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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2 13:05

테마로 보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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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로 보는 영화

 

김현숙
영화평론가외국인영화제집행위원

 

Something New, Something Old
<어벤져스>, <어벤져스:인피니티 워>, <하녀>, <기생충>


21세기 대중문화를 이야기할 때 마블과 DC 코믹스를 떼놓는 일은 불가능하다. 마블 그래픽이 창조한 슈퍼히어로는 2008년 스크린으로 처음 옮겨와(아이언 맨) 지금까지 22편의 블록버스터가 태어났다. 영웅들은 제각각 단독자로서 탄생했으나 종국에는 어벤져스라는 집단으로 귀속되도록 설계됐고 마침내 2012년 영화 <어벤져스>가 탄생했다. 마블 시네마 유니버스(MCU)의 세계관의 장대한 시작을 알리는 <어벤져스> 작전의 지휘자는 국제평화유지군(실드)이다. 전 지구가 로키의 노예가 될 처지에서 쉴드의 사령관이 아이언맨, 헐크, 캡틴 아메리카, 토르, 블랙위도우, 호크 아이 등 8명을 호명해 지상 최대의 작전을 펼친다. 조스 웨던 감독은 개성과 약점을 가진 솔로 영웅들의 캐릭터를 큰 그림으로 조탁하고 셰익스피어식 문학적 야심이 가득한 대사들, 스쿠르볼 스타일의 코미디, 상상을 현실로 구현하는 CG 기술로 영화 역사상 최고의 가성비를 가진 뷔페를 내놓았다.


동지애와 팀워크, 지상 최대의 MT, 팀 스피리트와 동의어가 된 어벤져스의 3편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2018)가 나왔을 때 관객들은 아무도 이 영화가 시리즈의 마무리라고 예상하지 않았다. 루소 형제 감독은 2008년 <아이언 맨>으로 시작한 마블 스튜디오의 19번째 작품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 무려 23명의 영웅을 소집, 볼륨과 다양함의 끝판을 보여준다. DC 코믹스에서 스파이더맨까지 초빙해왔으니 말해 무엇하랴. DC 코믹스에 비해 빌런이 약하다는 평가를 의식한 듯, MCU 사상 가장 논쟁적인 빌런, 타노스를 영화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고 이것은 적중했다. 전 세계 마블 마니아의 허를 찌른 엔딩의 충격. <어벤져스>라는 장대한 시리즈의 출발과 마무리를 연이어 관람하는 것은 마블의 세계관을 이해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고, 최근 마틴 스콜세지가 제기한 논쟁적인 질문 ‘마블은 시네마인가, 테마파크식 볼거리인가’에 대한 당신의 대답을 구하는 일이다.


<하녀>는 한국영화 사상 가장 표현주의적 색채가 강한 작품이다. 전체를 세트장에서 찍어, 밀실 공포의 숨쉬기를 시험해보는 극단적 방식을 밀어붙인다. 영화를 통해 손쉽게 돈을 만져보려던 한탕주의 투자자들에게 이런 영화를 내놓은 김기영 감독의 배짱은 도시 전설급이다(서울대 의대 출신인 김기영 감독은 동창생인 의사 아내의 내조로 만들고 싶은 영화를 만들다 떠난 행운아인 것 같다). 김기영 감독의 영화에는 일관되게 ‘외부의 침투’라는 서브플롯이 있다. 외부인이 들어오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는 21세기 지금, 영화의 화두다. 조던 필 감독의 <어스>나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처럼 가족영화의 외피 속에 ‘침투’의 알레고리를 사용하는 작품들이 호평 받고 있다. 1960년대 한국사회에서 당시 실제 일어난 범죄를 소재로 중산층의 욕망을 위협하는 괴물에 대한 공포를 섹스와 침투의 모티브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김기영이 얼마나 예민한 작가인지 짐작할 수 있다. 힘겹게 중상류로 진입하려는 단꿈을 꾸는 부부의 이층집 ‘계단’이 인물들 못지않은 주요 캐릭터다. 계단을 통해 상승과 하강하는 장면들은 이 멜로 범죄드라마의 결정적 장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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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은 계급의 문제에 대한 불유쾌한 여운을 안긴다는 점에서 봉준호 감독도 김기영 못지않게 담대하다. 지하철을 타고 이 영화를 보러 온 나는 기생충인가, 숙주인가? 제목부터 관객들에게 경계심을 불러일으킨다. <조커> 등 수많은 영화가 천착하고 있는 양극화, 빈부격차, 계급 갈등의 주제를 모두 포괄하면서도 그 많은 영화 중에서도 독보적 걸작으로 인정받는 이유는 계급을 통찰하는 시선이다. 즉, 그는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로 양분하는 기계적인 구별을 넘어 제3의 계급을 포착하고 이 삼자의 접촉지점을 코미디와 호러로 제시한다. 낄낄대며 보기 시작하다 오금이 졸아들고 마침내 슬픔이 몰려오는 영화 <기생충>에는 수많은 비유와 은유가 보석처럼 깔려 있다. 


