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오모리] 대자연을 따라, 역사 따라 일본 아오모리(靑森)

by 선농문화포럼. posted Aug 23,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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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연을 따라, 역사 따라
일본 아오모리(靑森)

김경임
前 튀니지 대사

 

선농문화포럼 주최 일본 아오모리현(靑森縣) 3박 4일 여행이 공지됐다. 사과의 고장, 푸른 숲의아오모리, 때는 5월 말, 사과의 계절도, 피서의 계절도 아니고 알려진 유적 하나 없는 변방의 땅이다. 개념 없는 여행이지 않을까 내심 우려했지만, 선농문화포럼 주최이니 일단 믿고 신청했다.


북해도와 가까워서 옛날부터 이민족인 아이누족들이 많이 거주했던 아오모리는 일본의 지배에끈질기게 항거해 왔기 때문에 일본영토로 늦게 편입돼 일본색이 옅은 가장 비일본적인 지역이다. 그럼에도 오늘날 아오모리는 가장 일본적인 지역으로 자타가 인정하고 있다. 어째서인가? 변방의 지역으로 개발이 가장 더디어 일본열도의 속살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적 감각을 자부하는 일본인들은 그들의 미의식이 아름다운 일본의 풍광에서 연유한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데, 그런 점에서 손대지 않은 자연미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아오모리는 일본미의 원소를 보여주는 가장 일본적인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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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아오모리가 가장 일본적인 이유로서, 아오모리는 1만년이전 일본열도의 선주민 죠몽인(縄文人)들의 근거지였기 때문이다. 십수만년 전, 일본열도가 대륙에 붙었을 때 북으로는 시베리아, 남으로는 동남아로부터 건너온 사람들이 일본열도에 거주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 한반도인은 건너가지 않았음.) 1만5천년 경지구 최종 해빙기에서 일본열도가 섬이 되자 이들은 일본열도에서 1만년 이상을 고립해서 살아왔다. 외부로부터 아무런 문화적충격 없이 자기들끼리 1만년 동안 도토리나 야생 밤을 줍고 원시림 속에 풍부한 작은 짐승이나 뱀 등을 잡아먹으며 채집과 수렵의신석기 시대를 보내면서 원시적이고 야생적인 독특한 생활을 영위했던 이들은 일본문화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그렇지만 이들 선주민들은 기원전 3-4백년경 한반도 남부의 쌀농사와 청동기, 철기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대거 진입하면서 혼혈, 동화되고 구축돼지구상에서 사라져버린 종족이 됐다.
5.27(일) 오전 10:00 인천공항을 출발, 12:30 아오모리 국제공항에 도착. 상쾌한 봄바람에 날씨는 청명했다. 도착 첫 날은 1603년축성된 히로사키 성(城)을 방문했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 직후 폐성령(閉城令)을 내려 막부의 흔적이 보이는 각 지방의 성을 모조리 철거했고 일본성의 상징인 천수각(天守閣)이 제대로 남아있는 몇몇 성만을 남겨두었다. 히로사키성은 제대로 된 천수각은 아니지만 아오모리 현의 유일한 유적인 점이 감안돼 철거되지 않고그대로 남아 지금은 일본 7대 성 중의 하나가 됐다.


둘쨋날, 맑음, 잔잔한 바람. 아오모리 남부 핫코다(八甲田) 산악이수만년 전 몇 차례 폭발해 형성된 분화구 호수 도와다코(十和田湖) 동쪽에서 발원해 태평양으로 흘러들어가는 오이라세 계곡을따라 걷는 오이라세계류(奥入瀬渓流) 트레킹의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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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와다호수는 울릉도 면적보다 약간 작은 60평방km이며 호두를 반으로자른 모습이라 하지만 기우뚱한 세발달린 솥 모양이다. 계곡을 따라 둘러친 암벽에서 흘러내리는 수십 개의 폭포 줄기가 병풍처럼펼쳐진 그야말로 폭포가도 트레킹 길에는 절벽에서 떨어지며 무섭게 회오리치는 아수라 폭포가 있는가 하면, 조용히 흘러내리는하얀 실줄기(白絲)폭포, 부드럽게 드리운 흰 비단(帛絹) 폭포, 한꺼번에 병 채로 들이붓는 듯한 쵸시 대폭포(銚子大滝)가 펼쳐지면서 폭포의 장엄한 북소리는 어느새 가야금 소리로 잦아들기를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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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에는 고사리와 야생초가 무성하고 계곡 양쪽으로는 노송나무, 너도밤나무, 단풍나무의 원시림이 짙푸르게 우거지고 그 사이사이로 햇빛과 바람이 드나들며 몸을 실어 나르는 듯하다. 계곡길은 좁아서 홀로 걸어야 하는데, 굽이진 계곡을 돌다보면 앞사람의 모습을 잃기 십상. 그래서 계곡을 따라 말없이 홀로걸으며 오랜만에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음은 트레킹의 귀한 덤이다.


