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홈페이지관리자 posted May 02,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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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기 선농문화예술 장학생

 

사단법인 선농문화포럼은 제 1기 선농문화예술 장학생 2명을 선발해 지난 2월 12일 동숭동 영원복합문화센터에서 장학금을 전달했다. 선농장학사업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고 노력하는 문화예술 인재를 발굴, 양성하고자 추진되고 있으며 제1기 선농문화예술장학금 재원은 선농문화포럼 김필규 이사와 김종량 이사의 기부금으로 마련됐다. 어려운 형편을 극복하고 예술의 세계로 나아가려는 두 학생 이국원(23. 한양대 음대 1)과 홍유진(17. 서울대음대 1)을 만나보았다. 한명은 늦깎이, 한명은 올깎이 신입생이 되었지만 공통점은 있었다. 스스로에게 부여한 동기, 그리고 주위에서 부여받은 사랑과 믿음. 두 사람의 표정은 밝았고 예의 발랐다.

 

바이올린 영재 홍유진 양은 예원학교 졸업 후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독학으로 서울대 음대에 합격한 재원이다. 검정고시 출신인데다 최연소 학생이어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홍 양은 6살 때 바이올린을 시작한 후 루트아니아 콩쿠르에서 그랑프리를 차지하는 등 영재성을 나타내기 시작, 예원학교(중학교) 1학년 때부터 2010년까지 한국예술종합학교 부설 한국예술영재교육원에서 공부했다.

 

그러나 2011년 아버지가 간암선고 8개월 만에 세상을 떠나면서 가정에 위기가 닥쳤다. 3남매 뒷바라지만 하던 전업주부 고영화 씨가 남편 사업을 떠맡았지만 예원학교 등록금을 내지 못할 정도로 경제사정이 나빠졌다. 가족이 상의한 끝에 검정고시로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음대를 가기로 했다.

 

“2010년 러시아에서 열린 오이스트라흐 국제콩쿠르에서 주니어 1위, 독일의 스포어 콩쿠르 3위, 러시아 발리 드바리오나스 콩쿠르 대상을 받았는데 다 아버지가 데리고 다니며 뒷바라지해 주셨어요. 그때 너무 힘드셔서 병을 얻은게 아닌가싶은 생각에 너무 괴로웠어요.”

 

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이기기도 전에 학우들과 헤어져 생활해야했지만 홍 양은 거의 괴력을 발휘했다. 실기연습을 하면서, 6개월 만에 검정고시를 패스한 것이다. 이화여대 관현악과 4년 수석일 정도로 재능이 뛰어난 언니가 동생을 위해 음악을 중단하고 악기도 동생에게 물려주었다.

 

홍양과 가족이 역경을 헤치고 나가는 이야기는 작년 8월 5일자 <인간극장-당신의 빈자리>편에서 소개되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린바 있다. 하지만 방송 이후에도 가장 어려웠던 점은 사사해줄 분이 없이 입시를 치러야했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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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선생님이 없으면 진도와 계획의 진행이 힘들어요. 곡이 너무 어려워도 도와주실 분이 없으니 막막했지요. 열심히 한다는 기준이 달라졌어요. 이 정도 연습하면 되겠지하던 것이 이정도 안하면 안돼~로 바뀌었다고 할까요?”

 

1학년이 3학년과 겨루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없을 리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곡을 하나하나 마스터할 때마다 마음이 꽉 차서 행복해요. 가장 겁나는 일은 바이올린을 못하게 되는 거지요. ‘쟤는 아버지가 없으니 음악을 더 못하겠지’ ‘불쌍하게 되었다’라는 시선이 가장 싫었어요. 음악하려면 돈이 많이 드는 게 사실이니까….”

 

고씨는 딸이 입시를 앞둔 이틀 전에 체력이 바닥나 고열과 구토로 시달리는 것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내가 짐을 덜고자 어린애한테 짐을 지웠구나. 무리하게 3년을 앞당겨 대학입시를 치르게 한 거니까요. 음대 대학입시, 일반인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일이예요. 링거를 놔주면서 많이 울었어요.”

 

막상 합격하고도 등록금 낼 일은 막막했다고 한다.

 

“서울대 총동창회 등 축하전화는 한 20통 왔는데 정작 장학지원을 해준다는 데는 없었어요. 선농문화포럼이라는데서 처음 전화가 왔는데, 떨리는 마음에 ‘선농’이 뭔지 알아듣지 못하고 네? 어디요? 많이 되물었어요. 등록 마감날이 거의 다가왔을 때라 정말 구원의 전화였지요.”

