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 ?><rss version="2.0" xmlns:dc="http://purl.org/dc/elements/1.1/" xmlns:slash="http://purl.org/rss/1.0/modules/slash/">
	<channel>
		<title><![CDATA[선농문화포럼: 화제의 인물]]></title>
		<link>https://www.sunforum.org/index.php?mid=interview</link>
		<description><![CDATA[선농문화포럼 : 화제의 인물]]></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pubDate>Wed, 20 May 2026 13:51:47 +0900</pubDate>
		<lastBuildDate>Wed, 20 May 2026 13:51:47 +0900</lastBuildDate>
		<generator>XpressEngine</generator>
				<copyright><![CDATA[sunforum.org]]></copyright>
						<image>
			<url>https://www.sunforum.org/./files/attach/images/rss/선농문화포럼_로고.png</url>
			<title><![CDATA[선농문화포럼: 화제의 인물]]></title>
			<link>https://www.sunforum.org/index.php?mid=interview</link>
		</image>
						<item>
			<title><![CDATA[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기록]]></title>
			<dc:creator><![CDATA[선농문화포럼.]]></dc:creator>
			<link>https://www.sunforum.org/index.php?mid=interview&amp;document_srl=17693</link>
			<guid isPermaLink="true">https://www.sunforum.org/index.php?mid=interview&amp;document_srl=17693</guid>
						<comments>https://www.sunforum.org/index.php?mid=interview&amp;document_srl=17693#comment</comments>
									<description><![CDATA[&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div class=&quot;a2026_1_pic0&quot;&gt;&lt;img src=&quot;http://www.sunforum.org/./files/attach/images/1903/693/017/89b9b5a960b6c058f224da84f60db5b5.png&quot; alt=&quot;hero.png&quot; style=&quot;&quot; /&gt;&lt;/div&gt;

&lt;p&gt;&nbsp;&lt;/p&gt;

&lt;p&gt;&nbsp;&lt;/p&gt;

&lt;div class=&quot;a2026_1_1&quot;&gt;&ldquo;한국적인 것이&lt;br /&gt;
가장 세계적인 기록&rdquo;&lt;/div&gt;

&lt;p&gt;&nbsp;&lt;/p&gt;

&lt;p&gt;&nbsp;&lt;/p&gt;

&lt;p&gt;&nbsp;&lt;/p&gt;

&lt;div class=&quot;a2026_1_2&quot;&gt;두번의 &lsquo;퓰리처상&rsquo; 내려놓고&lt;br /&gt;
&lsquo;우리문화유산&rsquo; 탐구하는 강형원기자&lt;/div&gt;

&lt;p&gt;&nbsp;&lt;/p&gt;
 
 

&lt;p&gt;&nbsp;&lt;/p&gt;

&lt;div class=&quot;a2026_1_3&quot;&gt;&ldquo;저의 자존감의 근본은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입니다.&lt;br /&gt;
한국계로 태어난 사람들이 정체성 뚜렷한 세대로&lt;br /&gt;
자랄 수 있도록 이 훌륭한 문화를 꾸준히&lt;br /&gt;
발췌하고 기록하는 작업을 계속하겠습니다.&rdquo;&lt;/div&gt;

&lt;p&gt;&nbsp;&lt;/p&gt;

&lt;p&gt;&nbsp;&lt;/p&gt;

&lt;p&gt;&nbsp;&lt;/p&gt;

&lt;div class=&quot;a2026_1_9&quot;&gt;포토 저널리스트 강형원 Hyungwon Kang.&lt;/div&gt;

&lt;div class=&quot;a2026_1_4&quot;&gt;13세에 미국으로 이민 가서 49년 동안 영어 문화권에서 치열하게 살았다. 인문학인 언론 분야에서 성공하려면 언어 능력이 첫 번째. 미국에서 제일 권위 있는 저널리즘 및 예술 관련 퓰리처상을 최초의 한국계 미국인으로, 두 번이나 받았다.&lt;/div&gt;

&lt;div class=&quot;a2026_1_4&quot;&gt;30세(1993년, 현장 뉴스 Spot News 부문)와 36세(1999년, 기획 취재 Feature Photography 부문). 지금은 한국에서 강의, 집필, 인터뷰 등을 통해 한국 문화를 전파하고 있다. 외국인에게, 그리고 한국인에게. 이를 위해 한국어도 &lsquo;다시&rsquo; 체계적으로 배웠다. &lt;sa gu=&quot;&quot; i=&quot;&quot;&gt;. 1992년 흑인 소요(&lsquo;폭동&rsquo;이라는 용어를 흑인들이 거부한다니)가 시작된 날이 4월 29일. 강형원이 UCLA 아시아 아메리카 연구소에서 펴낸 보도 사진집 제목이기도 하다. 과속 운전하던 흑인 로드니 킹을 마구 폭행한 백인 경찰이 석방되면서, 흑인들의 분노가 어찌어찌해서(두순자 사건 등) 코리아타운으로 향했다. &lsquo;사상자가 더 많이 생길까 봐&rsquo;(라는 비겁한 핑계를 대며) 미국 경찰은 코리아타운에서 철수했다. LA 토박이 강형원은 연기가 올라오는 지점을 보고 &lsquo;웨스턴/6가쯤이구나, 한인 가게들이 있는 곳인데, 웨스턴/5가에 있는 가주 마켓도 공격당하겠구나&rsquo;라는 생각에 달려갔다. 총알이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니 지게차건, 아무 자동차건 그 뒤에서 셔터를 눌렀다. 도움을 호소하는 LA 한인 라디오 방송을 듣고 달려간 이재성 군이 사망했다. 그러자 미 전역의 언론이 관심을 갖고 집중 보도하기 시작했다. 한인 교포 청년들의 목숨을 건 방어 모습 사진은 지금 봐도 뭉클하다. 백인 기자들은 벌벌 떨고 현장 접근도 못 했으니 강형원 혼자 &lsquo;독고다이&rsquo;했다. 한국 기자들이 사용하는 비속어로 &lsquo;혼자 특종&rsquo;이라는 뜻이다. 그날 그는 방탄복을 꺼내 입었다. 한국 민주화 운동 취재차 서울에 올 때(1987년) 아버지가 선물했던 옷. 그해에 LA Times 사내 기자상을 받았다. 퓰리처상은 그다음 해 4월에 받았다. 미국 4대 권위지였던 LA Times에 입사한 지 6년 만에. 그리고 1면 사진 편집장이 된다.&lt;/sa&gt;&lt;/div&gt;

&lt;div class=&quot;a2026_1_pic1&quot;&gt;&lt;img src=&quot;http://www.sunforum.org/./files/attach/images/1903/693/017/a1f11a6a66b4da58c7e13f3ad1b3177f.png&quot; alt=&quot;스크린샷 2026-01-31 113209.png&quot; style=&quot;&quot; /&gt;&lt;/div&gt;

&lt;div class=&quot;a2026_1_4&quot;&gt;1999년에는 두 번째 퓰리처상을 받는다. AP 통신사의 워싱턴 지국 총책 사진부장으로 옮겨 백악관을 출입했다. 클린턴 대통령의 르윈스키 사건이 불거졌을 때, 대통령이 어떻게 보여지는가가 그 행정부의 건강 정도를 보여주는 것임을 깨닫고(&lsquo;perception is reality&rsquo;, 즉 독자들이 대통령의 사진을 보고 인지한 것이 현실이 된다는 뜻) 팀을 짜서 대통령의 신체 부위를 클로즈업해서 보도했다. 전북 고창에서 4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1975년 이민 당시 미국행 비행기표 값을 LA 도착 후 매달 갚았다. 형편은 어려웠지만 강형원은 &lsquo;귀교의 자산이 될 것&rsquo;이라는 추천서를 들고 사립 가톨릭 고등학교에 입학한다. 성적도 좋고 학생회 간부로 활동하던 그는 당시 미국 대학 랭킹 4위였던 UCLA에 진학할 수 있게 된다. 82학번. 조종사가 꿈이었지만 안경을 쓰기에 공군사관학교를 포기하고 물리학을 전공한다. 광학에 관심이 많아서. 그러다 사진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그러나 교내 신문인 일간지 UCLA Daily Bruin에서 학생 기자로 월급 받고 일하면서 전공도 정치외교학으로 바꿨다. LA Times에 입사한 1987년에는 한국 특파원 자격으로 6월 민주화 운동, 대통령 선거, 88 서울 올림픽을 취재했다. 진돗개가 맹견으로 지정될 위기에 처했을 때 바로 한국에 와서 취재&middot;보도해(LA Times 1994년 1월 2일자) 엄청나게 많은 편지를 받았던 경험도 있다. 1995년과 1997년에는 북한을 방문해 1면에 사진은 물론 기사도 직접 써서 보도했다.&lt;/div&gt;

&lt;div class=&quot;a2026_1_pic1&quot;&gt;&lt;img src=&quot;http://www.sunforum.org/./files/attach/images/1903/693/017/57675c2eff5dd2245e69aa247e4ef61e.png&quot; alt=&quot;스크린샷 2026-01-31 113217.png&quot; style=&quot;&quot; /&gt;&lt;/div&gt;

&lt;div class=&quot;a2026_1_4&quot;&gt;1,100명의 편집국 기자 중 유일하게 한국어를 제대로 한다는 이점을 충분히 살린 것이다. 당시 이 신문은 매일 110면, 136만 부를 발행했다. 백악관 전속 사진 에디터(2000~2001)로 일할 때는 기자 시절 겪었던 접근의 한계를 벗어나 백악관 인사이더로 미국 행정부의 핵심을 경험했다. 상대적으로 보수가 높은 로이터 통신사 수석 사진기자(2001~2019)를 한 덕에 세 아들의 뒷바라지가 힘들지는 않았을 듯하다. 95년생 첫째는 물리학 박사 학위를 막 끝냈고, 97년생 둘째 아들은 의대 대학원(정형외과) 1년을 남겨두고 있으며, 2003년생 막내아들은 영국에서 로스쿨에 다니고 있다. 2020년 6월, COVID가 한창일 때 그는 한국에 들어온다. 취재 목록 50개를 소중히 가방에 넣고. 우리 문화에 관한 양질의 콘텐츠가 필요하다고 절실히 느낀 것이다. 6개월이면 끝날 줄 알았는데 벌써 5년이 됐다. 서양인들은 너무 모르더라. 한반도의 고대 문명도 얼마나 대단하냐. 울주의 반구대 암각화가 이를 증명하지 않는가? 원래 훈민정음 원본에 따르면 프랑스어의 [r] 발음도, 아랍어의 [h]도 표기 가능하지 않은가?&lt;/div&gt;

&lt;div class=&quot;a2026_1_pic1&quot;&gt;&lt;img src=&quot;http://www.sunforum.org/./files/attach/images/1903/693/017/b4e4cbcbf7f66943f993269eb5395f52.png&quot; alt=&quot;스크린샷 2026-01-31 113236.png&quot; style=&quot;&quot; /&gt;&lt;/div&gt;

&lt;div class=&quot;a2026_1_4&quot;&gt;2022년 펴낸 『사진으로 보는 우리 문화유산 Visual History of Korea』(RHK 펴냄, 232쪽)은 2025년 5월에 개정 증보판을 냈다. 초판 5쇄를 포함해 7쇄. 잔주름 무늬 청동거울, 금동미륵반가사유상, 삽살개, 종묘제례 등 우선 사진이 너무 멋지다. 곁들인 영어와 한국어 설명도 모두 그가 썼다. 국내 문화재 전문가도 칭찬했다. &lsquo;서양 지식인에게 한국 전통 지식인의 높은 문화를 알려주면 우리를 무시하지 못할 것&rsquo;이라는 확신을 갖고 그가 찾아낸 주제가 선비 문화. 2025년 12월에는 『Sonbi Country Korea, Seeking Sagehood』(Hollym 펴냄)가 출간됐다. 선비 정신은 과거 한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세계 어디서든 통할 수 있다고 그는 주장한다. 우리가 仁&middot;義&middot;禮&middot;智&middot;信이라고 지칭했던 선비의 덕목을 그는 discipline, courage, inclusion, wisdom, honor로 재해석하며 이는 바로 한류의 핵심 동력이라고 설파한다. 영천 봉화사의 지봉 스님이 그에게 지어 준 호가 감로(甘露, 생명수). 다부진 체격으로 그는 끊임없이 생명수를 만들어 내고 부지런히 나눈다. 한국에 뿌리를 둔 외국인의 시선으로. 선비 정신을 이어받아 한국인 나름의 도덕적 생태계(moral ecology)를 쌓아야 한다고 열심히 강조하는 그는 아무리 봐도 &lsquo;62세 청년&rsquo;이다. LA에 계시는 어머니를 뵙고 아버지 제사를 지내려고 연말에 한국을 비운다니 그의 &lsquo;선비론&rsquo;은 2026년에야 &lsquo;방방&rsquo; 뜰 것 같다.&lt;/div&gt;

&lt;div class=&quot;two-divide&quot;&gt;
&lt;div&gt;&lt;img src=&quot;http://www.sunforum.org/./files/attach/images/1903/693/017/28421b607e8dd787a7d9da4bed874b74.png&quot; alt=&quot;스크린샷 2026-01-31 113251.png&quot; style=&quot;&quot; /&gt;&lt;/div&gt;

&lt;div&gt;&lt;img src=&quot;http://www.sunforum.org/./files/attach/images/1903/693/017/5d3f3c410a90952a369133121418995f.png&quot; alt=&quot;스크린샷 2026-01-31 113304.png&quot; style=&quot;&quot; /&gt;&lt;/div&gt;
&lt;/div&gt;

&lt;div class=&quot;a2026_1_pic8&quot;&gt;&lt;img src=&quot;http://www.sunforum.org/./files/attach/images/1903/693/017/d1ca661cc959ddb97650a0f2d89d9ee7.png&quot; alt=&quot;스크린샷 2026-02-01 121004.png&quot; style=&quot;&quot; /&gt;&lt;/div&gt;

&lt;div class=&quot;a2026_1_4&quot;&gt;지나온 인생에 가정(假定)은 불가능하지만&hellip; 그에게 물었다. &ldquo;만약 한국에서 그대로 살았다면 어떤 일을 했을 것 같냐?&rdquo;고. &ldquo;(지적) 호기심이 많아서 선생님 아니면 학생이었을 것&rdquo;이란다. 2023년에는 문화유산 보호 유공자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고, 2024년에는 서재필 언론문화상을 수상했다.&lt;/div&gt;

&lt;div class=&quot;a2026_1_5&quot;&gt;글 김춘옥(언론인, 前 단국대 교수)&lt;br /&gt;
사진 강형원 기자 제공&lt;/div&gt;&lt;/div&gt;]]></description>
						<pubDate>Sat, 31 Jan 2026 11:30:08 +0900</pubDate>
								</item>
				<item>
			<title><![CDATA[1786km 남극대륙 김영미 대장 한국 첫 단독횡단]]></title>
			<dc:creator><![CDATA[선농문화포럼.]]></dc:creator>
			<link>https://www.sunforum.org/index.php?mid=interview&amp;document_srl=17316</link>
			<guid isPermaLink="true">https://www.sunforum.org/index.php?mid=interview&amp;document_srl=17316</guid>
						<comments>https://www.sunforum.org/index.php?mid=interview&amp;document_srl=17316#comment</comments>
									<description><![CDATA[&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 class=&quot;youngmi-1&quot;&gt;1786km 남극대륙&lt;br /&gt;
김영미 대장&lt;br /&gt;
한국 첫 단독횡단&lt;/p&gt;

&lt;p&gt;&nbsp;&lt;/p&gt;

&lt;p class=&quot;youngmi-2&quot;&gt;참 ~ 대단한 여성들이 많다. &lsquo;허명 虛名&rsquo;으로 판명나서 실망시킨 분들도 많다. 그러나 알짜배기도 많다. 여러 분야에서 세계를 이끌어 가는 대한민국이 아닌가?&lt;/p&gt;

&lt;p&gt;&nbsp;&lt;/p&gt;

&lt;p class=&quot;youngmi-4&quot;&gt;2024년 11월 8일. 칠레의 최남단 도시 푼타아레나스. 4시간동안 보잉여객기, 다음은 경량 비행기로 30분. 이곳에는 이미 10월 28일에 도착했다. 비행 이동의 첫 번째 조건은 기상 상황. 10월 26일에 서울을 출발했으니 13일이 지나서야 출발점 허큘리스 인렛에 섰다. 마지막 비행기 조종사가 상공에서 세 번을 돌았다. 이 광활한 빙붕 (氷棚 남극의 대륙을 잇는 거대한 얼음덩어리)에 남겨진 모습을 촬영해 달라고 부탁했기에. 오래전부터 상상했던 자신의 모습을 확실하게 남기고 싶었다. 남극은 하얀 캔버스. 길은 없다. 앞선 이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은 아니다. 길을 만들어가야 한다. 다음해 1월 17일까지 69일 8시간31분 동안 1786킬로를 걸었다. 혼자 오로지 두 발로 걸어서 남극을 횡단한 4번째 인물이 됐다. 아시아인으로는 첫 번째. 도착 후 절로 눈물이 났다. 펑펑 울었다. 2월 6일에 한국에 돌아왔으니 100일의 서사(敍事) 였다.&lt;/p&gt;

&lt;p&gt;&nbsp;&lt;/p&gt;

&lt;p class=&quot;youngmi-4&quot;&gt;스캇과 아문젠이 최초로 확인해 은구슬로 표시되어있는 남극점은 해마다 위치가 다르다. 빙하가 움직이고 지구의 자전축이 변하기에. 최초로 남극 조약에 가입한 12개국의 국기도 이정표이다. 남극점은 남위 90도, 해발 2835미터. 한라산 (1947m)보다 9백미터 더 올라가야 한다. 1시간에 2~3km의 속도로 매일 10~12시간 이상을 걸었다. 보이지도 않는 시간이 쫓아오니 도망가기 바빴다. 출발점에서부터 남극점까지 1170km. 무동력(無動力). 이후는 미국기지에서 23kg의 식량과 연료를 보급 받았으니 무동력은 아니란다. 출발점 위도 80도, 남극점, 도착 점인 위도 85도 레버렛 빙하까지. 남극을 횡단했다.&lt;/p&gt;

&lt;p&gt;&nbsp;&lt;/p&gt;

&lt;p class=&quot;youngmi-4&quot;&gt;김영미대장의 기록은 세계 4번째 이기는 하지만 횡단 거리는 제일 길다. 2011년 영국 여성은 김대장과 역방향의 루트지만 1744km의 거리를 2번의 보급; 2018년과 그 이후 미국 남성&lt;/p&gt;

&lt;p class=&quot;youngmi-4&quot;&gt;2명의 횡단 거리는 1400km 로 짧았지만 보급은 받지 않았다. 횡단 거리와 상대적 보급에서 단연 우위를 기록했다. 김대장이 정복한 세계 7대륙 최고봉이다. 아시아 최고봉은 에베레스트; 유럽의 최고봉은 러시아에 있는 코카서스 산맥 엘브르즈; 북미의 최고봉은 알라스카의 데날리; 남미의 최고봉은 아르헨티나 안데스 산맥 아콩카구아; 아프리카 최고봉은 킬리만자로; 오세아니아 최고봉은 파푸아뉴기기의 칼스텐츠; 남극의 최고봉은 빈슨매시프.&lt;/p&gt;

&lt;p&gt;&nbsp;&lt;/p&gt;

&lt;p&gt;&lt;img src=&quot;http://www.sunforum.org/./files/attach/images/1903/316/017/f992467ddd85ba0023dc95fb987bbd0c.png&quot; alt=&quot;스크린샷 2025-08-21 113702.png&quot; style=&quot;&quot; /&gt;&lt;/p&gt;

&lt;p&gt;&nbsp;&lt;/p&gt;

&lt;p class=&quot;youngmi-4&quot;&gt;횡단 시작이다. 먼저 스키로 땅을 찍어본다. 눈이 단단하면 끌기가 좋다. 어깨 벨트로 연결해 허리로 끄는 썰매는 무게만 100 kg 나 된다. 몸만 하나이지 주요 장비는 모두 2개씩이다.&lt;/p&gt;

&lt;p&gt;&nbsp;&lt;/p&gt;

&lt;p class=&quot;youngmi-4&quot;&gt;노르딕 스키 바닥 40cm에는 모헤어로 된 씰이 붙어 있어 밀릴 때 제동이 가능하다. 그런데 낮은 온도 때문에 자꾸 떨어져 나간다. 겉옷은 입은 것이 전부이고 2000m 이상 높이에서 껴입을 여분 내복이 한 벌. 모자와 옷은 판매 중인 제품을 리폼했다. 10년 전부터 후원 받고 있는 노스페이스 애슬리트 (Northface Athlete) 기술개발팀이 준비해 줬다.&lt;/p&gt;

&lt;p&gt;&nbsp;&lt;/p&gt;

&lt;p class=&quot;youngmi-4&quot;&gt;11월에 출발했으니 여름이다. 49일간 초속 10미터 이상의 블리자드 (blizzard 폭풍눈보라). 오래 쉬면 땀이 안에서 얼어붙는다. 숨이 고드름으로 변해 얼굴 전체를 덮는다. 숨쉴 때 기도가 쩍쩍 얼어붙는 상기도 감염의 위험이 있다. 동상 방지용으로 고글에 안면 마스크를 꿰매 붙였다. 바람이 심한 날은&nbsp;2시간 삽질해서 눈벽을 쌓은 후에야 텐트를 칠 수 있었다. 텐트와 침낭의 성능이 대단해서 얼었던 옷이 녹아 몸이 다 젖는다. 그걸 체온으로 말린다. 한 달이 지나니 겉옷은 갑옷처럼 뻣뻣해졌다.&lt;/p&gt;

&lt;p&gt;&nbsp;&lt;/p&gt;

&lt;p class=&quot;youngmi-4&quot;&gt;속옷과 양말은 10일에 한 번 갈아입었다. 병이라도 걸리면 이날씨에 구조하러 오는 사람도 없지 않을까, 극도의 공포심마저 들었다. 위도 1도를 넘을 때마다 인스타그램 음성사서함을&nbsp;이용했다. 보낼 수는 있지만 받지는 못하는. 출발 전 보이스 레코더에 지인들의 응원 멘트를 녹음 갔다. 외로움 덜 느끼려고.&lt;/p&gt;

&lt;p&gt;&nbsp;&lt;/p&gt;

&lt;p class=&quot;youngmi-4&quot;&gt;하루 3,800칼로리를 보장하는 건조식 840g과 물 녹일 연료0.25l. 열흘이면 10kg이 줄어들지만 동시에 몸에서 체중도 빠지고 에너지도 줄어든다. 고추장 500g을 20일 만에 다 먹어치웠다. 그 무게라도 빨리 줄이려고. 백야. 생체리듬이 깨졌으나 초반 2주는 골아 떨어졌다. 익숙해지니 바람 소리 하나에도 잠을 설쳤다. 종일 초콜렛 등 단것을 먹었지만 양치질은 저녁에만 했다. 눈을 녹여 물 만드는 데 2시간 이상. 세수는 코인 티슈로. 아껴야 하니 얼굴 대신 물집 생긴 발 닦는데 양보했다. 그것도 부족하니 상처 난 맨발은 차디 찬 눈에 문질렀다. 남위 89-90도 사이는 자연보존 지역이라 응고제가 들어있는 배변봉투를 사용해서 썰매에 넣고 다녀야 했다. 그러니 썰매의무게가 획기적으로 줄지는 않았다.&lt;/p&gt;

&lt;p&gt;&nbsp;&lt;/p&gt;

&lt;p class=&quot;youngmi-4&quot;&gt;1980년생. 강릉대 산업공예 섬유디자인과 99학번이다. 왜 이 고생을 했을까? 처음부터 재미있었다고. 남극횡단 이후는 행복하단다. 대학 1학년때부터 등반 원정을 다니다 백두대간 가려고 3학년때 휴학 했다. 작은 키에 체력이 달리니 모래주머니 달고 달리기, 수영, 자전거, 암벽 등 훈련을 지독히도 했다. 올림픽에만 출전 안했지. . .&lt;/p&gt;

&lt;p&gt;&nbsp;&lt;/p&gt;

&lt;p class=&quot;youngmi-4&quot;&gt;&lsquo;저 수평선 끝을 향해 걸으면 좋겠다.&rsquo; 남극 대륙 최고봉을 오른 후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상상해보았다. 오은선 여성대장과 함께 했던 등정이었다, 자연이 얼마나 무섭고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지를 깨달았을 때였다. 횡단을 위해 10년을 준비했다. 체력을 위해 65kg까지 몸을 살찌웠다. 현지에서 51kg이 됐다. 몸이 받은 스트레스로 근육, 장기, 위 모두 약해져 있다. 혈액이 깨끗해야 회복이 잘되니 지금은 채식 위주로 식사를 한다. 2~3개월 후에 체중은 회복되겠지만 체력이 회복된다는 보장은 없다.&lt;/p&gt;

&lt;p&gt;&nbsp;&lt;/p&gt;

&lt;p&gt;&lt;img src=&quot;http://www.sunforum.org/./files/attach/images/1903/316/017/469c1c557049c92099dec9a5f69b50e3.png&quot; alt=&quot;스크린샷 2025-08-21 113620.png&quot; style=&quot;&quot; /&gt;&lt;/p&gt;

&lt;p&gt;&nbsp;&lt;/p&gt;

