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외무성은 2014년에 ‘다케시마’(독도에 대한 일본 호칭) 관련 홈페이지를 개편했다. 2008년에는 팜플렛 ‘다케시마 문제를 이해하기 위한 열 가지 포인트’를 중심으로 독도가 일본 영토인 근거를 제시했다면, 2014년에는 이 외에도 전단지 형태를 추가해 알기 쉽게 홍보하고 있다.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에서 구성상 크게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 그것은 “다케시마 영유권에 관한 일본의 일관된 입장”에서 들어있던 4가지 포인트 가운데 하나를 빼거나 주(註)로 처리한 점이다. 그 내용은 “한국측은 일본이 다케시마를 실효지배하며 영유권을 재 확인한 1905년 이전에, 한국이 이 섬을 실효지배했었다는 것을 나타내는 명확한 근거는 제시하고 있지 않습니다”라는 것이다.
한국 외교부 홈페이지에서 새로 ‘실효지배’ 관련 내용을 추가한 적이 없음에도 일본이 한국에게 집요하게 요구하던 ‘실효지배’내용을 삭제하거나 축소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필자가 최근 발표하기 시작한, 1905년 전후 한국의 ‘실효지배’ 입증이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일본은 17세기 말 이른바 ‘다케시마 (에도시대 울릉도에 대한 일본 호칭) 도해금지령’을 내려 자국민의 울릉도 도해를 금지시킨바 있고, 1877년에는 최고의결기관인 태정관이 “다케시마 外 일도는 본방(일본)과 관계 없음을 명심”하라고 지령을 내린 바 있다. 여기서 ‘일도’가 독도임은 첨부지도로 증명됐다. 그런데도 일본은 이런 사실을 거론하지 않고 독도가 한국령임은 스스로 입증하라고 주장한다.
일본의 독도 편입에 앞서 대한제국은 1900년 10월 칙령 제41호를 내어 ‘석도’ 즉 독도가 울도 군수의 관할구역임을 명시한 바있다. 이는 한국이 1900년에 독도 영유권을 명시했음을 명백히 보여준다. 그런데도 일본은 1900년 대한제국 칙령의 ‘석도(石島)’가 다케시마 즉 독도가 아니며, 설령 ‘석도’가 ‘독도’라 할지라도 1905년 이전 대한제국이 이 섬을 ‘실효지배’한 사실은 없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런가?
1882년 이른바 울릉도는 개척령이 내려진 이래 이주민이 증가해 본격적으로 개척되었다. 울릉도 개척은 일본인의 침입이 증가한 데 따른 대응책이었다. 청일 전쟁 이후 한일 양국민이 비약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일종의 교역이 행해졌는데 당시 비개항장인 울릉도에서 목재나 곡물을 일본으로 반출하는 것은 불법이었다. 그런데 중앙정부의 지원이 없던 울릉도 도감은 일본인에게서 벌목료 혹은 수수료를 받고 교역을 묵인해주었다.
이후 울릉도가 울도군으로 승격되자 대한제국은 「울도군 절목(鬱島郡節目)」(1902)을 내려 일본인의 수출화물에 1%의 세금을 매기도록 함으로써 군수의 징세권을 인정해주었다. 그런데 1904~1905년의 울릉도 수출품목을 보면, 그 안에 독도에서 잡은 강치가 포함되어 있으며, 강치는 바다사자를 말하는데 이 호칭의 연원에 대해서도 탐구된 바가 없다.
『해양영토연구』 9호(동북아역사재단, 2015, 여름호)에 연구노트로 ‘<가제냐, 강치냐 : 호칭의 유래와 변천에 관한 소고>가 게재될 예정이다.’가 포함되어 있다. 절목대로라면, 일본인들은 독도강치에도 세금을 냈어야 한다. 당시 일본인들이 강치수출에 대해 세금을 냈음은 일본 외무성 기록이 증명하고 있다. 더구나 일본은 이를 ‘수출세’라고 이름 붙였다. 그 이유는 자국민의 울릉도 거주권을 주장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울도군수가 독도강치에 수출세를 부과한 것은 대한제국이 독도에 대해 ‘실효지배’를 해왔음을 의미한다. 일본인들이 독도를 울릉도의 부속 도서로 인정하지 않았다면 강치에 대한 수출세를 거부했을 것이다. 수출세는 물건에 따라 매겨지는 것이었으므로 독도 산물을 울릉도 산물과 분리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울릉도의 일본인들은 수출세를 납부할 때 독도강치를 제외하지 않았다.
이에 비해 같은 시기 일본 시마네현의 오키인들도 독도에서 강치를 잡았지만 1906년 이전 시마네현에 납세한 적이 없었다. 일
본이 독도강치에 세금을 부과하기 시작한 것은 편입 후인 1906년 3월(시마네현령 제8호)이다. 이에 대해 일본은 1905년 이전까지는 독도가 무주지였으므로 납세할 필요가 없었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성립하기 어렵다. 그 이유는 일본 외무성은 일본인의 납세를 ‘수출세’ 납부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무주지 산물에 ‘수출세’라는 이름을 붙이지는 않을 것이다.
1905년 이전 오키의 일본인은 독도를 무주지로 인식하고, 울릉도의 일본인은 독도를 울릉도의 속도(屬島)로 인식하는 일이 양립할 수 있는 것인가? 울릉도의 일본인이 군수의 징세 요구를 수용하고 독도강치에 대해서도 납세했다는 것은 독도를 울릉도의 속도로 인정했음을 의미한다. 최근 일본 외무성의 홈페이지 개편은 이런 사실을 의식, ‘실효지배’의 의미를 축소할 의도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한국 외교부와 학자들이 이런 변화를 감지하고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