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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이 멸망하던 날, 마지막 어전회의

 

글 김무일

前 현대제철 부회장

선농문화포럼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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숱한 외적의 침입과 전란을 겪으면서도 500여년을 맥맥히 이어온 帝國의 운명이,하루아침에 역사의 뒤안길로 허망하게 사라지는 것도 한 순간이었다. (1975년 4월 30일 해질 무렵, 自由월남 패망의 순간도 그러 했겠지만...)

 

101年 前으로 거슬러 올라, 1910년 8월 22일!. 그해는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순종이 즉위한지 4년째 되는 융희(隆熙)4年이었으며, 대부분의 백성들은 그냥 경술년이라 불렀고 뒷날 역사가들은 개화기를 거치며 1910年이라 기록하는 한편, 침략국 日本의 측면에서는 明治 43年으로 표기 했을 것이다.

 

백중 절기도 훨씬 지났건만, 초록 잎사귀마저도 지칠 만큼 무덥던 그날 새벽녘! 

고종과 순종의 처소인 창덕궁과 경운궁 근처에는, 본토에서 특별히 파병된 약 2,600여명의 일본軍 최정예부대인 日本軍 육전대원들과 헌병대원들이 10여 미터 간격으로 늘어서, 무슨 영문인지 아침나절 내내 무력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그러나 궁궐을 제외한 한양거리는 평온하기만 했으며, 경성주재 외국 공사관들은 그날 저녁에 있을 ‘아카시’헌병사령관의 만찬에 숨겨진 의도에만 신경을 곤두세웠다 거리를 순찰하는 헌병과 순사들의 눈초리는 더욱 날카로워졌지만, 그들의 얼굴 표정에서는 그 어떤 것도 감지되지 않는 채 아침 해는 평상시와 다름없이 중천에 뜨고 있었다.

 

오전 11시경, 궁내부대신 민병석과 시종원경 윤덕영은 벌써 입궐 두어 시간째 순종 앞에 머리를 조아리며 告하기를, 일본과 이미 ‘합병’준비와 제반 절차가 끝났으니 조약체결을 爲한 전권대사로, 총리대신 이완용의 임명을 재가하는 어전회의가 필요하다고 거듭 읍소를 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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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용과 제3대 조선통감 ‘데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穀)는 이미 엿새前인 8월 16일부터 비밀리에 합병협상에 들어가, 동월 18일 내각회의에서 조약내용과 절차를 확정 지었지만 기밀이 누설될 것을 우려해, 직무상 황제를 최측근에서 보좌하는 민병석, 윤덕영에게 까지도, 어전회의 당일 09시쯤에 임박해서야 어전회의의 안건을 통보하였을 만큼 극비리에 진행됐다.

 

침통한 얼굴의 순종은 한참동안을 망연자실한 시선으로 허공을 응시하며 비통해 하다가 마지못한듯 떠듬거리며 칙명을 내린다. “대세가 이미 그리정해졌다면 피할 도리가 없지 않겠는가?” 한탄과 절망 속에 비극의 마지막 어전회의가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당일 오후 1시, 칙명에 따라 창덕궁 대조전 흥복헌(興福軒)내전에는 총리대신 이완용, 내부대신 박제순, 법부대신 이재곤, 탁지부대신 고영희, 궁내부대신 민병석, 농상공부대신 조중응, 시종무관장 이병무, 시종원경 윤덕영과, 황실대표로는 흥왕(興王) 이희(고종의 兄), 원로 중추원의장 김윤식 등 열 명의 대소신료들이 입궐해 초조하게 황제를 기다린다. 회의 분위기는 비탄과 침통으로, 천길 만길 심연으로 빠져 가라앉는 듯이 착잡했다. 500년 종묘사직에 종말의 순간이니 오죽했으랴? 그로부터 한 시간이 지난 오후 두시 경, 순종이 민병석과 윤덕영을 대동하고내전(內殿)에 출어(出御)했다.

