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연에는 저마다의 때가 있다.
해가 뜨고 지는 때,
꽃이 피고 지는 때,
그리고 밀물이 차오르고 썰물이 빠져나가는 때.
우리 삶에서도 이 ‘때’가 존재한다.
베풀 때와 받을 때,
만날 때와 헤어질 때,
멈춰야 할 때와 나아가야 할 때,
침묵할 때와 소리 높여 외쳐야 할 때,
그리고 채울 때와 비울 때를 아는 것.
해가 뜨고 지는 때,
꽃이 피고 지는 때,
그리고 밀물이 차오르고 썰물이 빠져나가는 때.
우리 삶에서도 이 ‘때’가 존재한다.
베풀 때와 받을 때,
만날 때와 헤어질 때,
멈춰야 할 때와 나아가야 할 때,
침묵할 때와 소리 높여 외쳐야 할 때,
그리고 채울 때와 비울 때를 아는 것.
특히 사랑하는 이들에게 이 ‘때’는 운명과도 같다. 사랑의 때가 일치한 연인은 함께 웃지만, 그때가 어긋난 연인은 평생 지워지지 않는 그리움과 회한이라는 고통 속에 살아간다. 차이콥스키의 오페라 〈예브게니 오네긴〉 속 두 주인공의 엇갈린 운명처럼.
러시아의 문호 푸슈킨의 운문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시골 지주 라리나 부인의 두 딸, 타티아나와 올가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문학적 감수성이 풍부하고 내성적인 타티아나 앞에 어느 날, 올가의 약혼자 렌스키가 오네긴을 데리고 나타난다. 오네긴은 도시의 온갖 지식과 유희를 섭렵한 끝에 지독한 권태에 빠져버린 인물이었다. 그에게 인생이란 더 이상 새로울 것 없는 따분하고 무료한 일상의 반복일 뿐이었다. 세련된 도시 귀족이라는 우월감에 젖은 그는 시골 사람들의 소박함을 유치한 것으로 치부하며 차가운 냉소로 일관한다. 하지만 이 세련된 이방인을 마주한 순간, 타티아나는 거부할 수 없는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다. 그날 밤, 벅차오르는 감정을 이기지 못해 밤을 지새운 그녀는 오네긴을 향한 뜨거운 고백을 편지에 써 내려간다. 설령 이 사랑에 내 삶이 부서질지라도 기꺼이 감내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담아, 아리아 〈편지의 장면: 죽어도 좋습니다 (Puskai pogibnu ya)〉를 비장하게 부른다.
“난 죽어도 좋습니다. 하지만 그전에 찬란한 희망을 품고, 생전 느껴보지 못한 기쁨을 노래하고 싶습니다. 당신에게 글을 씁니다. 이 이상 무엇을 더 말해야 할까요? 이제 제 운명은 당신의 손에 달렸음을 압니다.…왜 우리를 찾아오셨나요? 이 외딴 시골에서 당신을 몰랐더라면, 이런 쓰라린 고통도 몰랐을 것을. 하지만 나의 온 삶은 당신과의 만남을 위한 약속이었습니다. 당신은 나의 수호천사인가요, 아니면 나를 파멸로 이끄는 유혹자인가요? 제발 이 의심을 거두어 주세요. 어쩌면 이 모든 게 경험 없는 영혼의 환상일지도 모르지만, 이제 내 운명을 당신에게 맡깁니다. 당신 앞에 눈물 흘리며 간절히 기도합니다. 나의 영혼은 오직 당신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해받지 못한 채 홀로 시들어가는 나를 구원해 주세요. 수치심과 두려움으로 눈앞이 흐려지지만, 오직 당신의 고결함을 믿으며 이 편지를 봉합니다.”
이 간절한 고백은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뜨겁게 피어난 ‘사랑의 때’였다. 그러나 오만과 권태에 빠져 있던 오네긴은 그녀의 진심을 ‘자제력을 배우라’는 차가운 훈계로 되돌려준다. 그에게는 누군가의 진심을 받아들일 마음의 ‘때’가 아직 당도하지 않았던 것이다. 타티아나의 가장 찬란했던 순간은 그렇게 깊은 수치심과 상처로 얼룩진다.

