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선농문화포럼

화제의 인물

조회 수 13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hero.png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기록”

 

 

 

두번의 ‘퓰리처상’ 내려놓고
‘우리문화유산’ 탐구하는 강형원기자

 

 

“저의 자존감의 근본은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입니다.
한국계로 태어난 사람들이 정체성 뚜렷한 세대로
자랄 수 있도록 이 훌륭한 문화를 꾸준히
발췌하고 기록하는 작업을 계속하겠습니다.”

 

 

 

포토 저널리스트 강형원 Hyungwon Kang.
13세에 미국으로 이민 가서 49년 동안 영어 문화권에서 치열하게 살았다. 인문학인 언론 분야에서 성공하려면 언어 능력이 첫 번째. 미국에서 제일 권위 있는 저널리즘 및 예술 관련 퓰리처상을 최초의 한국계 미국인으로, 두 번이나 받았다.
30세(1993년, 현장 뉴스 Spot News 부문)와 36세(1999년, 기획 취재 Feature Photography 부문). 지금은 한국에서 강의, 집필, 인터뷰 등을 통해 한국 문화를 전파하고 있다. 외국인에게, 그리고 한국인에게. 이를 위해 한국어도 ‘다시’ 체계적으로 배웠다. . 1992년 흑인 소요(‘폭동’이라는 용어를 흑인들이 거부한다니)가 시작된 날이 4월 29일. 강형원이 UCLA 아시아 아메리카 연구소에서 펴낸 보도 사진집 제목이기도 하다. 과속 운전하던 흑인 로드니 킹을 마구 폭행한 백인 경찰이 석방되면서, 흑인들의 분노가 어찌어찌해서(두순자 사건 등) 코리아타운으로 향했다. ‘사상자가 더 많이 생길까 봐’(라는 비겁한 핑계를 대며) 미국 경찰은 코리아타운에서 철수했다. LA 토박이 강형원은 연기가 올라오는 지점을 보고 ‘웨스턴/6가쯤이구나, 한인 가게들이 있는 곳인데, 웨스턴/5가에 있는 가주 마켓도 공격당하겠구나’라는 생각에 달려갔다. 총알이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니 지게차건, 아무 자동차건 그 뒤에서 셔터를 눌렀다. 도움을 호소하는 LA 한인 라디오 방송을 듣고 달려간 이재성 군이 사망했다. 그러자 미 전역의 언론이 관심을 갖고 집중 보도하기 시작했다. 한인 교포 청년들의 목숨을 건 방어 모습 사진은 지금 봐도 뭉클하다. 백인 기자들은 벌벌 떨고 현장 접근도 못 했으니 강형원 혼자 ‘독고다이’했다. 한국 기자들이 사용하는 비속어로 ‘혼자 특종’이라는 뜻이다. 그날 그는 방탄복을 꺼내 입었다. 한국 민주화 운동 취재차 서울에 올 때(1987년) 아버지가 선물했던 옷. 그해에 LA Times 사내 기자상을 받았다. 퓰리처상은 그다음 해 4월에 받았다. 미국 4대 권위지였던 LA Times에 입사한 지 6년 만에. 그리고 1면 사진 편집장이 된다.
스크린샷 2026-01-31 113209.png
1999년에는 두 번째 퓰리처상을 받는다. AP 통신사의 워싱턴 지국 총책 사진부장으로 옮겨 백악관을 출입했다. 클린턴 대통령의 르윈스키 사건이 불거졌을 때, 대통령이 어떻게 보여지는가가 그 행정부의 건강 정도를 보여주는 것임을 깨닫고(‘perception is reality’, 즉 독자들이 대통령의 사진을 보고 인지한 것이 현실이 된다는 뜻) 팀을 짜서 대통령의 신체 부위를 클로즈업해서 보도했다. 전북 고창에서 4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1975년 이민 당시 미국행 비행기표 값을 LA 도착 후 매달 갚았다. 형편은 어려웠지만 강형원은 ‘귀교의 자산이 될 것’이라는 추천서를 들고 사립 가톨릭 고등학교에 입학한다. 성적도 좋고 학생회 간부로 활동하던 그는 당시 미국 대학 랭킹 4위였던 UCLA에 진학할 수 있게 된다. 82학번. 조종사가 꿈이었지만 안경을 쓰기에 공군사관학교를 포기하고 물리학을 전공한다. 광학에 관심이 많아서. 그러다 사진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그러나 교내 신문인 일간지 UCLA Daily Bruin에서 학생 기자로 월급 받고 일하면서 전공도 정치외교학으로 바꿨다. LA Times에 입사한 1987년에는 한국 특파원 자격으로 6월 민주화 운동, 대통령 선거, 88 서울 올림픽을 취재했다. 진돗개가 맹견으로 지정될 위기에 처했을 때 바로 한국에 와서 취재·보도해(LA Times 1994년 1월 2일자) 엄청나게 많은 편지를 받았던 경험도 있다. 1995년과 1997년에는 북한을 방문해 1면에 사진은 물론 기사도 직접 써서 보도했다.