 

넘어질듯 쓰러질듯 좌정한 임금의 용안은 백지처럼 창백했으며 굳게 닫힌 입은 좀처럼 열리질 않는다. 각료들 역시, 천근만근 무거운 분위기에 쉽사리 입을 떼질 못한다. 침묵의 시간은 지루하게 지나가고 있었고, 들창너머 더위에 지친 매미소리만이 기승

을 부리듯 ‘흥복헌’ 주변에 귀가 따가울 정도로 시끄러이 울려 퍼진다.

 

이날의 어전회의에 안건은 단 한件이었다. “한·일 합병조약의 전권을 내각 총리대신 이완용에게 위임한다”는 안건뿐이었다. 단지 나흘前, 내각회의에서 ‘임금이 욕되게 되면 신하는 죽어 마땅하리라!’ 며 한사코 유일하게 반대하던 학부대신 이용직은, 어전회의에 제외 시키려고 수해지역 순방이나 하라는 강제출장 명령을 거부하며, 병치레를 핑계로 지방에도 가지 아니하고, 어전회의에도 불참한 채 자택에서 식음을 전폐하고 칩거에 들어간다.

 

이완용이 5年 前인 1905년 ‘을사보호조약’ 당시의 활약에 뒤이어 다시 한 번 마각을 드러낸다. 합방의 필요성과 불가피성, 그동안 일본과의 교섭한 내용과, ‘데라우치’와 합의한 조약안을 조목조목 한 조’항씩 설명하는 등, 한 시간 가량 그 당위성을 현란하게 역설했고, 이미 닷새前부터 이완용의 감언이설과 회유로 미리 손을써 놓았던 나머지 허수아비 각료들은, 그저 마지못해 ‘옳다’는 듯 꿀 먹은 벙어리마냥 이완용의 사나운 눈치를 흘끔 흘끔 살펴가며 모두 고개만 주억 거리고 있을 뿐이다.

 

‘데라우치’와의 합의과정에서 이완용의 주장이 반영된 것은, 오직 일본에 합병된 연후에 황제의 칭호를 ‘太公’이라 부르려 하던 것을, ‘王’으로 표기하기로 한 것뿐이었다. 침통한 표정의 순종은 이완용의 발언 내내 눈을 감고 입을 굳게 다문 채 단 한마디도 떼질 않는다. 온 세상의 역사에 시계침이 모두멈춘 듯, 적막하고 지루했던 시간은 오후 3시로 서서히 접어든다. 마침내 순종이 손과 발을떨며, 초점잃은 시선과 들릴 듯 말듯 잦아드는 목소리로 결정을 내린다.

 

“동양평화를 爲하여 종실과 권신 각료들의 의견이 모두가 그러하다 하니, 짐도 어쩔 수 없는 노릇 아닌가?” 이리하여 조약에 관한 전권이 순식간에 이완용에게 위임됐다. 허약해질 대로 허약해진 마지막 王權의 어쩔 수 없는, 찢어질 듯한 그 마음이야 오죽 했을까?

 

훗날, ‘데라우치’의 보고서 ‘대한제국 병합의 시말’에 의하면, 열 명의 참석 대신中 그 누구 하나도 이의를 제기하지 아니하였으며, 순종은 ‘흔쾌히’ 조약을 재가했다고 교활하게 기록된다.