&lt;p class=&quot;youngmi-4&quot;&gt;가장 성공적인 등반은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란다. 더 나이 들어 동네 뒷산 약수터를 다니더라도 등산, 등반은 꼭 계속하겠단다. 남극 횡단 보다 더 극적인 시간은 없었다며. 극한의 육체적 활동이므로 인간에게 등반의 시간은 짧다. 남극 횡단 같은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면, 우리 모두 대단한 인생을 산 것 일께다. 대단한 김대장.&lt;/p&gt;

&lt;p&gt;&nbsp;&lt;/p&gt;

&lt;p class=&quot;youngmi-3&quot;&gt;글 김춘옥&lt;br /&gt;
단국대학교 명예교수&lt;br /&gt;
前 KBS기자&lt;/p&gt;&lt;/div&gt;]]></description>
						<pubDate>Thu, 21 Aug 2025 11:39:26 +0900</pubDate>
								</item>
				<item>
			<title><![CDATA[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 인터뷰]]></title>
			<dc:creator><![CDATA[선농문화포럼.]]></dc:creator>
			<link>https://www.sunforum.org/index.php?mid=interview&amp;document_srl=16827</link>
			<guid isPermaLink="true">https://www.sunforum.org/index.php?mid=interview&amp;document_srl=16827</guid>
						<comments>https://www.sunforum.org/index.php?mid=interview&amp;document_srl=16827#comment</comments>
									<description><![CDATA[&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div class=&quot;aa-00&quot;&gt;대한민국 건국은 1948년 ... 역사적인 전환점&lt;/div&gt;

&lt;div class=&quot;aa-01&quot;&gt;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 인터뷰&lt;/div&gt;

&lt;div class=&quot;aa-0&quot;&gt;&lt;img src=&quot;http://www.sunforum.org/./files/attach/images/1903/827/016/f08fe733aa421ab1c244bb68520d0f27.png&quot; alt=&quot;&quot; style=&quot;&quot; /&gt;&lt;/div&gt;

&lt;div class=&quot;aa-1&quot;&gt;대한민국 건국의 의미는 무엇일까? 건국 시점은 언제로 봐 야 할 것인가? 1948년 정부수립 선포를 건국으로 볼지, 아니 면 상해 임시정부 출범을 건국으로 볼 것인지 상반된 주장이 존재한다. 이에 대해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전 러시아대 사)는&#39;대한민국의건국기점은분명히 1948년입니다. 1919 년 4월 상해 임시정부 출범이 우리 대한민국의 수립 이었다는 주장은 역사 왜곡입니다. 임시정부는 어디까지나 임시정부 이지, 국민을 보호할 수 있는 권능을 내외로 인정받는 정식 국가가아닙니다.&rdquo;라고말했다.&lt;/div&gt;

&lt;div class=&quot;aa-1&quot;&gt;이인호 교수는 1948년 대한민국 건국과 더불어 자유민주체 제가 만들어졌고 계급간 차별금지와 남녀평등을 선포함으 로써 우리 역사상 유일한 혁명을 이루었고 역사상 가장 중 요한 분기점이 되었습니다.&rdquo;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이 교수는 &rsquo;대한민국 건국은 혁명이었다&lsquo;라는 제목의 역사수상 록을 발간하였다. 비교사적 관점에서 대한민국 건국을 &rsquo;혁 명&lsquo;으로 조명하는 논문을 근간으로하되 역사적의 미에 관한 글들을 작성한 연대순으로 배열했고 건국문제와 이승만 대 통령에 관한 글 등을 정리해 수록했다.&lt;/div&gt;

&lt;div class=&quot;aa-1&quot;&gt;이인호 명예교수는 서울대 사학과 재학 중 미국으로 유학하여 웰슬 리(Wellesley)대학을졸업했다. 1967년에는미국하버드대학에서 한국여성 최초로 러시아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고려대와 서울대 교수를 거쳐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주 핀란드 대사와 주 러시아 대 사를지냈다. 이어 KAIST 석좌교수와 KBS이사장등을역임했다. 이 인호 교수를 서울 이촌동 자택에서 인터뷰했다.&lt;/div&gt;

&lt;div class=&quot;aa-2&quot;&gt;건국을 주제로 해서 중요한 책을 출간하셨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으 셨는지요?&lt;/div&gt;

&lt;div class=&quot;aa-1&quot;&gt;&#39;우리나라 역사를 비교사적 안목에서 볼 때 대한민국을 수립했다 는 게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우리 국민이 제대로 볼 줄 알아야 한다 는 그런 시각에서 글을 썼습니다. 과거에는 그런 일이 없었는데 얼 마 전부터 건국의 의미를 축소하려는 기류가 느껴졌기 때문이지요. 저는 우리나라의 건국이라는 것은 프랑스 혁명이나 러시아 혁명에 못지않은 큰 의의를 가진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국민들이 대한민국이 어떻게 세워졌는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rdquo;&lt;/div&gt;

&lt;div class=&quot;aa-2&quot;&gt;가장 중심적인 내용은 대한민국의 건국은 1948년 8월이고 그것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혁명이었다는 부분입니다.&lt;/div&gt;

&lt;div class=&quot;aa-1&quot;&gt;&#39;1948년 건국은 전세계가 공인하는 역사적인 현실입니다. 우리나라 가 1945년 8월 15일 일제 치하에서 해방은 됐지만 미국과 소련으로 분단 점령된 상황이라 독립국가가 되지는 못했어요. 그 후 우리 국민 이 자신의 의견을 투표를 통해서 표시한 때가 바로 1948년입니다. 우 리 대표자를 선출하고 그 대표자들이 모여서 헌법을 만들고 대통령 을 선출해서 정부가 조직된 것이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죠. 이처럼 정부를 수립하고 자유민주공화국으로 독립을 선포하면서 광복은 비 로소 이뤄진 겁니다. 가히 혁명이라고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rdquo;&lt;/div&gt;

&lt;div class=&quot;aa-2&quot;&gt;혁명이라고 하면 보통 민중봉기를 떠올리게 되는데요 대한민국의 건국은어떤면에서혁명이라고일컬을수있을까요?&lt;/div&gt;

&lt;div class=&quot;aa-1&quot;&gt;&#39;대한민국 건국은 분명한 혁명이었습니다. 단순히 권력이 교체된 수준이 아니었어요. 사회적으로도 혁명적인 사건입니다. 혁명이라 고 하는 것은 주권자와 그 사회의 이념, 시스템이 바뀌는 것입니다. 건국과 더불어 우리는 처음으로 주권을 국민이 가지는 자유민주국 가가 됐습니다. 계급 차별이 없어지고 남성뿐 아니라 여성도 선거 권을 얻었습니다. 스위스조차 1970년대 이후에서야 여성이 선거권 을 얻었지요. 게다가 국민의 문맹률이 80%에 이르던 나라가 불과 몇 십년 사이에 학력이 높은 나라로 발 돋음 했고 선진국 반열에 올 랐습니다. 이것이 혁명이 아니면 무엇입니까? 우리 현대사에서 진 정한 혁명은 건국혁명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39;&lt;/div&gt;

&lt;div class=&quot;aa-2&quot;&gt;1919년 상해 임시정부 출범 시기를 건국이라고 주장하는 분들도 있습니다.&lt;/div&gt;

&lt;div class=&quot;aa-1&quot;&gt;&#39;1919년 건국설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주장입니다. 객관적인 역 사적 사실이 몇 사람의 발언으로 달라질 수는 없는 거지요. 국가가 수립된다는 건 국제적인 공인이 필요하며 국가가 국가로서의 권 능을 가져야 가능합니다. 임시정부는 말 그대로 임의 단체였고 국 가적인 기능을 하지는 못했어요. 국민을 보호할 능력이 없었던 것 이죠. &#39;1919년 건국설&#39;은 맹목적 통일지상주의자들 일부가 국가의 정체성을 훼손하기 위해 내놓은 주장입니다.&#39;&lt;/div&gt;

&lt;div class=&quot;aa-2&quot;&gt;대한민국 건국의 주역은 이승만 초대 대통령인데요, 이승만 대통령 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은데 어떻게 보시는지요?&lt;/div&gt;

&lt;div class=&quot;aa-1&quot;&gt;&#39;이승만 대통령은 꾸준한 독립운동을 통해 세계 각국에 한국의 독 립 열망을 강하게 인식시켰던 인물입니다. 일찍이 한학에 능통했 고 미국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을 만큼 서양 학문까지 통달했습 니다. 이런 바탕에서 세계 정세를 꿰뚫어 보는 높은 안목이 있었고 약소민족인 우리에게 유리한 쪽으로 세계 정세를 잘 활용했습니 다. 또 인간의 소중함을 최고 가치로 하는 자유민주주의를 기초로 건국을 이끌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건국을 이룬 이승만은 영국의 윈스턴 처칠보다도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39;&lt;/div&gt;

&lt;div class=&quot;aa-2&quot;&gt;말씀을 듣고 보니 국가의 의미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 리가 역사를 바라보는 자세는 어때야 할까요?&lt;/div&gt;

&lt;div class=&quot;aa-1&quot;&gt;&#39;지금 보면 국민 전반이 역사에 대해 무관심하고 자신들이 몸 담고 있는 나라의 토대가 파괴되고 있음을 감지할 능력도 없습니다. 이 때문에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사람들과의 역사전쟁이 계속되고 있 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책이 의식의 위기에 빠져 있는 대한민국을 구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뿐입니다.&#39;&lt;/div&gt;

&lt;div class=&quot;aa-3&quot;&gt;Interview&lt;br /&gt;
대담 임흥순&lt;br /&gt;
한양사이버대교수, 前 KBS기자&lt;/div&gt;&lt;/div&gt;]]></description>
						<pubDate>Sun, 09 Feb 2025 10:39:16 +0900</pubDate>
								</item>
				<item>
			<title><![CDATA[이광형 KAIST총장 인터뷰]]></title>
			<dc:creator><![CDATA[선농문화포럼.]]></dc:creator>
			<link>https://www.sunforum.org/index.php?mid=interview&amp;document_srl=16083</link>
			<guid isPermaLink="true">https://www.sunforum.org/index.php?mid=interview&amp;document_srl=16083</guid>
						<comments>https://www.sunforum.org/index.php?mid=interview&amp;document_srl=16083#comment</comments>
									<description><![CDATA[&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gt;&lt;img src=&quot;http://www.sunforum.org/./files/attach/images/1903/083/016/fc0de727a86f3e797b66b61c2208be74.jpg&quot; alt=&quot;1.jpg&quot; style=&quot;&quot; /&gt;&lt;/p&gt;

&lt;div class=&quot;fire_1&quot;&gt;&lt;strong&gt;감정을 가진 AI가 조만간 나타난다&lt;/strong&gt;&lt;/div&gt;

&lt;div class=&quot;fire_2&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strong&gt;글&lt;/strong&gt; 임흥순 / 한양사이버대교수 / 전 KBS기자&lt;/div&gt;

&lt;p&gt;&nbsp;&lt;/p&gt;

&lt;div class=&quot;fire_2&quot;&gt;성큼 다가온 AI(인공지능)의 시대, 앞으로의 인류는 어떻게 변화할 까? 이광형 KAIST총장은 &ldquo;조만간 AI는 감정과 자아의식을 가질 것 이다. 즉 AI가 인간처럼 생각하는 수준을 넘어 감정까지 갖게 되는 때가 곧 오게 된다. 아울러 개체 보존의 본능과 종족 보존의 본능을 갖게 되면서 자아의식이 생길 것이다&rdquo;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시기 는 현재 우리가 사는 시대에 도래할 것이라고 예측했다.&lt;/div&gt;

&lt;div class=&quot;fire_2&quot;&gt;우리나라 최초의 미래학자이기도 한 이광형 총장은 인류의 역사는 인간이 자유의지로 만들어 가는 면도 있지만 동시에 환경이나 도구 와 상호작용하면서 역사가 만들어 진다고 말했다. 새로운 도구가 나타나면 거기에 적응하면서 새로운 역사가 만들어 지는 경우가 많 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lsquo;도구&rsquo;가 &lsquo;AI&rsquo;로 변화하면서 인간의 사상 또 한 바뀔 것이라고 내다 봤다. 따라서 AI와 공존하는 지혜를 발휘하 여 새로운 질서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 1985년 전 산학과 교수로 임용된 그는 2021년 2월 KAIST총장으로 취임했다. 1999년 81부작으로 방영된 TV드라마 &lsquo;카이스트&rsquo;에서 TV를 거꾸로 놓고 보는 괴짜교수 박기훈의 실제 모델이다. 교내 연못에 거위를 키워서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직접 만나 본 이광형 총장은 자그마한 체구에 괴짜라는 별명에 어울리지 않게 온화하고 예의 바른 신사의 풍모를 지니고 있었다. 이광형 총장을 서울 종암동에 있는 서울사대부고 도서관에서 인터뷰했다.&lt;/div&gt;

&lt;div class=&quot;fire_3&quot;&gt;사람들은 이광형 총장이라고 하면 괴짜 총장이라는 인식이 강합니 다. 원래부터 남들 보다 튀는 성격이신지요?&lt;/div&gt;

&lt;div class=&quot;fire_2&quot;&gt;(웃음) &ldquo;모르겠어요. 언제부터 그렇게 옆길로 샜는지. 사실 저는 오 랫동안 아웃사이더였습니다. 친구들과 얘기를 재미있게 한다거나 술도 잘 마시고 노래도 잘 하는 그런 타입이 아니었죠. 학교 다닐 때 는 그러다가 옆길로 새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교수가 되었을 때부 터인 것 같네요. 제가 총장이 되었을 때도 주위 사람들이 이광형 같 은 사람이 총장 되기가 어려운데 예외적으로 됐다고 하더군요. 메 인스트림으로 들어가려고 노력한 것도 아닌데 내 길로 쭉 가다보니 까 그렇게 되었습니다.&rdquo;&lt;/div&gt;

&lt;div class=&quot;fire_3&quot;&gt;미래를 예측하기 위해서 &lsquo;미래의 기원&rsquo;이라는 책을 쓰셨는데요, 어떤 계기로 저술을 하셨는지요?&lt;/div&gt;

&lt;div class=&quot;fire_2&quot;&gt;&lt;img src=&quot;http://www.sunforum.org/./files/attach/images/1903/083/016/2f0cb27ebfc80e9b8c7436bcb5f35a6e.jpg&quot; alt=&quot;2.jpg&quot; style=&quot;&quot; /&gt; &ldquo;일반적으로 역사를 연구하거나 미래를 예측하는 분들을 보면 대체로 인류의 역사는 인간의 자유 의지에 의해서 만들어 진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그와 동시에 환경이나 도구와 상호작용하면서 역사가 만들어집니다. 원자탄이 나타남으로써 인류 문명사가 바뀌었고 컴 퓨터와 자동차, 비행기가 나오면서 역사가 바뀌는 거지요. 그런 관 점에서 역사를 새로 정리하고 미래는 어떻게 전개될지 원리를 찾을 수 있다고 봤습니다. 그래서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rdquo;&lt;/div&gt;

&lt;div class=&quot;fire_3&quot;&gt;&lsquo;미래의 기원&rsquo;에 보면 앞으로 AI가 감정을 갖고 자아의식까지 가질 것이라고예측을하셨지요?&lt;/div&gt;

&lt;div class=&quot;fire_2&quot;&gt;&ldquo;AI는 앞으로 감정은 너무 쉽게 가질 것이고 자아의식을 갖는지 여 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겁니다. 여기서 자아의식이 무엇이냐 하는 것부터 정의를 새로 해야 합니다. 저는 자아의식이라는 것은 개체 보존의 본능과 종족보존의 본능을 가지면 자아의식이 있다고 봅니다. 그러면 하나의 생명체가 되는 거지요. 이런 정의에 동의한 다면 저는 인공지능은 조만간 그런 자아의식을 가질 거라고 봅니 다. 즉 AI가 자기 자신을 보호하는 능력, 자기를 복제하는 능력을 갖 게 되는 거지요. 머지않아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자아의식을 갖 는 AI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rdquo;&lt;/div&gt;

&lt;div class=&quot;fire_3&quot;&gt;그렇다면 이런 AI의 진화에 대해서 어떻게 대응 을해야할까요?&lt;/div&gt;

&lt;div class=&quot;fire_2&quot;&gt;&ldquo;자아의식을 가진 물체가 우리 생활 속에 들어 온다면 협동하면서 함께 공존하는 방법을 찾아 야 겠지요. 잘 받아들여서 구성원으로 만들어 야 합니다. 공존하려면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야 하겠지요. 왜냐하면 AI의 지능이 인간보다 뛰어난 면도 있는데 자아의식까지 갖게 되면 그걸 무시할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공존의 지 혜가 필요합니다. 그런 새로운 질서를 저는 휴 머니즘 2.0 이라고 부릅니다. AI의 부작용만 얘 기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분들에게 질문하고 싶어요. 막을 수 있 으면 막아보라고요. 그런데 막을 수 없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잖아요. AI를 잘 활용해서 질서를 만들고 평화롭게 사는 방법을 연구 해야합니다.&rdquo;&lt;/div&gt;

&lt;div class=&quot;fire_3&quot;&gt;우리나라의 AI기술은 세계적으로 어느정도의 수준에 와 있고 앞으로 기술확보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lt;/div&gt;

&lt;div class=&quot;fire_2_2&quot;&gt;&lt;img src=&quot;http://www.sunforum.org/./files/attach/images/1903/083/016/d4ec7eb3f53316c4ec2a247c8588d11a.jpg&quot; alt=&quot;3.jpg&quot; style=&quot;&quot; /&gt;&ldquo;전 세계적으로 보면 미국과 중국이 AI기술에서 가장 앞서 가고 그 밑으로 뚝 떨어져서 한국과 프랑스, 독일, 영국 정도가 다음 그룹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AI는 국력이 뒷받침 되어야 합니다. 우리나라 는산업규모와자본력이작아서어려움이있습니다. 그래서특화된 AI분야, 그러니까 뷰티AI라던가 헬스AI, 케이팝AI 같은 특별한 분 야는 경쟁력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rdquo;&lt;/div&gt;

&lt;div class=&quot;fire_3&quot;&gt;앞으로 우리나라가 발전을 이어 가려면 어떤 점에 중점을 둬야 할 까요?&lt;/div&gt;

&lt;div class=&quot;fire_2&quot;&gt;&ldquo;우리나라가 지금처럼 일어선 것은 인적 자원개발 때문 아니겠습니 까? 앞으로도 국가 산업 발전에 필요한 인력을 많이 기르는게 핵심 이겠죠. 구체적으로는 미래 분야에 중점을 둬야 합니다. AI도 미래 분야구요 뇌과학이라든지 양자기술, 에너지와 핵융합, 인공광합성 같은 분야가 글로벌 지형입니다. 우리 인류가 피할 수 없는 길입니 다. 그런쪽을 이제 중점적으로 개발 해야 합니다.&rdquo;&lt;/div&gt;

&lt;div class=&quot;fire_3&quot;&gt;학창시절은 어떻게 보내셨고 미래세대에게는 무슨 얘기를 전하고 싶으신지요?&lt;/div&gt;

&lt;div class=&quot;fire_2_2&quot;&gt;&lt;img src=&quot;http://www.sunforum.org/./files/attach/images/1903/083/016/7ff950efdc27c836a11f197cf4cc4465.jpg&quot; alt=&quot;5.jpg&quot; style=&quot;&quot; /&gt;&ldquo;저는 학창시절에 존재감도 없었고 평범하게 지냈습니다. 공부는 상위권에서 하 정도였지요. 다만 끊임없이 노력하면 내가 바뀐다는 신념은 있었습니다. 모교 교훈 중에 &lsquo;쓸모 있는 사람이 되자&rsquo;라는 문 구가 있습니다. 그 문구가 제 인생에서 상당히 중요한 나침반 역할 을 했어요. 어떻게 하면 내가 국가와 사회에 쓸모가 있을까 하는 생 각을 많이 했습니다. 젊은 사람들에게는 자신 만의 꿈을 찾으라고 하고 싶습니다. 그 꿈은 나의 별을 찾는 겁니다. 우리에게는 각자의 별이 있어요. 혹시 내 별이 남들보다 작더라도 상관이 없습니다. 그 별을 찾아서 나만의 길을 가는 겁니다. 그렇게 나의 별을 찾아서 쭉 가다보면 어느덧 길이 열리게 될 겁니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별에 서빛납니다.&rdquo;&lt;/div&gt;

&lt;p&gt;&nbsp;&lt;/p&gt;

&lt;p&gt;&nbsp;&lt;/p&gt;

&lt;p&gt;&nbsp;&lt;/p&gt;

&lt;p&gt;&nbsp;&lt;/p&gt;

&lt;p&gt;&nbsp;&lt;/p&gt;

&lt;p&gt;&nbsp;&lt;/p&gt;

&lt;p&gt;&nbsp;&lt;/p&gt;

&lt;p&gt;&nbsp;&lt;/p&gt;

&lt;p&gt;&nbsp;&lt;/p&gt;&lt;/div&gt;]]></description>
						<pubDate>Mon, 19 Aug 2024 15:10:01 +0900</pubDate>
								</item>
				<item>
			<title><![CDATA[한국감성의 재즈가수 ‘나윤선’]]></title>
			<dc:creator><![CDATA[선농문화포럼.]]></dc:creator>
			<link>https://www.sunforum.org/index.php?mid=interview&amp;document_srl=15552</link>
			<guid isPermaLink="true">https://www.sunforum.org/index.php?mid=interview&amp;document_srl=15552</guid>
						<comments>https://www.sunforum.org/index.php?mid=interview&amp;document_srl=15552#comment</comments>
									<description><![CDATA[&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div class=&quot;box2_div&quot;&gt;&lt;img src=&quot;http://www.sunforum.org/files/attach/images/1903/552/015/4c6192d7897eef3dfe24b90741c77fc4.jpg&quot; alt=&quot;제목-없음-4.jpg&quot; style=&quot;&quot; /&gt;&lt;/div&gt;

&lt;div class=&quot;color3_div&quot;&gt;K-재즈, 유럽인들이 좋아해요!&lt;/div&gt;

&lt;div class=&quot;text_div&quot;&gt;에밀 졸라가 그랬던가? 파리의 위장이라고. 넓은 광장과 극장이 좌표를 찍고 있는 샤틀레. 1862년에 세워진 2,500석 규모의 이 프랑스 최대 오페라 극장은 파리 공연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선망의 장소다. 프랑스로 음악 유학을 떠난지 18년만인 2013년 8월 19일. 나윤선이 이곳 무대에 섰다. 그 몇 달 전에는 조수미가 섰다. 한국 언론이 떠들썩했었다. 그에 비해 나윤선은 조용히 샤틀레를 점령했다. 한국에서 재즈가 대중적이지 못해서였겠지.&lt;/div&gt;

&lt;div class=&quot;text_div&quot;&gt;&lsquo;프랑스製 한국 재즈가수 Youn Sun Nah&rsquo;. 영어와 프랑스어를 마구 혼용한 기사 제목이 프랑스 언론을 장식했다. 입장표는 순식간에 매진됐다. 3곡의 앵콜 곡 포함해서 노래 부른 시간만 1시간 35분. 중간 중간 &lsquo;merci beaucoup&rsquo;, &lsquo;thank you&rsquo;, &lsquo;감사합 니다&rsquo;를 연발하며. 아코디온, 기타, 콘트라베이스, 유럽 최고 연 주자들이 그녀의 밴드를 구성했다. 오랫동안 늘 함께 했던 그룹이다. 프랑스 언론의 전문가 평을 들어보자. &lsquo;벨칸토, 록샤우팅, 스윙 창법, 한국의 전통창 등 한가지 발성에 국한되지 않은 유니크한 발성 테크닉이 그의 트레이드 마크이다. 기본기가 탄탄한 여러 가지 발성법으로 저음, 중음, 고음, 퀘퀘한 목소리, 맑은 목소리 등 아주 다양한 음색을 내서 거의 모든 장르를 재즈로 승화한다. 메탈리카, 나인 인치 네일스의 곡을 재즈로 재해석해서 앨범에 싣기도 했다. 재즈 보컬리스트답게 즉흥적인 연주와 스캣에 매우 강한 모습을 보여 주는데 목소리를 갖고 별의 별 소리를 다낸다... &rsquo;&lt;/div&gt;

&lt;div class=&quot;text_div&quot;&gt;나윤선이 노래로 처음 대중앞에 선 때는 1989년 주한 프랑스 대사관이 개최한 샹송대회 때 였다. 만 20세, 건국대학교 불문학과 2학년. 팀을 만들어 출전하고 싶었던 같은 과 친구가 꼬득였다. 솔로하라고. 프랑스에서는 무명이나 다름 없던 니콜 리에 Nicole Rieu 의 &lsquo;Mais je sais que ca va m&rsquo;arriver&rsquo;란 노래를 불렀다. 대상! 아버지 어머니가 서울대 성악과 출신으로 아버지 나영수는 국립합창단 제1대, 3대, 7대 단장을 역임했다. 어머니 김미정도 뮤지컬, 오페라 가수였다. 국립극장을 놀이터로 삼아 어린시절을 보냈고 배화여고 재학 시절에는 합창단을 지휘했다니 DNA가 이미 미래를 정해줬던 것 같다. 가수로 만들어 주겠다는 음악 피디들이 달려들었으나 관심 없었다. 부모가 힘들게 음악 하시는 것 보고 자랐기에.&lt;/div&gt;