스크린샷 2026-01-31 113217.png
1,100명의 편집국 기자 중 유일하게 한국어를 제대로 한다는 이점을 충분히 살린 것이다. 당시 이 신문은 매일 110면, 136만 부를 발행했다. 백악관 전속 사진 에디터(2000~2001)로 일할 때는 기자 시절 겪었던 접근의 한계를 벗어나 백악관 인사이더로 미국 행정부의 핵심을 경험했다. 상대적으로 보수가 높은 로이터 통신사 수석 사진기자(2001~2019)를 한 덕에 세 아들의 뒷바라지가 힘들지는 않았을 듯하다. 95년생 첫째는 물리학 박사 학위를 막 끝냈고, 97년생 둘째 아들은 의대 대학원(정형외과) 1년을 남겨두고 있으며, 2003년생 막내아들은 영국에서 로스쿨에 다니고 있다. 2020년 6월, COVID가 한창일 때 그는 한국에 들어온다. 취재 목록 50개를 소중히 가방에 넣고. 우리 문화에 관한 양질의 콘텐츠가 필요하다고 절실히 느낀 것이다. 6개월이면 끝날 줄 알았는데 벌써 5년이 됐다. 서양인들은 너무 모르더라. 한반도의 고대 문명도 얼마나 대단하냐. 울주의 반구대 암각화가 이를 증명하지 않는가? 원래 훈민정음 원본에 따르면 프랑스어의 [r] 발음도, 아랍어의 [h]도 표기 가능하지 않은가?
스크린샷 2026-01-31 113236.png
2022년 펴낸 『사진으로 보는 우리 문화유산 Visual History of Korea』(RHK 펴냄, 232쪽)은 2025년 5월에 개정 증보판을 냈다. 초판 5쇄를 포함해 7쇄. 잔주름 무늬 청동거울, 금동미륵반가사유상, 삽살개, 종묘제례 등 우선 사진이 너무 멋지다. 곁들인 영어와 한국어 설명도 모두 그가 썼다. 국내 문화재 전문가도 칭찬했다. ‘서양 지식인에게 한국 전통 지식인의 높은 문화를 알려주면 우리를 무시하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그가 찾아낸 주제가 선비 문화. 2025년 12월에는 『Sonbi Country Korea, Seeking Sagehood』(Hollym 펴냄)가 출간됐다. 선비 정신은 과거 한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세계 어디서든 통할 수 있다고 그는 주장한다. 우리가 仁·義·禮·智·信이라고 지칭했던 선비의 덕목을 그는 discipline, courage, inclusion, wisdom, honor로 재해석하며 이는 바로 한류의 핵심 동력이라고 설파한다. 영천 봉화사의 지봉 스님이 그에게 지어 준 호가 감로(甘露, 생명수). 다부진 체격으로 그는 끊임없이 생명수를 만들어 내고 부지런히 나눈다. 한국에 뿌리를 둔 외국인의 시선으로. 선비 정신을 이어받아 한국인 나름의 도덕적 생태계(moral ecology)를 쌓아야 한다고 열심히 강조하는 그는 아무리 봐도 ‘62세 청년’이다. LA에 계시는 어머니를 뵙고 아버지 제사를 지내려고 연말에 한국을 비운다니 그의 ‘선비론’은 2026년에야 ‘방방’ 뜰 것 같다.
스크린샷 2026-01-31 113251.png
스크린샷 2026-01-31 113304.png
스크린샷 2026-02-01 121004.png
지나온 인생에 가정(假定)은 불가능하지만… 그에게 물었다. “만약 한국에서 그대로 살았다면 어떤 일을 했을 것 같냐?”고. “(지적) 호기심이 많아서 선생님 아니면 학생이었을 것”이란다. 2023년에는 문화유산 보호 유공자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고, 2024년에는 서재필 언론문화상을 수상했다.
글 김춘옥(언론인, 前 단국대 교수)
사진 강형원 기자 제공

