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단국대 의예과 교수
얼음 위에 웅크리고 있는 북극곰의 슬픈 눈을 보면 괜히 미안해진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얼음이 줄어들어 북극곰의 개체 수가 줄고 있다는 보도가 생각나서다. 이 삭막한 세상에 북극곰이 멸종한다면 지구가 훨씬 더 스산해 질 것 같다. 하지만 북극곰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동물 이 아니다. 인터넷에서 북극곰을 찾아보면 이렇게 돼 있다. ‘완벽함에 가까운 살상 병기 사망 원인인 중 하나가 북극곰이란다. 실제로 동물원에서 북극곰을 보다 우리로 추락한 여성이 있었다. 동물원에 있는 만큼 그 북극곰은 먹을게 늘 풍족하게제공됐겠지만, 그 녀석은 망설임 없이 여성을 공격했다! 사정이 이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북극곰을 좋아하는 이유가 뭘까? 한 가지는 북극곰을 직접 겪어본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북극곰을 TV나 동물원처럼 안전한 곳에서만 관찰하다 보니 그 녀석의 위험성을 알지 못한다는 얘기다. 두 번째, 언론플레이를 들 수 있다. CF에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탓에 길가에서 북극곰을 만나도 콜라 하나만 주면 군 말없이 보내줄 것 같은 느낌까지 든다.
다른 동물도 마찬가지다. 동물원에 있는 코끼리를 보자. ‘코끼리 아저씨는 코가 손이래’라는 동요로 인해 우리는 어려서부터 코끼리에 대해 존경심을 갖게 된다. 또한 디즈니에서 만든 아기코끼리 덤보라는 애니메이션은 코끼리가 매우 귀엽고 온순하다는 착각까지 불러일으킨다. 위기에 빠진 타잔을 구해주는 코끼리 떼를 비롯해서, 매스컴이나 그림책에서 코끼리에 대해 부정적인 내용을 보여준 적은 한 번도 없다. 실제의 코끼리는 어떨까. 언젠가코끼리가 소변과 대변을 한꺼번에 보는 광경을 봤다. 소변줄기가 어찌나 굵은지 폭포 수준이었고, 그러는 동안 뒤에는 변으로 이루어진 산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 때부터 코끼리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졌던 것 같다. ‘뭐 이런 걸 가지고 그러느냐, 너는 변 안보냐’ 라고 할 사 람이 있을 것 같아 다음 증거를 제시한다. 한 기사에 따르면 인도에서는 코끼리에 의한 살인사건이 종종 벌어 진단다. 한 코끼리는 배고픔 때문에 사람을 공격해 4명 이죽었단다. 상아 때문에 멸종 위기에 처한 건 분명안타까운 일이지만, 북극곰이 그런 것처럼 코끼리 역시 언론 플레이로 인해 많은 이득을 본 녀석이란 얘기다.
이제 기생충을 보자. 교육부 공무원이 민중이 개돼지라는 발언을 했을때, 조정래작가님은 이런 말로 공무원을 욕했다. “민중이 개돼지면 그러는 너는 기생충이냐.” 여기서 기생충이 소환된 이유를 난 알지 못한다. 애써 짐작해보면 조작가님이 아는 욕 중 가장 심한 것이 기생충이라 그런 게 아니었을까 싶다. 조작가님뿐 아니라 많은 이들이 기생충을 싫어한다. 요즘 젊은이들은 기생충에 걸린 적도, 본 적도 없지만, 그럼에도 기생충에 대한 그들의 혐오감은 상상 이상이다. 왜 그럴까? 예전부터 내려오던, 기생충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가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실제로 기생충은 과거 사람들을 괴롭혔다. 1950년대만 해도 1인당 기생충을 100마리씩 갖고 있었 는데, 기생충의 하루식사량이 밥풀 한톨에 불과할지라도 먹고 살기 어려웠던 그 당시엔 기생충에게 빼앗기는 밥풀 100톨이 큰 타격이었을 것이다. 특히 1964년 저지른 회충의 범죄는 변명이 불가능하다. 9세 여아가 갑자기 배가 아파 죽었는데, 그녀의 몸에서 1063마리의 회충이 나온 이 사건은 박정희 대통령으로 하여금 기생충박멸 협회를만든이유가됐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우리가 못 살던 시절의 얘기일 뿐, 지금은 좀 다르다. 기생충의 숫자도 줄어든데다 영양상태가 좋아져 기생충 10마리가 몸에 있다해도 아무런 지장이 없다. 게다가 기생충이 없어짐으로써 알레르기를 비롯해 그 전에 없던 면역 질환이 가파르게 늘어나고있다. 상황이 이럼에도 사람들의 기생충 혐오가 여전한이유는 매스컴 탓이다. 시모토아 엑시구아라는 기생충이 있다. 물고기 입에 사는 이 기생충은 자신의 실수로 물고기의 혀를 없어지게 만든다. 그로 인해 ‘혀를 먹는 기생충’으 로 소문이 났지만, 그 뒤 시모토아가 하는 행동에 주목 할 필요가 있다. 시모토아가 죽을 때까지 물고기 혀노릇을 대신한다는 것. 가뜩이나 진솔한 사과가 부족한 우 리 사회에서 자신의 잘못에 끝까지 책임을 지는 시모토아의 정신은 오히려 본받아야 할 점이다. 그런데 매스컴은 시모토아의 외모에만 주목하는데, ‘에일리언같은 기 생충 - 상욕 나오는 비주얼’이란 제목의 기사는 대표적인 예다. 시모토아 이외에도 기생충에 대한 기사는 대부분 부정적이다.
TV나 영화가 기생충의 긍정적인 면을 부각시켜 주면 좋을 테지만, 영화를 보면 한숨이 나온다. 곤충 에만 기생하는 연가시가 변이를 일으켜 사람을 공격해 죽게 만든다는 이 영화는 그 전까지 1급수에만 살면서 고고함을 뽐내던 연가시를 졸지에 적으로 만들었다. 우리나라 영화는 아니지만 일본에서 만들어진 <기생수>란 영화도 대중들의 편견에 기댄 것이기는 마찬가지다. 그 영화에는 사람의 뇌로 들어가 사람의 행동을 조종하는 기생충이 나오는데, 일단 기생충의 조종을 받게 되면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을 마구 잡아먹는다. 기생충이 숙주에게 증상을 일으키는 것은 뭔가 얻고자 하는 바가 있기 때문이지만, 그 영화에서 기생충이 다른 사람을 잡아 먹는데는 어떤 이득도 없다. 오히려 그런 난폭한 점 때문에 경찰의 추적을 받게 되고, 결국 모조리 몰살 당하는 이유가된다.
‘기생충을 미워한다 해서 그게 뭐 어쨌단 말이냐’라고 할 지도 모르겠다. 내가 미워한다는데 그러지 말라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지만 어떤 것 이든 지나친 편견은 득 보다는 해가 많다. 기생충을 이용해 면역질환을 치료하거나 이식된 신장의 수명을 늘이는 연구를 한다면 인류에게 큰 이득이 될수있지만, 기생충에 대한 혐오가 이런 유익한 연구마저 가로막으니 말이다. 게다가 기생충은 아이들로 하여금 과학에 관심을 갖게 만드는 유용한 수단이다. 노벨과학상 22명을 배출한 일본이 수도 도쿄에 기생충 박물관을 갖고 있는 건 우연이 아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할까? 지금부터라도 기생충을 예뻐해보도록 노력하자. 북극곰에게 갖는 연민의 5%만 발휘해 준다면, 기생충이 사람들의 벗이 되는 건 충분히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