&lt;div class=&quot;text_div&quot;&gt;대상 수상자에게 프랑스 아비뇽 체류 특전이 주어졌다. 14세기에 교황청이 있던 곳. 7월의 아비뇽 페스티벌은 가히 세계 최고로 손 꼽힌다. 그러나 아주 작은 도시. 한 달 머물다 리용으로 갔다. 거기서 1년을 보낸 후 귀국해서 당시 인기 많던 대기업 이랜드에 입사했다. 홍보실. 천직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일했다. 학생 때 교직과목 이수를 위해 교생 실습을 나갔을 때도 교사가 천직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김민기씨가 주도한 뮤지컬 〈지하철〉에 재미삼아 데모 테이프를 보냈는데 덜컥 캐스팅이 됐다. 연변 처녀역을 맡았다. 연장 공연도 했다. 〈번데기〉에 도 출연했는데 이 연극이 서울 연극제 대상을 받았다. 일본 공연이 이어졌지만 엄마가 힘들게 뮤지컬 하는 것을 봐왔기에 중단했다. 정명훈 지휘, 김민기 연출, 아버지 나영수 합창지휘의 〈오션월드〉 출연이 끝이었다. 뮤지컬 배우가 천직인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다.&lt;/div&gt;

&lt;div class=&quot;text_div&quot;&gt;93년 대학 졸업 2년 후 프랑스 유학. 재즈로 정했다. 무려 4개의 학교를 다녔다. 1976년에 세워진 유럽 최초, 최대 재즈학교 CIM에서 재즈 보컬 학위를 받았다. 파리 북쪽에 있는 보베 Beauvais 음악학교 성악과. 이곳은 수석으로 졸업했다. 나디아와 릴리 블랑제 콘서버토리. 다성부多聲部 예술센터 Centre d&rsquo;art polyphonique. 목표가 가수가 아니어서 3년 후에 한국으로 돌아오려고 했다. 그런데 재즈는 평생 할 수 있는 음악이었다. 어떤 교수가 미국식 허스키 소리가 아닌 여러 종류의 재 즈 소리를 들려줬다. 실제로 나윤선도 나이가 들어가니 소리가 좀 더 굵어지고 낮아졌다. 좋은 점도 있다. 오래 할수록 성장할 수 있는 음악이 재즈. 계속하기로 했다.&lt;/div&gt;

&lt;div class=&quot;text_div&quot;&gt;2001년에 첫 앨범 &lsquo;르플레&rsquo;(Reflet)를 내며 재즈보컬리스트로 활동을 시작했다. 매해 100일 가량 이동하고, 100일 가량 공연하고, 또 100일 가량 음악을 알렸다. 2000-2001년 모교 CIM 교수도 지냈다. 이즈음부터 경제적 자립도 했다. 세계적인 몽트뢰 Montreux 재즈 페스티벌 심사위원장도 맡았다. 처음 이메일을 받았을 때는 장난인 줄 알고 답도 하지 않았단다. 2004년 과 2005년에는 한국에서 최우수 크로스오버 상과 문화관광부의 젊은 예술가상도 수상했다. 국립극장에서 대중 음악가로 처음으로 공연도 했다. 프랑스에서는 문화예술 훈장인 오피시에와 슈발리에 2개를, 독일에서는 에코 재즈가 수여하는 올해의 해외 예술가상을 받았다. 소치 동계올림픽 폐막식 무대에도 섰고 유네스코와 뭉크인스티튜트가 주관하는 세계 재즈 콘서트에서는 그 유명한 허비 행콕 Herbie Hancock과 듀오 중창도 했다.&lt;/div&gt;

&lt;div class=&quot;text_div&quot;&gt;이렇게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게 된 이유가 궁금했다.&lt;/div&gt;

&lt;div class=&quot;color4_div&quot;&gt;&ldquo;프랑스인들에게 재즈는 크레올 cr&eacute;ole(식민지에서 태어난 유럽인들 자손) 의 음악입니다. 즉 아프리카 음악과 유럽 클래식 음악과 유럽의 민속음악이 합해진 겁니다. 허스키한 미국의 재 즈와 다릅니다. 저의 재즈는 60%는 한국적인 감성이에요. 제가 어려서 따라 불렀던 산울림, 시인과 촌장 같은 가수들의 감성이 제 노래에 담겨있는 것 같아요. 저만의 재즈를 하는 것에 유럽 인들이 박수를 많이 쳐 주신 것 같습니다.&rdquo;&lt;/div&gt;

&lt;div class=&quot;text_div&quot;&gt;2024년 1월 새로 발매될 12번째 앨범 타이틀은 &lsquo;그녀들 Elles&rsquo;. 한국 투어중인 12월 20일, 마포 아트센터로 &lsquo;내돈내산&rsquo; 표를 들 고 달려갔다. 정말 잘한다. 정말 완벽했다. 여느 프랑스 가수 보 다 더 잘한다. 그가 좋아한다는 바바라보다 더. 그 까다로운 프 랑스 사람들이 훈장을 준 가수인데. 숨을 죽이고 보고, 들었다. 프랑스에서 최고를 달리고 있는 두 명의 피아니스트 막심 산체 스와 토니 펠만과 함께 했다. 공연에서 듣는 그의 노래는 유튜 브보다 훨씬 좋았다.&lt;/div&gt;&lt;/div&gt;]]></description>
						<pubDate>Mon, 29 Jan 2024 16:38:01 +0900</pubDate>
								</item>
				<item>
			<title><![CDATA[나는 70세에 운동을 시작했다]]></title>
			<dc:creator><![CDATA[선농문화포럼.]]></dc:creator>
			<link>https://www.sunforum.org/index.php?mid=interview&amp;document_srl=15119</link>
			<guid isPermaLink="true">https://www.sunforum.org/index.php?mid=interview&amp;document_srl=15119</guid>
						<comments>https://www.sunforum.org/index.php?mid=interview&amp;document_srl=15119#comment</comments>
									<description><![CDATA[&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gt;&lt;img src=&quot;http://www.sunforum.org/files/attach/images/1903/119/015/d93388b61cb1f670ceb82025316c2607.jpg&quot; alt=&quot;제목-없음-3_03.jpg&quot; style=&quot;&quot; /&gt;&lt;/p&gt;

&lt;p&gt;&lt;strong&gt;전 신호그룹 회장 이순국&lt;/strong&gt;&lt;/p&gt;

&lt;p&gt;&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0000CD;&quot;&gt;&lt;strong&gt;노인 건강 전도사&lt;/strong&gt;&lt;/span&gt; &lsquo;한국 시니어 근력 운동 실천 기구 이사장&rsquo;, &lsquo;서울 과학기술대학교 스포츠학과 명예학과장&rsquo;. 그의 명함이다. 나이 들어서도 얼마든지 저항성 운동이 가능하고 고강도 저항성 운동을 쉬지 않고 하는 것이 건강에 좋다. 노화는 질병이며 치료할 수 있다. 하버드대 데이비드 싱클레어 David Sinclair 교수도 저서에서 입증했다. 어렵다고 운동 안하고 늙어가는 것을 포기하지 말라, 젊음을 회복할 수 있다.&lt;/p&gt;

&lt;p&gt;&nbsp;&lt;/p&gt;

&lt;p&gt;건강한 몸에 필요한 것은 유산소 운동 20%, 저항성 운동 25%, 먹는 것 55%. 과일-야채-단백질-탄수화물 순으로 1,700 kcal 넘지 않게 소식하라. 장수했던 그리고 지금도 장수하고 있는 영조대왕, 정약용, 이익, 키신저, 이시형박사, 모두 소식가다. 아침을 포함한 규칙적인 식사하기. 7~8 시간 충분한 수면. 키에 대응하는 적정한 체중 유지. 금연. 술 적게 마시기. 규칙적으로 운동하기. 간식 먹지 않기. 건강수명 (남 71세, 여 74.7세) 과 자연수명 (남 80.6세, 여 86.6세)이 일치해야 가장 이상적인데 지금대로라면 인생 마지막 순간에 여성은 12년 남성은 10년간 병들어 살게 된다.&lt;/p&gt;

&lt;p&gt;&nbsp;&lt;/p&gt;

&lt;p&gt;건강 전도사 역할을 제대로 하려고 책도 펴냈다. . 2009년 일본 벳푸 여행 중 협심증으로 쓰러졌다. 67세. 천하에 있는 그 무엇을 얻더라도 건강을 잃으면 다 소용 없는 거구나. 늦었지만 뼈저린 자각. 산삼, 최상품 녹용... 과학적으로 따지니 별로였다. 결론은 내 몸에 맞는 운동을 열심히 하자. 규칙적으로 생활하자. 이후 열심히 운동했다. 2년 정도 무턱대고 운동을 하다 궁금증이 생겼다. &ldquo;건강을 위해 어떤 운동을 해야 하는지, 이 운동을 하면 어떤 면에서 좋은지.. 많은 책을 사서 봤습니다. 제대로 설명한 책을 발견하지 못했어요. 스스로 공부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서울과학기술대 석사과정에 등록했습니다.&rdquo; 운동과 건강의 원리를 깨우치기 위해 스포츠과학을 공부했고 내친 김에 박사학위에 도전했다. 상명대학교에서 운동생리학 박사 (2018년) 학위를 받은 다음 날 출판기념회를 했다. 다음 해인 2019년 에 출간한 책. . 1만여 부가 팔렸다.&lt;/p&gt;

&lt;p&gt;&nbsp;&lt;/p&gt;

&lt;div style=&quot;float:left;padding-right:10px;&quot;&gt;&lt;img src=&quot;http://www.sunforum.org/files/attach/images/1903/119/015/0b9069811f58eccda0c1ffd7300fbbb8.jpg&quot; alt=&quot;제목-없음-3_06.jpg&quot; style=&quot;&quot; /&gt;&lt;/div&gt;

&lt;div&gt;그리고 세 번째 책. 자서전인 듯 자서전이 아닌 듯. . 기업 회장이 되기 까지의 인생 전반부. 피트니스 선수 같은 근육을 갖게 될 때까지의 인생 후반부 이야 기. 석 박사 공부한 내용. 그리고 행복론이 담겨있다. 순천향대학교에서 예방의학 박사학위를 받은 즈음이다. 그가 쓴 세 편의 논문은 노인의 고강도 운동에 관한 것. &lsquo;고강도 저항성 운동이 남성 고령자의 신체 구성 및 활동 체력에 미치는 영향&rsquo;(서울과기대석사논문). &lsquo;8주간 저항성 운동의 강도가 남성 고령자의 신체 구성, 체력 및 산화 스트레스에 미치는 영향&rsquo; (상명대 박사 논문). &lsquo;신체활동과 건강관련 삶의 질과의 연관성에 대한 메분석&rsquo;(순천향대박사논문). 수십 년 살고 있는 분당 단독주택에는 홈짐이 있다. 아령 수십 개. 30~70kg 짜리 다양한 역기. 러닝 머신, 버터플라이. 주말용이다. 주중에는 체육관에서 운동한다. 운동일지. 2014년 부터 매일 썼다. 가슴, 어깨, 등, 팔, 다리, 배. 몸을 6부분으로 나누어 2부분씩 하루 한 시간 운동한다. 3일 씩 두 바퀴 운동하고 하루를 쉰다. 필자를 만나러 온 날에도 6km를 뛰었다. 실제로 그 자신의 키도 컸다. 1.7cm. 골밀도도 높아지고, 근육량도 늘고, 체수분도 많아지고, 단백질과 무기질 양도 늘어나고, 심박수는 감소 했고, 최대 산소 섭취량은 증가했다. 외출할 때는 늘 도시락을 지참한다. 기사가 갖고 온 도시락에는 김, 현미밥, 삶은 계란이 들어 있었다. &ldquo;90세까지는(내건강에)아무 문제 없습니다.&rdquo; &lsquo;없을 겁니다&rsquo;가 아니다. 현재 상태에 따른 결론이란다. 내년 봄에 입학해서 심리학 4년, 비교 종교학 4년, 2개의 박사학위를 추가 할 예정이다. 지금 입학원서 준비 중이다. 얼마 전에는 한 차례 낙방했다.&lt;/div&gt;

&lt;p&gt;&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0000CD;&quot;&gt;&lt;strong&gt;동양철관 회장. 신호신호스틸 회장. 신호그룹 회장. 동신제지 회장. 신호제지 회장. 온양펄프 회장. 1984 철탑산업훈장. 1989 동탑 산업훈장. 1994 은탑산업훈장. 1996 핀란드 백장미 훈위 일등 공로훈장 기사장. &lt;/strong&gt;&lt;/span&gt;&lt;/p&gt;

&lt;p&gt;9남매의 6째. 한때는 찌들 정도로 가난했다. 수재들만 간다는 경북중학교 1학년은 마쳤지만 등록금을 못 내 교과서가 없었다. 교사에게 무지막지하게 얻어터지고 자퇴했다. 그때는 그랬다는 담담한 회상. 검정고시라는 플랜 B를 믿었 다. 3학년 수업 청강도 허락 받았다. 중 3 나이에 경북사대부고 1학년에 입학했다. 초등생 과외도 했고 은행에 취업한 누나의 도움도 받았다. 반에서 늘 1-2 등. 赤綠 색맹 (약~중) 이라 의대, 공대는 포기했고, 연좌제에 걸려있던 터라 법대도 포기했다. 두 형님이 보도연맹 사건이라는 정치 소용돌이에 휘말려 둘째 형이 억울하게 사망했다. 그 여파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가족은 연좌제에 묶이게 됐다.&lt;/p&gt;

&lt;p&gt;&nbsp;&lt;/p&gt;

&lt;p&gt;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제학과 60학번. 연좌제로 ROTC 훈련 중 쫓겨나 꼼짝없이 입대해야 하는 상황에서 공인회계사 시험 에 응시해 합격했다. 어느 시대나 이상하게 이상한 것을 우습게 보는 이상한 풍조가 있다. 당시 공인회계사 시험이 그랬다. 후에 총리를 지낸 이현재 당시 교수는 달랐다. 그의 조언대로 했 다. 육군 본부에서 공인회계사 장교 특채가 있었다. 대학 4학년인데 육군경리학교 1기 1번출신 교관이 됐다. 플랜 B를확실히 믿게 됐다. 한국제지. 첫 직장이다. 입주 과외 했던 학생의 누나와 24살에 결혼을 했기에 소위 좋다는 직장을 기다리지 않았다. 3년 만에 경리과장. 진양화학 경리부 차장으로 옮겼으나 부산 발령이 나서 퇴사. 공인회계사 사무실을 열었으나 덤핑으로 제소 돼 2년간 자격정지를 당했다. 너무 잘 돼서 누군가 투서를 했나 보다. 그 때도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중소기업인 삼성특수 제지에 자본금 (1억원)의 20%를 내고 전무로 입사해 3년 후에 부사장이 됐다. 공무원과 은행 직원과 접하는 업무를 많이 했다.&lt;/p&gt;

&lt;p&gt;&nbsp;&lt;/p&gt;

&lt;div style=&quot;float:left;padding-right:10px;&quot;&gt;&lt;img src=&quot;http://www.sunforum.org/files/attach/images/1903/119/015/06ae56ab478d1e637c9eb74fe0715ae4.jpg&quot; alt=&quot;제목-없음-4_03.jpg&quot; style=&quot;&quot; /&gt;&lt;/div&gt;

&lt;div&gt;만 35세에 사장이 됐다. 동방 펄프를 4,500만 원에 인수했던 터. 갖고 있던 모든 재산을 총동원했다. 은행에서 10억원 인수대금을 5년 거치 5년 분할 상환으로 특혜를 줬다. 원래 삼성특수제지가 인수하려다 중간에 사장이 마음을 바꿔 부사장 개인이 맡게 된 것. 온양펄프로 이름을 바꾼지 5년 3개월 만에 삼성특수 제지가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관리인은 대법관 출신 변호사 유재방. 그와 은행이 이순국 사장이라면 신용 대출을 해 주겠다고 꼬득였다. 그렇게 新湖제지가 탄생한다. 새로운 호수. 잔잔 한 호수이길 바랬겠지. 철강, 전자, 화학, 금융, 정보통신으로사업을 다각화 하면서 M&amp;A의 귀재라는 별칭도 받았다. 실제로는 단 한번도 실적 좋은 기업을 인수한 적은 없다. 모두 은행이 먼저 다가와서 인수하라 했다. 이순국 회장이라면 대출해 줄 수 있다면서. 믿음과 신뢰를 확실하게 쌓았던 결과다. 부도난 기업을 살리는 일은 의사도 포기한 환자를 다시 살리는 것과 같다. 1997년에는 계열사 35여개, 사원 3500 여명, 연간 매출 1조원, 재계순위 25위의 그룹을 거느렸다.
&lt;p&gt;&nbsp;&lt;/p&gt;
1976년부터 2005년 까지 30년을 일만 했다. 너무 바빠서 부귀 영화는 누리지 못했다. 회장님의 인감도장이 막도장이어서 화제가 됐었다. 돈 쓰는 것 보다 일하는 것이 더 중요했기에. 기업이 한창 잘 나가던 1994년 이순국 회장은 홍익복지기금을 마련했다. 때가 되면 주식 전액을 직원들에게 환원하고 전문 경영인으로 남겠다고 말했던 것을 실천한 것이다. 개인 보유 주식의 63%, 20억 상당을 현물출자 했다. 1990년대 중반에는 100억 원 대에 육박했으니 유한양행이나 기아자동차가 사원회사 지향하면서 운영하던 복지기금과 비슷한 규모다. 따뜻하고 소박하고 겸손한 성품과 베풀 줄 아는 분배의 정신을 (학문적으로 도) 배웠기에 가능했던 걸까? 우방건설을 창업한 바로 위 형 이순목 회장도 사업이 정점에 이르자 구미대학교를 설립해 서거 때까지 교육사업에 매진 했다.&lt;/div&gt;

&lt;p&gt;&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0000CD;&quot;&gt;&lt;strong&gt;행복하신가요?&lt;/strong&gt;&lt;/span&gt; 어떤 환경에서든지 덤덤하게 사는게 바로 행복이다. 인생 자체가 행복이고 태어난 것 자체가 행복이다. 행복 지수. 세계보건기구 WHO에서 신체적 건강, 심리적 영역, 사회적 영역, 환경 영역을 고려해 만들었다.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에 는 빈부 차이가 별로 없으나 낮은 나라에는 행복한 사람과 불행 한 사람의 차이가 크다. 경제적 수준은 높으나 행복 지수 낮고 (중국, 한국, 그리스, 튀르키예), 경제적 수준은 낮으나 행복 지수 높고(티베트, 멕시코, 코스타리카), 경제적 수준 높고 행복 지수도 높고(핀란드 등). 행복은 꼭 돈과 비례하는 것이 아닌 것 같다.&lt;/p&gt;

&lt;p&gt;&nbsp;&lt;/p&gt;

&lt;p&gt;미국에서 85년 동안 행복을 연구한 한 학자는 인간관계를 첫번째 요인으로 꼽는다. 50대에 인간관계가 좋았던 사람은 80대에 건강이 좋다. 사람들과 따뜻하게 의지할 수 있는 관계를 갖는 사람들은 건강도 좋다. 건강은 심리적 요인도 큰 원인이기 때문이다. 건강한 사람은 심리적으로 안정돼 있다고 본다. 자연인이나 노숙자도 자녀가, 부모가, 친척이 그립다고 울먹거린다. 따라서 의미 있는 인생이란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고 이를 가치 있게 구현하기 위해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 일께다. 어디서 태어나 어떤 환경 속에서 살아가든 때가 되면 나만의 꽃 한 송이를 피워내는 것, 그것이 나의 정체성이다.&lt;/p&gt;

&lt;p&gt;&nbsp;&lt;/p&gt;

&lt;p&gt;&lt;strong&gt;&lt;span style=&quot;color:#0000CD;&quot;&gt;플랜 B, 뗏목&lt;/span&gt;&lt;/strong&gt;, 우수한 인재로 태어났으나 환경이 허락하지 않았을 때는 플랜 B로 우회했다. 플랜 A가 막혔더라도 절망하지 마라. 플랜 B 는 반드시 있다. 강을 건넜으면 타고 온 뗏목은 버려야 한다. 다음 뗏목을 기다리려면, 선택하려면, 타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157cm, 54kg의 이 작은 근육질, &lsquo;철학자&rsquo; 노인은 분명 뗏목 갈아타기에 성공했다. 인생의 성공이란 누군가 그를 기억 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된다. 安分知足의 자세로 젊어서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고 건강한 신체로 방향을 잘 잡아 호수 위를 헤쳐 나가는 한척의 배. 그렇게 살았다.&lt;/p&gt;

&lt;p&gt;&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right;&quot;&gt;&lt;strong&gt;글&lt;/strong&gt;&lt;br /&gt;
김춘옥&lt;br /&gt;
단국대학교 명예교수&lt;/p&gt;

&lt;p&gt;&nbsp;&lt;/p&gt;

&lt;p&gt;&nbsp;&lt;/p&gt;

&lt;p&gt;&nbsp;&lt;/p&gt;&lt;/div&gt;]]></description>
						<pubDate>Tue, 08 Aug 2023 12:09:33 +0900</pubDate>
								</item>
				<item>
			<title><![CDATA[‘성공의 열쇠는 좋은 머리가 아니고 성실성입니다.’]]></title>
			<dc:creator><![CDATA[선농문화포럼.]]></dc:creator>
			<link>https://www.sunforum.org/index.php?mid=interview&amp;document_srl=14590</link>
			<guid isPermaLink="true">https://www.sunforum.org/index.php?mid=interview&amp;document_srl=14590</guid>
						<comments>https://www.sunforum.org/index.php?mid=interview&amp;document_srl=14590#comment</comments>
									<description><![CDATA[&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gt;&lt;img src=&quot;http://www.sunforum.org/files/attach/images/1903/590/014/d90ba2cb47ab6e1ec81a74562c9713d7.jpg&quot; alt=&quot;제목-없음-4.jpg&quot; style=&quot;&quot; /&gt;&lt;/p&gt;

&lt;p&gt;&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quot;&gt;&lt;span style=&quot;color:#FF000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8px;&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039;나눔명조&#039;, nanummyeongjo, &#039;san-serif&#039;;&quot;&gt;&lsquo;성공의 열쇠는 좋은 머리가 아니고 성실성입니다&#39;&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center;&quot;&gt;&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righ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22px;&quot;&gt;&lt;span style=&quot;color:#006400;&quot;&gt;&lt;strong&gt;&nbsp;&lt;/strong&gt;&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18px;&quot;&gt;&lt;span style=&quot;color:#006400;&quot;&gt;전 산업자원부 장관&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22px;&quot;&gt;&lt;span style=&quot;color:#006400;&quot;&gt;&lt;strong&gt; 이희범&lt;/strong&gt;&lt;/span&gt;&lt;/span&gt;&lt;/p&gt;

&lt;p&gt;&nbsp;&lt;/p&gt;

&lt;p&gt;1964년. 중학교 3년 동안 한 번도 못 본 얼굴을 복도에서 만났다. 똘 똘하고 선해보였다. 본관 출입구 바로 옆 교무실 근처. 먼저 말을 걸 었다. 안동에서 왔다고 했다. 그런데 하복이 꼬깃꼬깃했다. 호기심 을 못 참고 또 물어봤다. 하숙 하냐고. 혼자 산다고 했다. 그럼 밥 하 고 빨래도 혼자 하냐니 그렇단다. 이미 기자가 되기로 했던 터라 그랬나? 만 15살 여고생이 처음 보는 동기 남학생에게 이래저래 거침 없이 물었다. 빨래를 해서 손으로 꽉짜서 널었단다. 힘을 주어 꽉짠 흔적이 교복에 뚜렷하게 남아있는 건 모르는 것 같았다. 또래 남학 생이 혼자서 살다니? 60년이 지나도 선명하게 남아있던 기억.&lt;/p&gt;

&lt;p&gt;&nbsp;&lt;/p&gt;

&lt;p&gt;성북 경찰서에서 경찰관으로 근무하던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3살 난 이희범은 어머니와 누나와 함께 안동으로 내려간다. 안동중학 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대구로 갈까 서울로 갈까 망설였다. &lt;학 원&gt;은 당시 중고생의 필독(?) 잡지. 문창만 서울사대부중 동갑 내기 가 표지 모델로 등장했다. 묘한 경쟁심이 생겼다. 나중에는 친구가 됐지만. 게다가 서울 사대부고 학생이 되면 서울대학교에서는 그냥 받아주는 줄 알았다. 고등학교는 그렇게 선택했다. 을지로 5가에 있 는 사대부고와 비교적 가까운 답십리에 방을 얻었다.&lt;/p&gt;

&lt;p&gt;&nbsp;&lt;/p&gt;

&lt;p&gt;때는 청계천이 복개 되기 전. 천변 좌우가 헷갈려 답십리 반대쪽 효창공원에서 내린 적도 있었다. 국어시간에 교과서를 읽으니 반 아 이들이 깔깔 거리고 웃으며 원숭이 보듯 했다. 안동 사투리도 심했나? 쉬는 시간에는 함께 놀 친구가 없어 교정 뒷 쪽 미군부대가 면 해 있는 철조망에서 어슬렁거렸다. 이 난국을 어떻게 해결하나? 사춘기 방황, 그런 건 사치였다. 추석에는 혼자 남산에 올라가 서울 시 내를 내려다보며 한탄도 하고 다짐도 했다. 결론이 나왔다. 1등, 1등 을 해야겠다. 만 15세 소년 이희범의 전의가 불타올랐다. 1학년 2학 기말. 교무실 앞벽에 이름이 붙었다. 전체 10등까지 이름을 붙였던 가? 그때 누군가가 왕따 당하지 말고 기독학생회 동아리에 나오라 고 해서 나갔다. 봉사활동도 하고 노래도 부르니 좀 나았다. 그리고 드디어 2학년 1학기말, 이과전체 1등. 1등 인생이 시작된다.&lt;/p&gt;

