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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보엠〉과푸치
양현주 서울기독대학교 겸임교수
햇살의 사전적 의미는 해에서 나오는 빛줄기 또는 그 기운을 일컫는다. 추위로 얼어붙은 대지를 녹이는 겨울햇살. 창문으로 퍼져 나와 봄을 알리는 따사로운 봄 햇살. 백합과 장미꽃을 피우는 여름 햇살. 들판을 황금물결로 물들이는 가을 햇살. 햇살은 이렇게 많은 얼굴을 하고 있지만, 어느 계절에나 참으로 따뜻한 울림을 가진다.
푸치니의 오페라 '라 보엠'은 인생의 햇살을 기다리는 가난한 예 술가들의 삶과 사랑을 담고 있다. 오페라는 추운 겨울, 무일푼의 젊 은 예술가들이 모여 사는 낡은 아파트에서 시작된다. 오늘은 크리 스마스이브. 창밖은 크리스마스의 열기로 한껏 들떠있다. 루돌프 와 친구들이 함께 사는 다락방에는 겨울의 냉기가 가득차 있고 텅 빈 식탁에는 먹다 남은 빵부스러기만이 초라하게 놓여있다. 루돌 프와 친구들은 원고를 태워 몸을 녹인다. 다행히 수완 좋은 친구가 약간의 돈과 술을 마련해 오고 이들은 환성을 지르며 크리스마스 이브를 축하하기 위해 모무스카페로 몰려간다. 루돌프만이 쓰던 원고를 마치기 위해 방에 남아 있다.
잠시후, 옥탑방에사는아가씨가기침을심하게하며들어온다. 그 녀의 이름은 미미. 폐병을 앓고 있다. 그녀는 촛불을 켜기 위해 성 냥을빌리려고온것이다. 루돌프는불을붙여준다. 그녀는돌아가 다 곧 다시 온다. 방 열쇠를 떨어뜨린 것이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불어오는 바람은 미미와 루돌프의 촛불을 모두 꺼버린다. 어두운 방, 달빛만 흐른다. 달빛에 비친 미미의 창백한 얼굴에 루돌프는 마 음을 빼앗긴다. 두 사람은 어둠속에서 더듬거리며 열쇠를 찾는다. 우연히 먼저 열쇠를 발견한 루돌프는 얼른 주머니 속에 넣고 계속 찾는 척한다. 그러다 미미와 손길이 닿자 유명한 아리아 '그대의 찬손(Che gelida manina)'을 노래한다.
'손이 무척이나 차갑군요. 제가 따뜻하게 녹여드릴게요. 이런 어 둠 속에서 찾아봐야 소용없는 일이지요. 다행히도 달이 밝은 밤이 군요! 여기 우리를 가까이서 비추고 있어요. 잠시만, 아가씨, 제 얘 기를들어주시겠어요? 내가누구인지, 무엇을하고어떻게사는지 요. 저는 시인입니다. 무얼 하냐고요? 글을 쓴답니다. 어떻게 사느 냐고요? 가난하지만 귀족처럼 풍요롭게 시와 사랑의 노래들을 마 음껏 쓰며 살아요. 꿈과 환상들 그리고 상상 속에 멋진 성을 갖고 있죠. 나의 마음은 백만장자 처럼 넉넉해요. 그런데 한 순간 내 마음 의 보물 상자에서 귀중한 보물을 도둑맞았답니다. 그 도둑은 당신 의 아름다운 두 눈이죠. 당신이 들어온 순간, 허황된 나의 꿈이 모 두 사라져버리고 말았어요. 그러나 아쉽지는 않아요. 그 자리가 희 망으로 채워졌기 때문이죠. 자, 나에 대해 모두 알았으니, 이제 당 신이 누구인지 말해 주세요?'라고 묻자, 미미는 '내 이름은 미미 (Si, Mi Chiamano Mimi)'라는 아리아로 화답한다.
