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농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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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의.jpg

 

 

 

느림보달팽이는 모나지 않은 둥그스름한 양태(樣態)와 어눌한 품새에 탓에 어쩐지 절로 살가운 정감이 가고 기꺼이 마음이 끌린다. 사실 필자는 그 많은 생물 중에서 보잘 것 없는 조개, 고둥, 오징어가 들어가는 연체동물(軟體動物)을 전공하는 사람으로 박사학위를 ‘땅에 나는 달팽이(land snail)’로 받았는지라 별명이 ‘달팽이박사(Dr. snail)’이다.

 

달팽이는 연체동물의 복족강(腹足綱), 병안목(柄眼目), 달팽잇과의 동물로 땅에 사는 육산패(陸産貝)이며, 아마도 밤하늘의 둥근 ‘달(月)’을 닮았고, 얼음판에 지치는 팽글팽글 돌아가는 ‘팽이’를 닮아 ‘달팽이’로 붙여진 이름이리라. 군말 말고 곧이곧대로 들어 넘겨도 좋다. 하늘(天)의 달과 땅(地)의 팽이, 둘의 짝지움이 어쩐지 썩 마음에 든다. 옛사람들은 달팽이를 ‘와우(蝸牛)’라 했는데, ‘蝸’는 달팽이, ‘牛’는 소라는 뜻으로 행동이 소처럼 느릿하다는 의미가 들었다. 굼뜨지만 꾸준한 거북이가 재빠르고 날쌘 거북이를 이기더라! Slow and steady wins the race! 그리고 ‘느림의 미학’을 달팽이에서 만난다!

 

달팽이를 자세히 살펴보면 신기하게도 더듬이가 넷이다. 위엔한 쌍의 큰 더듬이(대 촉각)가 있고 밑에는 작은 더듬이(소 촉각) 둘이 있다. 뿔(角)이 네 개 난 동물! 간들거리는 대 촉각 자루(柄) 끝에는 똥그란 달팽이 눈(眼)이 올라앉았으니 초점을 맞춰 물체를 잘 보지는 못하지만 명암만은 구별한다. 촉각자루

(柄) 끝에 눈(眼)이 올라 앉아 ‘병안목’이라 부르는 것. 그리고 큰더듬이는 위로 곧추세워 잇따라 설레설레 흔들어대는 데 반해서 아래의 소 촉각은 늘 아래로 굽혀 절레절레 흔들면서 냄새나 기온, 바람, 먹이, 천적들을 알아낸다.

 

대촉각에 ‘눈’이 달였다면 작은 것에는 ‘코’가 달린 셈이다. 그런데 장난삼아 달팽이 눈을 손끝으로 살짝 건드려 보라. 얼김에 눈알이 더듬이 안으로 또르르 쏙 말려 들어갔다가 이내 곧 쪼르르 펴지면서 쏙 나온다. 하여 객쩍고 멋쩍은 일을 당해 민망스럽거나 겸연쩍을 때 “달팽이 눈이 되었다.”한다. 그리고 치켜세운 더듬이(antenna) 넷이 제 맘대로 엇갈려 더듬듯 이리저리 한들거리는 것을 보고 있으면 괴이타는 생각이 든다. 예전 사람들은 더듬이들이 내처 서로 째려보고 다투는 것으로 알고 와우각상전(蝸牛角上戰) 또는 와각지쟁(蝸角之爭)란 말을 썼으니, 사실 별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제 집안끼리 다투고 있다는 의미로 ‘거지 제자리 뜯기’라거나 ‘제 닭 잡아먹기’와 닮은 말이다.

 

달팽이에 녹아 든 또 다른 말들이 있으니, 입을 꼭 다문 채 좀처럼 말을 하지 않을 때 “달팽이 뚜껑 덮는다.”,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라 말할 거리도 안 될 때 “달팽이가 바다를 건너다니”, 달팽이 같은 것도 집이 있는데 하물며 사람으로서 어찌 집이 없겠냐고 할 때 “달팽이도 집이 있다”, 가만히 있는 사람도 누가 건 드려야 화를 내고 덤빔을 비유적으로 “달팽이도 밟아야 굼틀한다.”고 한다. 달팽이의 생리, 생태를 속속들이 알지 않고는 이런 속담들을 만들지 못한다. 현명하면서도 해학적인 선현들에게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누나!

