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로빅으로 젊음찾고, 전기작가 꿈 이루고
임연철
前국립극장장 / 동아일보 논설위원

이제 기쁠 희(喜) 자가 있는 희수(喜壽)를 맞아서인지 77의 나이에 비교적 즐겁게 지내고 있는 편이다. 그렇게 사는 데는 나름 두 가지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는 몸을 위해 하는 운동이고 다른 하나는 정신 운동을 위해 하는 나의 세 번째 직업이다.
몸을 위한 운동을 하면서 초등학교에서 대학까지 남녀 공학, 특히 모교1)를 다닌 것이 큰 도움이 되고 있음을 새삼 느낀다. 1992년 불규칙한 근무와 음주로 망가진 몸을 추스르기 위해 우연히 ‘에어로빅’을 시작하며 회원 중 청일점이어도 아무런 불편 없이 다닐 수 있었다. 40대 즈음 졸업 후 각종 모임에서 만난 ‘여동(여자 동창)’들과 스스럼없이 사교한 덕분이었다. 현재는 ‘댄스 핏(dance fit)’이라는 이름으로 하는 에어로빅반에서 최고령이지만 동작이 틀려도 괘념치 않고 매일 33년 째 하는 새벽 1시간 율동을 즐겁게 한다. 몸의 유연성을 길러주는 에어로빅은 여성들이 많이 하지만 실제로는 유연성이 부족한 남성들에게 더 권하고 싶은 운동이다. 유튜브 등에 보이는 것처럼 복장이 유난할 필요도 없다. 새벽잠 깨서 막 나온 회원들의 얼굴을 보면 화장기가 전혀 없어도 건강미가 넘쳐 오히려 즐거워 보인다. 매년 종합검진에서 나이에 비해 괜찮은 건강 성적표를 받아들고 있다.
정신을 위해 하고 있는 세 번째 직업은 전기 작가이다. 구미(歐美)에서는 바이오그래퍼(biographer)로 분류되는 직업이지만 국내에서는 작가나 언론인이 기회가 되면 하는 정도의 직업이다. 첫 직업인 기자를 하다 정년을 앞두고 문화부 기자 경력을 활용해 예술기관의 운영을 담당하는 예술경영인이 두 번 직업이 되었다. 70세가 되기 전 월급을 받지 않아도 해 볼만 한 일을 찾던 중 전직(기자)과 관련돼 시작해 본 것이 현재의 직업인 전기 작가이다.

전기 작가라면 유명 정치인이나 기업인을 미화해 써주는 직업이라는 선입견이 있을 수도 있으나 필자는 그 같은 개념과는 처음부터 선을 긋고 시작하였다. 대상자를 무명의 기독교 선교사로 국한한 것이다. 이 원칙으로 한국사의역사적 인물이나 근현대의 유명인은 필자의 관심 대상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었다. 선교사라고 해도 아펜젤러, 언더우드, 스크랜턴, 홀, 스코필드와 같이 이미 잘 알려진 인물은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 알려지지 않았지만, 나라를 잃은 일제 강점 시기에 유명인 못지않게 한국을 위해 큰 공로가 있는 선교사들이 너무나 많았다.
현재까지 알려진 내한 선교사는 1881년부터 1950년대까지 대략 4000명에 이른다. 이 중 필자가 전기로 알리고 싶은 사람만 해도 100명이 넘지만, 그중 20명만 쓸 수 있으면 다행이라 생각한다. 무명의 선교사에 관심이 쏠리게 된 것은 필자의 할머니를 전도한 앨리스 H. 샤프(Alice H. Sharp, 1871-1972)가 유관순 열사의 첫 스승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부터다.
필자의 할머니가 ‘사부인’이라고 불렀던 샤프 선교사는 한국 이름이 사애리시(史愛理施)로 1905년 공주에 여성 교육기관인 영명여학교(현재의 공주 영명고)를 세운 분이다. 사부인은 아우내교회당에서 놀고 있던 소녀 유관순을 공주에 데려와 학교에서 가르친 후 이화학당으로 편입시켰다. 이런 사정을 알게 되면서 좀 더 연구를 위해 미국 드루대 감리교 문서보관소에서 각종 국내 선교사 자료와 사진을 대량으로 입수했고 전기대상 선교사들의 미국과 캐나다 고향과 학교를 방문 취재해 후손을 만나거나 증빙서류를 찾을수 있었다.