&lt;p&gt;&nbsp;&lt;/p&gt;

&lt;p&gt;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착착 실현 되면서 1969년에는 &lt;전자산업 진흥법&gt;이 통과됐다. 서울공대 전자공학과는 전통적으로 최고 인 기였던 화학공학과를 제치고 커트라인이 가장 높은 과가 됐다. 이 희범도 전자공학과 학생이 된다. 같은 과 수재 선배의 출세가 독이 되는 것도 지켜보았다. 소년시절의 고생은 득이 되지만 소년의 출세는 독이 될 수 도 있음을 이희범 소년은 확실히 느꼈다고 했다. 졸 업 후 행정고시를 목표로 행정대학원에 들어갔다. 이과 학생에게 법조문과 행정관련 개념은 쉽지 않았다. 한차례 실패 후 1972년 제 12회 행정고시를 수석으로 합격했다. 이과 생의 행정고시 수석합 격. 전무후무한 일이었다.&lt;/p&gt;

&lt;p&gt;&nbsp;&lt;/p&gt;

&lt;p&gt;30년 공무원 생활을 차관으로 마치고 서울산업대학교 총장으로 일 할 때 장관직을 제의 받는다. 장관직을 수행한 후에는 한국생산성 본부 회장, 한국 무역협회장을 맡았다. 여러 기업체에서도 그에게 SOS를 보냈다. 경영자총협회 회장. LG상사 부회장. STX건설 회장. 그 사이 대통령자문 정책 기획위원, 한미경제협의회장을 지냈다 2018년에는 평창 동계 올림픽 조직위원장을 맡았다. 이어서 올림 픽 관련 임무를 여러 차례 맡았고. 2020년에는 서울대학교 총동창 회장직도 2년간 수행했다. 그의 이력은 열거만 하기에도 지면이 모 자랄 지경이다. 수상 내역도 다양하다. 황조근정훈장(대한민국 정 부). 청조근정훈장(대한민국 정부). 올림픽 금장(IOC). 패럴림픽 금 장(IPC). 관악대상(서울대총동창회).&lt;/p&gt;

&lt;p&gt;&nbsp;&lt;/p&gt;

&lt;p&gt;공무원시절, 38살에 경영학 석사를 따겠다고 조지워싱턴대학에 입 학했다. 입학 제한 연령이 40세였다. 2년 동안 매일 청소부가 퇴근 할 때 까지 도서관에서 공부했다. 도시락 2개를 싸서 식당 한구석에 서 먹으면서. 결과는 전과목 A. 수마콤라드 (전체1등). 이번에는 미 국에서 1등을 했다. 그래서 2021년 조지워싱턴대학 200주년 기념 식에서 자랑스런 동문상을 받았다. LG상사와 STX그룹이 이희범 전 장관에게 경영에 참여해 달라고 했을 때 언론에는 이런 기사가 떴 다. &lsquo;또 이희범? 이희범 밖에 없나?&rsquo; 기사 내용을 소개한다. &lsquo;한마디 로 돌쇠 스타일... 어느 누구보다 성실한데다 세세한 부분과 큰 그림 을 함께 챙기는 기획력 및 반드시 이뤄내는 강한 업무 추진력, 그리 고뚝배기스타일의친화력은쉽게흉내내기어려울정도... 또 각종 수치를 자세히 알고 있을 정도로 디테일에 강해 업무 장악력이 뛰 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rsquo;(한국경제 2013년 11월 29일자) 그가 장관에 임명됐을 때의 평을 보자. &lsquo;2000년 자원정책실장 시절 에 전력노조 파업이 발생하자 특유의 뚝심으로 밤샘협상을 진행하 고 여야 의원들을 일일이 찾아가 설득, 전력산업 구조개편을 성공 적으로 이끌어 내기도 했다. 성격은 소탈한 편이나 업무 면에서는 치밀하면서도 배짱이 두둑하고 추진력과 리더십이 뛰어나 따르는 후배들이 많다.&rsquo;(연합뉴스 2003. 12. 15)&lt;/p&gt;

&lt;p&gt;&nbsp;&lt;/p&gt;

&lt;p&gt;그는 산업자원부장관, 평창 올림픽 조직위원장, 서울대총동창회장 은 자신이 구원투수로 나섰던 직책이라고 했다. 20년 동안 골치를 앓았던 원전 폐기물 부지 선정 문제는 주민투표를 통해 4개 지역이 서로 유치하겠다는 경쟁을 벌여 경주에 설치키로 마무리했다. 평창 올림픽에 대해서는 되지도 않을 올림픽 조직위원장을 말년에 하면 서 인생 망치려느냐는 주변의 만류에도 발령이 났다. 대통령은 탄 핵되고 3천억원의 적자가 예상됐던 올림픽을 치른 후 이희범 조직 위원장은 역대 가장 훌륭한 위원장이라는 찬사를 IOC 위원장으로 부터 들었다.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제일먼저 3천만원 의 기부금을 내서 도움을 준 사람은 다름 아닌 전 포스코 권오준 회 장, 고교 1년 후배가 보기에도 안스러웠나 보다. 선녀회도 후원을 마 다하지 않았고. 전대미문의 서울대총동창회 사태 이후 반기문 및 김종섭 현 회장의 적극 추천으로 회장이 됐다. 관악 경제인회를 만 들고 장학회관 보수공사를 통해 임대료가 53억원에 이르렀고 2억 원이었던 회비가 12억원이걷혔다. 최근에는 상공부에서 함께 일했 던 장욱현 시장의 요청으로 경상북도 영주 풍기 세계 인삼 엑스포 조직위원장을 맡아 목표 대비 6.3배인 3150만불의 수출계약과 추 가로 1878만불의 수출상담을 맺는데 기여했다. 계약이 체결 될 때 마다이장관은 자리에 함께해서 축사를 해줬다고.&lt;/p&gt;

&lt;p&gt;&nbsp;&lt;/p&gt;

&lt;p&gt;요즘 이희범씨는 경상북도 출자기관인 경북문화재단 대표를 맡아 &lsquo;대들보 빼고 다 바꿔야 안동이다... 지금이 적기이다&rsquo; 고 주장하고 있다. 안동시의 정신문화 재단 이사장도 맡고 있다. 인문 분야의 다 보스 포럼을 지향하고 있다고 했다. 일주일에 2일은 안동에 가있다. 그에 따르면 안동은 정신문화의 수도로서 일제 때는 독립운동의 메카 역할을 했으나 최근에는 인구소멸 대상지역에 포함됐다. 그 만큼 생산시설이 없고 일자리가 없으니 젊은이들이 고향을 떠나고 있다. 따라서 &lsquo;양반이 밥 먹여 주느냐&rsquo;는 말 처럼 이제는 양반들도 일터로 나가야 하고 공장을 유치해야 소멸지역에서 벗어날 수 있 다는 것이다.&lt;/p&gt;

&lt;p&gt;&nbsp;&lt;/p&gt;

&lt;p&gt;&lt;img src=&quot;http://www.sunforum.org/files/attach/images/1903/590/014/c7f0b08276d75ecb0704fd4201463e8a.jpg&quot; alt=&quot;afafaf.jpg&quot; style=&quot;&quot; /&gt;&lt;br /&gt;
세계풍기인삼엑스포 기념품 증정&lt;/p&gt;

&lt;p&gt;&nbsp;&lt;/p&gt;

&lt;p&gt;&nbsp;&lt;/p&gt;&lt;/div&gt;]]></description>
						<pubDate>Fri, 13 Jan 2023 18:06:55 +0900</pubDate>
								</item>
				<item>
			<title><![CDATA[혈기도를 아시나요]]></title>
			<dc:creator><![CDATA[선농문화포럼.]]></dc:creator>
			<link>https://www.sunforum.org/index.php?mid=interview&amp;document_srl=14356</link>
			<guid isPermaLink="true">https://www.sunforum.org/index.php?mid=interview&amp;document_srl=14356</guid>
						<comments>https://www.sunforum.org/index.php?mid=interview&amp;document_srl=14356#comment</comments>
									<description><![CDATA[&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 class=&quot;people_202209&quot;&gt;&lt;img src=&quot;http://www.sunforum.org/files/attach/images/1903/356/014/3810781901c60cd1a7981c2c8bec4860.png&quot; alt=&quot;kimchunok.png&quot; style=&quot;&quot; /&gt;&lt;/p&gt;

&lt;p class=&quot;people_202209_1&quot;&gt;&lt;strong&gt;혈기도를 아시나요&lt;/strong&gt;&nbsp;&lt;/p&gt;

&lt;p class=&quot;people_202209_1&quot;&gt;정택주 혈기도 세계연맹 이사장&lt;/p&gt;

&lt;div class=&quot;hwp_editor_board_content&quot; data-hjsonver=&quot;1.0&quot; data-jsonlen=&quot;5400&quot; id=&quot;hwpEditorBoardContent&quot;&gt;&lt;!--[data-hwpjson]{
&quot;documentPr&quot;: {
&quot;di&quot;: &quot;&quot;,
&quot;dp&quot;: {
&quot;dn&quot;: &quot;test.hwp&quot;,
&quot;ta&quot;: 1,
&quot;d1&quot;: 5,
&quot;d2&quot;: 1,
&quot;dv&quot;: 0,
&quot;dr&quot;: 1,
&quot;do&quot;: 1,
&quot;vj&quot;: &quot;1.1&quot;,
&quot;an&quot;: &quot;Hancom Office Hangul&quot;,
&quot;av&quot;: &quot;11, 0, 0, 2129&quot;,
&quot;ao&quot;: &quot;WIN&quot;,
&quot;ab&quot;: &quot;32&quot;,
&quot;ar&quot;: &quot;LE&quot;,
&quot;as&quot;: &quot;Windows_8&quot;
},
&quot;dis&quot;: false,
&quot;ds&quot;: {
&quot;ti&quot;: &quot;&quot;,
&quot;la&quot;: &quot;ko&quot;,
&quot;cr&quot;: &quot;&quot;,
&quot;su&quot;: &quot;&quot;,
&quot;de&quot;: &quot;&quot;,
&quot;cd&quot;: &quot;2024-07-29T15:46:47.248Z&quot;,
&quot;md&quot;: &quot;1601-01-01T09:00:00.000Z&quot;,
&quot;pd&quot;: &quot;1601-01-01T09:00:00.000Z&quot;,
&quot;ke&quot;: &quot;&quot;
}
},
&quot;dh&quot;: {
&quot;do&quot;: {
&quot;pa&quot;: 1,
&quot;fo&quot;: 1,
&quot;en&quot;: 1,
&quot;pi&quot;: 1,
&quot;tb&quot;: 1,
&quot;eq&quot;: 1
},
&quot;fo&quot;: [ ],
&quot;cd&quot;: {
&quot;tp&quot;: 0,
&quot;lc&quot;: {
&quot;af&quot;: false,
&quot;ui&quot;: false,
&quot;fu&quot;: false,
&quot;dn&quot;: false,
&quot;ul&quot;: false,
&quot;el&quot;: false,
&quot;at&quot;: false,
&quot;tq&quot;: false,
&quot;da&quot;: false,
&quot;dw&quot;: false,
&quot;dj&quot;: false,
&quot;bc&quot;: false,
&quot;bu&quot;: false,
&quot;al&quot;: false,
&quot;ab&quot;: false,
&quot;ap&quot;: false,
&quot;an&quot;: false,
&quot;aa&quot;: false,
&quot;ds&quot;: false,
&quot;de&quot;: false,
&quot;as&quot;: false,
&quot;cp&quot;: false,
&quot;ao&quot;: false,
&quot;et&quot;: false,
&quot;ay&quot;: false,
&quot;am&quot;: false,
&quot;a1&quot;: false,
&quot;bt&quot;: false,
&quot;av&quot;: false,
&quot;dh&quot;: false,
&quot;dp&quot;: false,
&quot;d1&quot;: false,
&quot;mf&quot;: false,
&quot;bl&quot;: false,
&quot;ag&quot;: false,
&quot;dg&quot;: false,
&quot;ae&quot;: false,
&quot;df&quot;: false,
&quot;do&quot;: false,
&quot;dl&quot;: false,
&quot;di&quot;: false,
&quot;d2&quot;: false,
&quot;d3&quot;: false,
&quot;ob&quot;: false,
&quot;d4&quot;: false,
&quot;ev&quot;: false,
&quot;d5&quot;: false,
&quot;d6&quot;: false,
&quot;a2&quot;: false,
&quot;dc&quot;: false
}
},
&quot;ld&quot;: {
&quot;pa&quot;: &quot;&quot;,
&quot;pi&quot;: true,
&quot;fo&quot;: false
}
},
&quot;bf&quot;: {
&quot;01DAE183156C85D000000032&quot;: {
&quot;id&quot;: 1,
&quot;td&quot;: false,
&quot;sh&quot;: false,
&quot;st&quot;: 0,
&quot;sc&quot;: 0,
&quot;si&quot;: false,
&quot;bt&quot;: 0,
&quot;bi&quot;: false,
&quot;cl&quot;: 0,
&quot;bc&quot;: false,
&quot;lt&quot;: 0,
&quot;lw&quot;: 0,
&quot;lc&quot;: 0,
&quot;rt&quot;: 0,
&quot;rw&quot;: 0,
&quot;rc&quot;: 0,
&quot;tt&quot;: 0,
&quot;tw&quot;: 0,
&quot;tc&quot;: 0,
&quot;bbt&quot;: 0,
&quot;bbw&quot;: 0,
&quot;bbc&quot;: 0,
&quot;dt&quot;: 1,
&quot;dw&quot;: 0,
&quot;dc&quot;: 0,
&quot;fi&quot;: { }
},
&quot;01DAE183156C85D000000033&quot;: {
&quot;id&quot;: 2,
&quot;td&quot;: false,
&quot;sh&quot;: false,
&quot;st&quot;: 0,
&quot;sc&quot;: 0,
&quot;si&quot;: false,
&quot;bt&quot;: 0,
&quot;bi&quot;: false,
&quot;cl&quot;: 0,
&quot;bc&quot;: false,
&quot;lt&quot;: 0,
&quot;lw&quot;: 0,
&quot;lc&quot;: 0,
&quot;rt&quot;: 0,
&quot;rw&quot;: 0,
&quot;rc&quot;: 0,
&quot;tt&quot;: 0,
&quot;tw&quot;: 0,
&quot;tc&quot;: 0,
&quot;bbt&quot;: 0,
&quot;bbw&quot;: 0,
&quot;bbc&quot;: 0,
&quot;dt&quot;: 1,
&quot;dw&quot;: 0,
&quot;dc&quot;: 0,
&quot;fi&quot;: {
&quot;wb&quot;: {
&quot;fc&quot;: 4294967295,
&quot;hc&quot;: 10066329,
&quot;al&quot;: 0,
&quot;hs&quot;: -1
}
}
}
},
&quot;cp&quot;: {
&quot;01DAE183156C85D000000034&quot;: {
&quot;id&quot;: 0,
&quot;he&quot;: 1000,
&quot;tc&quot;: 0,
&quot;sc&quot;: 4294967295,
&quot;uf&quot;: false,
&quot;uk&quot;: false,
&quot;sm&quot;: 0,
&quot;bf&quot;: &quot;01DAE183156C85D000000033&quot;,
&quot;f1&quot;: &quot;함초롬바탕&quot;,
&quot;t1&quot;: 1,
&quot;f2&quot;: &quot;함초롬바탕&quot;,
&quot;t2&quot;: 1,
&quot;f3&quot;: &quot;함초롬바탕&quot;,
&quot;t3&quot;: 1,
&quot;f4&quot;: &quot;함초롬바탕&quot;,
&quot;t4&quot;: 1,
&quot;f5&quot;: &quot;함초롬바탕&quot;,
&quot;t5&quot;: 1,
&quot;f6&quot;: &quot;함초롬바탕&quot;,
&quot;t6&quot;: 1,
&quot;f7&quot;: &quot;함초롬바탕&quot;,
&quot;t7&quot;: 1,
&quot;r1&quot;: 100,
&quot;r2&quot;: 100,
&quot;r3&quot;: 100,
&quot;r4&quot;: 100,
&quot;r5&quot;: 100,
&quot;r6&quot;: 100,
&quot;r7&quot;: 100,
&quot;s1&quot;: 0,
&quot;s2&quot;: 0,
&quot;s3&quot;: 0,
&quot;s4&quot;: 0,
&quot;s5&quot;: 0,
&quot;s6&quot;: 0,
&quot;s7&quot;: 0,
&quot;e1&quot;: 100,
&quot;e2&quot;: 100,
&quot;e3&quot;: 100,
&quot;e4&quot;: 100,
&quot;e5&quot;: 100,
&quot;e6&quot;: 100,
&quot;e7&quot;: 100,
&quot;o1&quot;: 0,
&quot;o2&quot;: 0,
&quot;o3&quot;: 0,
&quot;o4&quot;: 0,
&quot;o5&quot;: 0,
&quot;o6&quot;: 0,
&quot;o7&quot;: 0,
&quot;it&quot;: false,
&quot;bo&quot;: false,
&quot;ut&quot;: 0,
&quot;us&quot;: 1,
&quot;uc&quot;: 0,
&quot;st&quot;: false,
&quot;ss&quot;: 1,
&quot;so&quot;: 0,
&quot;ot&quot;: 0,
&quot;ht&quot;: 0,
&quot;hc&quot;: 0,
&quot;hx&quot;: 0,
&quot;hy&quot;: 0,
&quot;em&quot;: false,
&quot;en&quot;: false,
&quot;su&quot;: false,
&quot;sb&quot;: false
}
},
&quot;tp&quot;: {
&quot;01DAE183156C85D000000035&quot;: {
&quot;id&quot;: 0,
&quot;al&quot;: false,
&quot;ar&quot;: false,
&quot;tp&quot;: [ ]
}
},
&quot;nu&quot;: { },
&quot;bu&quot;: { },
&quot;pp&quot;: {
&quot;01DAE183156C85D000000036&quot;: {
&quot;id&quot;: 0,
&quot;ah&quot;: 0,
&quot;av&quot;: 0,
&quot;ht&quot;: 0,
&quot;hi&quot;: &quot;&quot;,
&quot;hl&quot;: 0,
&quot;tp&quot;: &quot;01DAE183156C85D000000035&quot;,
&quot;kb&quot;: 0,
&quot;kn&quot;: true,
&quot;ko&quot;: false,
&quot;kk&quot;: false,
&quot;kl&quot;: false,
&quot;kp&quot;: false,
&quot;kw&quot;: 0,
&quot;co&quot;: 0,
&quot;fl&quot;: false,
&quot;st&quot;: true,
&quot;sl&quot;: false,
&quot;ae&quot;: false,
&quot;aa&quot;: false,
&quot;mi&quot;: 0,
&quot;ml&quot;: 0,
&quot;mr&quot;: 0,
&quot;mp&quot;: 0,
&quot;mn&quot;: 0,
&quot;lt&quot;: 0,
&quot;lv&quot;: 160,
&quot;bf&quot;: &quot;01DAE183156C85D000000033&quot;,
&quot;bl&quot;: 0,
&quot;br&quot;: 0,
&quot;bt&quot;: 0,
&quot;bb&quot;: 0,
&quot;bc&quot;: false,
&quot;bi&quot;: false
}
},
&quot;st&quot;: {
&quot;01DAE183156C85D000000037&quot;: {
&quot;id&quot;: 0,
&quot;ty&quot;: 0,
&quot;na&quot;: &quot;바탕글&quot;,
&quot;en&quot;: &quot;Normal&quot;,
&quot;pp&quot;: &quot;01DAE183156C85D000000036&quot;,
&quot;cp&quot;: &quot;01DAE183156C85D000000034&quot;,
&quot;ns&quot;: &quot;01DAE183156C85D000000037&quot;,
&quot;li&quot;: 1042,
&quot;lf&quot;: false
}
},
&quot;mp&quot;: { },
&quot;ro&quot;: {
&quot;hp&quot;: &quot;01DAE183156C5EC000000031&quot;,
&quot;01DAE183156C5EC000000031&quot;: {
&quot;np&quot;: &quot;&quot;,
&quot;id&quot;: 0,
&quot;pp&quot;: &quot;01DAE183156C85D000000036&quot;,
&quot;si&quot;: &quot;01DAE183156C85D000000037&quot;,
&quot;bf&quot;: 3,
&quot;ru&quot;: [
{
&quot;cp&quot;: &quot;01DAE183156C85D000000034&quot;,
&quot;ch&quot;: [
{
&quot;cc&quot;: 2,
&quot;ci&quot;: 1936024420,
&quot;co&quot;: &quot;01DAE183156C5EC00000002F&quot;
}
,
{
&quot;cc&quot;: 2,
&quot;ci&quot;: 1668246628,
&quot;co&quot;: &quot;01DAE183156C5EC000000030&quot;
}
,
{
&quot;t&quot;: &quot;|&quot;
}
]
}
]
}
},
&quot;sl&quot;: { },
&quot;cs&quot;: {
&quot;01DAE183156C5EC00000002F&quot;: {
&quot;cc&quot;: 2,
&quot;ci&quot;: 1936024420,
&quot;td&quot;: 0,
&quot;tv&quot;: false,
&quot;sc&quot;: 1134,
&quot;ts&quot;: 8000,
&quot;ms&quot;: &quot;&quot;,
&quot;os&quot;: &quot;&quot;,
&quot;gl&quot;: 0,
&quot;gc&quot;: 0,
&quot;gw&quot;: false,
&quot;ns&quot;: 0,
&quot;np&quot;: 0,
&quot;ni&quot;: 0,
&quot;nt&quot;: 0,
&quot;ne&quot;: 0,
&quot;hh&quot;: false,
&quot;hf&quot;: false,
&quot;hm&quot;: false,
&quot;fb&quot;: false,
&quot;hb&quot;: false,
&quot;fi&quot;: false,
&quot;hi&quot;: false,
&quot;hp&quot;: false,
&quot;he&quot;: false,
&quot;sl&quot;: false,
&quot;lr&quot;: 0,
&quot;lc&quot;: 0,
&quot;ld&quot;: 0,
&quot;ls&quot;: 0,
&quot;pp&quot;: {
&quot;ls&quot;: false,
&quot;wi&quot;: 59528,
&quot;he&quot;: 84188,
&quot;gt&quot;: 0,
&quot;ml&quot;: 8504,
&quot;mr&quot;: 8504,
&quot;mt&quot;: 5668,
&quot;mb&quot;: 4252,
&quot;mh&quot;: 4252,
&quot;mf&quot;: 4252,
&quot;mg&quot;: 0
},
&quot;fn&quot;: {
&quot;at&quot;: 0,
&quot;au&quot;: &quot;&quot;,
&quot;ap&quot;: &quot;&quot;,
&quot;ac&quot;: &quot;)&quot;,
&quot;as&quot;: false,
&quot;ll&quot;: -1,
&quot;lt&quot;: 1,
&quot;lw&quot;: 1,
&quot;lc&quot;: 0,
&quot;sa&quot;: 850,
&quot;sb&quot;: 567,
&quot;st&quot;: 283
,
&quot;nt&quot;: 0,
&quot;nn&quot;: 1,
&quot;pp&quot;: 0,
&quot;pb&quot;: false
},
&quot;en&quot;: {
&quot;at&quot;: 0,
&quot;au&quot;: &quot;&quot;,
&quot;ap&quot;: &quot;&quot;,
&quot;ac&quot;: &quot;)&quot;,
&quot;as&quot;: false,
&quot;ll&quot;: -4,
&quot;lt&quot;: 1,
&quot;lw&quot;: 1,
&quot;lc&quot;: 0,
&quot;sa&quot;: 850,
&quot;sb&quot;: 567,
&quot;st&quot;: 0
,
&quot;nt&quot;: 0,
&quot;nn&quot;: 1,
&quot;pp&quot;: 0,
&quot;pb&quot;: false
},
&quot;pb&quot;: [
{
&quot;ty&quot;: 0,
&quot;bf&quot;: &quot;01DAE183156C85D000000032&quot;,
&quot;tb&quot;: true,
&quot;hi&quot;: false,
&quot;fi&quot;: false,
&quot;fa&quot;: 0,
&quot;ol&quot;: 1417,
&quot;or&quot;: 1417,
&quot;ot&quot;: 1417,
&quot;ob&quot;: 1417
},
{
&quot;ty&quot;: 1,
&quot;bf&quot;: &quot;01DAE183156C85D000000032&quot;,
&quot;tb&quot;: true,
&quot;hi&quot;: false,
&quot;fi&quot;: false,
&quot;fa&quot;: 0,
&quot;ol&quot;: 1417,
&quot;or&quot;: 1417,
&quot;ot&quot;: 1417,
&quot;ob&quot;: 1417
},
{
&quot;ty&quot;: 2,
&quot;bf&quot;: &quot;01DAE183156C85D000000032&quot;,
&quot;tb&quot;: true,
&quot;hi&quot;: false,
&quot;fi&quot;: false,
&quot;fa&quot;: 0,
&quot;ol&quot;: 1417,
&quot;or&quot;: 1417,
&quot;ot&quot;: 1417,
&quot;ob&quot;: 1417
}
],
&quot;mp&quot;: [ ]
}
,
&quot;01DAE183156C5EC000000030&quot;: {
&quot;cc&quot;: 2,
&quot;ci&quot;: 1668246628,
&quot;ty&quot;: 0,
&quot;la&quot;: 0,
&quot;co&quot;: 1,
&quot;ss&quot;: true,
&quot;sg&quot;: 0,
&quot;lt&quot;: 0,
&quot;lw&quot;: 0,
&quot;lc&quot;: 0,
&quot;cs&quot;: [ ]
}
},
&quot;bi&quot;: [ ],
&quot;bidt&quot;: { }
}--&gt;&lt;/div&gt;

