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베스트 5 - 김현숙

by 선농문화포럼. posted Apr 27,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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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숙

영화평론가, 외국인영화제집행위원

 

 

한국영화 1백년사에서 가장 뛰어난 영화 5편의 선정리스트. 봉준호, 이 창동, 허진호, 윤종빈 감독의 대표작이기도 하다. 아직 현역에서 활약 하는 감독들이기에 이 리스트가 바뀌는 순간은 한국영화가 도약하는 순간일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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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치도록 잡고 싶다! 〈살인의 추억〉

형사 수사물이라는 장르적 재미의 토대 위에서 시대성과 주제의식, 편 집과 리듬감각, 연기, 롱테이크(초반 논두렁 씬)의 모던한 카메라로 영 화가줄수있는쾌감의 1백프로를경험한다. 화성 부녀자 연쇄살인사건을 배경으로 두 형사가 질주하는데 송강호, 박해일은 물론이거니와 작은 단역배우들까지도 최고의 연기를 보여 준다. 등 이후 나온 한국영화들 특히 농촌 스릴러들은 거의 모 두 의 디테일과 호흡법을 따라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0명의 희생자를 낸 화성 사건이 미제로 끝났듯이 영화도 범 인을 잡지 못하고 패배한다는 결말을 내는데, 형사무비의 치명적 결함 이라고 여겨졌던 점이 오히려 매력이 되었다. 4년 후 데이빗 핀처감독 이 을 발표했을 때 을 모방했다는 말을 들었을 정도로 내러티브와 정조가 흡사하다. 실화를 바탕으로 연쇄살인범을 쫓는 형사들의 실패담 과 은 ,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 과 더불어 21세기 스릴러 5대걸작으로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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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전도연, 무시무시한 몰입의 연기 〈밀양〉

칸 영화제에서 전도연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은 문학적 사 유와 철학, 리얼리즘의 연출이 어우러진 이창동 최고의 상업영화. 만일 이 영화가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졌다면 기획단계에서부터 작품상을 노 렸다는평가를받았을것이고수상했을것이다. 젊은 미망인이 어린 아들을 데리고 이사 간 곳은 밀양. 태양의 도시에 서 여자는 단 한 점의 빛도 없는 지옥을 경험한다. 어린 아들을 유괴살 인한 동네 학원장이 체포돼 수감된 가운데 엄마는 주위의 친절한 권유 로 교회에 나가 하나님에게 의지하고 절박하게 매달린다. 마침내 죄인 을 ‘용서’할 수도 있다고 여기는 단계로 나아간다. 하지만 범인은 이미 (한발 먼저) 하나님께 참회하고 은총과 용서를 받았다고 말한다. 고통 과 사투하는 아이 엄마와 달리, 범인의 마음은 평화롭고 얼굴색은 윤기 나며 태도는 자약하다. 소설의 엄마는 자살하지만 영화의 엄마는 반격 을 시작한다. 하나님을 향한 반격을… 절대자와 대결하는 여자의 몸부 림을보는일은고통스럽다. 한국영화에서 한 번도 다룬 적 없는 이야기를 한 영화라는 점에서, 그 리고 그 이야기가 관객의 마음을 흔들어 한 줄기 눈물을 흘리게 한다는 점에서 이 영화를 걸작으로 꼽는다. 영화는 저 멀리 아름답고 푸른 하 늘을 첫 장면으로 시작하고, 누추하고 더러운 땅을 비추며 끝을 맺는 다. 비밀스런 햇빛, 경남 밀양을 이야기의 공간으로 택한 이유는 바로 도시의이름에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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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한국멜로 최고의 걸작 〈8월의 크리스마스〉

멜로 감독의 첫 째 조건은 여자에 대한 독해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 데이 빗 린 감독의 가 멜로 고전이 될 수 있었던 이유이다. 한국감독으 로서 여자라는 오묘한 대상에게 가 닿을 줄 아는 감독은 허진호 이외에 는 없다. 심은하 최고의 미모와 연기력, 말하지 않는 그 무엇, 절제의 화 법으로도눈물짓게하는한국멜로의금자탑. 는 소나기 내린 한여름의 초록에서 시작한다. 운동 장에서 아이들 노는 소리가 들리는데 젊은 남자는 혼곤히 낮잠을 잔다. 사람의 일상적 행위에서 죽음과 가장 유사한 동작으로 주인공을 소개하 는 것이다. 허진호표 멜로에서 죽음은 사랑과 항상 동행한다. 연애를 생 명체처럼 인식하고 연애의 생로병사를 다루는데 능숙한 솜씨를 보이는 이유가거기에있다. 가수 김광석의 환하게 웃는 영정사진에서 시나리오를 착안, 주인공을 사진관 주인으로 설정해 스스로의 영정사진을 찍은 씬을 출발점으로 해 영화를구상했다고감독은말한바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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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나쁜 놈들 전성시대 〈범죄와의 전쟁〉

동료들끼리의 배신을 다룬 의 한국형 갱스터코미디. ‘을의 분노’의라는 정서적 뜨거움에만 호소하는 지금의 한국영화와는 격이 다 르다. 오직 능구렁이 같은 처세와 임기응변과 인맥으로만 사회에 기생 하는 최익현(최민식) 캐릭터는 한국적 현실에 밀착한 스토리와 결합해 관객의아드레날린을자극한다. 건달들은 그를 ‘대부’라 부르지만 존경하지도 않을 뿐 더러 자기들 세계 의 일원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공생할 뿐이다. 말론 브란도의 캐릭터 조형술과는 정반대의 대척점에 있는 사람이 최민식인데, 그 자 체로재미를선사한다. 윤종빈 감독의 페르소나 하정우는 이 영화에서 마초적인 매력을 유감없 이 보여준다. 8~90년대 남성패션을 완벽히 소화하면서 ‘살아있네’와 같 은 명대사를 무심히 내뱉는데, 삼청교육대 출신 전문 양아치의 아우라 가 문신만큼이나 눈부시다. 자신의 대학 졸업 작품 와 데뷔작 등 모든 작품마다 주연으로 쓰고 있는 윤종빈 감독의하정우사용법이무르익었음을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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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봄날은 간다〉

와 더불어 우열을 가를 수 없는 허진호의 멜로 걸작. 연애에서 더 많이 사랑하는 자가 약자, 덜 사랑하는 사람이 권력자라는 진리의 확인 도장을 찍는다. 사랑이 시작하고 끝나가는 생몰의 과정이 살아있는 생물의 그것처럼 펼쳐진다. 이영애의 ‘라면 먹을래요?’ ‘자고 갈래요?’는아직도패러디되는유명한대사이다.

사랑이 시작되고, 연애가 시작되는 부분은 아름답다. 봄날 새벽, 서울에 서 강릉까지 좋은 친구의 차를 얻어 타고 내려오는 여자는 아스팔트 위 에서 서성이며 기다리고, 마침내 허리를 꺾어 안아주는 남자의 장면은 한번 보면 영원히 잊히지 않는다. 하지만 봄날은 짧고, 또한 반드시 간다. 전성기 이영애의 미모에 놀라고, ‘바라보는 연기’를 펼치는 유지태에게 두 번 놀란다. 화사한 햇볕 속에서 화사한 양산을 쓰고 가는 할머니의 뒷 모습을 통해 죽음을 묘사하는 연출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 믿었던 것이 변하는 것을 믿지 못하고, 돌이킬 수 없는 것을 돌이키려는 안타까움에 위안을준다. 이봄은가지만또다른봄날이올거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