jpg

둘째는 하멜사건이다. 네덜란드인 하멜은 우리나라 제주도에 표류했다가 14년간 억류 끝에 탈출하여 네덜란드로 돌아가 하멜 표류기를 써 출간함으로써 서방 세계에 우리나라를 처음으로 소개한 사람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하멜은 1653년 네덜란드의 스페르베르(號)를 타고 타이완을 거쳐 일본 나가사끼 (長崎)로 항해하던 중 폭풍을 만나 선원64명중 28명은 익사 또는 행방불명이 되고 36명은 하멜과 함께 제주도에 표류하여 53년(8월 중순(효종4년) 조선관헌에 의해 억류되었다. 조선 관헌들은 이들을 때리고 먹을 양식도 제대로 주지 않고 학대했으며(이들은 약자였으니까) 54년 이들을 서울로 압송하였다 압송을 받은 중앙에서는 이들을 전라도등 전국으로 데리고 다니면서 국민들에게 구경을 시켰다. 전라도에서 하멜이하 8명은 밤에 탈출하여 해변에 있는 배를 타고 일본 나가사키로 도망하여 68년7월에 귀국하였다.

 

한편 일본으로 표류한 다른 일행은 어떠했나. 일본 막부(幕府) 정부는 이들이 먼 나라에서 동양권까지 왔으니 배 만드는 기술이 탁월할 것으로 추측하고 “배를 만들어 타고 가라”는 식으로 인심을 쓰는 척 했다. 그러나 배가 거의 만들어 졌을 무렵 배에다 불을 질러 다 태워 버리고 또 배를 만들게 함으로서 완전히 조선 기술을 습득했다. 이방인들을 이용했다는 점은 일본과 조선이 같으나 조선과 일본은 이처럼 기술을 빼내는데 차이가 있었다. 여기에 국력발전의 차이가 생긴 것이다. 이 원리는 오늘 기업을 하는 사람이나 국민 모두에게 적용된다고 본다.

 

우리의 못난 선조들의 유구왕국(琉球王國)의 예에서 보는 것처럼 새로운 것을 아예 무시하는 태도도 옳지않고, 하멜의 경우처럼 새로운 것으로 호기심만을 충족해서도 옳지 않다. 새로운 것에의 도전이란 그것을 완전히 극복 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요즘은 전자. 의류,각 기술 분야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것이 쏟아진다. 이 새 기술들에게 무한히 도전하여 이를 극복해

간다면 우리의 처지는 빠르게 발전될 것이다.

 

 


  1. 중국의 문화코드 - 장공자

        현대중국의 대표적인 석학 린위탕(林語堂)은 중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문자(漢字)와 만리장성 그리고 멘즈(面子:체면)를 알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이 세 가지는 유형과 무형의 중국문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
    Date2016.04.11 Views223
    Read More
  2. ‘간도(間島)’땅을 지킨 이중하를 아시나요 - 허정균

            근래에 들어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독도 등 한·중·일 3국간에 영토문제가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분단국가가 된 이후 중국과 우리 민족과의 가장 중대한 간도문제는 거론되는 일이 없다. 간도(間島)는 중국 동북부의 한국...
    Date2016.04.11 Views254
    Read More
  3. 비판의 시선으로 보는 한국사 - 남경태

          강국의 조건이라면 보통 땅과 사람을 꼽는다. 그러나 실은 그 두 조건보다 더 중요한 게 역사다. 땅이 좁고 사람이 적어도 강국인 나라가 있고, 반대로 땅이 넓고 사람이 많아도 강국이 되지 못하는 나라가 있다. 그렇게 보면 한국이 강국의 조건에서 ...
    Date2016.04.11 Views134
    Read More
  4. 작은 달력 속의 큰 역사 - 남경태

    작은 달력 속의큰 역사   글 남경태 (인문교양서 저술가)     12월 31일과 1월 1일은 하루 차이지만 그냥 하루가 아니다. 달력의 한 장을 넘기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낡은 달력을 버리고 새 달력을 벽에 거는 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인위적인 시간의 ...
    Date2016.04.11 Views271
    Read More
  5. 미지(未知)에의 도전(挑戰) - 주돈식

          우리역사를 되돌아보면 우리 조상들이 너무 안이하게 살았다는 데에 화가 난다. 여기엔 큰 두 가지 사실을 상기하지 아니할 수 없다.   그 첫째는 오끼나와섬 문제다. 지금은 오끼나와로 불리며 세계 제2차 대전 이후 일본의 중요한 전략 포인트가 되어...
    Date2016.04.11 Views55
    Read More
  6. 혁명(革命)이 없었던 역사 - 남경태

        혁명(革命)이 없었던 역사   서양보다 강력한 중앙집권적 체제와 안정된 사회를 이루었던 동양사회! 이것이 세계 문명의 선두주자로 군림했던 이유이자 그 자리를 서양에 내주게 된 이유다.   글 남경태 (인문교양서 저술가)         사자와 호랑이가 싸...
    Date2016.05.02 Views87
    Read More
  7. 대한제국이 멸망하던 날, 마지막 어전회의 - 김무일

      대한제국이 멸망하던 날, 마지막 어전회의   글 김무일 前 현대제철 부회장 선농문화포럼 이사     숱한 외적의 침입과 전란을 겪으면서도 500여년을 맥맥히 이어온 帝國의 운명이,하루아침에 역사의 뒤안길로 허망하게 사라지는 것도 한 순간이었다. (1975...
    Date2016.05.02 Views437
    Read More
  8. 역사가 바뀔 수 있나? - 이종욱

    역사가 바뀔 수 있나? 글 이종욱 (서강대학교 총장)     역사학자들은 진리만을 이야기할까? 결코 그렇지 않다.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660년 백제를 정복한 신라의 왕 김춘추 (생존기간 603~661, 왕위재위기간 654~661)에 대한 역사가들의 이야기를 볼 수 있...
    Date2016.05.02 Views182
    Read More
  9. 1004명이 들려주는 가야금 소리 - 문재숙

        기네스 기록에 도전 동북공정에 대항하는 문화전사   백두산을 장백산으로 부르고, 고구려 천리장성도 만리장성으로 편입시키려하고, 윤동주 시인을 중국 시인(조선족 애국시인)이라고 주장하는 중국을 보노라면, 동북공정의 끝은 어디일까 불안하다. 가...
    Date2016.05.02 Views327
    Read More
  10. ‘행복한 이유가 있지요’ - 김현숙

    장애, 비장애아 친구 맺기... 베스트버디스 전시회와 음악회... ‘행복한 이유가 있지요’ 아이코리아 김태련 회장 인터뷰       김태련 회장은 요즘 어느 때 보다도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베스트버디스 코리아의 장애-비장애아 친구 맺기 사업이 국내외적...
    Date2016.05.02 Views96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Next
/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