&lt;p class=&quot;people_202209_3&quot;&gt;화제의 인물이다. 명함에 적힌 대로 혈기도 세계연맹 이사장이라서? 세계연맹은 아직은 초기 단계일 뿐이다. 토종 운동 혈기도는 이제 막 유럽과 북미를 대상으로 보급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사범이라서? 그렇다. 그래도 각종 도장에서 일하고 있는 그 많은 사범들이 모두 화제의 인물은 아닌데. 그럼 보통 사범들과는 다르다는 얘기다. 뭐가 다를까?&lt;/p&gt;

&lt;p class=&quot;people_202209_4&quot;&gt;1947년 생. 서울재동초등학교, 서울 사대부중, 고, 외국어 대학교 러시아어과. 1975년에 외환은행에 공채로 입사했 으나 4년 후 퇴사했다. 은행의 창구 업무는 갑갑하고 고통 스럽기만 했기에. 중소 무역업체 공성산업으로 이직했다. 그러다 알게 된 미국인 바이어와 손잡고 1982년에 공성통 신 전자를 창업했다. 1989년에는 회사를 상장 했고 1998년 매각할 때까지 5천 만 불 수출 대통령상, 1천 만 불 수출 탑 상, 동탑 산업 훈장을 받았다. 이외에도 5개 기업의 상장을 주도했으니 먹고 살 것은 넉넉히 챙겼으리라 짐작이 간다. 성공한 기업인. 그런데 20여년 후 그는 인당忍堂이라는 도인으로 자신을 소개한다. 어울릴 것 같지 않아 흰 수염은 안 길렀지만 분명 도인이라고 했다. &lsquo;자신의 길을 가는 사 람&rsquo; 이라는 뜻이란다. 화제의 인물임이 틀림없다.&lt;br /&gt;
&lt;br /&gt;
비원(창덕궁) 정문에서 종로 쪽으로 가다보면 왼쪽 큰 길 가에 도장道場 간판이 몇 개 달려있는 건물이 있다. 혈기도 간판 따라 지층으로 내려가니 넓은 도장이 보인다. 흰 도복 차림의 도반道伴 40명이 정 사범이 곡을 하듯 &lsquo;천天!&rsquo; 이라 외치면 숨을 들여 마시고 &lsquo;지地!&rsquo;라고 외치니 숨을 내쉰다. 단순하고반복적인구령에따라행공行功 중이었다. 월요일 부터 목요일까지 오전 10시 반부터 2시간 동안이 정 사범 이 지도하는 수업시간이다. 2,30대 청년, 5,60대 여성, 날렵 하게 생긴 20대 여성 등 40명. 낯익은 한 노인 분을 자세히 보니 왕년의 KBS 음악 연출가 이상만 씨였다. 80대 인데 몸 은 꼿꼿하고 눈빛은 강렬하고 기억력은 그대로였다. 정사 범의 입에서는 다른 유명인사의 이름이 줄줄이 나왔다. 도 반道伴 들은 앉았다, 누웠다, 섰다, 다리를 펴거나 엎드리거 나, 손을 흔들고 다리를 벌리거나 모은채. 그사이로 앞뒤로 머리를 흔들어 대거나, 다리를 벌린 자세에서 좌우로 몸을 흔들기도하고, 양팔로 다리를 잡고, 양팔을 땅에 짚고, 양팔 을 뒤로하고 손깍지를 하기도 한다. 제대로 운동을 하는구 나, 하지만 힘들것 같았다. 모두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lt;br /&gt;
&lt;br /&gt;
우리 몸의 세포와 세포 사이의 공간인 혈穴을 통해 우주의 기氣 즉 에너지가 들어오고 나가므로 단전호흡은 혈기도의 기본이다. 또 우리 몸의 중심인 척추를 바로 세우는 것이 이 운동의 핵심이다. 수천 년 동안 산속에서 신선을 표방하며 수련하던 사람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온 운동이란 다. 수행자들은 몸을 어린애 상태로 되돌려서 새 세상을 얻 고자 했다. 설악산에서 天宇 도인의 내 제자가 되어 신선도 道를 배운 우혈宇穴이 1984년 서울에 혈기도장을 열어 산속 의 신선도를 인간의 생활도로 바꿨다. 우혈宇穴의 속세명은 허장수(1936-2017) 부산 동래 부호 가문의 막내로 태어나 평생 수련에 정진했다. 정 사범의 수련에 마침표를 찍게한 세 명의 스승 중 한명이다.&lt;/p&gt;

&lt;p class=&quot;people_202209_4&quot;&gt;&nbsp;&lt;/p&gt;

&lt;p class=&quot;people_202209_4&quot;&gt;&lt;img src=&quot;http://www.sunforum.org/files/attach/images/1903/356/014/e9c85735592fee9199cf8033e8a8e935.png&quot; alt=&quot;gi_1.png&quot; style=&quot;&quot; /&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14px;&quot;&gt;&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행공行功 동작을살펴주는정택주사범)&lt;/span&gt;&lt;/p&gt;

&lt;p class=&quot;people_202209_4&quot;&gt;&lt;br /&gt;
운동이 끝난 후 만난 사람들의 증언은 다양했다. 허리 디스크, 고혈압, 당뇨 외에도 10여 년 동안 반신불수, 중풍으로 고생했던 사람들. 병원에서 포기했는데도 파킨슨병을 회복했다는 사람. 건전한 정신은 건전한 신체에서.... Sound mind in a sound body 라는 동서고금의 격언처럼 몸이 회복되니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게 됐다는 사람들. 예수의 기적을 나열하듯이 증언은 이어졌다. 미국 듀크대학교 의과대학의 한 교수가 우혈宇穴의 미국 강연들 듣고 &lsquo;혈기도는 과학&rsquo;이라고 극찬했다며 정 사범이 증언을 마무리한다.&lt;br /&gt;
&lt;br /&gt;
현재 혈기도 회원은 100여 명. 대표 정택주씨도 증언을 쏟아내던 사람들과 유사한 이유로 도道에 입문했다. 일본 무사시노 예술대학을 나온 아버지와 일본 여자 체육대학을 졸업한 어머니 사이의 3남 1녀 중 막내. 고등학생 때는 지금의 일진과 같은 &lsquo;쌤바디&rsquo; 회원이었다. 당시 어머니는 같은 학교 이수복 체육 선생님(남녀공학). 엄하기로 유명했다. 85년도에 66세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사망한 어머니에 대해 그는 &ldquo;내가 속을 썩여서&rdquo; 라며 고개를 떨군다. 욱 하는 성격을 고치려고 호를 참을 인忍자를 넣어 인당忍堂 이라고 지었다. 그런 아들이 대학에 들어간 후 산악인 친구들과 어울려 제2의 인생을 살더니 졸업 후에는 대우, 현대, 외환은행 등 무려 3곳 모두 합격 한다. 무역회사 대표가 된 후 에는 &lsquo;달러를 버는 것이 애국이다&rsquo; 는 일념으로 정신없이 세계를 돌아다니다 80킬로 거구가 됐다. 변비와 허리디 스크가 공식처럼 따라 왔다.&lt;br /&gt;
&lt;br /&gt;
일본식 참선을 하는 수요회를 주관하던 박희선 박사(서울 공대 교수 1919 &ndash;2016)를 만난 것은 둘째 형의 권고 덕이었다. 93년 7월 마지막 수요일. 30분 정도 호흡만 하는데도 고질병이 하나씩 없어지고 체중도 빠지고 건강이 회복되더란다. 그렇게 놀라움과 환희 속에서 참선에 빠져들었다. 그러다 어느 날. 도쿄의 한 호텔에서 고객과의 오후 약속이 취소돼 참선을 하던 중 무아지경에 빠진다. 의식이 갑자기 맑고 차가운 느낌의 새파란 하늘처럼 바뀌면서 편안하고 행복함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솟구쳤다. &ldquo;어? 이게 뭐야?&rdquo; 하는 순간에 그 의식은 깨지면서 머릿속은 일상으로 돌아 왔다. 몇 시간이 흐른 후였다. 갑자기 눈물은 하염없이 흘렀고 &ldquo;이렇게 살면 안 되지&rdquo; 라는 스스로에 대한 명령이 가슴 깊은 곳에서 들렸다. &lsquo;장사꾼을 도인으로 인도&rsquo;하는 소 리. 95년 10월이었다. 그 생생한 경험 이후 회심回心을 결심 했다. 그러나 다시는 같은 경험을 못했다. 비슷하다가도 금 세 깨져 버렸다. 갈증으로 도인과 스님을 찾아 다녔다. 인도 와 티베트까지. 원효대사처럼 속세와 인연을 끊었어야 했 나? 인간 정택주는 이렇게 &lsquo;돈 버는 사업&lsquo;이 아닌 &lsquo;새로운 정신세계&rsquo;를 추구하게 된다. 남들이 부러워했던 외환은행 직원 자리를 패기 있게 집어 던지고 나왔던 그때의 기분과 각오로. 이전투구泥田鬪狗의 지옥을 떠난 것이다&lt;/p&gt;

&lt;p class=&quot;people_202209_4&quot;&gt;&nbsp;&lt;/p&gt;

&lt;p class=&quot;people_202209_4&quot;&gt;&lt;img src=&quot;http://www.sunforum.org/files/attach/images/1903/356/014/f0f1368e872b87c856faa3d8efdb8e64.png&quot; alt=&quot;gi_2.png&quot; style=&quot;&quot; /&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right;&quot;&gt;(행공行功 중인 혈기도회원들)&lt;/p&gt;

&lt;p class=&quot;people_202209_4&quot;&gt;&lt;br /&gt;
혈기도 창시자 우혈宇穴을 만난 후 정 사범은 자신이 추구 하는 참선의 경험을 다시 느껴보겠다는 노력이 의미 없음 을 깨닫는다. 우주의 모든 것을 관통하는 기운 즉 에너지氣의 완성은 없다고 배웠기에. 2004년 이었다. 처음 가본 혈 기도장에서 &ldquo;아 이것이다&rdquo; 고 느끼고 입회원서를 작성한 때가. 입문한지 18년째이고 사범을 한지는 10년이 됐다. 그 사이 정 사범은 도인 목사 김흥호(이화여대 기독교학 과교수 1919-2012)를 만난다. 1996년 3월부터 2010년 까지 매주. 소크라테스로 시작되는 서양의 사상과 공자 맹자를 비롯한 동양사상, 거기에 마태복은 5장을 가장 신봉한다는 그의 성경 강의를 들었다. 중생이 스승을 만나 눈을 뜨는 과정은 빛이고 내가 보게 된 길을 향해 하는 수행의 결과물은 힘이다. 새사람이 돼서 생명을 얻게 되면 김 목사의 빛, 힘, 생명이라는 삼위일체는 완성된다. 그는 1940년대 정인보 이광수와 함께 조선의 3대 천재라 불렸던 과학자이자 철학자 다석多夕 류영모柳永模(1890-1981)의 제자. 함석헌 도 그의 제자라더니. 그럼에도 일상의 생활 속에서 겪게 되는 갈등, 행行이 따르지 못하는 마음공부에 정택주의 회의는 계속됐다. 바로 그때 혈기도를 만났다.&lt;/p&gt;

&lt;p class=&quot;people_202209_5&quot;&gt;&quot;우주의 에너지(기氣)와 나와의 교감이 이루어져서 일체화가 되면 그 에너지는 우리의 가장 약하고 잘못된 곳을 찾아내서 나도 모르게 정상화시키는 작용을 합니다.큰 수술 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상처가 아물어 몸이 회복되는 것과 같은 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우주 에너지 혹은 기氣의 작용은 너무 신비하고 오묘해서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행복은 머릿속에 있지 않고 꾸준한 행공을 통해 건강한 몸을 만들어 우주와 에너지와 교감 할 수 있을 때만 가능 합니다.&quot;&lt;/p&gt;

&lt;p class=&quot;people_202209_4&quot;&gt;시속 1600 km 속도로 돌고 있는 지구에 살고 있는 유한한 우리는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니 우주, 하느님, 부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꼭 스승이 필요다. 특히 젊은이들에게 당부하고 싶다고. 2017년에 우혈이 작고 했고 4명의 사범 중 연장자인 인당忍堂이 자연스레 대표가 돼서 지금껏 도장을 이끌고 있다. 가족으로는 동갑내기 부인과 두 딸. 밴쿠버와 샌프란시스코에 각각 거주하고 있다.&lt;/p&gt;

&lt;p class=&quot;people_202209_6&quot;&gt;&lt;strong&gt;글&lt;/strong&gt; 김춘옥&lt;br /&gt;
단국대학교 명예교수&lt;/p&gt;&lt;/div&gt;]]></description>
						<pubDate>Sun, 21 Aug 2022 09:52:14 +0900</pubDate>
								</item>
				<item>
			<title><![CDATA[국민교양만화 ‘먼나라 이웃나라’]]></title>
			<dc:creator><![CDATA[선농문화포럼.]]></dc:creator>
			<link>https://www.sunforum.org/index.php?mid=interview&amp;document_srl=12621</link>
			<guid isPermaLink="true">https://www.sunforum.org/index.php?mid=interview&amp;document_srl=12621</guid>
						<comments>https://www.sunforum.org/index.php?mid=interview&amp;document_srl=12621#comment</comments>
									<description><![CDATA[&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div class=&quot;won_1&quot;&gt;&lt;img src=&quot;http://www.sunforum.org/files/attach/images/1903/621/012/eb483ed8468c2b9dc7c34887ba3667d8.jpg&quot; alt=&quot;leewonbok.jpg&quot; style=&quot;&quot; /&gt;&lt;/div&gt;

&lt;p&gt;&nbsp;&lt;/p&gt;

&lt;p&gt;&nbsp;&lt;/p&gt;

&lt;div class=&quot;won_4&quot;&gt;국민교양만화 &lsquo;먼나라 이웃나라&rsquo;를&lt;br /&gt;
선농포럼에서도 소개할 수 있게되어 기쁩니다&lt;/div&gt;

&lt;p&gt;&nbsp;&lt;/p&gt;

&lt;p&gt;&nbsp;&lt;/p&gt;

&lt;div class=&quot;won_2&quot;&gt;&lt;img src=&quot;http://www.sunforum.org/files/attach/images/1903/621/012/789fcc8d1e44f62fbd16b59ab57ff102.jpg&quot; alt=&quot;leewonbok3.jpg&quot; style=&quot;&quot; /&gt;&lt;/div&gt;

&lt;div class=&quot;won_3&quot;&gt;캘리포니아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던 한 여학생이 케네디 취임연설을 가르치던 선생님께 이렇게 반문했다. &ldquo;그건 29대 대통령 하딩이 했던 말을 케네디가 다시 사용한 거 맞지요?&rdquo; 한국에서 온지 얼마 안 되는 아이가 단 시간에 학급의 일원이 되고 학교의 유명인사가 된 이유 중의 하나이다.&lt;br /&gt;
&lt;br /&gt;
2021년 12월 초 서울 선릉역 근처에 있는 작업실로 〈먼나라 이웃나라〉 의 작가 이원복 前덕성여대총장을 만나러 가면서 미국 대통령 편을 찾아 챙겨갔다. 저서에 싸인을 해주던 이 교수는 &ldquo;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가 제일 보람있다&rdquo;며 다른 일화를 들려줬다. 초등2학년 학생이 헨리 8세 부인들의 이름을 줄줄이 꿰서, 초대해 준 영국 가족을 놀라게 했다는 한 주재원의 경험담이었다.&lt;br /&gt;
&lt;br /&gt;
&ldquo;내 나라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잘 알고 이해하는 외국인에게 사람들은 쉽게 마음을 열게 됩니다. 〈먼나라 이웃나라〉를 보던 학생들이 해외로 배낭여행을 떠나고 공부하러 떠나, 만화 속에서 본 세계와 실제 세계를 비교하면서 &lsquo;세계시민&rsquo;이 된 거지요.&rdquo;&lt;/div&gt;

&lt;p&gt;&nbsp;&lt;/p&gt;

&lt;p&gt;&nbsp;&lt;/p&gt;

&lt;div class=&quot;won_4&quot;&gt;&ldquo;학교신문에 4칸짜리 만화를 그리다가 친구 소개로 소년한국일보에서 해외 유명 만화를 베끼는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것이 시작이었어요.&rdquo;&lt;/div&gt;

&lt;p&gt;&nbsp;&lt;/p&gt;

&lt;p&gt;&nbsp;&lt;/p&gt;

&lt;div class=&quot;won_5&quot;&gt;올해는 &lt;먼나라 이웃나라&gt;가 세상에 나온 지 40년이 된 해이 다. 1981년, 프랑스를 시작으로 1년에 한나라씩 6년간 신문연재를 했다. 1987년에 이 연재물을 단행본 6권(네덜란드 프랑스 독일 영국 스위스 이탈리아)으로 묶어 한꺼번에 출판해 크게 성공 했다. 이후 일본편 한국편 미국편 중국편 스페인편 오스만제국과 터키편이 차례로 나왔다.&lt;br /&gt;
&nbsp;
&lt;p&gt;많은 사람들이 이사를 하거나 집 정리를 하면서 책장을 꽉 채우던 백과사전과 각종 전집류를 치우지만는 아직도 꿋꿋이 버티고 있다. 온라인 독서시대가 도래했어도 여전히 팔리는 책, 여전히 다음 편, 다음 시리즈가 기대되는 책으로 살아남아 1,800만부라는 교양만화 사상 최고의 판매부수를 기록하고 있다.&lt;/p&gt;
&nbsp;

&lt;div class=&quot;won_6&quot;&gt;경기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만화를 그리셨다고 들었습니다.&lt;/div&gt;

&lt;div class=&quot;won_7&quot;&gt;&ldquo;학교신문에 4칸짜리 만화를 그리다가 친구 소개로 소년한국 일보에서 해외 유명 만화를 베끼는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것이 시작이었어요. 75년에 독일로 유학 가서도 계속 그려 보냈지요. 81년에 일시 귀국해서 소년한국일보 故김수남사장과 포장마차에서 대화하다가 &lsquo;유럽생활 경험을 살려서 역사만화를 그리고 싶다&rsquo; 말씀드리니 &lsquo;먼나라 이웃나라&rsquo;라고 제목까지 즉석에서 지어주시며 격려하셨어요. 정말 신의 한수 같은 작명이지요.&rdquo;&lt;/div&gt;
&nbsp;

&lt;div class=&quot;won_6&quot;&gt;발음하기도 좋고 기억하기도 좋은 제목입니다.&lt;/div&gt;

&lt;div class=&quot;won_7&quot;&gt;&ldquo;글로벌하기도 하고요. 먼 나라지만 가까운 이웃 나라다, 세상에는 먼 나라도 있고 이웃 나라도 있다... 연상할 여지가 많아요. 당시 제가 유학한 나라 독일에는 35개국에서 학생들이 왔어요. 전공이 시각디자인이니 보는게 남는 거라는 생각으로 여행을 정말 많이 했어요. 친구들과 고물차를 타고 기름 값을 n등분해서 다니며 역사 이야기를 끝도 없이 주고받았어요.&rdquo;&lt;/div&gt;
&nbsp;

&lt;div class=&quot;won_6&quot;&gt;세계에는 나라가 2백여 개나 있으니 아직도 쓰셔야 할 나라 가 많이 남았네요.&lt;/div&gt;

&lt;div class=&quot;won_7&quot;&gt;&ldquo;다 하려면 책 2백 권이 나와야하니 그럴 수는 없고요, 지역으로 묶어보자 싶어 &lt;가로세로 세계사&gt;라는 번외 편으로 동남아, 발칸, 중동, 태평양, 오스만제국 등 5편을 쓴 거랍니다.&rdquo;&lt;/div&gt;
&nbsp;

&lt;div class=&quot;won_6&quot;&gt;가장 힘들었던 책은 어느 나라 편이고, 가장 애착이 가는 책 은 어느 나라 편입니까?&lt;/div&gt;

&lt;div class=&quot;won_7&quot;&gt;&ldquo;힘들었다고 하기보다는 조심스러웠던 것이 한국 편입니다. 그리고 프랑스편은 제가 처음 쓰기 시작한 나라이고 실제로도 가장 많이 팔리는 책이기도 합니다. 한국편은 제가 이 시리즈를 출발시킬 때부터 사실상 목적지로 생각했던 곳입니다. 세계의 멀고 먼 나라들을 다 돌고 와서 저의 조국 한국을 그려야겠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한국편을 내고나서 시한폭탄을 건드렸다는 느낌마저 들었어요. SNS라는 폭탄 말입니다. 악성댓글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저는 지금도 페이스북, 인스타, 블로그 등 SNS를 안하고 있습니다. 악의적인 비판을 들으면 기분이 상하고 건강에도 좋지 않아요.&rdquo;&lt;/div&gt;
&nbsp;

&lt;div class=&quot;won_6&quot;&gt;그래서 우리나라편이 나온지 오래됐는데도(2002년) 개보정을 하지 않으세요?&lt;/div&gt;

&lt;div class=&quot;won_7&quot;&gt;다른 나라들은 계속 업데이트하고 계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ldquo;한국은 단일민족이기에 인종문제 없고, 종교분쟁도 없는 나라인데 갈등지수는 세계 2위입니다. 저는 이걸 &lsquo;비교 불만&rsquo;이라고 표현합니다. 정답이 없는 나라이기 때문에 제 능력으로는 개보정을 할 수가 없어요.(웃음) 하지만 다른 나라들은 5년 정도마다 업그레이드합니다. 독일통일, 아일랜드 IRA해체, 트럼프 당선과 퇴장 등 역사적 사건을 추가하지 않을 수 없고요.&rdquo;&lt;/div&gt;
&nbsp;

&lt;div class=&quot;won_1&quot;&gt;&lt;img src=&quot;http://www.sunforum.org/files/attach/images/1903/621/012/3a01391e183be590a718cd9c74238c43.jpg&quot; alt=&quot;leewonbok2.jpg&quot; style=&quot;&quot; /&gt;&lt;/div&gt;
&nbsp;

&lt;div class=&quot;won_6&quot;&gt;40년전 처음 시작하실 때와 비교해서 역사를 보는 관점이나 세계관이 달라지신 것을 느끼십니까?&lt;/div&gt;

&lt;div class=&quot;won_7&quot;&gt;&ldquo;물론이지요. 제가 처음 서유럽 6개국을 쓸 때만 해도 선망과 동경의 시선이 컸습니다. 이제는 그렇지 않지요. 그래서 과도한 감탄이나 부러움의 표현들을 거의 없애고 원고도 고쳐 씁니다. 개보정도 여러 가지인데, 새로운 역사가 일어나거나 저의 역사적 관점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어요. 미국편에 있던 유대인 묘사에 대해 항의가 들어왔을 때 일인데요, 그때는 숙고한 끝에 아예 들어냈습니다. 그들의 주장이 옳아서가 아니라 시비 자체가 낭비적이라 여겨서 그렇게 했습니다.&rdquo;&lt;/div&gt;
&nbsp;

&lt;div class=&quot;won_6&quot;&gt;평소에는 어떻게 소일하시나요?&lt;/div&gt;

&lt;div class=&quot;won_7&quot;&gt;&ldquo;사람들은 제가 늘 바쁠 거라 지레짐작합니다. 하지만 저 시간이 많아요.(웃음). 골프도 안치고 별다른 잡기도 없습니다. 총장직도 잘 물려주고 나왔고 아내와 아들이 캐나다에서 살기 때문 에 개인시간을 많이 확보하고 있어요. 자료조사하고 작품 구상하는 외에는 친구들 불러 포도주 마시는 게 낙입니다. (&lsquo;와인의 세계, 세계의 와인&rsquo;을 출간한 바 있다.) 강의는 재미있어서 하는 거지요. 강의도 일종의 독자들과의 스킨쉽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강의요청이 왔을 때 &lsquo;강의료는 얼마 주느냐?&rsquo;라고 물어본 적이 없어요.&rdquo;&lt;/div&gt;
&nbsp;

&lt;div class=&quot;won_6&quot;&gt;그 외에도 한류의 기원, 유럽과 한중일의 비교 , 독일68세대와 현재 한국청년, 한국의 미투운동, 독일과 일본의 다른점 등의 강연은 이원복표 세계사를 듣는 재미가 있었습니다.&lt;/div&gt;

&lt;div class=&quot;won_7&quot;&gt;&ldquo;40년 세계사 공부를 하고나면 저절로 손에 잡히는 게 있지요. 게다가 인세 수입의 절반은 비행기표 값으로 썼다할만큼 발품 을 팔아 현장을 뒤지고 사람을 만나 얻은 지식입니다. 제 나름의 견해를 전하는 게 의미있다 생각합니다.&rdquo;&lt;/div&gt;
&nbsp;

&lt;div class=&quot;won_6&quot;&gt;올 3월부터는 선농포럼에서 특강을 하실 예정이시지요?&lt;/div&gt;

