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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친구되기, 바흐를 중심으로

 

정윤수 (성공회대학교 외래교수)

 

 

바흐는 젊은 날에 아른슈타트와 뮐하우젠에서 오르간 연주자로 일했으며 바이마르 공작의 예배당에서는 오르간을 다뤘고 서른이 넘어서는 쾨텐의 궁정악장을 맡았다(1717-1723년). 쾨텐 시절에 바흐는 교육용 클라비어곡들과 궁정의 유희를 위한 기악 합주곡을 다수 작곡하게 된다.

 

이 때에 이미 바흐는 각종 악기의 모든 신경계통을 완벽하게 조율할 줄 아는 외과의사가 되었다. 독일왕정의 일시적 평안과 맞아 떨어지는 [브란덴부르크협주곡]의 화사한 선율, 첼로의 무한한 가능성의 극한을 이끌어낸 [무반주 첼로 모음곡], 교육용 소품이자 당대의 거장들이 예술가적 운명과 자존을 걸고 정면승부를 펼치게 만드는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그리고 수많은 오르간 곡집과 협주곡들. 이 쯤에서 바흐가 음악적 일생을 마쳤다 해도 그는 음악사의 한페이지를 굵은 고딕체로 장식하고도 남을 만하였다. 그러나 바흐는 중세의 겨울이 자신에게 맡긴 유산을, 아니 그 자신이 근대의 첫 봄을 살아갈 후예들을 위해 스스로 쌓아나갈 유산을 이 쯤에서 멈추지 않았다. 30대 중반에 취임하여 1850년에 숨을 거둘때까지 봉직했던 성 토마스 교회 칸토르 시절이야말로 위대한 유산의 거대한 보고가 아닐 수 없다.

 

1723년의 라이프찌히는 인구 3만 명을 헤아리는 소도시였지만 전통적인 독일 패권주의를 상기한다면 그다지 적적한 곳은 아니었다. 게다가 독일의 각 지역이 남쪽의 유럽 국가들에 비해 문화적 자산이 넉넉치 않았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두어 개의 극장과 오페라 하우스, 그리고 음악적 재능이 넘치는 자를 악장으로 모셔오는데 주저함이 없었던 성 토마스 교회로 인해 라이프찌히는 비교적 음악 활동이 활발한 곳이었다. 바흐는 30년 가까이 이 도시에서, 고결한 성직자적 태도와 새로운 음악에 대한 폭포수같은 정열로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음악적 유산을 오늘날에 남겨주었다. 칸토르에 취임한 이듬 해 [B단조 미사]를 봉헌한 바흐는 수많은 칸타타와 기악곡들, 그리고 필생의 대작 [마태수난곡]을 뿜어냄으로써 가차없이 음악사의 최고 반열에 올라섰다.

 

이러한 종교음악뿐만 아니라 바흐는 [평균율 클라비어곡집]과 [푸가의 기법] 등을 통해 서양음악의 기초를 탄탄하게 굳혔으며, 이러한 기악곡은 음악에 처음 배우는 어린아이에서 꽤 수준있는 감상자들, 그리고 기악으로 일가를 이룬 거장들까지도 지금 이순간 지구 곳곳에서 맹렬히 도전하고 있는 곡이 되고 있다. 바흐 건반음악에 주목할 만한 연주를 남긴랠프 커크패트릭은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을 일컬어 ‘음악의 성서’라고 칭하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 작품집은 전세계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다시 말해 이 작품은 수용하는 이방에 따라 모든 이들에게 각기 다른 의미를 부여해 준다고 할 수있다. 요컨대 사람들은 이 곡들을 통해 영원히 마르지 않는 음악적 샘물을 길어올릴 수가 있다. 피아노를 연습하거나 작곡을 공부하거나 음악 분석을 시도하는 등 음악에 관한 모든 경우를 망라해서 그렇다는 말이다.”

 

어떤 음악사가는 바흐가 독일 국경을 한번도 넘지않았다고 말한다. 바흐 연표를 면밀히 살피면 이 사가의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다. 앞서 보았듯이 성토마스 교회는 바흐에게 하루 4시간 씩 학생들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음악과 라틴어)과 교회의 각 예배에 맞는 음악을 준비할 것을 요구하였고 허가 없이 함부로 도시 바깥으로 나가지 말아야 한다고 엄격히 경고하였다. 바흐와 그의 시대, 좁게 말해서 독일의 소도시 라이프찌히의 바흐를 우리는 역사상 유례가 드문 ‘조화로운 공간’으로 파악하는 것이 올바르다고 하겠다. 노예제를 바탕에 깔면서도 찬란하게 빛났던 그리스 문화의 그것처럼 바흐와 라이프찌히는 중세와 근대의 틈새에 피어난, 특수하지만 있을 수있는, 대단히 조화로운 공간이었음이 분명하다. 루터파 프로테스탄티즘이 사회의 밑바탕에 전면적으로 깔리고 곧 ‘합리적 이성’의 거목 임마뉴엘 칸트가 자라날 독일의 환경은 성실하고 근면한 바흐에게는 사회적 대립감을 느끼지 않아도 될 조화의 공간이었다.

바흐는, 종교적 신념으로는 이미 근대를 살고 있으되 정치적 구조와 생산력 발달 수준에 있어 아직 중세에 머물러 있던 독일의 상황에 걸맞는 비탄에 찬수난곡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라이프찌히라는 조화로운 공간에 몸담았던 바흐는 자신의 시대, 곧 이념적으로는 이미 근대의 초석이 깔렸으나 사회적 환경으로는 그 어떤 지역보다 낙후해있던 독일에게 자신의 모든 재능을 아낌없이 바쳤다.

 

음악적으로 이미 근대를 살고 있었던 바흐. 그는 중세의 두꺼운 외투를 벗어던지고 근대의 찬란한 햇살을 맞이하고자 했던 창조적 인간이었다. 미술사학자보링거는 고딕 건축의 완벽에 가까운 견고한 축조성을 두고 ‘숭고한 노이로제’라는 표현을 썼는데, 음표와 음표 사이의 순간적인 공간 속에도 전율에 가까운 중세적 긴장을 가득 채워버린 바흐의 탄탄한 악보들이야말로 중세에서 근대로의 인류사적 발전을 음악적으로 표현한 위대한 음악가의 ‘숭고한 노이로제’의 영롱한 결정체에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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