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형완
JustWine 대표
‘가장 재미있는 축구 경기는 어느 팀끼리 겨루는 경기일까?’
아마도 우리나라 국민 대부분은 한-일전이라고 대답하는 데 이의를 달지 않을 것입니다. 화려한 개인기와 세계 최고의 기량을 가진 선수들끼리 겨루는 유럽의 유명한 리그의 경기 는 훨씬 수준 높은 경기겠지만, 우리나라와 일본 두 나라에 얽힌 과거 때문에 반드시 이겨야만 하는 소망이 있고, 선수 들의 특징과 기량을 알고 있기에 그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우리는 마음 졸이며 보게 됩니다. 와인도 평가가 좋고 비싼 와인이 당연히 맛은 있겠지만, 내 주머니 수준에 맞는 와인 이라도 그 배경과 의미를 알고 마시면, 규칙과 선수들을 알 고 보는 운동 경기가 더욱 재미있는 것처럼 또 다른 풍미와 새로운 느낌을 전해줍니다.
10여 년 전만 해도 와인은 독특한 취향을 가진 일부 상류층 의 전유물로만 생각했는데, 이제는 주위에서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친근한 아이템이 됐습니다. 그러나 와인은 종 류도 많고, 뜻도 모를 말로 복잡하게 씌어진 라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고, 맛과 향을 표현하는 현란한 표현이 낯설어 아직도 가까이하기에는 먼 친구처럼 느껴진다는 분 도 많은 것 같습니다. 와인에 대해 알고 싶다는 생각은 우리가 늘 접하게 되는 생활과 밀접한 것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 됩니다. 더구나 와인은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재미있는 ‘호기심 덩어리 아이템’입니다. 그렇게 많은 와인에 대한 이 야기가 만들어지고, 무슨 맛이 있기에 한 병에 몇 백만 원에 팔리는 와인도 있는 것일까? 와인에 대한 이야기가 서구인 들의 대화에서 언제나 흥미 있는 주제가 되고 있다는 것 자 체가 우리에게는 호기심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라틴어 In Vino Veritas(영어로는 In Wine, Truth)는 ‘와인을 마 시면 그 사람의 진실이 나온다’는 뜻인데, 우리 속담 ‘취중에 진담이 있다’는 같은 의미의 말에 와인이라는 단어가 들어 있는 것을 보면 아주 오래전부터 와인을 마시고 취한 경우 가 종종 있었나 봅니다. 그러나 서양에서 와인은 술이라기 보다는 음식의 범주에 더욱 가까운 것으로 분류돼왔습니다. 아마도 우리의 아침 식탁에 놓인 콩나물국과도 같은 친근한 존재라고도 볼 수 있지요
서구에서는 역사적으로도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와인 이 인간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던 듯합니다. 이 세상의 악을 휩쓸어간 대홍수가 지나고 노아가 포도나무를 심고 와인을 만들어 마셨다는 이야기부터 성경에는 포도주 의 비유가 500여 회에 걸쳐 언급되고 있고, 고대 이집트의
벽화에도 와인을 만드는 벽화가 발견되며, 종교적인 의식 성찬에 사용되 고, 군대에서는 중요한 군사 물자로, 의료용으로도 와인이 사용됐다고 합 니다. 와인의 제조는 한때 수도원만이 할 수 있는 특권이기도 했고 언제나 지배 계급의 부와 욕망의 산물이었기에 유럽의 역사에 와인은 종종 등장 합니다. 현재에도 서양의 부자들은 좋은 와이너리(Winery) 소유를 꿈꾸고 있다고 하며, 멋지게 꾸며진 서양의 포도 산지와 와이너리들은 유명한 관 광 코스로도 개발되어 있답니다.
그렇다면 와인을 배운다는 것은 무엇을 알고자 하는 것일까요? 와인에 대 해 호기심을 채워가다 보면 와인의 스타일을 알려주는 포도의 품종과 산 지의 특성을 알게 돼 라벨만 보고도 대략 어떤 와인인지 가늠하는 요령 도 생기며, 따라서 내가 좋아하는 와인을 고르는 재미도 있고, 와인을 즐 기면서 와인과 연관된 역사와 배경, 문화에 관한 새로운 지식도 덤으로 알 게 됩니다. 예를 하나 들어볼까요? 미국의 고급 와인 중에 ‘Opus One’이라 는 와인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비싸고 좋은 와인으로 알고 마십니다. 그 와인은 프랑스 보르도 1등급 와이너리의 주인인 Baron Philip Rochschild와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와이너리의 주인공 Robert Mondavi가 보르도 1등급 포도 종자를 캘리포니아에 옮겨 심어 1984년 처음 출시된 와인입니다. 업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이 와인은 그간 싸구려 이미지의 미국 와인을 단번에 고급 와인으로 끌어올린 제품이었지요. 여기서 Opus 란 ‘작품’이라는 의미의 라틴어로 Opus One은 ‘첫 번째 작품’이라는 의미랍 니다. 그러고 보니 모차르트 교향곡 주피터 교향곡 앞에 Op.41로 씌어 있 는 것이 41번째 작품을 의미하는 것이었군요. 아하! 음악을 전공하는 사람 들이나 알게 되는 상식을 와인을 즐기다 보니 자연히 알게 됐습니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와인이지만
그 지식은 와인을 즐기기 위한 수단이랍니다.
‘좋은 와인과 함께하면 모두가 친구가 된다’는
격언처럼 와인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즐겁고 편안한 시간을 보내게 해주는
좋은 음료입니다.
혹시 좋은 날 마시려고 오랫동안 보관만 했던 좋은 와인이 있으신지요. 좋 은 날을 기다리기보다 가장 친한 친구를 불러 와인 한 잔을 같이 나누면 바로 오늘이 기억되는 좋은 날이 되겠지요. 친구와 같이 떠나는 여행지를 알아보듯 와인에 얽혀 있는 얘기도 살짝 알아본다면 더욱 풍성하고 특별 한 오늘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