며칠 후, 타티아나의 영명 축일 무도회에 영문도 모른 채 불려 나온 오네긴은 자신을 향한 시골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과 수군거림에 참을 수 없는 불쾌감을 느낀다. 그는 그 화살을 고스란히 자신을 이곳으로 이끈 친구 렌스키에게 돌리기로 결심하고, 렌스키의 약혼녀 올가를 유혹한다. 천성이 쾌활한 올가는 오네긴의 유혹에 가볍게 응하며 함께 춤을 추었고, 이에 분노한 렌스키는 걷잡을 수 없는 모욕감과 질투에 결국 결투를 신청한다. 다음 날 새벽, 눈 덮인 숲속에서 두 친구는 비극적으로 마주 선다. 자신의 죽음을 직감한 렌스키는 지나간 시절에 대한 그리움과 잃어버린 꿈을 반추하고, 곧 닥쳐올 가혹한 운명을 처연하게 받아들이며 아리아 〈어디로 가버렸나, 내 황금빛 젊음이여 (Kuda, kuda vy udalilis)〉를 부른다.
어디로 가버렸나, 내 청춘의 그 황금빛 날들은? 다가올 아침이 나를 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지 헛되이 더듬어 보지만, 모든 것은 짙은 어둠 속에 숨겨져 있구나. 하지만 상관없다. 운명의 법은 공평하니, 내가 치욕의 화살에 맞아 쓰러지든 그 화살이 나를 비껴가든, 모든 것은 정해진 때에 따라 일어나는 법. 깨어 있는 낮의 시간도, 깊은 어둠의 시간도 모두 순리대로 흐를 뿐이다. …하지만 너만은, 사랑하는 올가여! 말해다오, 네가 나의 무덤가에 와서 눈물 흘려 주겠니? “그는 오직 나만을 사랑했고, 슬픈 인생의 새벽에 나에게 짧은 삶을 바쳤노라”고 기억해 주겠니? 아아, 어디로 가버렸나, 내 청춘의 그 황금빛 날들은.
이것은 찬란했던 청춘의 ‘때’가 차가운 눈발 속으로 영원히 사라지기 전, 렌스키가 남긴 처연한 작별 인사였다. 이 비극적인 전조는 곧 현실이 됐다. 단 한 발의 총성으로 친구의 황금빛 날들을 앗아간 오네긴은 씻을 수 없는 죄책감에 쫓기듯 방랑의 길을 떠난다.
몇 년 뒤, 방랑을 마치고 돌아온 오네긴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화려한 무도회장에서 고결한 품위를 지닌 공작부인이 된 타티아나를 마주하고 경악한다. 그녀는 그레민 공작의 아내가 돼 있었다. 공작은 오네긴에게 자신의 아내를 소개하며 “사랑은 나이를 가리지 않고 찾아와 나의 삶을 구원했다”라고 말한다. 그 행복을 목도한 순간, 오네긴은 자신이 무참히 놓쳐버린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뒤늦게 타오르는 사랑의 열병에 휩싸여 타티아나에게 매달리기 시작한다. 세월이 흘러 다시 마주한 두 사람. 이번에는 오네긴이 타티아나의 발치에 엎드려 사랑을 갈구한다. 그러나 타티아나는 단호히 말한다. “과거에 행복은 우리 곁에 아주 가까이 있었어요. 하지만 이제 나는 다른 사람의 아내입니다. 나는 평생 그에게 충실할 것입니다.” 그녀는 눈물 섞인 고백을 뒤로하고 단호히 돌아선다. 마침내 오네긴에게도 사랑의 ‘때’가 찾아왔으나, 이미 타티아나의 시간은 그를 영원히 지나쳐버린 뒤였다.
“타티아나의 너무 일찍 타오른 사랑, 오네긴의 너무 늦게 깨달은 사랑”
이들 사랑의 비극은 바로 이 ‘때’의 엇갈림에서 시작됐다. 이 어긋난 시간의 굴레 속에서, 오늘도 얼마나 많은 타티아나와 오네긴이 인생을 방황하고 있을까. 뒤늦게 타올랐으나 결국 서로를 등져야 했던 그들처럼, 우리 또한 마땅히 머물러야 할 그 소중한 ‘때’를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보게 된다.
지금, 당신의 ‘때’는 안녕하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