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나라 이웃나라' 못다한 이야기
이원복 前덕성여대총장, 먼나라 이웃나라 著者
나는 웬만한 강의요청은 거의 거절하지 않는다. 우선 만화가한테 말로하는 강의를 요청하는 것 자체가 색다르지만 직업이 과거 교 수였다보니 그건 그럴 수 있겠다. 그러나 강의를 거절하지 않는 가 장 큰 이유는 내 독자에 대한 감사의 뜻이다. '먼 나라 이웃나라” 가 1981년에 소년한국일보에 연재되기 시작한 이후 벌써 44년이 흘렀고 책으로 묶여 출간된 것이 1987년이니 이미 37년이 됐다. 그 긴 세월 동안 꾸준히 책이 수명을 유지한 것은 전폭적인 독자들 의 지원이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어떤 강의라도 독자 들과 만나 스킨십을 나누는 일이라 생각하고 기꺼이 응한다.
내가 살아오면서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 무어냐고 누가 묻는다 면 그것은 아마도 독일 유학 10년 동안 쉬지 않고 한국의 어린이 일간지에 일일 만화를 연재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처음으로 어린이 신문에 만화를 연재하기 시작한 것은 1962년 고등학교 1 학년 때 소년한국일보에서 외국만화 베끼는 아르바이트로 시작 한 것이 처음이었다. 그러다가 고3 때에도 만화만 그리다가 한번 떨어지고 대학교에 들어간 1966년에는 제대로 내 이름을 걸고 만 화를 연재하기 시작했으니 그때 초등(국민)학교 3학년 이었던 분 들이 아마 지금은 70줄에 들어섰을 나이다.
1970년이면 내가 24 살 때인데 나보다 6세 아래인 한 지방 여학생이 이대에 신입하여 내게 이른바 팬레터를 보냈는데 '이원복 아저씨”로 시작되고 있 었다. 그 소녀의 생각으로는 내가 중년 아저씨인줄 알고 그랬을 터인데 나중에는 내 나이를 알고 깜짝 놀랐음은 물론 내 첫 사랑 이 되기도 했다. 어쨌든 첫 독자가 70대에 들어섰으니 당연히 손 자, 손녀 나이도, 머지않아 증손자가 나의 독자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2024년 말에 '먼나라 이웃나라 최신 개정 증보판' 을 냈는데 거기에 붙인 슬로건이 '시대를 넘어 세대를 넘어”이다. 먼나라 이웃나라는 연재를 시작한 1981년부터 원고를 항공우편 으로 부쳐 소년 한국일보에 일일 연재했는데 연재 기간동안 단 한 번도 원고 지각으로 펑크 낸 일이 없는 것은 신문 일일 연재로서 는 거의 기적과 같은 일을 해냈다고 본다. 만약에 유학 기간 동안 연재를 끊었다면 독자들이 세대를 넘어 연결될 수도 없었고 오늘 날의 사랑도 받지 못했을 것으로 생각하기에 내가 가장 잘한 일이 라 생각하고 그래서 또 독자와 만나는 일이라면 어떤 강의도 기꺼 이 응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학교 다니던 시대의 사대부고는 특차이자 성골(聖骨)들이 라고 알고 있었기에 선농포럼의 강의 요청은 오히려 영광스러운 기회로 생각됐다. 그런데 조금 더 흥미로운 것은 단회 강연이 아니 라 '학기 강의”를 하라는 것이 아닌가. 한 학기 12주 강의면 대학 교 정규 과정과 같고 그냥 가서 한번 강의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일관성있는 테마와 콘텐츠로 준비를 단단히 해야하는 강의이다.
2012년 정년퇴임한 이후 처음 맡아보는 정규 학기 강의라는 점에 서 다시 현직으로 돌아든 듯 무척 가슴이 설레지 않을 수 없었다. 강의를 하다보면 가장 어려운 것이 수강자가 노년층 남성들이 대 부분인 경우이다. 거의 반응도 없고 시선이 우선 '네가 뭘 아냐'는 식으로 비우호적이기까지는 아니지만 결코 우호적인 분위기도 아 니다. 그다음으로 어려운 것이 수강층이 초등학생부터 노년층까 지 세대가 혼합된 경우인데 주제를 정하기도 강의수준을 잡기도 아주 어렵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수강층은 젊은 여성들이 대부분 인 경우다. 30년 넘게 여대에서 강의를 해서 그런지 앞에 젊은 여 성 수강생들만 앉아있으면 마음이 편하고 강의가 아주 자연스러 워진디. 아마도 관성이리라 그런데 사대부고 동창회관에서의 강 의는 참으로 특이하다.
우선 수강생이 최소 60대에 간혹 '드물게' 50대도 끼어있지만 대 부분이 60~70대로 거의 나와 동시대 분들이라 강의자와 수강자 의 시대공감이 그렇게 잘 맞을 수가 없어 다른 강의에서 처럼 '나 때는...'이라는 수사가 필요 없고 어떠한 내용이든지 그때그때 즉 각 피드백 되기에 참으로 강의에 신이 나지 않을 수 없다. 또 수강 하시는 분들이 대부분 여성들어서 내가 가장 편하게 강의할 수 있 는 여성대상 에다가 적극적이고 뭔가 듣고 알고자하는 의욕이 왕 성해 정말 강의하기에 힘이 들지 않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떠들 게 되기 일쑤다.
그래서 즐겁게 해온 강의가 벌써 두 학기나 지났 는데 다음 학기에 또 강의 요청을 받았다. 나는 2025년에도 더욱 재미있고 알찬 강의를 위해 많은 준비를 할 것을 다짐한다. 지금 까지 세계 여러 지역과 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해왔으나 준비한 내 용의 반도 못하고 시간이 차버려 원래 60분으로 시작한 강의가 90분으로 늘었어도 못다한 얘기는 계속 넘쳐 흐른다. 이번 학기에 는 그 못다한 얘기를 펼쳐나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