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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숙 고전평론가

 

동의보감.png

《동의보감》을 모르는 한국인은 거의 없다. 허준의 명성 또한 ‘범국민적’이다. 그만큼 동의보감과 허준이라는 기호는 한국인의 문화적 원형에 가깝다. 하지만 정작 그에 대한 이해는 참 ‘썰렁한’ 편이다. 동의보감은 만병통치의 비서, 허준은 불치병을 고치는 전설적 명의, 이게 고작일 것이다. 물론 모두 틀렸다. 동의보감은 유불도 ‘삼교회통’에 기반을 둔 비전탐구서고, 허준 역시 명의이기 이전에 학자다. 허준이 ‘허준이 된’ 까닭은 동의보감이라는 저술을 남겼기 때문이다. 

 

 

 

명의는 허준 말고도 아주 많았다. 하지만 《동의보감》 같은 대작을 남긴 의사는 허준뿐이다. 동아시아 의학사, 아니 세계 의학사에 비춰 보아도 분명 독보적인 작업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진면목은 거의 가려져 있다. 

 

해부도.png

동의보감을 직접 탐구하겠다는 생각을 하는 이가 거의 없다는 사실이 그 단적인 증거다. 그저 최고의 문화유산으로 떠받기만 할 뿐, 우리네 삶과는 무관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여기는 전통의학의 문제를 넘어서 의학 자 체에 대한 편견이 자리한다. 의학은 전문가의 몫이고, 따라서 보통 사람 들은 전문가의 지시에 따르면 그뿐이라는. 현대 병리학이 유포한 대표적인 편견 가운데 하나다. 의사들은 말한다. ‘조기검진’, ‘정기검진’만이 살길 이라고. 그다음엔? 전문가와 상담하라. 그다음엔 수술 아니면 투약! 마치 주문처럼 반복되는 이런 말들을 듣고 또 그런 코스를 밟다 보면 검진과 상담만이 유일한 의료라는 생각을 확고하게 믿게 된다. 그러다 보면 자기 몸의 주인이 ‘자기’라는 것, 자기 몸을 스스로 탐구한다는 건 감히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그 결과, 몸과 마음, 몸과 삶, 몸과 자연, 몸과 사회 등이 모두 어긋나 버렸다. 이 간극과 소외가 바로 질병의 원천이다. 보다시피 현대인들은 한편으론 우울증과 자살충동에, 다른 한편으론 암과 각종 면역계 질환에 시달리고 있다. 따라서 지금 시급한 건 병원과 의료서비스 이 전에 ‘자기 몸과의 진정한 소통’이다. 동의보감의 지혜를 불러내야 하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동의보감은 동아시아 의학사의 집대성이자 분류학의 결정판이다. 이 방대하면서도 명쾌한 저서를 가로지르는 의학적 키워드는 다름 아닌 양생술이다. 양생이란 무엇인가? 선천적으로 타고난 생명의 정기를 기르는 것을 의미한다. 병을 막고 세균을 몰아내는 것을 위주로 하는 위생담론과는 아주 다른 차원이다. 한데, 양생술을 탐구하려면 먼저 생명과 존재의 근원을 알아야 한다. 하여, 동의보감의 첫 장인 <내경편>은 ‘정기신(精氣神)’에서 시작한다. 우주의 근원 은 ‘기(氣)’이고, 기의 생리적 변환이 ‘정기신’이다. ‘정’은 물질적 원천, ‘기’는 그 원천을 흐르게 하는 에너지, ‘신’은 그 흐름에 방향을 부여하는 무형의 벡터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그리고 이것을 바탕으로 오장육부가 형성되고, 오장육부는 다시 이목구비, 뼈와 근육, 살과 힘줄 등과 연동된다. 그뿐인가. 이 네트워크는 그 자체로 우주다. 

 

동의보감-2.png

<내경편>의 첫 페이지를 장식하는 말이다. 천지에서 존재하는 것 가운데 사람이 가장 귀중하다. 둥근 머리는 하늘을 닮았고 네모난 발은 땅을 닮았다. 하늘에 사시가 있듯이 사람에게는 사지가 있고, 하늘에 오행이 있듯이 사람에게는 오장이 있다. (중략) 하늘에 십이시(十二時) 가 있듯이 사람에게는 십이경맥이 있다. 하늘에 이십사기(二十四氣)가 있듯이 사람에게는 24개의 수혈이 있고, 하늘에 369도가 있듯이 사람에게는 365개의 골절이 있다. 하늘에 해와 달이 있듯이 사람에게는 두 눈이 있고, 하늘에 밤과 낮이 있듯이 사람은 잠이 들고 깨어난다. (중략) 이 모든 것은 사대(四大)와 오상(五常)을 바탕으로 잠시 형(形)을 빚어 놓은 것이다.“ (손진인) 


요컨대, 생명과 우주는 ‘대칭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양생술이란 이 대칭적 고리를 회복함으로써 우리 안에 있는 생명 력을 일깨우는 기술이다. 핵심은 순환이다. 통즉불통(通則 不通/痛則不通)- 통하면 아프지 않다. 혹은 아프면 통하지 않는다! 이것이 동의보감을 대표하는 ‘사자성어’다. 순환이란 단순히 건강이나 체력의 향상을 의미하지 않는다. 거기에는 반드시 삶의 지혜가 요구된다. 이를테면, 생리적 순환에 문제가 생기면 판단과 행동도 뒤엉키게 마련이다. 그러면 자신을 둘러싼 모든 관계에 파열음이 생겨난다. 이것은 다시 몸에 엄청난 스트레스로 되돌아온다. 그러니 지혜가 없이 건강하게 잘 산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따라서 양생술의 관점에서 볼 때, 질병의 원천은 ‘탐진치’다. 탐욕은 ‘정’을 소모시키고, 진심(분노)은 ‘기’의 흐름을 어그러뜨리고, 치심(어리석음)은 ‘신’을 어지럽힌다. 쉽게 말해 ‘몸붕’과 ‘멘붕’은 하나다! 이 악순환으로부터 탈주하는 것, 치유는 거기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생사의 이치를 탐구하는 수행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우주적 관점에서 보자면 삶과 죽음은 하나다. 그 원리를 터득하지 않고서 죽음의 공포로부터 벗어날 길은 없다. 또 죽음의 공포가 지배하는 한 자유와 행복 또한 불가능하다. 결국 양생술이란 생리와 윤리, 그리고 영성(sprituality)이 하나로 통하는 ‘삶의 총체적 기예’라 할 수 있다.  

 

이 칼럼의 주제가 <몸과 인문학-《동의보감》을 통해 본 삶 의 지혜와 비전>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몸을 통해 삶을 탐구하고, 삶을 통해 몸을 성찰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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