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걀의 신비
글 권오길(강원대 명예교수)
뒷밭에서 수탉 한 마리가 암놈 댓 마리를 거느리고 고개를 치켜들었다돌렸다 두루 살피며 경계의 끈을 늦추지 않는다. 그러다가 짬만 나면 울대를 한껏 빼고는 연이어 꼬~끼오! 그러고 나면 어느새 다른 집 수탉이 울고…,이렇게 돌림으로 하루 종일 그런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수놈이 암놈을 쪼는 일이 없다. 물론 암놈이 달려드는 일도 결코 없다. 이것이 의초로운 닭의 금실(琴瑟)이다. 동네 결혼식이 있을 때마다 닭 한 쌍이 식장 중앙에 떡하니 버티고 있었으니 그 까닭이 여기에 있었다.
달걀은 크게 흰색과 갈색이 있으니
털색이 흰 닭이 흰 알을 낳고, 갈색인 것은 갈색 알을 낳는다. 엄마품은 제2의 자궁이라 하던가. 드디어 알을 안는다. 죽음을 마다않고 시련의 시간을 모질게도 견뎌내는 빛바랜 어미 닭은 초췌하며 몸이 축나고 털도 빠지고 파리한 것이 꼴같잖다. 똥을 누기 위해 잠깐 비우는 것 말고는 맨입으로 옹송그려 눌러앉아있다. 지루하게도 몸부림치며 틀어 안기를 스무 하루, 열매에 씨앗이 들었듯이 달걀에 병아리가 들었었다! 알을 깨는 아픔 없이 새 생명의 탄생은 없다. 둥지안에서 마침내 피붙이, 새 생명의 소리가 들려온다! 어머님 은혜는 백골난망(白骨難忘)이로소이다. *줄탁동기(啐啄同幾)라, 병아리가 알 속에서 부리로 알을 쪼고 어미도 새끼 소리를 알아듣고 알을 쪼아준다. 병아리의 부리는 약한지라 부리 끝에는 노란 원뿔 모양의 딱딱한 돌기인 난치(卵齒,egg tooth)가 붙어있어 그것으로 껍질을 깬다. 모름지기 서로 동시에 힘을 합쳐야 큰일을 이룬다. 병아리는 두 번 태어나니 곧, 암탉이 알을 낳고, 그 알을 품어 드디어 병아리가 태어난다. 부활절달걀(easter egg)의 의미를 알듯하다!
쪼르르 쫑쫑,
어미 따라다니는 병아리 떼! 갑자기 솔개가 덮치는 날에는 순식간에 어미 품에 들어가 숨는다. 언제나 긴장하여 사납기 짝이 없는 어미 닭이다. 저녁때면 어리를 열어서 싸라기를 흩어주어 안으로 끌어드린다. 밤공기가 추워지면 어느새 어미 가슴팍에서 고개만 쏙쏙 내 밀고 있다. 이렇게 어미가슴에서 자란 병아리라야 나중에 새끼를 잘 돌본다.
그런데 알을 안길 때 달걀 말고도 오리 알이나 꿩알을 안기기도 하니 그것들이 어미로 알고 따른다. 어미로 각인(刻印)된 암탉이다. 새벽닭이 어찌 제시간을 알고 운담? 닭 몸에 ‘생물시계 (biological clock)'가 들어 있어서 그렇다고 한다. 사람이나 닭이나 어둠에서는 송과샘(松科腺,pineal gland)에서 멜라토닌(melatonin)이 많이 분비하여 잠에 들지만(시차증후나 불면에 이 호르몬을 씀) 동틀 무렵 여린 빛에 멜라토닌 분비가 줄어들면서 닭이 잠을 깬다. 이기적인 인간들은 밤늦게까지 닭장에 불을 켜두어서 멜라토닌 분비를 늘려서 산란을 촉진 시키기도 한다.
달걀은 살아있는 단세포다!
달걀 하나의 무게는 57그람이 기준이다. 겉의 달걀껍데기와 안에 있는 두 겹의 얇은 알 막과 흰자위까지 합쳐 모두가 세포막에 해당하고, 노른자위(난황)가 세포질이며, 노른자의 양쪽에 알 끈이 붙어있어서 항상 위로 자리를 잡는 배반(胚盤,germinal disc)이 핵에 해당한다. 달걀표면에는 7,000여개의, 눈에 안 보이는 작은 홈이 그득 있다. 표면적을 넓게 하여 산소와 이산화탄소의 교환을 원활하게 하자는 것이다. 덧붙이면, 뭉뚝한 쪽에 있는 공기집(그러므로 달걀을 냉장고에 보관 할 때는 뭉툭한 부분이 위로 가게 세움)에는 공기가 들어있고, 양분을 산화하여 에너지를 낸다. 그러므로 오래된 달걀이면 일수록 내용물이 점점 줄어들어 안이 비어 꿀렁인다. 그래서 삶은 달걀껍질이 쉽게 벗겨지는 것은 오래된 알이요 잘까지지 않는 것은 신선한 달걀이다.
달걀을 삶은 다음에 너나 할 것 없이 찬물에 식힌다. 왜? 어떤 노른자는 샛노란데 어떤 것은 거무스레한 것이 푸르스름하다. 후자는 달걀노른자에는 들어있는 철분(Fe)과 황(S)이 37℃ 근방에서 황화철(FeS)이 된 탓이다. 결국 찬물은 철과황의 결합을 막아서 노른자가 제 색을 내게 된다. 어라! 달걀
에 화학이 숨어있었구나!?
정신일도 달걀세우기!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고 돌아와 벗들에게 뻐기고 있었지만 동무들은 퉁명스런 반응을 보인다. 화가 난 콜럼버스는 옆에 있던 달걀 하나를 치켜들어 친구에게 그걸 세워보라 한다. 그가 못 세우자 확 빼앗아 책상위에 탁! 깨어 세웠으니, 이것이 발상(의식)전환의 예로 드는 ‘콜럼버스의 달걀’이다. 이런 이야기를 자주 들어온 탓에 아무도 달걀을 세워보려 들지 않는다. 달걀은 실제로 잘도 선다. 12시간에 429갠가를 세운 것이 세계기록이다. 믿음과 끈기로, 열 손가락으로 오긋이 감싸 쥐고 세워 볼 것이다. 정신일도(精神一到) 달걀세우기! 오뚝 서있는 달걀에서 더없는 성취감을 느낀다. 무릇 창조는 선입관의 타파에서 비롯한다.
*줄탁동기(啐啄同幾)
병아리가 알에서 나오기 위해서는 새끼와 어미닭이 안팍에서 서로 쪼아야 한다는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