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농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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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화
한림대 영어영문학과 명예교수

 

많은 사람들이 어릴 적에 듣는 말이 있다. “앞에 하얀 백지가 주어졌다고 하자. 인생이란 그 백지 위에 스스로 그림을 그려 나가는 것과 같다. 어떤 그림을 그릴 것인가, 어떤 그림을 그려낼 것인가가 앞으로 여러분들 삶의 결과로 나타나게 된다.”

 

17세기의 철학자 John Locke는 이 백지에 긁적거려 채워 나가는 인간의 능력에 관하여 the Blank Slate(빈 석판)이라는 용어를 제시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 마음이 아무런 표지도 없고 생각도 보이지 않는 ‘하얀 종이’라고 생각해 보자. 이 종이가 어떻게 채워지게 되겠는가가 의문이다. 그런데 아주 번잡하고도 무한한 능력으로 사람들이 끝도 없이 다양한 그림을 그려 백지를 채워나가는 어마어마한 결과물들을 보게 되면 인간들은 도대체 어떻게 이 대단한 보고(寶庫)를 생성해 낼 수 있는 것인지, 또 이성과 지식의 구현인 그 많은 자료들이 도대체 어디서 생겨나는 것일까? 라는 의문이 생긴다. 이 모든 질문에 대해 나는 한 마디로 ‘경험’(experience)이라고 답하겠다.” 18세기의 철학자 Jean-Jacques Rousseau 역시 경험을 통해 학습을 하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다만 Locke의 the Blank Slate 이론은 인간이 가진 덕(virtue)에 한하여 적용되며, 경험으로 배우는 것은 곧 사회화의 산물로서 인간의 나쁜 행위로 발전된다고 Rousseau는 지적한다. Rousseau와 동시대의 철학자 David Hume도 인간의 모든 지식은 오로지 경험으로부터 얻어지며 인간은 끊임없이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여러 사건을 겪으면서 학습하고 성장하고 습관과 심리가 형성되며 믿음과 지식도 축적된다고 믿었다.

 

경험주의적 철학을 바탕으로 한 인간 행위와 학습에 대한 사고는 20세기 초 과학의 발달과 함께 과학적 분석에 기초한 행동주의(Behaviorism) 심리학 이론으로 발전된다. 개구리 뒷다리 실험으로 자극에 대한 무조건반사 작용의 실험, 종소리를 들으면 침샘이 자극 되어 그 반응으로 회로를 추적해 나오는 생쥐의 실험 등이 기억날 것이다. 자극과 반응의 학습이론, 즉 반복되는 훈련이 효과적 학습 방법이라는 행동주의 심리학 이론은 언어 습득 이론에서도 확인된다. 유아가 말을 배우는 과정은 주변에서 들리는 말소리에 반응하여 흉내와 모방(mim-mem)을 반복하면서 기억하고 습득하게 되는 행위로 이해했다. 이와 같은 행동주의 심리학 이론의 적용은 외국어 학습 이론에 매우 효율적 방법으로 활용된다. Charles Fries가 개발한 문형연습(pattern drill) 방식의 언어교육은 세계 대전 당시 첩자를 보낼 때 빠른 시일 내에 상대국 언어를 교육하는데 활용했다. Fries(1952)의 문형연습은 외국어 교수법에 도입 되어 지금까지도 초보자를 위한 교육에 활용된다. 언어학 이론에서는 이 당시의 언어 이론을 구조주의 문법(Structuralism) 이론이라고 한다.

 

18세기의 경험주의 철학, 20세기 초반의 구조주의 문법 이론에 대해서는 Noam Chomsky(1955)의 변형생성문법 이론이 언어학계의 대 혁명이 된다. Chomsky의 논리는 인간의 타고난 능력(innate ability)에 초점을 둔다. Chomsky(2004)에서는 생물체의 특성으로 인간만이 지닌 언어 능력의 첫 번째 요인은 유전적으로 타고나는 자질(genetic endowment)이라고 말한다. 두 번째 요인은 경험(experience)이며 세 번째는 일반 원리(principles)로 데이터 분석과 연산의 원리를 적용하는 과학적 능력이다. 생성문법 이론가들이 주장하는 인간 특유의 언어 능력은 언어적 성장과 모국어 구현의 현상이 철저하게 규칙 지배적(rule-governed)이라는 점이다. 유아는 태어난 지 일 년 안에 모국어의 음운 체계를 터득하고 1~2년이 지나면 주변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다. 인간 특유의 언어 습득 능력은 Chomsky(2017) 등의 주장처럼 언어의 본질과 기능, 진화 과정에 관한 생물학적인 탐구로 이어진다. 따라서 언어 습득은 분석적이며 창의적인 성장 과정의 경험으로 일축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규칙 지배적인 언어의 습득 과정에 관해 널리 알려진 예를 들어보자. 영어가 모국어인 유아에게 아빠가 “Where’s your mom?”이라고 물었을 때, 흔히 듣는 답은 “Oh, she goed shopping”이라고 한다. 이 때 아빠는 “say, she went shopping”하며 동사 go의 과거형은 went라고 고쳐준다. 이에 대한 유아의 반응은 “Yes, she wented shopping”이라고 한다. 이 어린이는 동사에 과거형을 만들 때는 과거형 어미 ‘-ed’를 첨가한다는 규칙을 스스로 이미 터득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빠가 goed가 아니고 went라고 해야 한다고 고쳐주어도 “yes, wented”라고 한다. 과거형 어미가 ‘–ed’라는 규칙을 떨쳐버리는 것이 오히려 어려운 것이다. 이처럼 유아가 모국어를 습득 할 때 스스로 그 언어의 규칙을 터득하고 응용하면서 더 복잡한 말을 배워나간다는 것이 경험론과 행동주의 이론에서 간과하고 있는 점이다.

 

Chomsky의 생성문법이론이 20세기 초반의 구조주의 문법 이론과 차별화되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인간의 타고난 능력(innate ability)을 인지한 데 있다. Chomsky의 언어 이론은 Saussure(1916)가 일반 언어학 이론 강의에서 제시한 이분법적 언어 분석에 근거한다. Saussure는 인간 본유의 능력을 인지하고 언어의 속성을 랑그(langue)와 빠롤(parole) 두 가지로 구분한다. Chomsky의 용어로 랑그는 언어 능력(language competence), 빠롤은 언어 수행(language performance)이다. 인간은 내재된 언어 능력으로 모국어를 문법에 맞게 구사하는 지식을 터득하지만, 실제로 말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상황에 따라 말실수(slips of tongue)를 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예기치 않은 발음 실수로 “Have you hissed a mistory class?”라고 missed와 history의 첫 음을 서로 바꾸어 발음 할 수도 있다. 한국어의 경우, “이가 빠져 말이 바르게 나오지 않네?”에서 ‘이’와 ‘말’을 바꾸어 말하는 경우도 있다. 언어 능력은 언어 수행 과정상에 저지를 수 있는 실수도 이해하고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다.

 

Harvard 대학교 인지심리학 전공 교수 Steven Pinker는 인간의 행위에 대한 논의에서 인간 본성에 대한 연구가 도외시 되어 왔다는 것이 큰 문제점이라고 지적하며, 인간의 본성, 유전적인 특성의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다(Pinker, 2002). 경험주의 철학자들이 주장하듯이 문화가 인성 형성에 주요한 영향을 끼치며 경험에 의해 학습이 이루어진다는 이론은 내재된 능력을 간과한 극단 주의적 주장이라는 것이다. 문화 그 자체를 이해하고 습득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인간 고유의 타고난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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