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현주
서울기독대학교 겸임교수
서울기독대학교 겸임교수
우리는 살면서 많은 오해를 한다. 타자에 대한 오해. 자신에 대한 오해. 진실과 사실에 대한 오해. 이뿐일까. 혹시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있는 아리아에 대한 오해 는 없을까? 없겠지. 설마 거기에 무슨오해? 확실해. “쿵짝짝 쿵짝 짝, 바람에 날리는 깃털같이 변덕 스러운 여자의 마음…”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토>에 나오는 아 리아 <여자의 마음(La donna e mobile)>. 경쾌하고 들으면 기분 좋은 아리아. 여자의 변덕에 한숨짓는 순정남의 노래. 남자들의 일편단 심을 대변하는 아리아. 여기에 오해가 있을리 없지. 과연 그럴까. 오 페라<리골레토>의 세계로 들어가보자.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토>는 16세기 이탈리아 만토바에서 시작 된다. 이 오페라의 주인공은 어릿광대, 꼽추 리골레토. 그는 천하의 바람둥이 만토바 공작의 하인이다. 만토바 공작은 잘 생긴 외모, 아 름다운 목소리와 몸짓, 심지어 권력까지 갖춘 소위 오늘날의 금수 저, 엄친아다. 그는 달콤한 말로 여인을 유혹하고 쾌락을 채우면 곧바로 다른 여인을 찾아 떠나는 호색한이다. 리골레토는 이런 만토바 공작의 욕망을 부추킨다. 공작의 쾌락을 채워줄 여인을 물색하고 문제가 생기면 나서서 해결하며 은밀하게 자신의 야욕을 채우고있다. 만토바공작의 행실에 눈 감아야하는 귀족들의 분노와 멸시도 기꺼이 감내하며 그의 가신임을 자처하고 있다. 만토바 공작의 그림자 리골레토. 그에게는 만토바 공작에게 감추어야 하는 비 밀이 있다. 리골레토에게는 ‘질다’라는 아름다운 딸이 있으며 그 녀를 만토바 공작의 마수가 닿지 않는 곳에 꼭꼭 숨겨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모든것을 다 가진 금수저 만토바공작과 오직 사랑하는 딸 하나밖에 없는 흙수저리 골레토. 깃털같이 가벼운 아리아<여자 의마음>처럼 가볍고 밝은 오페라를 기대하는 우리의 맘과는 달리 <리골레토>는 막장드라마의 냄새와 비극을 잉태하며 출발한다.
화려한 만토바 궁의 잔칫날. 만토바 공작은 “이 여자나 저 여자나 내겐 다 똑같고 모두 아름다워. 나는 결코 여인을 차별하지 않아” 라며 매혹적인 아리아<이 여자나 저 여자나(Questa o quella)>를 신 나게 부른다. 잔치의 여흥이 한껏 무르익을 무렵, 농락당한 딸 때문 에 화가난 몬테로네 백작이 들이닥쳐만 토바공작을 비난 한다. 그 때, 해결사 리골레토가 나서서 몬테로네 백작을 모욕하고 쫓아낸 다. 분노한 몬테로네는 리골레토에게 저주를 퍼붓는다. “독사같은 놈, 애비의 고통을 비웃는 네놈, 저주를 받아라.”
그리고 몬테로네의 이 저주는 리골레토 가슴에 비수처럼 꽂힌다. 리골레토는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힌다. 그는 질다에게 다시 한번 당부한다. 절대로 밖에 나가지 말라고. 그러나 질다는 이미 만토바공작의 마력에 마음을 빼앗긴 뒤였다. 설상가상으로 몬테로네의 저주는 현실로 다가온다. 평소 리골레토를 눈엣가시로 여기던 귀 족들은 질다를 납치하고 만토바 공작은 그녀를 처참하게 짓밟는 다. 하나밖에 없는 딸을 능욕한 만토바 공작, 리골레토는 그를 응징 하기로 결심하고 암살자 스파라푸칠레를 고용한다. 스파라푸칠레 는 자신의 여동생 마달레나를 이용해 공작을 죽일 계획을 세운다. 아무것도 모르는 만토바 공작은 오늘도 마달레나와의 즐거운 시 간을 기대하고 <여자의 마음(La donna e mobile)>을 부르며 암살자 의집으로향한다.
바람에 날리는 깃털같이 변덕스러운 여자의 마음 말투도 생각도 변한다네. 언제나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얼굴 눈물도 웃음도 거짓으로 꾸민 것 바람에 날리는 깃털같이 변덕스러운 여자의 마음 말투도 생각도 변한다네! 변한다네! 변한다네!
이 경쾌한 아리아가 이 대목에서 나오다니. 바람둥이 여인 때문에 맘고생하는 순정남의 아리아인 줄 알았는데. 그건 순전히 우리의 오해다. 만토바 공작은 여자들의 마음이 쉽게 변하기 때문에 자신 의 사랑도 변하고 따라서 자신의 방탕한 생활은 무죄라고 강변한 다. 그리고 마달레나를 “어느 날 귀여운 그대를 만났지. 그때부터 내 마음은 당신뿐이었다오”라며 달콤한 말로 유혹하고 리골레토 오해에서 이해로는 이 모습을 질다에게 보여준다. 네가 사랑하는 만토바공작의 실체를 확인하라고. 질다는 자신에게도 같은 고백을 했다며 더러운 배신 자지만 여전히 만토바 공작을 사랑한다고 흐느낀다. 한편, 만토바 공작의 매력에 빠진 마달레나는 오빠에게 공작을 살려달라고 애원 하고 스파라푸칠레는 희생양이 있으면 공작을 살려주겠다고 말한 다. 이들의대화를엿들은질다는자신이대신죽기로결심하고스파 라푸칠레의 칼에 뛰어든다. 암살자는 태연하게 질다의 시체를 마대 에 담아 리골레토에게 준다. 아무것도 모르는 리골체토는 시신이 담 긴마대를받고복수가실현됐다며기뻐한다. 그리고마대를강에던 지려는 순간, 어디선가 만토바 공작이 흥얼거리는 <여자의 마음>이 들려온다. 불길한 느낌에 휩싸인 리골레토는 황급히 마대를 열어 보 고 피투성이가 된 질다를 발견한다. 리골레토는 몬테로네의 저주를 떠올리고 ‘질다! 나의 질다, 죽었네! 아! 저주’를 절규하며 오페라는 막을 내린다. 질다는 왜 스스로 죽음으로 뛰어들었을까. 이 비극의 원흉은 누구인가. 사랑의 괴로움? 만토바 공작의 배신? 만토바 공작 의 <여자의 마음>이 여전히 경쾌하고 매혹적인 아리아인가. 아니다. 우리들의오해다. 오히려 이것은 가장 잔인한 아리아다. 만토바공작 은 질다와 리골레토의 인생을 파멸로 몰아넣은 원흉이다. 그런데 정 작 본인은 두 사람의 인생을 파괴했다는것조차도모르고오늘도여 전히 매혹적인 아리아를 흥얼거리며 또 다른 여인을 유혹하기 위해 거리를 배회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토>는너무도잔혹하다. <리골레토>가작곡된 19세기후반은 현실을 적나라하게 그리는 사실주의 예술사조가 발달하였다. 사실 주의는 삶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고통과 슬픔 그리고 냉혹하고 비 참한 일상까지 가감 없이 묘사하는 사조였고 베르디의 <리골레토> 는 바로 그 사실주의의 산물이었다.
아리아<여자의마음>에대한오해는풀렸는가? 이 가을, 오페라에 대한 오해를 넘어 이해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