‘계단의 미학’을 보여주는 두 영화, 봉 감독이 스스로 <하녀>에 대한 오마주라고 밝히고 있듯이 <하녀>와 <기생충>을 연이어 관람하는 것은 시네필의 축복이다.


Best Films of Decade(2010~19)
<겟 아웃>, <트리 오브 라이프>, <멜랑콜리아>, <언더 더 스킨>


지금 전 세계 영화매체들은 지난 10년간 개봉된 영화 중 걸작을 꼽느라 분주하다. <겟 아웃>은 베스트 필름이자 동시대 가장 오락적이고 영향력 있는(Influential) 영화다. 샤이닝, 조스 등 수많은 영화의 컷을 연상케 하는 레퍼런스의 향연인가 하면 영화사상 가장 독창적인 심리적 공간인 성큰 플레이스(Suken Place)를 창조해냈다. 당신이 유일한 아시안인, 어느 파티에 초대되어 갔다고 가정하자. 당신 개인에 대한 궁금증은 없고 종족의 문화와 우수성에 대한 찬탄이 이어진다면 조심하라… 이 영화는 ‘Black is in Fashion’이라는 백인들의 찬탄과 숭배 뒤에 숨은 음모를 유머와 호러에 담은 러브스토리다. 사진작가인 주인공은 백인 여자친구와 결혼을 앞두고 여자 부모 집에 초대받아 간다. 이들은 모두 리버럴 엘리트, 인종차별이라고는 1도 없다. 지나치게 감성적이고 자아도취적인 흑인 하인들이 있을 뿐….  <트리 오브 라이프>와 <멜랑콜리아>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걸작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영향권 아래에서, ‘영화인의 영화’라는 별명대로 감독들의 추앙을 받는 영화다. 두 작품 모두 2011년 칸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놓고 경합을 벌였다. 로버트 드 니로를 심사위원장으로 구성된 그해의 선택은 <트리 오브 라이프>. 1950년대 텍사스를 배경으로 한 가족영화. 상처를 입고도 하늘을 향해 가지를 뻗는 나무처럼 감독의 자전적 유년기를 펼친다. 사랑과 자애의 표상인 어머니, 둔탁하지만 진솔한 아버지와 아들 3형제의 여름 오후 5시. 브래드 피트가 아기의 발을 어루만지는 포스터를 보고 <트리오브 라이프>를 택한 많은 관객들이 우주오페라 같은 10여 분의 시퀀스를 만나 찬탄과 당혹의 경험을 한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멜랑콜리아>는 동명의 행성이 지구를 향해 다가오는 상황을 그린 재난영화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할리우드의 무수한 재난영화가 얼마나 요란스러운 클리세인가 깨닫게 된다. 감당할 수 없는 자연재해 앞에서 과연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반목하던 가족들이 화해하고 용서하고, 누군가의 희생으로 끝내 아이를 구해내는 저간의 재난영화는 얼마나 비현실적이었던가. 바그너에 바친 영화라는 평처럼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서곡이 감정선을 채우고, 늘 반신반의하던 배우 크리스틴 던스트가 신경과민증 연기로 칸의 여우주연상을 받아 갔다. 라스 폰 트리에의 여주인공들이 다들 타 갔듯이.