 

그러나 순종이 어전회의에 자신이 지정한 시간보다 고심 끝에 한 시간을 늦게 좌정했고, 끝끝내 조인된 조약서에 국새를 찍지 않는 소극적 방식으로나마 저항했던 것을 보면 ‘흔쾌히’ 재가 했다는 ‘데라우치’의 보고 내용은 믿기 어렵게 과장된 대목일것으로 짐작된다. 역사학자 ‘박은식’은 ‘韓國痛史’에서, 시종원경 윤덕영이 국권을 양여하는 조칙을 작성해 황제에게 어새를 찍을 것을 간청하자, 황제는 흐느끼며 끝내 이를 허락하지 않았지만 황제가 잠깐 자리를 비운사이, 몰래 어새를 찍어 이완용에게 건네주었다고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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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것은 소문에 근거한 기록일 뿐, 입증 할만한 자료는 찾을 수 없다 했으며,또 다른 기록에는, 당일 병풍 뒤쪽에서 추이를지켜보던 ‘순정효 왕후’가 국권 탈취 강제조약을비탄하며 국새를 치마속에 감춰, 도피했다는 슬픈 비화도 傳해진다.

 

당일 오후 4시도 채 못 미쳤을 무렵, 어전회의를 박차고 나선 이완용은 ‘일·한 합방 조약에 대한 전권 위임장’을 손에 쥐고, 농상공부대신 조중응을 대동해 황급히 마차에 올라타 한시라 도 빨리 이 ‘기쁜소식’을 전하고 싶은 마음에 마부를 재촉하며 달렸을 것이다.

 

남산기슭(지금의 中區 예장동 2-1번지)의 ‘데라우치’통감관저 까지는 불과 직선거리 4키로 남짓의 위치이니, 내쳐 달려도 20분 정도면 도착할 거리였다. 그리고 목을 빼고 기다리던 ‘데라우치’를 만나자마자, 무엇에 쫏기 듯 자신의 명의로 강제 합방조약에 날렵하게 날인을 한다.

 

오후 4시에 도착하여 불과 십여分 만에, 한 나라를 통째로 일본에 넘기는 형식적 절차를 마친뒤,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흐뭇하고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맞잡았을 것이다. 그리고 미리 차려진 샴페인으로 축배를 들며 기분 좋게 자축을 했을 것이다. 그 후, 만고천하의 역적 이완용은 이날의 탁월한 공로를 인정받아 동경으로 날아가 日本王 앞에 무릎을 꿇고, 황공히 머리를 조아리며 훈1등 백작이라는 미미한 작위를수여 받고 은사금으로 치사하게도 단돈 15만원을 하사 받는다.

 

36년의 일제 강점이 사실상 시작된 이날은, 이렇게 누군가에게는 家門에 영원히 빛날 짜릿한 기쁨과 영광스런 날로, 또 누군가에게는 무기력하고 통렬한 고통의 체념으로, 또 다른 누군가 에게는 무심한 일상 속에 그렇게도 침통하고 처절했던 그날의 하루해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노을 진 인왕산 저편의 황혼 속으로 뉘엿뉘엿 저물어 갔다.

 

유유히, 長久하게 흘러온 500년 역사의 종묘사직을 굳건히 지켜왔던 한 나라가, 온 지구상의 역사에서 영원히 사라지는 순간인 이날은, 올해로 꼭 101년前인 서기 1910年 8月22日 월요일 오후 5시 55분으로 역사는 처참하게 기록하고 있다.

 

우리의 뒤를 이을 후손들을 爲하여, 다시는 이땅에 절대로 재발해선 안 될 망국(亡國)의 서러움, 그리고 살을 에는 듯 한 식민지의 아픔! 이제, 우리가 기필코 반성하며 다져야할 결의의 핵심적 화두와 우의 살길은, 오로지 강력한 국방력(富國强兵)을 근간으로 해, 부강한 나라건설에 앞장 설 것이며, 우리 모두가 하나가 되어 나라 사랑(總力愛國)에 몸바쳐 합심하는 길밖엔 없질 않을까?

 

문득, 노벨 문학상에 빛나는 印度 불후의 석학 ‘타골’을 떠올려 본다. “머지않아 힘차게 타오를 동방의 등불이, ‘KOREA’를 밝히며 세계로 번져가리니!”그리고 그런 날이 반드시 오리라고 확신해 본다.

 

 

“Veritas Lux Mea!”

진리는 우리의 빛, 영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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