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혜숙
한국공연예술원 이사장
2024년 대한민국 문화예술발전 유공자
‘은관문화훈장’ 수훈
한국공연예술원 이사장
2024년 대한민국 문화예술발전 유공자
‘은관문화훈장’ 수훈
한복, 잊혀진 아름다움에서 세계유산으로의 여정
어릴적부터 한국인들이 흰옷을 즐겨 입는 이유가 늘 궁금했다. 정월이면 색동저고리에 분홍치마를 입고 신이 났지만, 어른들은 외출할 때만 색을 맞춰 입었다. ‘백의민족’이라는 말에 수긍하면서 도, 청명한 하늘과 흰옷의 조화 때문인지 아니면 민족적 취향인지 풀리지 않는 숙제였다
1.4 후퇴 당시 부산으로 피란하며 어머니는 시집올 때 해온 옷가지 들을 차곡차곡 챙겨 오셨다.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소리 없이 한복 을 내다 팔던 모습에서 나는 처음으로 한복의 종류와 재질이 얼마나 다양한지를 깨달았다. 속고쟁이만 해도 여러 겹이었고, 옷매무새에 따라 품위가 달라지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전쟁 이후 한복은 특별한 날에만 입는 옷이 되었지만, 아버지의 서재에서 발견한 논문 <한복의 특징과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한복에 대한 깊은 관심을 보여주었다. 이비인후과 의사였던 아버지가 한복에 대해 연구했다는 사실은 지금도 놀랍다.
2025년은 대한민국 주권 회복 80주년. 우리는 이제야 우리 문화의 아름다움을 스스로 인정하고 자랑하며 세계 속에서 정체성과 자긍심을 되찾고 있다. 한식의 세계화 흐름도 그 증거다. 참으로 오래 걸린 여정이지만, 한 민족이 자존심을 세우고 존재감을 드러낸다는 것은 자랑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최근 중국의 동북공정과 문화 편입 시도는 우려스럽다. 한복과 김치를 자국 문화유산이라 주장하며 역사와 전통을 왜곡하는 모습은 도를 넘었다. 다행히도 한복의 유네스코 세계유형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움직임은 조용히 그러나 힘 있게 진행중이다.
한복의 세계유형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노력의 중심에는 두 인물이 있다. 먼저, 올해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을 수상한 정사무엘 한문화진흥협회 이사장은 오랜 시간 외교무대를 중심으로 한복의 아름다움과 다양성을 알리는 데 헌신해왔다. 그는 각국의 외교관과 그 배우자들에게 직접 한복을 입혀 패션쇼를 열고, 이를 통해 한복의 매력을 단순한 시각적 감상에 그치지 않고 체험과 교류의 장으로 확장시켰다. 이러한 방식은 한복을 현지화하고, 실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녹아 들게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또한 전 문화체육관광부 정책국장을 역임하고 한복문화원의 초대 원장을 지낸 이형호 원장은 정책적 기반과 문화 행정 경험을 바탕으로 한복의 문화적 가치와 역사성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국제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두 사람은 각자의 전문성과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한복의 유네스코 세계유형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실질적 추진력을 만들어내고 있으며 국내외 다양한 문화행사 와전시, 학술 교류를 통해 그 기반을 넓혀가고 있다.


이들의 협력은 단순한 문화 보존을 넘어, 한복을 세계인이 함께 향유할 수 있는 인류 공동의 유산으로 자리매김시키기 위한 의미 있는 여정이다. 이번 ‘한복 EXPO’에서 나는 중학교 시절 어머니가 팔던 옷의 고급스러움을 처음으로 눈으로 확인했다. 모시, 베, 삼베, 항라, 숫고사, 노방 등 계절에 따라 활용되는 다양한 소재는 조상들 의 섬세한 미적 감각을 보여주었다.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거 치며 잊혀졌던 아름다움을 이제야 다시 마주한 듯했다.
더 놀라운 것은 젊은 세대의 응용력이었다. 전통을 과감하게 재해석한 디자인들은 촌스러움을 걷어내면서도 한복의 멋과 맛을 유지하고 있었다. 일부 미흡한 시도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작품은 개성과 미래지향적 감각을 품고 있었다. 쭈뼛거림 없이 당당한 그들의 태도는 이번 ‘한복 EXPO’의 성공을 예고했다. 한복의 세계유산 등재 여부를 떠나, 이번 행사는 우리 문화의 깊이와 가능성을 확인한 뜻깊은 자리였다. 이제 우리는 잊혀졌던 아름다움을 되찾고 세계와 나눌 준비를 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