 

1학기 등록금으로 5백만 원의 기부금을 선뜻 내놓은 선농문화포럼 김필규(K.P.K 통상(주) 회장)이사는 원래 전문가 수준의 음악애호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홍 양이 연주한 파가니니에 큰 박수를 보내며 모녀를 격려했다. 한편, 홍유진 양은 지난 4월 19일 뉴욕 카네기홀 잰켈홀에서 열린 바이올리니스트 오주영 (뉴욕필하모닉 단원) 콘서트에 객원연주자로 출연했다.

 

고등학교 동창생들이 대학원에 재학 중이지만 이국원씨는 올해 처음 대학 신입생이 되었다. 2009년부터 음대입시에 매년 도전했지만 번번이 낙방했다. 올해 20대 1 경쟁률을 뚫기까지 5년 걸렸다. 고교 때부터 뷔페 서빙 등 각종 알바를 하며 스스로의 생계를 해결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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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에 우연히 합석한 친구 형(조선일보 기자)이 이국원씨의 합격기사를 쓰겠다고 했을 때 그는 고개를 저었다. 몇 차례 고사 끝에 “내가 기자직을 택한 것은 어려운 사람의 힘이 되고 싶어서였다. 작게나마 꿈을 이루게 해 달라”는 말에 수락했다고 한다. 예상했던 대로 기사는 그의 가정 형편과 아르바이트 고생담을 소상하게 밝혔다.

 

“다 사실이어서 유감은 없지만 부모님께는 신문을 보여드리지 않았어요. 아들이 그런대로 잘 지내고 있는 줄 아시는데…음 아파하실까 봐요. 하지만 기사가 나간 후 이렇게 장학금도 받게 되고 보니 좋은 일이었구나 생각됩니다.”

 

선농문화포럼 임혜진 부장이 담당 기자에게 이국원 학생전화번호를 받았으나 도무지 연결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연체되어 끊긴 상태예요. 한양대 원서 쓸 때 친구 번호를 보호자 번호난에 써 넣었는데 용케 그 번호를 찾아내서 연락하셨더라고요. 사실 등록을 포기하려 했어요.”

 

계원예고 합격 때도 피아노 실기 수석합격이어서 3년 내내 장학금을 받고 졸업했다. 음대는 정시합격자에게만 장학금을 주기에 수시합격자인 그는 선농문화포럼 장학금이 아니었으면 대학생이 될 수 없었다. 신문기사가 나가고 나서 그에게 장학금을 주겠다고 연락해온 곳은 롯데장학재단과 선농문화포럼 두 군데. 핸드폰 통화가 가능했더라면더 많았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하지만 롯데 측은 “신용등급이 낮아서 안 되겠다”고 취소했다. 입시 한 달을 앞두고 연습실비 20만원을 카드로 소액 결제했는데 이를 갚지 못해 연체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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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농문화포럼 이사회에서 장학금 지급이 확정되었다는 연락을 받고 진짜냐고 몇 번을 확인했어요. 만세 소리가 절로 나왔어요.”

 

피아노과 중에서도 그는 반주를 전공할 예정이다. 1학기 등록금이 해결되었으니 잘 마치고, 2학기 때는 입대할 예정이라 한다. 산업체 근무를 하며 돈을 모아 복학할 계획. 이 군은 선농문화예술장학금 전달식에 누구도 대동하지 않고 혼자 일찍 나타났다. 그게 그가 살아가는 방식이다. 콩쿠르에 나갈 때도, 수상할 때도, 대학 입시를 치를 때도 혼자 간다.

 

원래 과학고등학교 진학하려다 피아노로 갑자기 바꿨다는 그는 연습벌레 스타일은 아니다. 어머니가 결혼 후에 처음 장만한 것이 업라이트 피아노일 정도로 음악 애호가라 하니 대물림 받은 감수성, 태평스러울 만큼 그늘이 없는 천성이 그가 가진 자산인 듯.

 

“오늘만은 부모님께 알리고 모시고 나올걸 그랬어요.”

 

황윤숙, 송영민 두 분께 사사했다고 하는데 레슨도 레슨이지만 인품을 배운다고 한다. 좋아하는 피아니스트는 손열음. 이날 시상식에서도 손열음 식으로 ‘자유롭게, 내 생각대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번 1악장을 디지털피아노로 쳤다. 1학기 등록금 5백여만 원을 쾌척해준 선농문화포럼 김종량(한양대 이사장)이사는 “잘 쳤다. 우리 선친이 ‘청산에 살리라’ 작곡가야~~” 라며 두 손을 꽉 잡아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