'내 이름은 미미랍니다. 명주나 비단에 수를 놓아요. 백합과 장미 에 수놓는 것을 좋아해요. 그들은 달콤한 매혹을 지녔고, 사랑과 봄 그리고 꿈과 환상을 말하니까요. 저는 이것을 시라고 부릅니다. 저 는 홀로 조그만 방에서 지붕과 하늘을 내다 봅니다. 눈이 녹는 따뜻 한 날씨가 되면 첫 햇살은 나의 것, 4월의 첫 입맞춤도 나의 것이지 요! 장미가 피어날 때, 전 그 향기를 맡아요. 꽃잎 한 잎 한 잎의 향 기를. 사랑스럽고 너무도 달콤한 그 꽃향기! 하지만 제가 만드는 꽃에는 향기가 나지 않아요.'라고 대답한다. 루돌프와 미미는 이 두 편의 아리아를 통해 서로가 연인임을 선언하고 '사랑, 사랑'을 외친다. 그리고 카페의 친구들과 함께 생애에서 가장 행복한 크리 스마스 파티를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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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지만 마음만은 백만장자인 루돌프와 외롭고 병든 몸이지만 수를 놓으며 꿈과 환상의 시를 쓰는 미미. 이 가난한 연인들이 보 랏빛 꿈을 안고 살아가기에 현실의 삶은 녹록하지 않았다. 살을에 는 추위가 몰아치는 2월, 루돌프는 미미의 곁을 떠나기로 결심한 다. 혹독한 추위와 굶주림으로 미미의 병은 점점 깊어져만가고 자 신의 처지로는 그녀의 병을 치료해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슬픈연인 은 헤어지기 전, 사랑의 기쁨과 추억을 안고 <안녕, 달콤한 아침이 여!(Addio dolce svegliare alla mattina!)>를 부른다.
'겨울은 너무 추우니 따스한 햇살이 친구가 되는 봄에 헤어지자. 이별은꽃이피는계절에하자며이겨울이영원하기를'바라지만 결국 미미는 나는 영원히 당신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루돌프의 곁 을 떠난다. 시간이 흘러 다시 돌아온 겨울. 미미가 병색이 완연한 모습으로 루돌프의 차디찬 다락방을 찾아온다. 미미는 생의 마지 막 순간을 사랑하는 루돌프와 함께 있고 싶었기 때문이다. 다시만 난 연인은 미미가 촛불을 빌리기 위해 루돌프의 방에 들어선 그 순 간부터 열쇠를 잃어버린 이야기까지 추억을 회상하며 <내 이름은 미미>를 부른다. 미미는 그때 루돌프가 열쇠를 찾은 것을 알고 있 었다고 얘기한다. 그리고 당신을 영원히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 왔다고 말하고 조용히 눈을 감는다. 루돌프는 미미의 이름을 부르며 울부짖고 오페라는 막을 내린다.
오페라 <라 보엠>은 프랑스의 소설가 앙리 뮈르제의 <보헤미안의 생활>이라는소설을바탕으로쓰였다. 푸치니는 이 오페라를 자신 의 젊은시절을 회상하며 썼다고 한다. 그는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 고 홀어머니의 뒷바라지로 음악 공부를 했다. 젊은시절, 생활은 궁 핍했다. 푸치니는 당시를 '인생 최고의 행복한 순간이나 돌아가고 싶지는 않은 시절'이라 회상했다. 예술가들의 애환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던 푸치니는 <라 보엠>을 작곡하면서 미미가 죽은 부분에 서는자기도모르게대성통곡을했다고한다.
푸치니의 인생에 햇살이 비치기 시작한 때는 언제였을까. 1893년,오페라<마농레스코>로큰성공을거두면서이다. 이어서<라보엠>으로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작곡가 반열에 오르게 된다. 그의 나이 35세에 드리우기 시작한 햇살로 푸치니는 <토스카>, <나비부인>, <투란도트>와 같은 걸작을 쏟아냈다.
세상이 꽁꽁 얼어붙은 이시대.
마음과 마음이 닫혀버린 지금.
서로를 녹여줄 따스한 햇살이 비추기를 소망해 본다.
봄이 오면, 4월이 제일 먼저 우리에게 첫 입맞춤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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