  1.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기록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기록” 두번의 ‘퓰리처상’ 내려놓고 ‘우리문화유산’ 탐구하는 강형원기자 “저의 자존감의 근본은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입니다. 한국계로 태어난 사람들이 정체성 뚜렷한 세대로 자랄...
    Date2026.01.31 Views13
    Read More
  2. 1786km 남극대륙 김영미 대장 한국 첫 단독횡단

    1786km 남극대륙 김영미 대장 한국 첫 단독횡단 참 ~ 대단한 여성들이 많다. ‘허명 虛名’으로 판명나서 실망시킨 분들도 많다. 그러나 알짜배기도 많다. 여러 분야에서 세계를 이끌어 가는 대한민국이 아닌가? 2024년 11월 8일. 칠레의 최남단 도...
    Date2025.08.21 Views129
    Read More
  3.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 인터뷰

    대한민국 건국은 1948년 ... 역사적인 전환점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 인터뷰 대한민국 건국의 의미는 무엇일까? 건국 시점은 언제로 봐 야 할 것인가? 1948년 정부수립 선포를 건국으로 볼지, 아니 면 상해 임시정부 출범을 건국으로 볼 것인지 상반된 주장이...
    Date2025.02.09 Views224
    Read More
  4. 이광형 KAIST총장 인터뷰

    감정을 가진 AI가 조만간 나타난다 글 임흥순 / 한양사이버대교수 / 전 KBS기자 성큼 다가온 AI(인공지능)의 시대, 앞으로의 인류는 어떻게 변화할 까? 이광형 KAIST총장은 “조만간 AI는 감정과 자아의식을 가질 것 이다. 즉 AI가 인간처럼 생각하는 수...
    Date2024.08.19 Views267
    Read More
  5. 한국감성의 재즈가수 ‘나윤선’

    K-재즈, 유럽인들이 좋아해요! 에밀 졸라가 그랬던가? 파리의 위장이라고. 넓은 광장과 극장이 좌표를 찍고 있는 샤틀레. 1862년에 세워진 2,500석 규모의 이 프랑스 최대 오페라 극장은 파리 공연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선망의 장소다. 프랑스로 음악 유학을 ...
    Date2024.01.29 Views316
    Read More
  6. 나는 70세에 운동을 시작했다

    전 신호그룹 회장 이순국 노인 건강 전도사 ‘한국 시니어 근력 운동 실천 기구 이사장’, ‘서울 과학기술대학교 스포츠학과 명예학과장’. 그의 명함이다. 나이 들어서도 얼마든지 저항성 운동이 가능하고 고강도 저항성 운동을 쉬지 ...
    Date2023.08.08 Views256
    Read More
  7. ‘성공의 열쇠는 좋은 머리가 아니고 성실성입니다.’

    ‘성공의 열쇠는 좋은 머리가 아니고 성실성입니다' 전 산업자원부 장관 이희범 1964년. 중학교 3년 동안 한 번도 못 본 얼굴을 복도에서 만났다. 똘 똘하고 선해보였다. 본관 출입구 바로 옆 교무실 근처. 먼저 말을 걸 었다. 안동에서 왔다고 했다...
    Date2023.01.13 Views301
    Read More
  8. 혈기도를 아시나요

    혈기도를 아시나요 정택주 혈기도 세계연맹 이사장 화제의 인물이다. 명함에 적힌 대로 혈기도 세계연맹 이사장이라서? 세계연맹은 아직은 초기 단계일 뿐이다. 토종 운동 혈기도는 이제 막 유럽과 북미를 대상으로 보급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사범이라서? ...
    Date2022.08.21 Views1008
    Read More
  9. 국민교양만화 ‘먼나라 이웃나라’

    국민교양만화 ‘먼나라 이웃나라’를 선농포럼에서도 소개할 수 있게되어 기쁩니다 캘리포니아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던 한 여학생이 케네디 취임연설을 가르치던 선생님께 이렇게 반문했다. “그건 29대 대통령 하딩이 했던 말을 케네디가 다시...
    Date2022.01.22 Views287
    Read More
  10. 父女 교수의 장학금 쾌척 릴레이

    구재옥 교수(한국방송통신대학교 명예교수)의 아버지 구인환 교수 따라하기 부녀 교수가 순차적으로 모교인 서울대학교에 장학금을 기부했 다. 구인환 교수(1929 ~2019)가 모교이자 23년간 교수로 재직했던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에 1억원을 기부한 ...
    Date2021.09.05 Views343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Next
/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