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사랑의 묘약’ 즐기기
양현주 서울기독대학교 겸임교수
사랑!
불러보기만 해도 가슴이 뛴다.
사랑하니까. 사랑해서. 사랑만이.
그 한마디에 눈물이 흐르고, 웃음이 피어나고, 삶이 움직인다.
그러나 동시에
사랑만큼 진부한 말도 없다.
“사랑이 대수냐”, “사랑이 밥 먹여주냐”, “눈의 콩깍지는 3개월.”
사랑을 비웃고 가벼이 여기는 냉소들.
그럼에도,
그래도,
사랑을 믿는 사람이 있다.
도니제티의 오페라 <사랑의 묘약> 속 주인공, 네모리노처럼.
가난하고 순박한 시골 농부 네모리노는 마을에서 가장 총명하고
아름다운 귀족 아가씨 아디나를 오랫동안 짝사랑하고 있다. 그러나 고백할 용기는 없어, 그저 그녀 주위를 맴돌며 마음만 애태운다.
어느 날, 아디나는 마을 사람들에게 고전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읽어주며, 모든 사랑을 이루어 준다는 전설 속 ‘사랑의 묘약’을 들려준다. 그 순간, 떠들썩한 음악과 함께 마을에 떠돌이 약장수 둘카마라가 등장한다. 그는 마을 사람들에게 외친다.
“나로 말하자면, 저명하고 위대한 의사 둘카마라라 하오!
무엇이든 고치는 만병통치약!
죽어가던 노인이 스무 명의 손자를 보았고,
과부의 눈물도 말끔히 닦아주었지요!
아주머니, 젊어지고 싶지 않으신가요?
주름은 펴지고 피부는 더 부드러워집니다!
아가씨들, 고운 피부를 원하시죠?
청년들이여, 예쁜 아가씨에게 잘 보이고 싶다면 이 약을 사시오!
기침, 천식, 당뇨, 히스테리, 광증, 심장과 간 질환까지!
구루병, 귀앓이, 체형 교정은 물론, 강력한 살충제 역할도!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기적의 물약이라오!
여러분의 성원에 보답하여 단돈 1스쿠도에 드립니다!
화려한 말솜씨에 홀린 네모리노는 둘카마라에게 ‘사랑의 묘약’도 있느냐고 묻는다. 그러자 둘카마라는 상한 포도주를 ‘사랑의 묘약’이라며 교묘히 속여 팔고, 순진한 네모리노는 그것을 진심으로 믿는다. ‘사랑의 묘약’을 마신 네모리노는 갑작스레 용기를 얻어 아디나에게 과감히 다가간다. 하지만 그의 무례할 정도로 대담한 태도에 아디나는 불쾌해하며 자존심이 상한다.
그 무렵, 마을에 군대가 들어오고 위풍당당한 군인 벨코레가 아디나에게 청혼한다. 아디나는 네모리노의 질투심을 자극하듯 벨코레와의 결혼을 선언하고, 네모리노는 묘약의 효과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결혼을 미뤄달라고 애원한다. 하지만 아디나는 단호하게 거절한다. 절망에 빠진 네모리노는 묘약을 한 병 더 마시기로 결심하지만, 가진 돈이 없다. 그는 마지막 수단으로 입대 계약서에 서명하고, 그 대가로 받은 돈으로 묘약을 또다시 산다. 이것이 아디나의 사랑을 얻기 위한 마지막 희망이었다. 네모리노는 굳게 믿는다. 이제는 그녀의 마음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그 무렵, 마을엔 놀라운 소문이 퍼지기 시작한다.
“네모리노가 거액의 유산을 물려받게 되었다!”
평소 그를 거들떠보지 않던 마을 처녀들이 갑자기 그의 주위를 맴돌며 호감을 보인다. 순진한 네모리노는 이것이 묘약의 효과라고 믿고 감격한다. “이제는... 그녀도 나를 사랑하게 될 거야.” 그의 마음은 설렘과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다.

한순간에 인기남이 된 네모리노.
그의 변화된 모습을 지켜보던 아디나의 마음속엔 알 수 없는 허전함과 쓸쓸함이 밀려든다. 그러다 마침내 네모리노가 자신을 위해 군에 입대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제야 아디나는 네모리노의 진심 어린 사랑을 깨닫고 눈물을 흘린다. 아디나의 눈물을 본 네모리노는 그녀 역시 자신을 사랑한다는 사실에 감격하며 유명한 아리아 <남몰래 흐르는 눈물>(Una furtiva lagrima)을 부른다.
한 줄기 남몰래 흐른 눈물
그녀의 눈에 떠올랐네.
그 밝게 웃던 소녀들 속에서
그녀는 질투하는 듯했지.
내가 더 무엇을 바라겠는가?
그녀는 나를 사랑해! 그래, 사랑해, 나는 느껴.
마침내 벨코레에게서 입대 계약서를 손에 넣은 아디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네모리노에게 고백한다.
"나도… 당신을 사랑해요."
“그러니 제발… 군대에 가지 말아요.”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 두 사람.
그들은 뜨겁게 포옹하며 오페라는 행복한 결말을 맞이한다.
네모리노와 아디나의 사랑.
그건 묘약 덕분이었을까,
아니면
믿음 덕분이었을까.
어리석을 정도로 순수했던 그 마음.
지금은,
그 어리석음이
그리워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