 

달팽이는 주로 부드러운 풀이나 이끼를 먹는 초식동물로(일부는 육식) 어린 옥수수나 배추 등 여린 밭곡식을 뜯어먹는 해충이다. 그리고 연체동물만 가지는 특유의 탄산칼슘이 주성분인 치설(齒舌, 혀와 이빨을 겸함)이 있으니 현미경적으로 보면 수천 개의 치설이 입 안에 틀어박혀있고 이것으로 먹이를 갉아먹는다. 그리고 외투막(外套膜)이 변한 허파로 공기호흡을 하는것도 큰 특징인데, 달팽이를 들여다보면 옆구리에 작은 구멍이 열렸다 닫혔다하니 그것이 공기가 드나드는 숨구멍(호흡공)이고, 껍데기 밑(안)엔 혈관이 한가득 퍼져있으니 그것이 허파며, 볼록볼록 달싹달싹 움직이는 것은 심장이다.

 

그리고 달팽이도 다른 무척추동물처럼 암수한몸(자웅동체)이면서 꼭 딴 놈과 짝짓기를 해서 정자를 바꾼다. 달팽이는 사람보다 우생학(優生學)을 먼저 알아서 제 정자와 난자가 수정하면 좋지 않는 자식이 난다는 것을 이미 알았다.

 

우리나라에 110여종의 육산패가 사는데 그 중 논두렁, 밭과 들에 사는 가장 흔한 ‘달팽이(Acusta despecta sieboldiana)’이란 이름을 가진 것이 있다. 느림뱅이 녀석들은 발로 흙구덩이를 파 달걀의 축소판이며 지름이 3~4mm인 자잘한 하얀 난형(卵形)의 알 20~30개를 낳고 살짝 덮어둔다. 약 2~3주 후에 어엿한 새끼달팽이가 반들거리는, 얇되 얇고 맑은 껍질(집)을 둘러쓰고 나오며, 몸집도 더디지만 거듭거듭 몰라보게 늘어난다. 달팽이는 한평생 제 집을 짊어지고 다니기에 이사하지 않아도 되며, 주택부금을 붓지 않는 행복한 동물이다. 목숨앗이인 새, 딱정벌레, 도마뱀 등이 나타나면 재빨리 몸을 껍질(집) 안으로 욱여넣는다.

 

달팽이(snail)나 껍데기 없는 민달팽이(slug)이는 기어간 자리에 가칠가칠한 흰 발자취를 남긴다. 달팽이는 튼튼한 근육발이 파상(波狀)으로 움직이는데 바닥이 꺼칠하거나 매 마르면 발의 움직임이 편치 않다. 그래서 발바닥에서 점액을 듬뿍 분비해서 그 위를 스르르 쉽게 미끄러져 나는데 그것이 마른 것이 족적(足跡)으로 남는다.

 

다음은 소름끼치는 이야기다?! 아슬아슬, 달팽이를 예리한 면도날 위에 갖다 얹었을 때 어떻게 될까. 발이 잘려져 나갈까 아니면 상처를 입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발바닥의 점액분비샘에서 끈적끈적한 진을 내고 그것이 본드처럼 순식간에 굳어지기에 달팽이의 발(근육)이 칼날에 닿지 않고 거침없이 날 위를 타고 가거나, 넌지시 타넘으며 공중돌기를 한다. 간 큰 요술쟁이 달팽이요 넉살 좋은 꾀보 달팽이다!

 

서양의 이름난 달팽이요리 에스카르고(escargot)는 식용달팽이(Helix pomatia)를 삶아 뽑아낸 살을 잘게 썰고 거기에다 송송다진 마늘가루와 맛깔스런 버터를 버물려서 살을 뺀 빈 달팽이 껍질에 집어넣고 푹 쪄서 내 놓는다. 한국의 고급호텔에서도 내놓는다는데 하도 비싸다하여 달팽이를 전공하는 필자도 언감생심, 아직 맛을 보지 못했다.

 

하찮은 달팽이라 여기지 말자. 세상에 쓸모없고 귀하지 않은 것은 없는 법. “하늘은 애초에 뜻 없는 생명을 섣불리 낳지 않고, 땅은 애당초 의미 없는 생명을 함부로 기르지 않는다.”고 한다. 두어라, ‘굼뜨지만 꾸준한 느림뱅이를 닮아보리라! 사랑하는 내달팽이, 천세! 만세! 만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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