2019년 <이야기 사애리시>를 첫 작품2)으로 낸 후 그동안 수집했던 자료를 바탕으로 이듬해 유관순 열사의 마지막 스승 <지네트 월터이야기>를 낼 수 있었다. 지네트 월터는 이화학당 4대 학당장으로 1920년 9월 28일 유관순 열사가 서대문 감옥에서 순국하자 시신을 인수해와 직접 수의를 입히고 장례예배 후 이태원 공동묘지에 안장까지 해준 인물이다.
애초에는 미국이나 캐나다 현지 조사에 비용이 많이 들어 두 권의 전기만 내고 그치려 했다. 그러나 수집한 자료가 아깝고 대상 선교사가 한국 근대사에 이바지한 공로가 너무 커 중도 포기할 수가 없었다. 우리나라에 농구 배구 등을 사실상 공인 스포츠로 만들며 최초로 스포츠맨십을 가르친 <스포맨십의 전도사 반하트>(2021년)를 비롯해 공주에서 평생을 간호사로 일한 <우유로 조선아기 살린 마렌 보딩 이야기>(1922년)가 후속으로 나온 전기이다. 보딩은 영아 사망률이 45%나 됐던 시기에 우유를 보급해 지역 영아 사망률을 5%로 낮춘 분이다.
가장 최근(2024년)에 나온 전기는 <한국 공업의 스승 그레그(George A. Gregg)>이다. YMCA 선교사로 1906년 내한한 그는 한국 이름이 구례구(具禮九)로 대장간밖에 없던 한국에 밀링(milling)과 선반(lathe), 전기톱 등 공작기계를 갖고 와 산업혁명 이후 서양의 공업이 무엇인지를 최초로 가르쳤다. 그는 노동을 경시하는 사회 풍조에 대해 노동을 중시해야 한다면서 ‘공업 입국’만이 식민지 한국이 살길이라고 강조했다. 독신으로 살며 첼로 연주를 취미로했던 그는 애국가 작곡자이자 한국 최초의 전문 첼리스트인 안익태에게 첼로를 가르친 첫 스승이기도 하다.
1927년 중풍이 심해져 고향 토론토로 귀국할 수밖에 없었는데 후손이 없어 토론토 교외 부모님 묘비 옆에 묻힌 그의 묘소를 현지 취재(2023년 7월)했을 때는 한국 근대화의 공로자에 대한 예우가 전혀 없는 모습에 죄송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위와 같은 전기 외에 2022년에는 공주 영명고 교장을 오래 지내며 근대 농업 축산 방법을 가르친 F. E. C. 윌리엄스와 그의 장남으로 미군정시기에 하지 중장의 통역으로 활동한 G. Z. 윌리엄스의 전기를 그들의 한국 이름 <우리암과 우광복 이야기>(2022년)로 서만철교수(전 공주대 총장)와 함께 펴냈다.3)
첫 전기의 주인공 사부인의 남편으로 선교 중 순직한 로버트 A. 샤프 선교사 전기(2022년)도 윤애근 목사(공주제일교회)와 함께 썼다. 필자의 저술은 아니지만 개성 송도중 교사였던 래리 젤러스(Larry Zellers) 선교사가 6.25 한국전 개전 첫날 민간인 포로로 잡혀 3년 가까이 중강진에서 포로 생활을 한 그의 생사를 넘나든 수
기를 휴전 70주년의 해였던 2023년 <적의 손아귀에서>(원제 In Enemy Hands)라는 제목으로 번역했다. 이제까지 7년간 교육, 스포츠, 사회사업, 공업 등 한국 근대화에 이바지한 선교사들의 순수한 공로를 8권에 담아냈다. 현재는 시골에서 의사 생활을 하다 세브란스 교수가 되어 초기 의학교육의 기초를 다지며 위생 강의로 한국인을 구한 두 의사 노만 파운드(한국명 方恩斗)와 J. D. 반 버스커크(한국명 潘福奇)의 전기를 준비 중이다.
미국이나 캐나다 출신의 선교사인 까닭에 대부분 자료가 영어로 되어 있어 자료를 읽다 보면 자연스레 단어를 외우느라 머리 회전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평생을 해온 글쓰기 일이지만 독자가 이해하기 쉽게 쓰기 위해서는 언제나 많은 머리를 써야 한다. 서두에 밝힌대로 에어로빅이 육체에 건강을 준다면 전기 작가라는 직업은 정신 건강을 지켜주고 있다. 모두 감사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