오이라세계류 트레킹 코스는 직선 14km라 하지만, 굽이진 계곡을 따라 걷다보니 족히 20km이상을 걸었다. 일행 모두가 완주, 주최 측이 선사한 눈부신 노스페이스 흰 운동화를 신고 날아가는 듯.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는다 하였지? 모두가 무지하게 잘 걸어본 사람들이다! 트레킹 후에는 도와다호수의유람선을 타고 드넓은 호수를 돌아서 호텔로 귀환. 주상절리에 둘러싸인 잔잔한 비취색의 호수를 미끄러지는 유람선은과격한 트레킹 일정을 위로하고 피로를 풀어준 보상이었다.


셋째날. 표고 1500m 핫코다산 탐방. 이 산에서 1902년 210명의 일본 보병대가 눈보라와 조우해 199명이 조난당했다는 무시무시한 가이드의 설명에 놀라 등산화와 점퍼로 중무장하고 나섰지만,650m 고공의 로프웨이, 일종의 케이블카로 2.4km 왕복하는 가벼운 코스로 대신.


과격한 트레킹과 핫코다 험산 방문에 대한 반격으로 유적지와 미술관 방문으로 구성된 문화투어가 기다렸다. 유적지는 야코다 산아래의 산나이마루야마(三内丸山). 이 유적지는 7-5천년 전의 조몽인들의 주택, 창고, 묘지, 망루, 도로를 갖춘 약 10만평에 달하는집단거주지였다. 1990년대에 본격적으로 발굴돼 조몽토기 1점과 조몽토우(土偶) 1점이 일본의 국보로 지정됨에 따라 조몽인들의 작품은 일본 예술의 원형으로 간주되고 있다.


자신들이 천황 아래의 신민(臣民)인 야마토(大和) 민족임을 굳게믿어온 일본인들은 천황의 지배 밖에 있었던 선주민들에 대해 아무런 유대감이나 관심도 없었거니와 선주민들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다 메이지 시대에 처음으로 신석기 패총이 고고학적으로 발굴됨으로써 선사시대에 줄로 꼬은 무늬가 찍힌 토기, 즉 조몽(縄文)토기를 사용했던 선주민들이 존재했음이 밝혀졌다. 그러나 이러한 조몽인들의 흔적은 철저히 무시되었다가 근래 조몽토기가 인류 최고(最古)의 토기였다는 점이 고고학적으로 밝혀지면서 일본에서는 최근에야 조몽인들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관심이 생겨났다.


