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 파라과이를 물들이다

前 천일초등학교장
2020년 공무원연금 수필문학상 '금상'수상
'에콰도르 미완성교향곡' 저자
‘남미의 심장’이라 불리는 나라, 파라과이.
남아메리카 중앙에 브라질,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세 국가로 둘러싸인 바다가 없는 내륙국. 오랜 전쟁 상흔이 후대에도 이어져 깊은 침묵 속에서 인내하며 살아가는 나라로 알려져 있다. 지구 중심에서 한국과는 대척점에 있어 밤낮과 계절이 완전히 반대이다. 한국은 추운 겨울날 저녁인데 파라과이는 무더운 여름날 아침이다. 이 나라에 한인이 아닌 현지인 자녀들이 다니는 ‘대한민국초등학교’라니! 학교 이름을 듣는 순간 심장에 파문이 일었다.
‘나를 부르는 것일까.’
교문에 파라과이와 한국 국기가 나란히 새겨진 대한민국초등학교(Escuela Básica N˚4274 República de Corea)로 들어선다. 좁은 운동장에 학생들이 줄지어 서 있다. 마치 나를 오래도록 기다려온 듯 환영의 숨결이 피어오른다. 파라과이 국기와 태극기를 든 학생 기수단이 입장한다. 이어 파라과이 국가 ‘공화국 아니면 죽음을(República o Muerte)!’을 제창한다.
“어느 장엄한 날 노도처럼 일어나 ‘이제 그만!’을 외쳤고, 독재자는 부서졌도다. 전쟁에서 우리 조상들은 승리의 모자를 들어 올렸다. 파라과이인이여, 공화국 아니면 죽음을!”

나라를 빼앗긴 한이 내 가슴을 울린 것일까. 감정이 격해지고 목이 멘다. 이국땅에서 휘날리는 태극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르는데 항차 파라과이 국가를 듣고 있다니!
1991년 학교설립 당시, 토지 기증 및 아낌없는 경제적 지원을 한 한국인의 공헌을 기념하여 파라과이 정부에서 ‘대한민국초등학교’로 명명한 학교. 음악 교사가 없던 이 학교에서 코이카에 한국 음악 교사를 요청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음악교육의 꽃을 제대로 피워내지 못했던 ‘에콰도르 미완성 교향곡’을 다시 펼쳐내라는 하늘의 뜻일까. 학교장이 ‘한국에서 코이카 봉사단원으로 온 음악 교사’라고 나를 소개한다. 호기심으로 반짝이는 아이들 눈빛이 나를 이 학교로 불러낸 것만 같다. 한국어로 인사하며 내 이름을 따라 말하게 한다.
“안녕하세요? 아가타 음악 선생님.”
“안녕하세요? 아가타 음악 선생님.”
간절한 바람은 지극한 결핍에도 서로의 애정을 수반한다. 음악 배우기를 원하는 쪽이나 가르치고자 하는 마음은 마치 서로 ‘음악 실뜨기 놀이’를 하는 것 같았다. 학생들은 내가 가르친 우리 전통 실뜨기 놀이를 즐겼다. 음악 기초이론을 전혀 받지 못했던 학생들은 오선, 음계, 악보를 전혀 모르고 있고, 나는 부족한 현지어인 스페인어와 과라니어로 학생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느라 쩔쩔매었다. 치열하게 현지어를 배워가며 가르치는 내 몸짓 언어에 학생들은 사랑의 실 한 가닥을 떠주었고, 음계 놀이로 ‘손가락 오선’을 배우며 흥미를 더해가는 학생들에게 나는 사랑으로 응원의 한 가닥을 더 이어갔다. 음악 실뜨기 패턴이 무르익어 가면서 서서히 내 언어 실력도 늘어가고, 아이들 오선 음계에도 물이 오르기 시작했다. 학생들 몸 안에 음악은 이미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선천적이라 할 만큼 음악 감각이 뛰어난 남미 아이들에게 정규음악 시간이 생긴 것은 ‘음악 신세계로’의 초대였다.
시나브로 배우는 자에서 표현하는 자로 음악의 변화를 꿈꾸는 학생들. 음악 영역 수요 조사 결과 학생들은 ‘악기 배우기’를 선호했다. 교사와 학부모도 악기 지도를 적극 요청했다. 나는 남미 에콰도르에서의 코이카 봉사활동 경험에서 삶의 결을 배웠다. 남미 나라 공립학교에는 대체로 음악 교과가 없다. 학생들에게 지도하기 쉬운 악기를 구입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임을 느꼈다. 주변에 지혜를 향한 손을 빌렸다. 선한 영향력은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는 것일까. 진로 교육을 통해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펼쳐가는 기업, ‘캠퍼스 멘토’에서 악기를 후원하겠다는 희소식에 접했다. 드디어 험난한 파라과이 통관 벽을 뚫고 오카리나 30개와 펜플룻 30개가 안착했다. 코이카 활동 물품 지원비로 리코더 60개도 구입했다. 이로써 3학년부터 6학년 학생들에게 ‘1인 1악기’ 지도에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되었다.

