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에 철썩 붙어라

유서영
前사대부여중 교장
前사대부여중 교장
연꽃과 백로 두 마리 그리고 잉어가 시선을 붙잡는다. 물속인지, 물가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특이한 것은 잉어가 물 위에 떠 있는 것인지, 잡아놓은 것인지 알 수 가 없다는 데 있다. 그림의 본을 받아 붓으로 가늘게 본 을 떠 본다. 그 본이 내 눈에는 정상이 아니다. 베끼고 싶은 마음이 슬그머니 사라진다. 민화를 배운 지 얼마 안 되어 선생님께 여쭙기도 어렵다. 보고 다시금 본다. 옛 선비들은 일단 뜻을 모르더라도 글을 자꾸 큰소리 로 읽으라 했다. 그러면 그 속에 담긴 뜻이 저절로 떠올 라 이해하게 될 것이라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웬걸 엉뚱하게 샤갈의 'I and the Village'가 떠오른다. 거꾸로 서 있는 사람도 있고, 염소의 뺨 위에 는 젖을 짜는 여자가 그려져 있다. 작가의 의도를 알지 못하고서는 이해할 수 없는 그림이다. 생각은 자유라 했던가. 이번에는 피카소가 그린 비극성과 상징성이 있 는 'GUERNICA'까지 겹친다.

OO문고에 들렀다. 건축학 학사, 한국학 석사, 미술사 학 박사, 문화재학과 정병모 교수가 지은 '민화, 가장 대중적인 그리고 한국적인'을 흐뭇한 마음으로 구입 했다. 작가는 이 책을 집필하느라 얼마나 많은 시간 공 을 들였을까. 책에 실린 내용은 이러했다. 민화란 무엇 인가, 민화의 주제, 민화의 역사, 민화와 종교, 동아시 아의 민화 등 5부로 나누어 읽는 내내 민화에 대한 갈 증이 충분히 풀렸다. 한줄기 연꽃은 청렴결백을 바라 는 '일품청렴一品淸廉'을 나타낸다. 또 연밥이 들어있 는 송이를 포함한 연꽃을 그리면 귀한 아들을 빨리 낳 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는다. 다양한 의미가 있는 연 꽃 그림은 많은 사랑을 받기에 충분하다. 더구나 연꽃 은 불교를 상징하는 꽃이다. 불교는 삼국시대를 거쳐 고려, 온갖 핍박을 받았던 조선시대에도 위로는 세종대 왕 같은 성군에서부터 백성들에게 귀한 가르침으로 오 늘날까지 끊이지 않는 불꽃처럼 타오르고 있다. 그러니 연꽃에 대한 사랑은 남다르다 하지 않으랴.
연꽃과 물고기는 해마다 넉넉하고 풍족한 생활을 상징 한다. '연연유여連年有餘'를 뜻한다. 연꽃의 연蓮자는 '잇따를' 연連자와 '물고기' 어魚자가 '여유로울' 여餘 자의 중국식 발음인 '어'와 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물고 기 중에서도 잉어가 그려져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 고기가 변하여 용이 된다는 '어변성룡도'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지 싶다. 여기 그려진 이 물고기가 바로 잉어 가 아닐까. 용감하고 신령스러운 잉어 한 마리만이 용 문에 뛰어오를 수 있다는 '등용문'의 고사도 있다.
다시 그림을 보며 생각에 잠긴다. 두 마리의 새는 백로 로 보인다. 꽁지가 검지 않으니 두루미는 아닌 것 같 다. 우리나라의 선비는 鶴 '두루미'을 좋아했다. 선비 는 글공부를 열심히 하여 과거시험을 통해 벼슬에 올 라 학처럼 깨끗하게 살아야 한다. 문관이 두 마리의 학 을 수놓은 흉배가 있는 관복을 입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아무리 보아도 내 눈에는 두루미가 아닌 백로 로 보인다. 이 그림은 분명 방에 걸어 놓았을 것이다.
'너는 아직 잉어지만 열심히 공부하여 용이 되어야 한 다. 비록 지금은 백로지만 열심히 한걸음 한 걸음 내 딛다 보면 너는 두루미(학)가 될 것이다. 잉어가 용이 되듯이 말이다. 그리고 아들도 많이 낳거라.'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백로는 두 마리로 보이지 않 는다. 한 마리가 두 걸음을 내디딘 모습이다. 굉장한 것을 찾아낸 듯 기쁘다. 그러나 책에도 없는 이것을 나의 주장이라고 펴낼 위치는 아니다. 적어도 책의 저 자처럼 오랫동안 민화 연구를 해온 사람이나 가능할 일이겠다. 무명 민화작가 code! 재미있다. 내친김에 인 터넷에서 '나무위키'를 통해 백로에 대해 알아본다. 백 로는 여름이 끝날 무렵 남쪽으로 떠나는 철새란다. 연 밥이 까맣게 익어가는 초가을에는 백로를 보기 어렵다 고 한다. 백로와 연밥이 동시대에 같은 공간에서는 공 존할 수 없다. 그런데 버젓이 연꽃봉오리, 까맣게 익은 연밥, 진초록의 연잎, 백로, 잉어가 함께 그려져 있다. 또 혼란스럽다.
겸재 정선이 주로 그린 진경산수화는 실물과 거의 오 차가 없다. '인왕제색도'를 그릴 당시에는 인왕산이 한양에 있으니 정말 궁금하면 다시 찾아가 보고 오면 되겠지만, 금강산은 두 번 다시 다녀오기 힘든 곳 아니 겠는가. 사진기도 없던 시절에 정선은 정말 대단한 사 람이었다. 그런데 이 그림은 현실성과 계절의 흐름은 뒤로 하고, 인간의 염원을 담고 있다. 시대정신을 알아 야 민화를 이해할 수 있나 보다.

나는 지금 '일로연과도'를 그리고 있는 것이로구나. 속이 다 시원하다. 붓을 재빨리 움직이며 잉어까지 그 리고 나니 이제 색을 잘 입히는 일이 남아 있다. 그런데 왜 가슴이 싸~ 하며 아픈 걸까. 조선의 선비처럼 한 번 에 철썩 붙어야 한다는 무언의 압력. '공부해야 한다'라 는 말이 지금도 허공에서 맴도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