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짓기, 행복한 삶을 담는다! - 연경흠

by 홈페이지관리자 posted May 08,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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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집에서 살아왔다. 현대건축이 들어오면서 아파트라는 주거형태가 자리를 잡았다. 아직도 도시계획차원에서 정비구역이 확정 되면 여지없이 대단위 아파트가 들어선다. 한옥이든 양옥이든 땅을 밟고 사는 주거형태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아파트는 선분양으로 인기몰이를 한다. 분양이 잘된 단위평면은 다음 사업에 또 적용되고 아파트는 점점 획일화 되어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똑같은 공간에서 획일화되는 우려를 낳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집을 건축물로 보지 않고 부동산으로 본다. 그래서 우리 집의 수명은 짧다. 공학적 수명보다 사회적, 경제적 수명으로 건축물을 판단한다. 사업성이 있어 돈이 된다면 곧 재건축으로 들어간다. 청와대와 문화재를 제외한 모든 건축물은 재건축 대상

인 듯싶다.

 

 

집을 짓는다는 것은 좋은 것이다. 집을 짓는다는 것은 그 집의 생활과 삶이 변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집에 살고 있는 구성원이 늘어나고 쓰임이 늘었으니 좋은 것이다. 반대로 식구가 줄거나 쓰임이 작아져도 헐어내거나 철거하지는 않는다. 다른 쓰임이 있는 사람에게 주기도하고 팔기도 한다. 이윤을 추구하면서 이것을 돈벌이로 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소위 집장수라는 몇몇 사람들이 이윤을 극대화하면서 부실이 발생한다. 그 부실을 막으려고 법으로 규제를 한다. 설계 감리비를 덤핑가격으로 틈새를 파고드는 인허가사무실 건축사도 있다. 이렇게 집이 만들어지면 삶이 불편하고 집은 부실하게 되기 마련이다.

 

 

건축(建築)이란 말은 근대 일본에서 들어온 말이다. 집은 주거형태의 건축으로 한정하는 경우가 많지만 세우고 쌓는다는 건축(建築)이라는 말보다 집을 짓는다는 말이 정감이 있어 더 좋다. 흔히 건축은 살기위한 기계요, 삶을 담는 그릇이라 한다. 집을 보면 그집을 사용한 집주인의 삶을 엿 볼 수 있다. 반대로 집을 짓기 위해서 건축가는 건축주의 삶을 잘 알아야 하고 건축주와 건축가는 한 목소리를 내야한다. 그래서 좋은 건축가가 되려면 먼저 뜻이 맞는 좋은 건축주를 만나야 한다고 얘기들 한다.

 

 

우리는 집에서 산다. 눈을 뜨면 보이는 것이 건축이고 눈을 감고 느껴지는 것도 건축이다. 건축은 인간 중심이며 인류사에서 건축을 빼고 이야기 할 수 없는 것이다. ‘건축은 무엇이고, 왜 하는가?’를 먼저 생각하고,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건축은 실체와 실체 사이의 빈 공간을 다루며 공간을 형성하는 것이다. 하지만, 공간보다는 눈에 보이는 실체만 의식하며 그 형태를 더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루빈의 잔처럼 흰 바탕에 검은 잔을 보면 검정 바탕에 마주보는 두얼굴을 보지 못하는 것과 비슷하다. 물론, 도형이나 형태도 개성 인지 방식에 따라 다르게 보이겠지만 형이나 형태가 체험을 통해 형성한 형태로 지각될 가능성이 큰 만큼, 건축가는 자기 성찰을 통한 폭넓은 체험과 훈련을 바탕으로 공간과 형태를 디자인해야 한다. 과거의 삶을 돌아보고 현재의 일상을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한다.

 

 

‘어떤 삶을 담을 것인가?’가 정해지면, ‘어떻게 담을 것인가?’를 스터디한다. 대지현황이나 재정, 공사여건을 반영하여 크고 작은 공간을 나열하기도 하고 수직으로 쌓아 올리기도 한다. 공간을 열어 개방감을 주고 자연을 끌어 들이기도 한다. 공간을 닫아서 외부의 영향을 차단하고 개인의 사생활을 보호하기도 한다. 때론 자리를 그냥 비워두기도 한다. 문의 크기와 위치는 인간의 동선과 행동을 통제하고 창은 인간의 시선을 유도한다. 일련의 작업을 통해 서로 연결되고 단절되면서 장소의 관계가 형성되며 우리 삶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우리는 집을 지으면서 너무 쉽게 편리한 기능을 추구한다. 동선은 짧아야 하고, 철물은 녹이 슬지 않는 스텐인리스 철물을 좋아하고 썩지 않는 방부목을 선호한다. 칠이나 벽지 같은 마감재는 때가 타지 않는 기능을 넣어야 잘 팔린다. 고가의 자연목바닥재를 깔고 까질까봐 인위적으로 코팅을 하는 웃지 못 할 일도 생긴다. 이런 재료를 사용하여 집을 지으면 많은 사람들은 유지관리가 쉽고 수명이 길어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가면 집도 자연스럽게 변화되어 가야한다. 시간이 정지되어 버린 듯 고착화된 물성은 쉽게 싫증이 난다. 잘 관리된 고택에서 풍기는 멋스러움은 그 집주인의 인품과 같은 그 집의 격을 얘기하는 주요한 요소가 되기도 한다. 편리한 기능이 최우선이었던 집은 사라져가고 있다. 형태를 결정짓는 요인은 기능이 아니라 인간의 기본 욕구 충족에 따른다는 생각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건축을 왜 하는가?’하는 질문을 다시 생각해본다. 대다수 인간이 행복을 추구한다고 전제하면, 행복하기 위해서 집을 짓는다는 말이 좀 더 근사한 대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편리함보다는 기본욕구가 충족되어야 그 집에 담긴 삶은 행복해지리라... 행복한 우리의 삶을 담은 집을 짓는다는 것이 그리 어렵기 만한 것은 아니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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