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의 교훈 건국전쟁 ‘한국의 탄생’
이선호
前 한국수출입은행 전무이사
대신통상(주)대표이사
前 한국수출입은행 전무이사
대신통상(주)대표이사
김덕영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 전생’은 관객들로부터 뜨거운 환영과 이례적인 돌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나는 지난 봄 雩南 이승만(1875-1965)의 일생에 걸친 드라마틱한 사실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를 감상하기 위하여 서울 압구정 CGV를 찾았다. 우남은 의심할 여지없이 우리나라의 가장 중요한 독립투사 중 한 명이었고, 상하이 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이자 대한민국 건국의 아버지인 초대 대통령이었음은 누구나 부인할 수 없는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그에 대한 사후 평가는 공과를 막론하고 정확하게 객관적으로 다루어져야 한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우남의 확고한 반공 이념과 친미 사상을 비판하는 종복좌파 내외국인들은 그의 애국적인 헌신과 빛나는 업적을 폄하하고 역사에서 아주 지워버리려고 부단히 노력해 왔다.
세계 어느 나라도 건국 지도자를 그런 식으로 대우한 사례가 없다. 이 다큐멘터리는 우남이 황해도에서의 어린 시절부터 하와이에서 임종할 때까지의 그의 전반적인 투쟁과 희생을 솔직하게 기록하고 있다. 영화는 좋든 나쁘든 우남의 격동적인 삶의 유산에 대한 균형 잡힌 접근 방식을 견지하고 있다. 나는 우남이 국회에서 재선되지 못함을 막기 위해 전쟁 중인 부산 피난 시절 국회에서의 직접 투표로 대선을 치르도록 하는 발취 개헌안을 무리하게 통과시킨 기어를 하고 있다. 그는 야당 정치인들의 대대적인 체포 명령을 내리면서 1952년 7월 원하는 대로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1956년 재선된 후 그는 중임 제한을 없애는 헌법개정을 추진했고 1960년 3월 다시 재선되었다. 그러나 3.15 부정선거로 부통령에 당선된 자유단 러닝메이트 만송 이기붕은 4.19 학생의거를 확산시켰고, 이 소요를 정부는 폭력으로 간주하여 진압시켰으며, 우남도 4월 26일 결국 ‘국민이 원한다면’이라는 사유로 스스로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내가 아는 한, 위에 열거한 부분적인 실책을 떠나 조선 후기, 일제 강점기, 미군정 시대, 한반도 땅에서 최초 신생 공화국 건국 등을 통틀어 뿐만 아니라, 6.25사변(1950-1953) 전쟁 수행 및 그 이후 재건 부흥 단계에 이르기까지 신생 대한민국의 초석을 깔기 위한 우남의 꿈과 열정은 눈부시게 탁월하고 미래지향적 수완을 발휘하였다.

우남은 독립운동가, 선도적인 저널리스트, 미국 내 우수 외국인 유학생, 미국의 정책당국이나 국제기구와의 핵심 협상가로서 한반도에 최초로 왕정이 아닌 민주공화국을 건국하는 뛰어난 정치적 재능을 보여 준 과정에서 핵심적인 리더십을 보여 주었다. 그는 1945년 한반도가 일제 식민지로부터 연합군의 도움으로 해방된 이후 미국에서 돌아와 농지개혁, 여성인권 및 지위 향상, 멸공을 외치면서 휴전 직전 전 세계를 놀라게 한 반공포로 석방, 휴전 이후 역사적인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전쟁으로 폐허가 된 조국의 재건과 부흥을 위하여 미국과 여타 우방들의 도움을 받아 얻어낸 획기적인 국제 정치외교적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나는 우남의 실화를 편견, 과장, 왜곡 없이 솔직하고 사실적으로 담아낸 김덕영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한국의 탄생’은 현재의 관람객들은 물론이고 미래 세대들에게도 많은 유익한 저력과 교훈을 남겨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어린 시절 처음 들었던 우남의 명언 “뭉치면 살고, 헤어지면 죽는다.”를 아직도 기억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