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것들
최영자
前 사대부고 영어교사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 나오는 노래 중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My Favorite Things)’ 은 아주 작고 귀여운 것, 사소하지만 미소를 띠게 하는 것들이다. 장미꽃에 맺힌 빗방울, 새끼 고양이의 앙증맞은 수염, 맛있는 애플파이 등은, 개한테 물렸을 때나 벌한테 쏘여서 기분이 나쁘거나 슬플 때, 기분을 풀어준단다.
헬렌 켈러의 ‘삼일만 볼 수 있다면’이라는 에세이는 우리 삶에서, 사소하지만 중요한 잊기 쉬운 것들을 들쳐내고 있다. 아동 문학 작가 고정욱은 이와 비슷한 자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어릴 때 소아마비를 앓아 걸을 수 없는 그는 삼일 동안 걸을 수 있다면, 모래사장 걷기, 계단 오르기, 축구하기, 만원 버스 타기, 등 우리가 흔히 할 수 있는 것들을 하고 싶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일상생활 중에 감사한지도 모른 채 많은 것들을 흘려버리며 살아간다. 그것들이 그렇게 소중하고 좋은 것인지 모르면서 말이다.
이제 나는 꼭 성취해야 할 일이 없다. 그저 시간과 마음이 허락하는 대로, 사소한 일상 중에 나를 행복하게 하는 몇 가지를 찾아 즐기며 살고 있을 뿐이다. 재래시장 돌아보기는 내가 좋아하는 일 중의 하나이다. 집에서 먹을 과일이나 반찬거리를 사기 위해서, 가까이 있는 마켓에 가거나 핸드폰으로 주문할 수도 있지만 일부러 재래시장을 찾는다. 색색가지로 쌓여있는 과일과 야채가 눈을 호사시키고 식욕을 돋운다. 비린내를 손에 묻히지 않고 간단히 요리할 수 있도록 다듬어진 생선들, 진열되어 있는 풍성한 먹을거리를 보며 눈 호사를 마음껏 하니 기분이 좋다. 열심히 살아가는 상인들의 모습이 삶의 의욕을 일으켜 준다. 재래시장 돌아보기는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일 중의 하나이다.

나이 들면서 친구들을 만나 걷고 맛있는 것 먹으며 수다 떠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수다의 질을 높이기 위해 주제를 정하여 한 친구에게 오픈 스피치를 하게 하고 다른 친구들이 끼어들어 얘기판을 벌리기도 한다.
때로는 친구들의 개인적인 얘기들을 통해 서로 위로하고 위로받는 장이 되기도 한다. ‘축복이 되는 노년을 위하여’라는 주제가 있던 날, 화학자였던 친구가 물 분자에 대한 얘기를 해주었다. 흩어져 다른 물질을 품을 수 없는 수증기, 경직되어 비집고 들어갈 수 없는 차가운 얼음, 유연하게 다른 물질을 품어주며 아래로 흐르면서 생명의 원천이 되는 물은, 모두 같은 물 분자(H2O)이다. 우리는 어떤 물 분자로 어떻게 살 것인가? 물에 대한 얘기가 인상 깊었다.
나뭇잎의 안토시아닌 이야기도 경이로웠다. 영양분을 만들어 열매를 맺게 해주고, 가을이 되면 황홀한 단풍으로 변하여 우리를 즐겁게 해주고, 낙엽이 되어 떨어진다. 나무주변을 덮어주다가 겨우내 땅속에 스며들어 나무뿌리의 양분이 되어간다. 나이 들어 이런 낙엽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주제가 있는 수다 떠는 이 모임방을 나는 좋아한다.
최근에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도 나를 평안하고 행복하게 해주는 일이 되고 있다. 결국 혼자 남게 되리라는 확실한 사실 앞에 나 혼자만의 시간을 즐긴다. 하루 일과가 끝난 늦은 밤, 조용한 나만의 시간을 갖는다. 독서와 묵상, 글쓰기 시간이다. 가벼운 읽기로 시작해서 요즘은 안셀름 그륀의 ‘황혼의 미학’, 황영애의 ‘화학에서 영성을 얻다’ 등의 책들을 읽는다. 온라인 카페를 통해 성경을 읽고 묵상한다. 나는 이 시간에 하느님과 교감을 나누며 하느님과의 관계를 즐긴다. 나의 일상을 다 아시는 분이니 숨길 것도 없고 거리낄 것도 없다. 진심 없이 외워진 기도를 하거나 내 걱정과 욕심으로 가득 찬 기도를 하다가, 문뜩 기도를 멈추고, 내 욕심과 걱정을 놓아 버린다. 하느님은 대체로 무관심하시며 당신의 섭리대로 하심을 알기 때문이다. 그저 침묵 속에 하느님 안에 있는 나, 내 안에 있는 하느님을 찾아본다. 고요가 나를 평안하게 한다. 나는 평안한 가운데 자정을 훨씬 넘어 잠자리에 든다. 행복한 하루가 끝나고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되는 분기점이다. 하느님에게 나를 맡기는 이 숙면의 시간이 나에게는 제일 행복한 순간이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