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농문화포럼, 문화예술의 대중화 위해 씨앗을 뿌리다 - 편집자

by 선농문화포럼. posted Feb 15,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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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농문화포럼, 문화예술의 대중화 위해 씨앗을 뿌리다 
사단법인 선농문화포럼은 대중들에게 문화예술에 대한 갈증을 해소시켜주고, 
문화적 소통을 통한 사회 발전에 기여하고자, 문화교양지 <선농문화포럼> 창 
간호를 발행하게 되었습니다. 
계간으로 발행되는 회보 <선농문화포럼>은 문화예술 관련 정보지로, 문화예 
술계 소식과 사회 이슈 등 다양하고 깊이 있는 내용으로 구성됩니다. 
이번 창간호에는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개최한 이우환 작가와 
출판계의 마이더스로 불리는 쌤앤파커스 출판사 박시형 대표 인터뷰, 제2기 
인문?교양강좌 개설 소식 및 1기 인문·교양강좌 화보, 세계 미술사를 알기 
쉽게 소개한 <유럽 미술 산책>, 화제의 전시와 공연을 전하는 문화탐방 등 다 
양한 소식을 게재했습니다. 앞으로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참여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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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농의 의미(意味)

조선 태조 때부터 동대문 밖 전농동(典農洞: 現 동대문구 祭基洞) 선농단에 *적전(籍田)을 마련하고 경칩(驚蟄) 뒤의 첫 번째 해일(亥日)에 제(祭)를 지낸 뒤 왕이 친히 쟁기를 잡고 밭을 갈아 보임으로써 농사의 소중함을 만 백성에게 알리는 의식을 행했다.

그 기원은 신라 때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고려시대에 이어 조선시대에도 태조 이래 역대 왕들은 이곳에서 풍년이 들기를 기원하며 선농제를 올렸다. 선농단 앞에는 밭을 마련하여 제사가 끝나면 왕이 직접 경작을 하면서 권농에 힘썼다. 행사 때 모여든 많은 사람들을 대접하기 위하여 쇠뼈를 고은 국물에 밥을 말아낸 것이 오늘날 설렁탕의 유래이며, 선농탕이 설렁탕으로 음(音)이 변한 것이다.

현재 서울시 동대문구 제기동에 위치한 선농단은 시도유형문화재 사적 제436호로 지정됐으며, 제단은 사방 4m의 석축단(石築壇)이었는데, 《한경식략(漢京識略)》에는 1476년(성종 7)에 선농단을 축조하여 왕이 친히 제를 지내고 적전을 갈았다는 기록이 있다.

이 선농단 친경(親耕)은 1909년까지 행해지다가 일제강점기에 접어들면서 폐지됐다.

따라서 선농문화포럼은 이러한 정신과 뜻을 이어받아 문화소외계층에게 지식과 문화의 나눔을 전파하는데 앞장서며, 더 나아가 우리나라 문화발전에 이바지할 것이다.

 

*적전 (籍田) : 임금이 몸소 농민(農民)을 두고 농사(農事)를 지어, 거두어 들인 곡식(穀食)으로 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제전의 한 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