파라과이에서 ‘대한민국초등학교’라는 이름은 한국과 파라과이 협력에 있어 상징성이 매우 크다. 이틀간 파라과이와 한국의 전통 노래와 춤, 민속놀이를 즐겨보는 ‘음악 축제의 날’을 열었다. 특별히 한국의 날에는 우리 전통민요 ‘아리랑’ 노래와 춤을 배워보는 활동으로 포문을 열었다. 양팔을 올려 귀 뒤로 넘기며 춤추면서 부르는 아리랑은 한이 많은 파라과이인들에게 자연스레 스며들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또한 내 피아노 반주에 맞춰 리코더, 펜플룻, 오카리나로 연주하는 학생들의 아리랑 기악합주는 교사, 학부모들에게 열화와 같은 박수갈채를 받았다. 흥이 무르익어 가자 ‘강강술래’로 이어갔다. 모두가 세 겹 원 안에서 느리게 시작해 잦은 강강술래까지 점점 빨라지며 하나로 어울려 뛰어 돌았다. 음악은 우리 모두를 하나로 만든다. 행사의 마침표를 찍으려 하자 학생들이 달려 나와 내 팔에 안기며 봇물 터지듯 눈물을 쏟아냈다.
“선생님, 한국의 아리랑 노래와 춤이 정말 좋아요.”
“ 아가타 선생님, 이런 행사는 처음 해봐요.
너무 감동해서 눈물이 절로 났어요.”
아리랑에 깃든 멋과 맛, 그리고 흥을 온몸으로 느낀 학생들은 학교 이름의 정체성을 단단하게 새기는 시간이 되었으리라.
언어와 문화가 다른 낯선 나라에서 홀로 살아내느라 수없이 많은 역풍을 맞았다. 지쳐 쓰러지기도 여러 차례였다. ‘그만 놓아버릴까.’ 5학년 담임교사 K의 표정은 늘 나를 움츠러들게 했다. 그의 닫힌 마음은 내 신경을 옭아맸다.
음악 시간이 돼도 수업을 끝내지 않는 K 교사. 문을 노크하면 아이들 시선은 일제히 내게로 쏠렸다. 음악 시간을 희망하는 아이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이를 불만스럽게 바라보는 그녀는 이따금 내게 속삭이듯 토해 내었다. “나도 배우지 않은 음악 시간이 왜 굳이 필요할까요? 수학 하나라도 더 배워야….”


교실에서 피어난 아리랑 선율이 마법의 흐름결을 퍼뜨려놓은 것일까. K 교사의 감정선을 건드린 듯했다. 이제 K 교사는 음악 시간이 되면 수학 수업을 끝내고 아이들을 내 방으로 보냈다. 악기를 들고 오는 아이들을 보면서 “아리랑 아라리요~~”를 흥얼거리기도 하며.
아리랑 한 음 한 음, 악기 소리 하나하나에 마음을 담아 연주하는 아이들. 음악은 마음의 벽을 허문다. 이국 하늘 아래 울려 퍼진 아리랑은 언어를 뛰어넘어 한국과 파라과이를 마음으로 잇는 민족혼의 노래가 되었다. 파라과이를 물들인 아리랑은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 살고 있다’라는 내밀한 내 기쁨의 북소리가 아닐까. 다시 새로운 꿈을 꾼다.
‘아직은 나도 누군가의 희망이 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