&lt;div class=&quot;won_7&quot;&gt;&ldquo;3월부터 5월까지 총 12회 온라인 특강을 하려고합니다. 듣자 하니 선농포럼의 청자들이 대체로 중장년층이라고 하더군요. 서로 이심전심의 만남이 될거 같아 더욱 기대하고 있습니다.&rdquo;&lt;br /&gt;
&nbsp;
&lt;p&gt;이원복 작가의 책상 위에는 &lt;먼나라 이웃나라&gt;인도편의 막바지 원고가 수북하게 쌓여있다. 그는 만화를 직접 종이에 그리는 아날로그식 작업을 하는 거의 마지막 시대의 작가일 것이다. 어떤 이는 &lsquo;&lt;먼나라 이웃나라&gt;의 그림은 좋은데 글이 너무 많아 읽기가 힘들다&rsquo;고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림도 내 맘 대로 글도 내 맘 대로이다. &ldquo;워낙 가난하게 살아서, 물자 아껴 쓰던 버릇대로 칸칸마다 글자를 꽉꽉 채워야 흡족하다&rdquo;며 크게 웃는다. 인도편은 올 해 발매 될 예정이다.&lt;/p&gt;
&lt;/div&gt;
&lt;/div&gt;

&lt;p&gt;&nbsp;&lt;/p&gt;

&lt;p&gt;&nbsp;&lt;/p&gt;&lt;/div&gt;]]></description>
						<pubDate>Sat, 22 Jan 2022 23:02:22 +0900</pubDate>
								</item>
				<item>
			<title><![CDATA[父女 교수의 장학금 쾌척 릴레이]]></title>
			<dc:creator><![CDATA[선농문화포럼.]]></dc:creator>
			<link>https://www.sunforum.org/index.php?mid=interview&amp;document_srl=12219</link>
			<guid isPermaLink="true">https://www.sunforum.org/index.php?mid=interview&amp;document_srl=12219</guid>
						<comments>https://www.sunforum.org/index.php?mid=interview&amp;document_srl=12219#comment</comments>
									<description><![CDATA[&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gt;&lt;strong&gt;&lt;span style=&quot;color:#A52A2A;&quot;&gt;구재옥 교수(한국방송통신대학교 명예교수)의 &lt;/span&gt;&lt;/strong&gt;&lt;/p&gt;

&lt;p&gt;&lt;strong&gt;&lt;span style=&quot;color:#A52A2A;&quot;&gt;아버지 구인환 교수 따라하기&lt;/span&gt;&lt;/strong&gt;&lt;/p&gt;

&lt;p&gt;&nbsp;&lt;/p&gt;

&lt;p style=&quot;width:305px;padding-right:15px;float:left;&quot;&gt;&lt;img src=&quot;http://www.sunforum.org/files/attach/images/1903/219/012/3de20bccc581b34c491216518ede73c1.png&quot; alt=&quot;제목-없음-2.png&quot; style=&quot;&quot; /&gt;&lt;/p&gt;

&lt;p&gt;부녀 교수가 순차적으로 모교인 서울대학교에 장학금을 기부했 다. 구인환 교수(1929 ~2019)가 모교이자 23년간 교수로 재직했던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에 1억원을 기부한 것이 2015년. 딸 구재옥 교수(72)가 정년 퇴임한지 1년 된 해였다. 그 딸이 6년 후에 역시 모교인 서울대학교 생활과학대학 식품영양학과에 아버지와 같은 액수의 장학금을 기부했다. 아버지 雲堂은 국어교육과에 구인환 장학금을 마련하고 딸은 식품영양학과에 구재옥 장학기금을 마련한 것이다.&lt;/p&gt;

&lt;p&gt;&nbsp;&lt;/p&gt;

&lt;p&gt;충청남도 금강 하류 장항. 장항 농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당시 그 힘들다는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에 입학한 아버지 구교수. 서울사대부고 교사, 서울여대 교수를 거쳐 43살에 모교교수가 됐다. 그는 국어교육에 힘썼고 국문학자이기도 했고, 소설, 수필가로서 많은 중, 단편을 남겼으며 한국문단의 신랄한 평자이기도 했다. 7남매의 장남으로 일찍 결혼한 구교수는 큰 딸 재옥씨와 스무 살 차이. 서울사대부고 교사 시절 딸 구교수가 학생이어서 관심을 받기도 했다.구씨 부녀는 모두 &lsquo;배워서 가르치는&rsquo; 인생을 살았다. 그러다 보니 인재 양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다. 게다가 이 집안은 서울대에서 누린 것이 많았다. 구인환 교수의 1남 3녀 중 아버지가 재직했던 고등학교와 대학에 3명이 다녀서 학비 면제도 받았다. 아버지가 시작했고 딸이 그 길을 따라간 것이다. 세부적으로도 같았다. 외국학생 포함한 대학원생을 중심으로 장학금을 지급해 인재양성에 도움을 주자고&hellip;&lt;/p&gt;

&lt;p&gt;&nbsp;&lt;/p&gt;

&lt;p&gt;구재옥 교수의 삶에는 3가지 소중한 자원이 있다. 살아가면서 자부심을 갖게 해 주고, 인맥을 형성하게 해 주는 자원이다. 첫 번째 자원은 특차로 입학해 유난히 자부심을 갖게 한 모교 서울사대부중, 부고. 둘째는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가정교육과. 시험과목을 생물로 선택했다가 첫해에 낙방해 재수까지 해서 입학했던 대학교. 지금은 학제가 개편돼서 생활과학대학 식품영양학과가 구교수의 뿌리다. 2015년에는 생활과학대 동창회장도 맡아 봉사했다. 한국방송통신대학교도 구교수의 소중한 세 자원의 하나. 대학원 다닐 때 조교로 근무하면서 연을 맺었다. 이 대학이 서울대학교로부터 1982년에 분리돼 개고하면서 구재옥 교수는 전임교원이 됐다. 2014년 정년퇴직 때까지 자연대학장, 평생교육원장, 학생 생활연구원장 등 보직을 맡으며 조교기간 포함해 37년간 근무했다.&lt;/p&gt;

&lt;p&gt;&nbsp;&lt;/p&gt;

&lt;p&gt;소중한 자원에 대한 &#39;마음의 빚&#39;이 남아 있는 서울사대부중, 부고에는 동기화를 중심으로 기부를 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공부 잘하고 어려운 재학생을 눈 여겨 보겠다고 구교수는 강조한다. 방송대에서는 재직 중에는 물론 퇴직 후에도 무려 3천 여 만원의 장학금을 기부했다. 가족은 고려대 행정학교 교수와 행정연구원장을 역임한 김영평(金榮枰) 명예교수와 1남 1녀.&lt;/p&gt;

&lt;p&gt;&nbsp;&lt;/p&gt;

&lt;p&gt;지혜의 상징 솔로몬 왕은 평생 나쁜 짓 만 하다 죽기 2년 전부터 선행을 쌓았다고 한다. 그를 빗대 영악한 사람들은 죽기 몇 년 전부터만 선하게 살아도 된다는 우스갯소리도 한다. 글쎄...이 시대에도 급조된 선행이 가능할까? 더 늦기 전에 구교수 부녀의 진심을 공감해야겠다.&lt;/p&gt;

&lt;p&gt;&nbsp;&lt;/p&gt;

&lt;p&gt;&lt;strong&gt;글 김춘옥 단국대 명예교수&lt;/strong&gt;&lt;/p&gt;&lt;/div&gt;]]></description>
						<pubDate>Sun, 05 Sep 2021 16:22:08 +0900</pubDate>
								</item>
				<item>
			<title><![CDATA[내년 대선 이후 본업 ‘기생충 연구’로 돌아갑니다.]]></title>
			<dc:creator><![CDATA[선농문화포럼.]]></dc:creator>
			<link>https://www.sunforum.org/index.php?mid=interview&amp;document_srl=11637</link>
			<guid isPermaLink="true">https://www.sunforum.org/index.php?mid=interview&amp;document_srl=11637</guid>
						<comments>https://www.sunforum.org/index.php?mid=interview&amp;document_srl=11637#comment</comments>
									<description><![CDATA[&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gt;&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20px;&quot;&gt;&lt;strong&gt;내년 대선 이후 본업 &lsquo;기생충 연구&rsquo;로 돌아갑니다.&lt;/strong&gt;&lt;/span&gt;&lt;/p&gt;

&lt;p&gt;&nbsp;&lt;/p&gt;

&lt;p&gt;&lt;img src=&quot;http://www.sunforum.org/files/attach/images/1903/637/011/23c4dfe9147998aa59ba929b4985e47b.jpg&quot; alt=&quot;제목-없음-2_03.jpg&quot; style=&quot;&quot; /&gt;&lt;/p&gt;

&lt;p&gt;&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00ccff;&quot;&gt;&lsquo;사회과학에서는 객관성 objectivity은 존재하지 않는 불가능한 개념이다. 객관성이란 단지 상호 주관성 inter-subjectivity 의 작용일 뿐이다.&rsquo;&lt;/span&gt;&lt;/p&gt;

&lt;p&gt;&nbsp;&lt;/p&gt;

&lt;p&gt;사회과학자들의 결론이다. 사회과학 social science 이란 사회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학문이므로 과학 science 의 범주에 속한다. 자연과학의 실증주의 positivism 영향 탓이다. 감각 경험과 실증적 검증에 기반을 둔 것만이 확실한 지식이라고 보는 인식론적 관점이자 과학철학이다.&lt;/p&gt;

&lt;p&gt;&nbsp;&lt;/p&gt;

&lt;p&gt;&lsquo;객관적인 잣대를 들이 밀어라.&rsquo; 모든 언론인에게 주어지는 과제 이다. 늘 이 명제를 잊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런데 그 잣대라는 것 찾지도 못했고 답도 얻지 못했다. 나만 그런 건 아닐 게다. 물이 H2O 라는 사실, 오늘 날씨가 영하 15도 라는 것, 나이 들면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은 언제 어디에서나 들이 댈 수 있는 잣대이다. 유전자, 성장환경이 모두 다른 인간도 다 동의하는 실증적 결과이므로. 그런데 저 키 큰 여성과 키 작은 여성 중 누가 더 멋진가? 버크 (보수주의자) 와 페인 (진보주의자) 의 논쟁을 보고 누가 더 옳다고 생각하는가? 누구는 생각하지 않아도 한쪽으로 쏠린다. 유전자와 자라난 환경 때문이다. 누구는 파토스를 내세워, 누구는 로고스를 앞세워 한쪽 편을 든다. 주위의 눈치 때문에, 생계에 도움을 주기 때문에&hellip;등등의 현실적 이유도 있다.&lt;/p&gt;

&lt;p&gt;&nbsp;&lt;/p&gt;

&lt;p&gt;단국대학교 기생충박사 서민교수, 확실하게 한쪽 편을 &lsquo;디스&rsquo;(요즘 말로) 하는 분을 인터뷰 했다. 언론에 보도된 자료를 모아 서면 질의 했다. 다른 한쪽을 지지하는 분들의 반론이 당연히 만만치 않을 것이다. 보수주의자 버크와 진보주의자 페인의 그 유명한 논쟁이 200년이 지나서도 한반도에서 답을 못 찾고 있어서일까?&lt;/p&gt;

&lt;p&gt;아님 버크와 페인을 핑계로 한 정치 싸움일까? 최고의 엘리트 교수가 온 몸을 다해 거칠 것 없이 정치 논란에 끼어들었다. 그러니 얘기를 들을 가치는 충분히 있다.&lt;/p&gt;

&lt;p&gt;&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00ccff;&quot;&gt;진보의 편에서 발언 하시던 서 교수가 대통령 탄핵을 비롯해 유 시민, 조국, 대통령 아들, 김민국 의원 등 정부 비판에 앞장서자 지금은 보수의 편에 서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데요. 이념을 바꾸신 건가요? 아님 단순한 현실 정치에 대한 비판인지요?&lt;/span&gt;&lt;/p&gt;

&lt;p&gt;&nbsp;&lt;/p&gt;

&lt;p&gt;&lt;img src=&quot;http://www.sunforum.org/files/attach/images/1903/637/011/b07395a106a5eb95d630f21b31ffa0b3.jpg&quot; alt=&quot;8.jpg&quot; style=&quot;&quot; /&gt;&lt;/p&gt;

&lt;p&gt;&nbsp;&lt;/p&gt;

&lt;p&gt;없는 사람들이 좀 더 잘 살게 만들자는 게 진보인지라 진보 쪽에 더 마음이 갔던 건 맞지만, 지금의 진보는 그럴 마음도, 능력도 없는 자들이었어요. 무능한 건 어쩔 수 없다 해도, 최소한 자기 잘못에 대해 반성할 줄은 알아야죠. 집권한 지 4년이 다 돼 가는데, 집값이 오른 걸 이명박, 박근혜 정권 탓을 하는 건 좀 너무 하잖아요. 세월호 사태도 그래요. 지난 정권 내내 세월호에 무슨 큰 음모가 있는 것처럼 공격했으면 뭐라도 밝혀내야 하는 거 아닌가요? 180석까지 획득해 놓곤 현재까지 뭐 나온 게 없잖아요. 인사청문회 제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박근혜 시절 사소한 흠집을 갖고 장관과 총리 후보자를 낙마시키던 이들이, 훨씬 흠결이 많은 이들을 야당 반대를 무릅쓰고 임명을 합니다. 세간에선 인사청문회 제도가 무슨 의미가 있냐고 하는데요, 무능한 이들이 도덕성까지 없다면 제가 왜 지지해야 하죠? 2020년 교수신문이 정한 올해의 사자성어가 아시타비(我是他非)인 건, 집권층이 좀 새겨들을 필요가 있습니다.&lt;/p&gt;

&lt;p&gt;&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00ccff;&quot;&gt;지난 연말 진중권 씨가 SNS 글쓰기를 중단하자 진공주와 4난장이의 난장이 중 한 명으로 자신을 비유하면서 &ldquo;그의 부재가 현실이 된 지금 두려워 죽겠다&rdquo;고 했습니다. 구체적으로 뭐가 두려운가요?&lt;/span&gt;&lt;/p&gt;

&lt;p&gt;&nbsp;&lt;/p&gt;

&lt;p&gt;2020년 진중권 선생은 문재인 정부의 어느 부분이 잘못됐는지를 찾아내고 그곳을 정확히 타격해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렇게 맨 앞에 서서 상대편을 다 무찔러주니, 저는 편하게 뒤를 따라가다 포로로 잡힌 적군을 놀리는 일을 할 수 있었죠. 남들이 보면 진중권-서민 이 둘이서 잘 한다, 이렇게 착각할 수 있겠지만, 비중 면에서 상대가 안 됩니다. 이제 진 선생님이 안 계시니 제가 앞장서 싸우는 일을 해야 하는데, 자신이 없는 거죠.&lt;/p&gt;

&lt;p&gt;&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00ccff;&quot;&gt;진중권 씨가 궁극적으로 진보의 재구성을 위해 SNS를 떠난다고 했을 때 서 교수는 정권이 바뀐 후 진보의 재구성을 하시라고 했습니다. 위의 상황을 보면 두 분의 현 정부 비판의 궁극적인 목적이 진보의 재구성을 위한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드는데 어느 것이 진실인가요? 그렇다면 진보라는 본래의 기본 이념을 계속 견지하는 건가요?&lt;/span&gt;&lt;/p&gt;

&lt;p&gt;&nbsp;&lt;/p&gt;

&lt;p&gt;진 선생님과 저의 가장 큰 차이가 거기 있어요. 추측컨대 진 선생님은 진보가 제대로서야 이 나라가 잘 된다, 제대로 된 진보 세력이 추후 정권을 접수해야 된다고 생각하시는 걸로 보여요. 하지만 저는 현실적으로 정권을 접수할 수 있는 세력이 국민의 힘밖에 없다고 보기에, 그쪽에서 정권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저는 차기 선거에서 또다시 더불어민주당이 이긴다면 진보고 뭐고, 우리나라는 그대로 망한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거 든요. 아무리 진보가 중요해도 나라가 있어야 진보-보수가 있는 것이지, 망한 뒤에 제대로 된 진보가 뭐가 중요하겠습니까.&lt;/p&gt;

&lt;p&gt;&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00ccff;&quot;&gt;한때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유시민에 대해&nbsp; &ldquo;나는 유시민 같은 인간은 공적 공간에서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rdquo;, &ldquo;유 이사장 은 진실을 말하는 이에게 정신적 고통을 주는 전형&rdquo; 또는 그를 겨냥해서 &ldquo;60이 넘으면 뇌가 썩는다&rdquo;라고도 했습니다. &lsquo;조국 똘 마니&rsquo;, &lsquo;유시민, 털보 쫄딱 망했으면&rsquo; 같은 표현은 회복 불가능한 지나친 표현이라는 생각은 안 드시는지요?&lt;/span&gt;&lt;/p&gt;

&lt;p&gt;&nbsp;&lt;/p&gt;

&lt;p&gt;유시민이 공적 공간에서 사라져야 한다, 진실을 말하는 이에게 정신적 고통을 주는 전형이란 말은 김경율 회계사가 했습니다. 저는 그런 고급스러운 표현은 선천적으로 못합니다. 그리고 60 이 넘으면 뇌가 썩는다는 유시민 본인이 한 말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그 말이 맞구나, 하는 차원에서 인용한 것이고요, 똘마니랑 쫄딱 망했다 같은 말은 일반인들이 흔히 쓰는 말 아닌가요? 그런데 그걸 좀 알려진 이가 쓰면&nbsp; &lsquo;시정잡배도 안 쓰는 말&rsquo;이라며 욕하는 게 이상합니다. 그것과 별개로 저는 고상한 말로 거짓을 말하는 게 시정잡배의 말로 진실을 말하는 것보다 훨씬 더 위험 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국 전 장관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제게는 훨씬 더 막말입니다.&lt;/p&gt;

&lt;p&gt;&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00ccff;&quot;&gt;조국 장관의 어떤 발언인지요?&lt;/span&gt;&lt;/p&gt;

&lt;p&gt;&nbsp;&lt;/p&gt;

&lt;p&gt;조 전 장관이 그간 SNS나 책에서 한 말들이 대표적이죠. 요즘 대학입시에 응모하는 학생들이 놀라운 스펙을 만들어 온다고 놀라더니, 자기 딸은 표창장부터 시작해서 위조된 증명서를 7개나 만들었잖아요. 대한민국이 어린이에게 펀드를 가르치는 동물의 왕국이라고 해놓고선 자신의 배우자와 두 자녀가 소위 &lsquo;조국 펀드&rsquo;에 가입돼 있었지요. 청문회 때 자근자근한 목소리로 했던 해명들은 거의 대부분 거짓으로 드러났고요. 그가 한 말들 중엔 막말은 없었지만, 그의 말들은 진실이 결여됐기 때문에 보통 사 람들에게 분노를 유발한 것이지요.&lt;/p&gt;

&lt;p&gt;&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00ccff;&quot;&gt;현 정부가 국회의원 180 석을 앞세워 삼권 분립마저도 가뿐히 밟으며 사법부를 겁박한다고 했는데요, 윤석렬 총장 2개월 정지 에 대한 법원의 결정이나, 조국 부인 정경심 교수에 대한 4년형 등등만 보더라도 삼권 분립은 제대로 지켜지고 있다는 견해도 만만치 않은데요.&lt;/span&gt;&lt;/p&gt;

&lt;p&gt;&nbsp;&lt;/p&gt;

&lt;p&gt;위의 두 판결이 사법부가 아직 독립돼 있다는 걸 증명하고 있지 만, 제가 지적한 건 그 다음이죠. 독립된 기관이 판결을 내리면 따라야 하는데, 그러기는커녕 우린 잘못한 게 없는데 판사들이 잘못한 거다, 법관 탄핵해야 한다, 이런 식의 비난을 해대지 않 습니까? 심지어 집권여당이 앞장서서 사법 쿠데타 운운하고, 법관 탄핵에 대한 국민청원이 올라오고 있어요. 이런 상황에서 판사들이 소신껏 판결할 수 있나요?&nbsp;&lt;/p&gt;

&lt;p&gt;&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00ccff;&quot;&gt;그 반대의 경우는 없었나요?&lt;/span&gt;&lt;/p&gt;

&lt;p&gt;&nbsp;&lt;/p&gt;

&lt;p&gt;야당에서도 사법부 판결이 마음에 안 들면 비난을 하긴 합니다. 하지만 그 무게감이 다르죠. 입법과 행정을 모두 독차지하고, 그래서 공수처처럼 판사를 윽박지르는 기구를 얼마든지 만들 수 있 는 집권세력이 하는 말이 판사에게 훨씬 더 큰 압박으로 느껴지 지 않겠어요? JTBC 신년토론회에 한 교수가 나왔는데요, 그분이 윤 총장 정직 2개월을 때린 위원회에 참석했던 분이어요. 그 분이 토론 도중 그러더라고요. 공수처라는 건 판사 겁주려고 만든 거 라고. 이런 상황에서 판사들이 독립적으로 판결할 수 있을까요.&lt;/p&gt;

&lt;p&gt;&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00ccff;&quot;&gt;언론이 서울대 의대 출신 기생충 전공 교수를 집중 조명했을 때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서 교수에게 쏠렸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부터인가 기생충 이야기는 사라지고 정치 이야기, 현 정부 실세 들에 대한 분노와 저주에 가득한 비판의 소리가 들렸습니다. 어떤 계기로 정치 비평을 하게 되셨는지요?&lt;/span&gt;&lt;/p&gt;

&lt;p&gt;&nbsp;&lt;/p&gt;

&lt;p&gt;아시다시피 저는 이명박, 박근혜에 대한 비판으로 대중적 글쓰기를 시작했어요. 기생충이 제 직업이라면 정치는 제 삶의 일부였고, 한 번도 그만둔 적이 없어요. 이번 정권이 이전 정권들보다 훨씬 더 포악했기 때문에 제 글도 더 세지는 거고요. 언론이 저를 주목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현 정권을 비판하는 이들이 몇 없어요. 많은 이들이 정권에 대해 학을 떼고 있지만, 친문세력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악플을 다는 게 무서워 감히 비판을 못하는 실정이잖아요. 다행히 저는 멘탈이 갑이라, 그런 공격이 전혀 두렵지 않고 오히려 즐기고 있거든요.&lt;/p&gt;

&lt;p&gt;&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00ccff;&quot;&gt;반대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현 정부가 특별히 뭘 잘못해서라기 보다는 오랜 세월 우파가 집권했으니 기득권 세력의 수가 많고 또 새로운 좌파적인 정책이 마뜩지 않아 보여서 사사건건 시비를 건다고 합니다. 서 교수의 생각은 어떤지요?&lt;/span&gt;&lt;/p&gt;

&lt;p&gt;&nbsp;&lt;/p&gt;

&lt;p&gt;좌파적인 정책은 집권 초기부터였죠. 예컨대 문재인 케어라든지, 최저임금 정책, 주 52시간 노동 같은 것들이 대표적입니다. 사실 전 그 정책들이 잘못된 거라고 생각했어요. 방향은 옳을지 몰라도 너무 급격하게 추진하는 게 아니냐. 이런 생각이었지 만, 제가 그 당시 그 정책 때문에 문 정권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나요? 전혀 아니었거든요. 최소한 그 선의는 인정할 수 있었으 니까요. 그런데 코로나 시국에 윤석열 총장을 찍어내려고 1년간&nbsp;난리를 피운 것에는 도대체 어떤 선의가 있을까요? 그냥 정권 을 수사하지 않는 순한 검찰을 만들겠다, 그 목적밖에 없지 않나요? 이걸 가리켜 좌파적인 정책이라고 부를 수 있나요?&lt;/p&gt;

&lt;p&gt;&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00ccff;&quot;&gt;과거 기생충 얘기 할 때와 지금, 주변인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혹 정치 쪽으로 나가려 하는 것 아니냐는 권고, 비난은 있는지요? 학생들 제자들의 반응도 궁금합니다.&lt;/span&gt;&lt;/p&gt;

&lt;p&gt;&nbsp;&lt;/p&gt;

&lt;p&gt;&lt;img src=&quot;http://www.sunforum.org/files/attach/images/1903/637/011/332f9b19c257a7aa54f3e329457450f3.jpg&quot; alt=&quot;3.jpg&quot; style=&quot;&quot; /&gt;&lt;/p&gt;

&lt;p&gt;&nbsp;&lt;/p&gt;

&lt;p&gt;학생들 상대할 때는 일체 정치 이야기를 하지 않으니 그 친구들도 저를 예전과 달리 대하진 않습니다. 그리고 정치를 비판한다고 해서 정치 쪽으로 나가는 거 아니냐, 이건 좀 유치한 반응이 죠. 야구를 좋아해서 늘 야구를 챙겨보고 야구에 대한 비판을 한 다는 게 야구선수로 직접 뛰기 위한 게 아니잖아요. 사실 지금 정치하는 분들은 대부분 저보다 훨씬 더 많이 알고, 능력도 있는 분들입니다. 근데 진영논리에 빠져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건데, 그 점을 지적해서 정치가 바로 서게 하는 것이 저 같은 사람의 할 일이죠. 제가 직접 하면 더 못할 걸요.&lt;/p&gt;

&lt;p&gt;&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00ccff;&quot;&gt;앞으로도 현실 정치에 대한 비판을 계속하실 건가요? 지금과 같은 형태로 하실 건지요? 얼마 전에는 야당에서도 정치관련 이야기를 하셨습니다.&lt;/span&gt;&lt;/p&gt;