유적지 도착 전 버스 안에서 조몽인에 대한 약간의 사전정보를 간단히 학습한 우리 방문단 일행은 조몽 유적지를 감상할 충분한 태세를 갖췄다. 청명한 날씨임에도 관광객이 별로 없이 한산한 유적지에 한국인 중년들이 떼로 몰려와 조몽인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표하는 데 대해 안내인은 일견 당황하고 의아해 하면서도 흐뭇한표정이 역력했다. 후덥지근한 유적지 내의 복제건물을 열심히 들락거렸던 우리들의 진지한 모습이 감동적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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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일정은 조몽과는 180도 성격이 다른 현대미술 관람. 야코다산 아래, 조몽 유적지에 인접한 아오모리 현립미술관의 산뜻한 백색 건물 그 중앙의 넓고 높은 알레코 홀. 여기에는 마르코 샤갈의9m×15m 대형작품 4점이 사방 벽에 걸려 있다. 이들 작품은 1942년 뉴욕 발레 시어터가 푸시킨의 시 “집시”를 원작으로 차이코프스키가 음악을 담당한 발레 “알레코(Aleko)”를 제작하면서 샤갈에게 의뢰해 무대 배경화로 제작된 4점의 판페라 그림이다. “달빛 아래 알레코와 젬피라”, “카니발”, “어느 여름날 오후의 밀밭”,“세인트 피터스부르크의 환상” 이들 4점 중에서 3점은 아오모리미술관 소장이고 1점(“어느 여름날 오후의 밀밭”)은 필라델피아 미술관에서 2020년까지 대여한 것인데, 4점 모두의 전시는 아오모리 미술관이 아니면 보기 어려운 것으로 아오모리 방문의 예기치 않았던 큰 수확이었다. 이 밖에도 미술관은 아오모리 출신의 세계적 팝 아티스트 나라 요시토모(奈良美智)가 헌정한 “아오모리 개(靑森 犬)”라는 대형 철근조각상(흰 몰탈 도장) 등 볼만한작품들을 다수 전시하고 있어 세계 일류 미술관으로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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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라세계류 트레킹 대장정의 감동이 가시기 전에 문화적 일격을 받은 우리로서는 이 여행의 무게와 오묘함을 새삼 느끼지만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다른데 있었다. 마지막 날 묵은 “숲속의 호텔(森の호텔)”은 그대로 산중의 조용한 궁전이다. 호텔방의 창문을여니 아래에는 숲의 바다가 펼쳐져 있었고 호텔 분위기에 딱 맞아떨어진 정중한 영접에 최고급 프랑스 요리와 포도주의 우아한 만찬은 그 날이 여행의 마지막 밤이라는 서글픔을 안겨줄 정도로 인상 깊었다. 그렇지만 이 만찬도 하이라이트는 아니었다. 만찬이끝난 후 우리 일행은 떼 지어 호텔 밖으로 나왔다. 숲의 진한 향기가 밤안개에 퍼지던 이날은 보름날. 환한 달밤이지만 하늘에는 북두칠성이 뚜렷했고 그 사이를 흐르는 은하수도 볼 수 있었다. 호텔 앞 공터에서 달빛 아래 이야기하며 웃고, 노래도 조금 하고 몸을 흔들며 이리저리 거닐었다. 마지막 날 밤, 이 달밤의 체조는 단연 이 여행의 절정이었다.
작별을 슬퍼하듯 가랑비가 내리다 말다하는 여행 마지막 날 아침.핫코다산과 오이라세계류의 중간지점에 있는 들새의 늪, 쓰타누마(蔦沼)에 들어섰다. 산새들이 우짖는 너도밤나무의 군락지대숲길에는, 앞선 사람들의 괴성이 울릴 때마다 신비한 연못이 아침안개 속에 나타나곤 했다. 1시간, 4km 정도를 걸었더니 어느 틈엔가 비도 그치고 작별의 시간이 왔다.


여행 내내 선배가 하사한 과자와 커피도 좋았지만, 후배들이 진상한 커피맛은 진짜 일품이었다. 매일 저녁 진수성찬과 온천욕 후에달콤한 잠. 이렇게 3박4일의 아오모리 여행은 흘러갔다. 선주민과이민족이 점거했던 변방 중의 변방, 무지막지하게 튀어나온 북쪽의 시모키타 반도(下北半島), 초여름에도 두터운 눈구덩이가 여기저기 그대로 남은 위험천만의 하코다 산이나 웃기는 세발달린도와다 호수, 보기에는 우락부락하지만 속은 한없이 아름다운 아오모리, 그곳에도 서러움과 애수가 없을 리 없다. 아오모리에 바치는 노래로 이시카와 사유리(石川さゆり)가 부른 일본의 국민적 엔카, “츠가루 해협 겨울풍경(津 海 ・冬景色)”이 그것이다.


“우에노(上野)발 야간열차에서 내릴 때부터

아오모리역은 눈이 휘날리고

북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은 아무 말 없이

거센 파도소리만 듣고 있네요.

나도 홀로 연락선 타고추워 떠는 갈매기 보며 울고 있네요.

아~아 쓰가루해협 겨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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