&lt;p&gt;&nbsp;&lt;/p&gt;

&lt;p&gt;저는 정권교체가 최선이라고 보기 때문에 올 한해도 열심히 정권을 비판할 거예요. 내년 선거 때 정권교체가 된다면, 저는 그 때부터 다시 기생충 연구로 돌아갈 거예요. 만일 교체가 안 된다? 그러면 이 나라엔 희망이 없는 거니까 더 이상 얘기할 필요 가 없죠. 그때도 당연히 기생충 연구로 돌아갈 겁니다.&lt;/p&gt;

&lt;p&gt;&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00ccff;&quot;&gt;2022년 대선을 말씀하시는 건가요?&lt;/span&gt;&lt;/p&gt;

&lt;p&gt;&nbsp;&lt;/p&gt;

&lt;p&gt;네 맞습니다.&lt;/p&gt;

&lt;p&gt;&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00ccff;&quot;&gt;혹 기생충과 정치와의 접목이 가능할는지요?&lt;/span&gt;&lt;/p&gt;

&lt;p&gt;&nbsp;&lt;/p&gt;

&lt;p&gt;기생충이 숙주로부터 영양분을 빼앗는 것처럼, 정치인들도 국민의 세금을 받아먹으니, 그들을 가리켜 일종의 기생충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런데 기생충은 숙주가 건강해야 자기들도 더 잘 살 수 있기 때문에 숙주를 괴롭히지 않고, 한 마리가 하루 밥풀 한 톨로 버팁니다. 정치인도 그런 마음을 가져야 하는데, 지금 정권은 끊임없이 숙주를 괴롭히고, 한 톨이 아니라 수 백 가마니의 밥을 지들끼리 먹으려 해요. 그래서 제가 말하는 겁니다. 기생충보다 못한 정부.&lt;/p&gt;

&lt;p&gt;&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00ccff;&quot;&gt;이 말씀은 정부나 여권 인사들이 자기네들 잇속을 채우며 부정 부패를 자행한다는 말인가요?&lt;/span&gt;&lt;/p&gt;

&lt;p&gt;&nbsp;&lt;/p&gt;

&lt;p&gt;전 그렇다고 봅니다. 윤미향을 보세요. 평생 시민운동만 했다는 분이 현금으로 집 사고도 예금이 3억 원이나 있고, 또 딸은 음대를 나와 미국에 유학을 갔어요. 이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가요? 이런 분이 떡 하니 국회의원이 됐어요. 김두관, 이인영, 임종석, 이런 분들 자녀들도 전부 해외유학을 갔는데요, 재산 신고 한 거 보면 돈이 어디서 났는지 모르겠어요. 유학을 보낸 게 나 쁘다는 게 아니라, 어떤 돈으로 보냈는지가 이해가 안 되잖아요. 라임이나 옵티머스 같은 펀드비리는 하나같이 여권 인사의 연루설이 나돌고 있고요, 실제로 라임펀드 관련해서 청와대 행정 관이 구속됐었죠. 태양광 사업하다 망한 허인회도 있고, 조국 전 장관은 민정수석 시절 사모펀드에 투자했잖아요? 물론 조국은 부인이 다 한 거라 자신은 전혀 아는 바가 없다고 했지만, 공직자 비리 여부를 조사하는 민정수석이 자기 부인이 뭐 하는지 모른다면 좀 너무하지 않습니까.&lt;/p&gt;

&lt;p&gt;&nbsp;&lt;/p&gt;

&lt;p&gt;※ 코로나19로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lt;/p&gt;

&lt;p&gt;&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16px;&quot;&gt;&lt;strong&gt;글 &lt;/strong&gt;&lt;/span&gt;김춘옥 단국대 명예교수&lt;/p&gt;

&lt;p&gt;&nbsp;&lt;/p&gt;

&lt;p&gt;&nbsp;&lt;/p&gt;&lt;/div&gt;]]></description>
						<pubDate>Thu, 28 Jan 2021 20:56:45 +0900</pubDate>
								</item>
				<item>
			<title><![CDATA[우리동네 파바로티 고희전]]></title>
			<dc:creator><![CDATA[선농문화포럼.]]></dc:creator>
			<link>https://www.sunforum.org/index.php?mid=interview&amp;document_srl=9264</link>
			<guid isPermaLink="true">https://www.sunforum.org/index.php?mid=interview&amp;document_srl=9264</guid>
						<comments>https://www.sunforum.org/index.php?mid=interview&amp;document_srl=9264#comment</comments>
									<description><![CDATA[&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img src=&quot;http://www.sunforum.org/files/attach/images/1903/264/009/567fee0dd815035fb6bc2490b43d5a60.jpg&quot; alt=&quot;제목 없음-2.jpg&quot; style=&quot;&quot; /&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28px;&quot;&gt;요리사로 변신한&lt;/span&gt;&lt;/p&gt;

&lt;div style=&quot;width:32.5%;margin-right:5%;float:left;&quot;&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20px;&quot;&gt;성악가 고희전&lt;/span&gt;&lt;/strong&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nbsp;&lt;/p&gt;
&lt;/div&gt;

&lt;div style=&quot;width:62.5%;float:left;&quot;&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코로나로 더없이 길게 느껴지던 장마에 문자 한통 이왔다.&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color:rgb(139,69,19);&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039;나눔명조&#039;, nanummyeongjo, &#039;san-serif&#039;;&quot;&gt;&ldquo; 성악가 고희 전입니다. 6월부터 기존에 해왔던 연주회를 다시 진행하려고합니다. 아울러 우리동네 파바로티 이 룸카페에 스파게티와 화덕피자 메뉴를 추가해 식 사도 가능하도록 준비했습니다. 앞으로 연주회 일 정이나오면소식전해드리겠습니다&rdquo;&lt;/span&gt;&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연전에 선농문화포럼 오페라 강좌를 기획하면서 성악가 고희전씨와 가끔 연락을 주고받던 차라 요 리사로 변신한 그가 궁금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 고전날밤부터장맛비가쉴새없이쏟아지고있었 다. 하지만고희전씨가 5년간의독일유학에서돌아 와 2018년부터 자리를 잡은 안성으로 가기위해 안 성행버스에몸을 실었다.&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nbsp;&lt;/p&gt;
&lt;/div&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안성터미널에서 택시를 갈아타고 10여분 만에 복 거마을 극장식 &lsquo;이룸&rsquo; 카페 입구 앞에 도착했다. 마 침 TV에서만 봤던 고희전씨를 붕어빵처럼 꼭 닮은 둘째딸 하임이가 일행을 반겼다. 고희전씨는 독일 만하임 국립음대를 졸업했는데 유학시절 얻은 딸 이라 하임이라고 지었단다. 고희전씨와 간단하게&nbsp;인사를 나누고 우선 안성토박이인 그가 어떻게 성 악가의길을걷게됐는지물었다.&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nbsp;&lt;/p&gt;

&lt;div style=&quot;width:16.5%;margin-right:5%;float:left;&quot;&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img src=&quot;http://www.sunforum.org/files/attach/images/1903/264/009/9b596a9aa71e98d589e5ec4ac36ee15f.jpg&quot; alt=&quot;제목 없음-3.jpg&quot; style=&quot;&quot; /&gt;&lt;/p&gt;
&lt;/div&gt;

&lt;div style=&quot;width:70.5%;float:left;&quot;&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color:rgb(139,69,19);&quot;&gt;&ldquo;동네에 있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안성 시내에 있는 중학교에 입학했는데 제가 좀 순진하고 착해보였는지 우리 반 덩치 큰 애들이 때 리거나 *빵셔틀을 시키는 일이 잦았습니다. 학교폭 력피해자였죠. 스트레스가심했던지어린나이에위 장병도 생기고 학교에 가기 싫어서 하루 종일 집에 서 기타를 치는 날이 많았습니다. 이후 안법고등학 교 (*사진: 안성포도 최초 전래자인 프랑스 공안국 신부님이 세운 111년 전통의 학 교)에 진학했는데 중학교 때 갈고닦은 기타 연주와 타고난노래실력이빛을발했습니다. 당시안성시내 고등학교 축제마다 초청 1순위로 불려 다닐 정도로 인기가많았습니다. 그러다보니중학교때학폭으로 쭈그러졌던마음이좀펴지더라고요&hellip;&rdquo;&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nbsp;&lt;/p&gt;
&lt;/div&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margin-right:20px;float:left;&quot;&gt;&lt;img src=&quot;http://www.sunforum.org/files/attach/images/1903/264/009/8eb01f591ddf330022c17e8e60a727cd.jpg&quot; alt=&quot;제목 없음-4.jpg&quot; style=&quot;&quot; /&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노래 덕분에 잃었던 자존감을 되찾고 보니 음대에 진학하고 싶은 마음이 슬금슬금 생겨났다. 그러나 아버지의 생각은 달랐다. 기술이 있어야 평생 먹고 산다는 게 부친의 소신이었다. 결국 부친의 뜻에 따 라 공대 기계과에 입학했지만 인문계 고교 출신인 그가 공고를 졸업한 친구들의 손기술을 따라가기 는 힘들었다. 쇠를 깎는 기계 소음도 듣기 싫었고, 적성도맞지않아한학기를마치고바로학교를그 만뒀다. 이후 입대한 철원 백골부대에서 군 생활을 마치고서야 자신의 뜻대로 백석대 성악과에 진학 할 수 있었다. 대학시절 교수님과 친구들과 함께 독 일로 배낭여행을 다녀왔는데 졸업 후 성악공부를 계속하고 싶던 고희전씨도 7년 연애 끝에 결혼한 아내 조유진씨와 백일된 딸을 데리고 2006년 1월, 독일만하임으로날아갔다.&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처자식 딸린 가장으로 외국에서 공부하는 게 어려 웠을텐데유학비용은어떻게마련했습니까?&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color:rgb(139,69,19);&quot;&gt;&ldquo;20여 년간 면사무소 기능직 공무원(소사)으로 근무하시다 은퇴한 아버지(1946년生)께서 퇴직 후에 도 겨울에는 산불감시, 여름에는 쓰레기투기 감시 등 허드렛일을 계속하시면서 아들 유학비를 마련 해주셨습니다. 어머니도 안성탕면으로 유명한 라 면공장에서 일하면서 월급을 보태 5년간 매월 250 만원씩 보내주셨습니다. 제가 1남3녀 중 막내아들 인데 나중에 들으니 당시 누나들은 부모님을 고생 시키는 저를 원망했다고 하더라고요&rdquo;&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2010년에 만하임에서 둘째딸이 태어났는데 가난한 유학생활에 아내의 산후간병은 고스란히 고희전씨 몫이었다. 미역국 끓여가며 열심히 산모의 산후 조 리를 하다 보니 그만 학교에서 한 학기 유급통보를 받았다. 허리띠를 졸라가며 어렵게 학비를 부쳐주는 부모님 생각에 항상 죄송스런 마음을 갖고 있었 는데, 졸업이 6개월이나 미뤄지니 마주한 현실이 영 답답하기만했다. 마침스위스에서열리는국제콩쿨 에 나갔는데 지원자 50명 중 2등을 했다. 제네바 극 장에서의공연경험은그에게잊을수없는추억이자 자산이다. 우여곡절끝에학교를졸업하고 2012년에 귀국했지만 고희전씨가 설 무대는 없었다. 어쩌면 1등만을 기억하는 세상에서 좌절할 수도 있었으나 그에게는 &lsquo;나만의 극장&rsquo;을 만들겠다는 꿈이 있었다. 고향 안성으로 돌아온 그는 아버지 고관원씨(74세) 가 평생 성실하게 농사짓던 100여 평의 고추밭에 벽 돌을 한 장 한 장 쌓고 산에서 벌목한 아름드리나무 로 손수 테이블을 만들어가며 극장식 카페를 세웠 다. 지난해 KBS 인간극장에 소개 된 대로 그는 딸이 다니는 유치원과 안성 초등학교 입학식에 이르기까 지 무대를 가리지 않고 노래를 부르고 있다. 고향 집 터에 그가 손수 세운 극장에서 그동안 20회의 &lsquo;우리 동네 콘서트&rsquo;를 연 성악가 고희전씨에게 음악과 생 계사이에서호구지책은여전히난감한숙제였다.&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nbsp;&lt;/p&gt;

&lt;div style=&quot;width:30.5%;margin-right:5%;float:left;&quot;&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img src=&quot;http://www.sunforum.org/files/attach/images/1903/264/009/8d14805ad11bd61f6a8b48ead32375fc.jpg&quot; alt=&quot;제목 없음-6.jpg&quot; style=&quot;&quot; /&gt;&lt;/p&gt;
&lt;/div&gt;

&lt;div style=&quot;width:60.5%;float:left;&quot;&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span style=&quot;color:rgb(139,69,19);&quot;&gt;&ldquo;코로나로 많은 공연 기획사들이 사라지고 음악생 활과 연주자 개런티만으로 생활이 어려운 현실에 서 스스로 자립할 수 있어야한다는 생각이 더욱 확 고해졌습니다. 안성 인근 동아방송예술대학에 출 강하고 있는데 예술을 전공하는 청년들에게 나의 모습을 통해서 꼭 상위 1%가 되지 않아도 낙오자 가 아닌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후배들에게 음악은 삶의 전부가 아 닌 인생의 도구일 뿐이 므로 큰 꿈을 내려놓고 열심히 살다보면 자연 스럽게 무대가 생길 수 있다고&hellip; 2호점, 3호점 이룸카페 주인장이 나 올 수 있도록 돕고 싶 습니다.&rdquo;&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우중에도 카페를 가득 메웠던 손님들이 돌아가고 점심시간을훌쩍넘긴 3시쯤배가고프다며주방에 서손수만들어내온파스타와피자는맛있었다.&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지난해 연말에는 고희전씨 주최로 루마니아 필하모니를 초청해 안성시 최초로 해외오 케스트라 초청공연을 열었다. (사진上) 7월 말에는 코로나로 중단됐던 동네음악회도 재개했다. &lsquo;꿈을 이루다&rsquo; 라는 의미로 명명했다는 &lsquo;이룸카페&rsquo;를 통 해그의꿈은한발씩전진하고있었다.&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nbsp;&lt;/p&gt;
&lt;/div&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nbsp;&lt;/p&gt;

&lt;div&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clear:both;&quot;&gt;&lt;strong&gt;글&bull; 사진&lt;/strong&gt; 선농문화포럼부장임혜진&lt;/p&gt;
&lt;/div&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nbsp;&lt;/p&gt;&lt;/div&gt;]]></description>
						<pubDate>Thu, 20 Aug 2020 22:54:08 +0900</pubDate>
								</item>
				<item>
			<title><![CDATA[산이 그곳에 있어 산에 오른다 암벽사진작가   ‘강레아’]]></title>
			<dc:creator><![CDATA[선농문화포럼.]]></dc:creator>
			<link>https://www.sunforum.org/index.php?mid=interview&amp;document_srl=9060</link>
			<guid isPermaLink="true">https://www.sunforum.org/index.php?mid=interview&amp;document_srl=9060</guid>
						<comments>https://www.sunforum.org/index.php?mid=interview&amp;document_srl=9060#comment</comments>
									<description><![CDATA[&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gt;&lt;img src=&quot;http://www.sunforum.org/files/attach/images/1903/060/009/e93b6103c9be56d8a98dfff92dd80764.png&quot; alt=&quot;d.png&quot; style=&quot;&quot; /&gt;&lt;/p&gt;

&lt;p&gt;&nbsp;&lt;/p&gt;

&lt;p&gt;&nbsp;&lt;/p&gt;

&lt;div style=&quot;float: left;width: 32.5%;margin-right: 5%&quot;&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28px;&quot;&gt;산이 그곳에 있어&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28px;&quot;&gt;산에 오른다&lt;/span&gt;&lt;br /&gt;
&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20px;&quot;&gt;암벽사진작가 &nbsp; &lsquo;강레아&rsquo;&lt;/span&gt;&lt;/strong&gt;&lt;/p&gt;

&lt;p&gt;&nbsp;&lt;/p&gt;

&lt;p&gt;&nbsp;&lt;/p&gt;

&lt;p&gt;&nbsp;&lt;/p&gt;

&lt;p&gt;&nbsp;&lt;/p&gt;

&lt;p&gt;&nbsp;&lt;/p&gt;

&lt;p&gt;&nbsp;&lt;/p&gt;

&lt;p&gt;&nbsp;&lt;/p&gt;

&lt;p&gt;&nbsp;&lt;/p&gt;

&lt;p&gt;&nbsp;&lt;/p&gt;

&lt;p&gt;&nbsp;&lt;/p&gt;

&lt;p&gt;&nbsp;&lt;/p&gt;

&lt;p&gt;&nbsp;&lt;/p&gt;

&lt;p&gt;&nbsp;&lt;/p&gt;

&lt;p&gt;&nbsp;&lt;/p&gt;

&lt;p&gt;&nbsp;&lt;/p&gt;

&lt;p&gt;&nbsp;&lt;/p&gt;

&lt;p&gt;&nbsp;&lt;/p&gt;

&lt;table&gt;
	&lt;tbody&gt;
		&lt;tr&gt;
			&lt;td colspan=&quot;2&quot;&gt;강레아 프로필&lt;/td&gt;
		&lt;/tr&gt;
		&lt;tr&gt;
			&lt;td&gt;2000. 02&lt;/td&gt;
			&lt;td&gt;신구대학 사진과 졸업&lt;/td&gt;
		&lt;/tr&gt;
		&lt;tr&gt;
			&lt;td&gt;2004~06&lt;/td&gt;
			&lt;td&gt;사람과산 객원기자&lt;/td&gt;
		&lt;/tr&gt;
		&lt;tr&gt;
			&lt;td&gt;2007~10&lt;/td&gt;
			&lt;td&gt;월간 산&lt;br /&gt;
			&lsquo;빛으로 담아낸 Walls and climbers&rsquo; 연재&lt;/td&gt;
		&lt;/tr&gt;
		&lt;tr&gt;
			&lt;td&gt;2011~14&lt;/td&gt;
			&lt;td&gt;월간 사람과 산 기자&lt;/td&gt;
		&lt;/tr&gt;
		&lt;tr&gt;
			&lt;td&gt;2014~17&lt;/td&gt;
			&lt;td&gt;월간 이마운틴 편집위원 활동 2015~2018&lt;br /&gt;
			대한산악연맹 대외협력위원으로 활동&lt;/td&gt;
		&lt;/tr&gt;
		&lt;tr&gt;
			&lt;td&gt;2014~&lt;/td&gt;
			&lt;td&gt;대한산악연맹 공식사진기자로 활동 중&lt;/td&gt;
		&lt;/tr&gt;
		&lt;tr&gt;
			&lt;td colspan=&quot;2&quot;&gt;&lt;개인전&gt;&lt;/td&gt;
		&lt;/tr&gt;
		&lt;tr&gt;
			&lt;td&gt;2007. 11&lt;/td&gt;
			&lt;td&gt;&lsquo;천상의 꽃을 보다&rsquo; 갤러리 룩스&lt;/td&gt;
		&lt;/tr&gt;
		&lt;tr&gt;
			&lt;td&gt;2011. 06&lt;/td&gt;
			&lt;td&gt;&lsquo;북한산의 사계&rsquo;&lt;/td&gt;
		&lt;/tr&gt;
		&lt;tr&gt;
			&lt;td&gt;2012. 08&lt;/td&gt;
			&lt;td&gt;&lsquo;발현&rsquo; 목금토갤러리&lt;/td&gt;
		&lt;/tr&gt;
		&lt;tr&gt;
			&lt;td&gt;2017. 01&lt;/td&gt;
			&lt;td&gt;&lsquo;설악의 여백&rsquo; 목금토갤러리&lt;/td&gt;
		&lt;/tr&gt;
		&lt;tr&gt;
			&lt;td&gt;2017. 12&lt;/td&gt;
			&lt;td&gt;&lsquo;설악의 숨&rsquo; 갤러리 브레송 초대전&lt;/td&gt;
		&lt;/tr&gt;
		&lt;tr&gt;
			&lt;td&gt;2019. 11&lt;/td&gt;
			&lt;td&gt;&lsquo;산에 들다~&rsquo; 미술세계 초대전&lt;/td&gt;
		&lt;/tr&gt;
		&lt;tr&gt;
			&lt;td colspan=&quot;2&quot;&gt;&lt;그룹전&gt;&lt;/td&gt;
		&lt;/tr&gt;
		&lt;tr&gt;
			&lt;td&gt;2017. 10&lt;/td&gt;
			&lt;td&gt;Group Exhibition &lsquo;사진의 섬&rsquo;&lt;/td&gt;
		&lt;/tr&gt;
		&lt;tr&gt;
			&lt;td&gt;2018. 12&lt;/td&gt;
			&lt;td&gt;Group Exhibition &lsquo;작은 한옥 그림산책&rsquo;&lt;/td&gt;
		&lt;/tr&gt;
		&lt;tr&gt;
			&lt;td&gt;2019. 01&lt;/td&gt;
			&lt;td&gt;마루갤러리 초대전 &lsquo;여백&rsquo; 전시명&lt;/td&gt;
		&lt;/tr&gt;
	&lt;/tbody&gt;
&lt;/table&gt;
&lt;/div&gt;

&lt;div style=&quot;float: left;width: 62.5%;&quot;&gt;
&lt;p&gt;&lt;span style=&quot;color:#006699;&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명조,nanummyeongjo,san-serif;&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20px;&quot;&gt;산은 살아있는 대상, &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006699;&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명조,nanummyeongjo,san-serif;&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20px;&quot;&gt;&ldquo;온몸으로 끌어안다&rdquo;&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006699;&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나눔명조,nanummyeongjo,san-serif;&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20px;&quot;&gt;온통 흑백(黑白)&hellip;&lt;br /&gt;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를 마주하다.&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gt;&nbsp;&lt;/p&gt;

&lt;p&gt;&ldquo;산이 그곳에 있어 산에 오른다(Because it is there)&rdquo;&nbsp;&lt;/p&gt;

&lt;p&gt;&nbsp;&lt;/p&gt;

&lt;p&gt;924년 에베레스트 정상을 앞두고 실종된 위대한 산악인 조지 말로리(George L. Mallory)가 어느 강연에서 한 말이다. &ldquo;왜 위험하고 힘든, 그리고 죽을지도 모르는 산에 오르나?라는 어느 부인의 질문에 순간의 재치로 받아 넘긴 답변이었다. 진짜 명언이다. &ldquo;죽을 것을 알면서 왜 사냐?&rdquo;라는 물음에 답을 생각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모처럼 인사동에 들렀다. 강레아(51) 사진작가의 초대전 &lsquo;산에 들다&rsquo;를 보기 위해서다. 은근히 화려함을 기대했지만 온통 흑백이다. 흑백만을 고집하는 사진작가, 강레아다. 덕유산 무주구천동, 깊은 산 속에서 태어났지만 도시 생활로 잠시 멀어졌다. 나이 열아홉에 자연스레 다시 산에 오르게 됐다. 산이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원래 어울리는 것보다는 혼자가 좋은 그였다. 산 중에도 암벽을 타게 된 것도 다 타고난 성정(性情) 덕이었다.&lt;/p&gt;

&lt;p&gt;&nbsp;&lt;/p&gt;

&lt;p&gt;&lt;img src=&quot;http://www.sunforum.org/files/attach/images/1903/060/009/efe152bef95a73888678378f8cf5b393.png&quot; alt=&quot;1.png&quot; style=&quot;&quot; /&gt;&lt;/p&gt;

&lt;p&gt;&nbsp;&lt;/p&gt;
&lt;img src=&quot;http://www.sunforum.org/files/attach/images/1903/060/009/cb5c6e9e123b07d817fa325225226b1c.png&quot; alt=&quot;2.png&quot; style=&quot;&quot; /&gt;
&lt;p&gt;&nbsp;&lt;/p&gt;

&lt;p&gt;사진도 좋아했다. 당연히 산에서도 사진을 찍었다. &ldquo;운이 좋았다. 최고의 클라이머들을 만났고 화가인 남편도 만났다. 그 덕분이었다.&rdquo; 산만 타다가 남편의 권유로 사진기를 들고 산을 타기 시작했다. 적지 않은 나이에 정식으로 사진도 공부했다. 2000년에 신구대학 사진과를 졸업했다. 이 모두가 어우러져 그를 여성 암벽사진작가로 만들었다. 산악 잡지 기자와 프리랜스 기자로도 활동했다. 여섯 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흑백을 고집하는 이유 역시 그의 삶, 그리고 성정과 맞아떨어진 자연스러움이다. 화려하고 드러내는 것을 싫어하기도 하지만 어린 시절의 기억이 흑백이었던 까닭도 컸다. 겨울, 눈이 쌓인 산이 그 무엇보다 좋았다. 기억의 대부분을 차지한 것은 당연하다.&nbsp;&lt;/p&gt;

&lt;p&gt;&lt;br /&gt;
겨울 아침의 산은 말 그대로 흑백의 동양화 한 폭이다. 안견의 &lsquo;진경산수화&rsquo;가 떠오르는 그의 작품들은 어린 시절 기억이 사진으로 되살아났기 때문이다.&nbsp;&lt;/p&gt;

&lt;p&gt;&lt;br /&gt;
&ldquo;산이 좋아 북한산 아래 산다. 고개를 들면 인수봉이다. 좋은 사진들로 책(사진집) 만드는 것이 소망이다. 무엇보다 자유롭게 살았다. 좋아하는 일이 곧 놀이다 보니 신나게 놀았다. 여한이 없다.&rdquo; 강 작가의 변이다. 즐기는 자가 최강이라는 말이 생각났다.&lt;/p&gt;

&lt;p&gt;&nbsp;&lt;/p&gt;
&lt;/div&gt;

&lt;p&gt;&lt;img src=&quot;http://www.sunforum.org/files/attach/images/1903/060/009/28306501fec887477d87a7db26e2d13d.png&quot; alt=&quot;1.png&quot; style=&quot;&quot; /&gt;&lt;/p&gt;

&lt;p&gt;&nbsp;&lt;/p&gt;

&lt;p&gt;&lt;img src=&quot;http://www.sunforum.org/files/attach/images/1903/060/009/f29409447da619fa279571837938d0c1.png&quot; alt=&quot;2.png&quot; style=&quot;&quot; /&gt;&lt;/p&gt;

&lt;p&gt;&nbsp;&lt;/p&gt;

&lt;p&gt;산은 살아 있는 자연이다. 산을 찍으면 친구,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느낌이 온단다. 오르고 만지고 온몸으로 끌어안는 대상으로 산을 촬영해왔다. 마치 평생 살을 부대끼며 살아온 연인과도 같단다. 니체와 불교를 좋아하는 그는 &lsquo;집중해야 하는 현재&rsquo;를 강조한다. 수행의 최고 수단으로 &lsquo;클라이밍&rsquo;을 꼽는다. 집중하지 않으면 추락한다. 공포를 극복해야 앞으로 나갈 수 있다. 목표를 달성했을 때의 &lsquo;희열&rsquo;은 마치 인생의 축소판이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 클라이밍에 대한 그의 지론이다. 산, 자연은 생명이다. 자연을 온몸으로 부딪치며 끌어안고 살아온 영혼, 결코 화려하지 않지만 자유로운 삶을 오랜만에 마주했다. 그냥 보고 듣기만 해도, 부럽고 즐거운 일이었다.&lt;/p&gt;

&lt;p&gt;&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0066cc;&quot;&gt;Q. 이번 개인전의 주제와 작품들의 의미는 무엇인가?&lt;/span&gt;&lt;br /&gt;
A. 개인전으로 여섯 번째다. 주제는 &lsquo;설악산과 북한산에 대한 헌사&rsquo;라 하고 싶다. 작품을 보면 산보다는 사랑하는 사람들, 함께했던 사람들을 다시 본다는 느낌이 든다. 등반 중 먼저 간 친구를 포함해 바라보고 함께 보낸 30년이 사진들 속에 묻어 있다.&nbsp;&lt;/p&gt;

&lt;p&gt;&lt;br /&gt;
&lt;span style=&quot;color:#0066cc;&quot;&gt;Q. 가장 기억에 남는 등반 경험이 있다면?&lt;/span&gt;&lt;br /&gt;
A. 2006년 겨울 설악산 토왕성 폭포 빙벽 등정이다. 꼬박 하루 넘게, 25~6시간 동안 등정과 사진을 찍으면서 온몸의 힘과 에너지가 완전히 바닥나는 경험을 했다. 2명이 오르면 12시간 정도면 되지만 나를 제외한 4명과 함께 등정하며 사진을 찍느라 무려 24시간 이상 걸렸다. 그 몰입의 시간, 그리고 성취감은 &lsquo;희열&rsquo; 그 자체였다. 집에 와서 잠든 후 깨어나는 데 이틀이 걸렀다. 그만큼 기억에 남는다.&lt;/p&gt;

&lt;p&gt;&lt;br /&gt;
&lt;span style=&quot;color:#0066cc;&quot;&gt;Q. 왜 굳이 흑백을 고집하는가?&nbsp;&lt;/span&gt;&lt;br /&gt;
A. 어린 시절 기억은 온통 하얀색이다. 북한산 선인봉의 겨울 아침에서 겸재의 풍경화가 보이듯이&hellip; 그런 작품들을 사랑한다. 그런 기억들이 작품으로 되살아나다 보니 동양화 같은 느낌이 든다는 평을 받는다. 흑백의 농담으로 충분히 이미지를 표현할 수 있다. 화려함과 드러내는 것을 싫어하는 내 삶의 모습이 그런 흑백의 세상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nbsp;&lt;/p&gt;

&lt;p&gt;&lt;br /&gt;
&lt;span style=&quot;color:#0066cc;&quot;&gt;Q. 좀 더 좋은 작품 활동을 위해 필요한 것들이 있다면?&lt;/span&gt;&lt;br /&gt;
A. 산과 자연은 생명체다. 아끼고 보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만 등반 금지와 같이 일률적인 규제는 개선해야 한다고 본다. 미국 자이언 국립공원 등정 때, 우천 시 원칙적으로는 등반 금지지만 우리 일행이 전문가라는 것을 알고 등정을 허락해줬다. 물론 자기 책임이라는 단서는 붙었지만&hellip;.&lt;/p&gt;

&lt;p&gt;&nbsp;&lt;/p&gt;

&lt;p&gt;우리나라 산악 문화의 수준은 상당히 높다. 일괄적으로 규제하는 것보다는 사람과 실력에 맞는 시스템을 도입했으면 한다. 예를 들면 등반 급수를 구분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nbsp;&lt;/p&gt;

&lt;p&gt;&nbsp;&lt;/p&gt;

&lt;p&gt;&lt;img src=&quot;http://www.sunforum.org/files/attach/images/1903/060/009/7ce7a110bbdbac180fa8092731865b8b.png&quot; alt=&quot;1.png&quot; style=&quot;&quot; /&gt;&lt;/p&gt;

&lt;p&gt;&nbsp;&lt;/p&gt;

&lt;p&gt;&lt;img src=&quot;http://www.sunforum.org/files/attach/images/1903/060/009/6ce56c47f1dbe86cf388825e4d0bdd08.png&quot; alt=&quot;2.png&quot; style=&quot;&quot; /&gt;&lt;/p&gt;

&lt;p&gt;&nbsp;&lt;/p&gt;&lt;/div&gt;]]></description>
						<pubDate>Wed, 05 Feb 2020 15:29:12 +0900</pubDate>
								</item>
				<item>
			<title><![CDATA[그룹홈 엄마로 변신한 가수 윤설희]]></title>
			<dc:creator><![CDATA[선농문화포럼.]]></dc:creator>
			<link>https://www.sunforum.org/index.php?mid=interview&amp;document_srl=8704</link>
			<guid isPermaLink="true">https://www.sunforum.org/index.php?mid=interview&amp;document_srl=8704</guid>
						<comments>https://www.sunforum.org/index.php?mid=interview&amp;document_srl=8704#comment</comments>
									<description><![CDATA[&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gt;&lt;img src=&quot;http://www.sunforum.org/files/attach/images/1903/704/008/e4050d2285528f43742e63b64d09339e.jpg&quot; alt=&quot;1.jpg&quot; style=&quot;&quot; /&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right;&quot;&gt;작은콘서트에서 노래하는 윤설희(오른쪽)자매&lt;/p&gt;

&lt;p&gt;&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16px;&quot;&gt;그룹홈 엄마로 변신한 가수 윤설희&nbsp;&lt;/span&gt;&lt;br /&gt;
&lt;span style=&quot;font-size:28px;&quot;&gt;넓고큰방도있지만&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28px;&quot;&gt;나는그룹홈이 더 좋아요!&nbsp;&lt;/span&gt;&lt;/p&gt;

&lt;p&gt;&nbsp;&lt;/p&gt;

&lt;p&gt;앨범〈논두렁밭두렁〉&nbsp;&lt;/p&gt;

&lt;p&gt;&lt;img src=&quot;http://www.sunforum.org/files/attach/images/1903/704/008/215cfc1eaad7ce5a948a70808be8ec85.jpg&quot; alt=&quot;2.jpg&quot; style=&quot;width:200px;&quot; /&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16px;&quot;&gt;&lt;span style=&quot;color:rgb(204,0,153);&quot;&gt;윤설희씨를소개하는방법은여러가지다.&nbsp;&lt;br /&gt;
첫째, 1980년대 부부 혼성 듀엣 〈논두령밭두령〉의 멤버요 작사가. 대표곡은 〈다락방〉.&nbsp;&lt;br /&gt;
둘째, 서단법인 땡큐 이사장 아동그룹홈 〈별빛 내리는 마을&gt;,&nbsp;〈봄채를운영하는사회복자사. &gt;&lt;br /&gt;
셋째, 성결신학대학원을졸업해안수를받은목사&nbsp;&lt;/span&gt;&lt;/span&gt;&lt;/p&gt;

&lt;p&gt;&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이 중에서도윤설희 씨가현재 가장심혈율 기울이는것은 두 번째 활동이다 송파구오금동에 있는 礎롱 건물의 4층(봄채)과 5층(별빛 내리는 마을)에는 각각 4---5명의 아동이 기거하고 있다. 4층에는 여아, 5층에는 남아로 나뉘어 생활한다 4층에 들어서자, 안방에서 검은 정장 을 차려입은 윤 이사장이 나와시설 안내를 해준다 안 방 윤 이사장의 침대에는 며칠 후 돌을 맞는 아기가 누 워 평화롭게 잠을자고 있다. 생후 5일 되는 날 베이비박 스에서 데려온 아기라고 한다. 4층 여성의 공간에는 올 해 초등학교 6학년인 미옥이, 중3 선희, 여고생 가을이 가살고 있다. 지적 장애 3급인 선희는 거실에서 복지사 와 함께 책율 보고 있고, 대학 입시생인 가율이는 학교 에 가고 없다. 미옥이는 학교 친구 2명을 데려와자기 방 에서놀고있다&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미옥이는 일곱샬 때 남동생과 함께 내려온 탈북자다 쌍 둥이 남동생과 함께 하L陀!을 거쳐 〈봄채〉에 왔다. 남동 생은 礎공 남자 숙소에서 생활한다. 남매는 헤어지지 않 고 함께 사는 행운을 누리고 있다 윤 이사장은 &ldquo;미옥이 는 발레에 소질이 보이기에 즉시 후원자를 연결시켜줬다며 &lsquo;&lsquo;장래희망이 뚜렷하고 자존감이 높아 그룹홈에 살고 있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기 때문에 친구들까지 집으로 데려온다&rdquo; 며 대견해한다 입시생인 미옥이가 기 른다는 하얀토끼 한마리가토끼 집에人1 살고있다. 이사 장은 반대하다가토끼 집 청소를 잘하겠다는 약속을 받고허락해줬다고한다&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br /&gt;
礎 남자아동 숙소에 들어서니 시설장(4층의 시실장은 윤설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여성 한 명과사회복지사를 꿈꾸는 실습생 한 명이 청소를 하고 있다 4, 5층엔 각각 3명의 복지사가상주하고 있다고 한다 복지사 수와 그 룹홈아이들의 숫자가 비슷해 물어보니 , 인구감소등 여 러 가지 사회적 변화와함께 그룹홈 아이들의 숫자 가점점 줄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룹홈이 보건복지부에 신고제로 운영되기 때문에 서울시에만 62개가 있다(전 국적으로는 4백여 개)． 아동 수는 줄어가는데 계속 신고 를 받기 때문에 그룹홈 운영자들은 아동을 확보하는 경 쟁도 해야 하는셈이다 우리나라는 근시설인 보육원 과 7명 이내의 소규모 그룹홈(정식 명칭은 공동생활가정이 다)으로 양분돼 있는데 , 윤 이사장은 &ldquo;가정형이 바람직한 모델&rsquo;이라고힘주어 말한다&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nbsp;&lt;br /&gt;
영화〈도가니〉에서 보듯이 큰시설에서는 아이들의 존재 감이 약하고 가려지기 쉽지만, 그룹홈에서는 가정식 세 세한보살핌이 가능하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lsquo;&lsquo;저는 아이 들을 딱보면 머리와 마음율스캔하게 돼요. 함께 24-AI간 살기 때문에 엄마그자체가되는거지요 이곳은 아이들 의 쉼터가 아니라 가정입니다 저는 아이들의 엄U問|요 목사가 된 것도 더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서였고요&rdquo; 미 옥이가발레를하면 좋겠다고생각한것도 &lsquo;스캔의 함이 었고, 남매가 헤어지지 않고 한곳에 살게 된 것도 엄마&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img src=&quot;http://www.sunforum.org/files/attach/images/1903/704/008/b0c295b946aab56fcf64346a0dc8efaa.jpg&quot; alt=&quot;3.jpg&quot; style=&quot;&quot; /&gt;&lt;/p&gt;

&lt;p style=&quot;width:50%;float:left;&quot;&gt;&lt;img src=&quot;http://www.sunforum.org/files/attach/images/1903/704/008/443e482525fb3f589c811b886d27c542.jpg&quot; alt=&quot;4.jpg&quot; style=&quot;height:220px;&quot; /&gt;&lt;/p&gt;

&lt;p style=&quot;width:50%;float:left;&quot;&gt;&lt;img src=&quot;http://www.sunforum.org/files/attach/images/1903/704/008/6bfaeba6dd45b8f5a69582ddb473ea98.jpg&quot; alt=&quot;5.jpg&quot; style=&quot;height:220px;&quot; /&gt;&lt;/p&gt;

&lt;p&gt;&nbsp;&lt;/p&gt;

&lt;div style=&quot;width:47.5%;margin-right:5%;float:left;&quot;&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마음의 합이었다 그룹홈 후원자 한분에게 미옥이의 레슨 비를 지원해달라고부탁했을 때의 정황을보면 엄마 마음을 알게 된다 후원자의 그룹 운영 지원금을 개인 지원금으로 돌리는 바람에 살림은궁색해졌지만 망설임 없었다. 원래는 남자아동들만 받는 〈별빛 내리는 마을&gt;을&nbsp;운영 중이었지만 누나와함께 살게 해주기 위해 여자아동그룹홈 〈봄채&gt;를 신설한 것이다(그룹홈 조례상 , 7세 이상 아동은 남녀 따로 기 거해야 한다)． 목사안수를 받았지만목회나전도는꿈도못 꾼다. 그저 건물 2층에 있는 교회(사랑하는 교회)에서 아이 들과 함께 노래하고 예배하는게 전부이다. 〈별빛 내리는 마 을〉과 〈봄채〉의 특징은 아이들이 들락거리지 않고 오랜 시 간 함께산다는 것이다 이 가족은 아이들이 대학을 가면 독 립율 도와준다 2000년 미혼모 자녀를 돌보기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7명이 대학생이 되어 곁을 떠났다 이 중 여학생 한 명은 최근에 대학에 갔지만선취업이 되어 우선 직장생활을 시작하기로했다고한다.&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br /&gt;
윤 이사장은 2013년 오금동 건물 2층에 작은 도서관을 만들 었고, 지금지하1층에는공연장을짓고 있다. 도서관은송파 구주민들과소통하기 위해북카페식으로운영하려고한다 지하소극장에서는오는 9월에 개관기념 첫 콘서트 〈포크란 무엇인가〉를 열 계획이다. 남편이 세상을 떠냔후 여동생 윤 설하씨와 듀엣으로 입을 맞춘 지도 오래됐다 여동생 윤설 하씨는포크계의 언더그라운드에서 지분이 큰실력파다.&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br /&gt;
&quot;저는 애초에 끼도 없고, 남편의 격려로 어쩌다가수가된 거 예요 지금은 동생 없이는 공연 못해요&rdquo;라고 말하듯이 본격 적인 활동은 자제하고 있다. 후원의 밤이나 동창들의 행사 에 찬조출연을 하는 정도다 하지만음악은 신앙과 함께 그 를 지치지 않게 하는 영양제 구실율 하는 것 같다. 9월 콘서 트에서 윤설회 목사, 논두렁밭두령의 〈다락방〉 등 명곡을 들을 수 있다. &quot;최백호, 해바라기, 이정선, 김동선&hellip; 유명한 지인 가수 분들께 출연해주십사요청은 하겠지만결과는 모 르지요&rdquo; 라며 활짝 웃는 윤설회 이서장의 표정에는 하고 싶 은일을하는사람특유의 낙천과낙관이 가득하다&nbsp;&lt;/p&gt;
&lt;/div&gt;

&lt;div style=&quot;width:47.5%;float:left;&quot;&gt;
&lt;p&gt;&lt;img src=&quot;http://www.sunforum.org/files/attach/images/1903/704/008/a18d701491bfac8935d856ea8cf6a675.jpg&quot; alt=&quot;1.jpg&quot; style=&quot;&quot; /&gt;&lt;/p&gt;

&lt;p&gt;&lt;img src=&quot;http://www.sunforum.org/files/attach/images/1903/704/008/f53f013d1966325f415c0a45bd6f0c83.jpg&quot; alt=&quot;2.jpg&quot; style=&quot;&quot; /&gt;&lt;/p&gt;

&lt;p&gt;&lt;img src=&quot;http://www.sunforum.org/files/attach/images/1903/704/008/6a56821c770447e244b69fa2bbb1dfcc.jpg&quot; alt=&quot;3.jpg&quot; style=&quot;&quot; /&gt;&lt;/p&gt;
&lt;/div&gt;

&lt;p style=&quot;clear:both;&quot;&gt;&nbsp;&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rgb(194,116,175);padding:10px 0px;text-align:center;color:rgb(255,255,255);&quot;&gt;후원계좌 - 우리은행 1005-603-119075 / 예금주: 사단법인 땡큐 윤설희&lt;/div&gt;&lt;/div&gt;]]></description>
						<pubDate>Thu, 29 Aug 2019 13:20:24 +0900</pubDate>
								</item>
				<item>
			<title><![CDATA[호텔리어 사진작가 백승우]]></title>
			<dc:creator><![CDATA[선농문화포럼.]]></dc:creator>
			<link>https://www.sunforum.org/index.php?mid=interview&amp;document_srl=7914</link>
			<guid isPermaLink="true">https://www.sunforum.org/index.php?mid=interview&amp;document_srl=7914</guid>
						<comments>https://www.sunforum.org/index.php?mid=interview&amp;document_srl=7914#comment</comments>
									<description><![CDATA[&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gt;&lt;img src=&quot;http://www.sunforum.org/files/attach/images/1903/914/007/8001d5f12c9e12580921ca4d4a52f1a2.jpg&quot; alt=&quot;선농문화포럼_낱장.jpg&quot; style=&quot;&quot; /&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28px;&quot;&gt;취미가 돈이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24px;&quot;&gt;호텔리어 사진작가&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36px;&quot;&gt; 백승우&lt;/span&gt;&lt;/p&gt;

&lt;p&gt;&nbsp;&lt;/p&gt;

&lt;p&gt;&nbsp;&lt;/p&gt;

&lt;p style=&quot;width:35%;float:left;&quot;&gt;&lt;img src=&quot;http://www.sunforum.org/files/attach/images/1903/914/007/25be0cfab427287b7dbc32cd6f76ab26.jpg&quot; alt=&quot;1.jpg&quot; style=&quot;&quot; /&gt;&lt;em&gt;My Seoul : Hidden Gems (2018)&lt;/em&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수려한 한강 경관이 내려다보이는 남산에 위치한 호텔 로비에는 반짝이는 연말 크리스 마스 트리 주변으로 많은 사람들이 오갔다. &lsquo;약수동 출근길&rsquo;이란 사진집의 저자 백승우 씨는 현재 그랜드하얏트호텔 상무 겸 하얏트인터내셔널 동아시아 재무담당 이사를 맡 고 있다. 한 경제지가 그를 &lsquo;투잡의 달인 백승우 사진작가 겸 호텔리어&rsquo;라고 소개한 적이 있는데 본인의 생각을 물었더니 정색을 하며 &ldquo;투잡이라뇨? 저는 회사일과 사진을 각각 의 독립된 일이라고 생각하고 집중하고 있습니다!&rdquo;라고 말한다.&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dquo;30년 넘게 직장인으로 호텔 업무에만 최선을 다하던 제가 사진집을 세권씩이나 발간하 고, 유럽에서 저의 사진 작품이 판매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rdquo;&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호텔리어 사진작가로 불리는 그의 사진 실력은 이미 해외에서도 알아주고 있다. 지난 2016년 프랑스 Paris에서 열린 &lsquo;La Capital Gallery&rsquo; 초청 전시회에18점의 작품을 출품, 전시 첫날에 모두 판매되는 성과를 거뒀다. 2017년 4월 Paris 샹젤리제거리 &lsquo;The Gallery Boa&rsquo; 초청 개인 사진전에 참가한데 이어 2018년 11월 &lsquo;La Capital Gallery&rsquo; 초청 그룹전에도 참가하는 등 프로 사진작가로 명성을 쌓아가고 있다. 사진에는 관심 조차 없던 직장인에서 사진가로 변신한 계기는 예기치 않게 찾아 왔다. 2004년 무렵 일본인 직장 동료친구가 그에게 카메라를 선물 하면서 &ldquo;너무 회사 일에만 열중하지 말고 다른 취미생활을 가져보 라&rdquo;고 했다고 한다. 당시 일본인 친구의 눈에는 백상무가 회사일만 하는 일벌레로 비춰졌나보다.&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img src=&quot;http://www.sunforum.org/files/attach/images/1903/914/007/e42823d55aced7c7fd46cac25ab530ad.jpg&quot; alt=&quot;2.jpg&quot; style=&quot;&quot; /&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right;&quot;&gt;Service Residence at Narita Airport, Japan (2007)&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이를 계기로 그는 사진 찍기를 운동삼아 시작했다. 약수동 집에서 남산하얏트까지 걸으면서 출근길 사진을 엮은 수필&middot;사진집이 바로 2013년에 펴낸 &lt;약수동 출근길&gt;인데 일반 독자들의 잔잔한 호응을 받았다. 현재는 절판돼 도서관에서나 구해볼 수 있는 희귀본(?)이 됐다. 하얏트에 근무 하는 동안 6개의 대학원을 졸업하며 석사학위 3개와 경영학과 경제학 박사학위를 각각 취득한 그는 20여년 전부 터 연세대, 동국대, 세종대 대학원에서 후학을 가르치는 교수직도 겸하고 있다.&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이처럼 몇 가지 일을 동시에 하면서 시간을 쪼개어 2015년 서울 곳 곳을 담은 두 번째 사진집 &lt;마이코리아(My Korea)&gt;, 2016년 외국인 을 위한 영문 가이드북 &lt;마이 서울(My Seoul)&gt;을 연이어 펴냈다. 지 금도 2~3일에 한 번씩 그의 페이스북에 영문으로 글과 사진을 꾸준 히 올리면서 네 번째 저서를 준비하고 있다니 그의 철저한 시간 관 리가 경이롭기 까지 하다. 그는 근무 중에도 프로답게 장기간에 걸 쳐 일정한 테마를 가지고 사진을 찍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작품이 10년동안 진행하고 있는 &lsquo;The Window 시리즈&rsquo;다. 출장 다니면서 전 세계의 호텔 창문을 통해 본 이미지들을 담았다. 호텔리어다운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미국의 가방 회사 코치, 일본 나리타공항과 포시즌호텔, 국내는 포스코 등에서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lsquo;마 이코리아(My Korea)&rsquo;를 12년간 준비할 때는 궁궐사진을 마음껏 찍 고 싶어 1년동안 주경야독한 끝에 문화재청 해설가 자격증을 취득 했다. 현재는 덕수궁 등에서 주말 문화해설사로 활약 중이다. &ldquo;저 에게는 격주로 고즈넉한 고궁에서 해설을 하는 시간이야말로 진정 한 휴식이자 쉼입니다!&rdquo;&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궁궐해설이 없는 주말에는 전문가에게 콘트라베이스를 배우기 시 작한지 7년이나 됐다. 음악이라는 진짜 취미 생활의 최종목표는 아 마추어 오케스트라 입단 이라고 한다. 이 정도면 100세 시대에 올 해로 환갑을 맞이해 일선에서 물러나는 베이비 붐의 대표주자인 76만 4천여명의 58년 개띠들 모두 은퇴 후 그의 삶을 응원하지 않 을까? 그동안 그가 쏟아온 땀과 열정에 경의를 표한다.&lt;/p&gt;

&lt;p&gt;&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rgb(0,0,205);&quot;&gt;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seungwoo.baek.566&lt;br /&gt;
홈페이지 https://seungwoobaek.com/&lt;/span&gt;&lt;/p&gt;

&lt;p&gt;&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right;&quot;&gt;&lt;span style=&quot;color:rgb(0,0,0);&quot;&gt;&lt;strong&gt;글&lt;/strong&gt; 선농문화포럼 부장 임혜진&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right;&quot;&gt;&nbsp;&lt;/p&gt;

&lt;p style=&quot;width:25%;float:right;&quot;&gt;&lt;img src=&quot;http://www.sunforum.org/files/attach/images/1903/914/007/e066cc9d54917995337101c6446328a0.jpg&quot; alt=&quot;2.jpg&quot; style=&quot;&quot; /&gt;&lt;/p&gt;

&lt;p style=&quot;width:25%;margin-right:20px;float:right;&quot;&gt;&lt;img src=&quot;http://www.sunforum.org/files/attach/images/1903/914/007/0efd08a01ea71b3fac469d7ed9564542.jpg&quot; alt=&quot;1.jpg&quot; style=&quot;&quot; /&gt;&lt;/p&gt;

&lt;p&gt;&nbsp;&lt;/p&gt;&lt;/div&gt;]]></description>
						<pubDate>Thu, 31 Jan 2019 13:38:54 +0900</pubDate>
								</item>
			</channel>
</rs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