<언더 더 스킨>은 마릴린 먼로의 현재형 스타 스칼렛 조핸슨의 성적 이미지를 열광적으로 전시하는 영화이지만 내용은 그렇게 말랑말랑하지 않다. 서유럽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낮은 스코틀랜드의 외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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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를 알 수 없는 아름다운 여자가 남자들을 유혹해 차에 태우는 전반부의 헌팅씬은 <택시 드라이브>를 연상케 한다. <겟 아웃>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하고 통쾌하지만 <트리오브 라이프>, <멜랑콜리아>, <언더 더 스킨>은 모두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고 낯설게 들리게 한다는 점, 수많은 해석이 가능한 개방성이 공통적이다. 그것은 예술이 지향하는 궁극의 목표이고, 이 영화들은 도달하기 어려운 곳에 도달했다는 점에서 지난 10년의 최고작이 되었다.


시니어 시티즌, 어른이 된다는 것
<그랜 토리노>, <다가오는 것들>, <스트레이트 스토리>,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어른이 된다는 것의 지난함을 나이가 먹을수록 알게 된다. 잉여의 존재가 아니라 커뮤니티의 일원으로서 주변화되지 않으려면 롤 모델이 필요하다. 더티 해리 식 마초 웨스턴의 자기반영적인 캐릭터를 구축해온 거장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감독 주연작 <그랜 토리노>는 보수주의자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유서 같은 영화다. <용서받지 못한 자>의 원형적 인물이 이 영화의 캐릭터 스탠리 코왈스키다. 50년간 포드 자동차의 벨트라인에서 근무한 코왈스키는 모든 면에서 올드한 구식 독거노인이다. 자식들과 불화하고 이웃과 교회를 경원시하는 그는 빈티지 카 그랜 토리노를 닦고 조이고 광을 내는 게 유일한 낙이자 보람이다. 그랜 토리노는 산업현장에서 제몫을 해낸 코왈스키를 상징한다. 그가 이웃집 루저 소년을 남자답게 성장시키는 과정은 코왈스키가 반영웅적 롤 모델로 태어나는 과정이다.


<다가오는 것들>은 여자가 나이 들어갈 때 부닥치고 통과하는 많은 것을 이야기하지만, 이토록 사려 깊고 원숙한 길이 있었던가 놀라게 만드는 영화다. 이사벨 위페르가 연기하는 이 중년 여성은 생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가장자리에 겸허히 있는 여성이다. 겸허한 자리에도 변방이 있을 줄은 몰랐다. 남편이 이혼을 요구하고 직업적으로도 흔들린다. 명석하고 잘생긴 제자가 찾아와 손을 잡아주지만 영화는 연하의 제자와 벌이는 로맨스로 응급처치를 하지 않는다. 님편과 제자의 대비를 통해 떠나온 것과 다가오는 것을 비유하지만 다가오는 것의 범주에는 더 큰 선물이 있다. 그녀가 평생을 통해 읽어왔던 철학의 세계다. 나이든 여성 서사가 빈약한 영화계에 축복처럼 찾아온 영화가 <다가오는 것들>이다.


<스트레이트 스토리>는 데이빗 린치 감독의 영화가 맞나? 싶은 예외적 작품이다. 스트레이트라는 이름의 노인이 잔디 깎는 기계를 타고 몇 개의 주를 지나 10년간 절연했던 형을 찾아가는 로드무비다. 잘못된 것을 고치고 싶다면 지금 당장 하라, 시간이 많지 않다.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데이빗 핀처 감독을 첫 대면하기에 가장 좋은 선택.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천재 감독이라 불리는 코엔 형제의 대표작이다. 코엔의 영화적 고향 텍사스에서 벌어지는 범죄스릴러. 돈 가방, ‘우연’의 모티브 등 가장 코엔적이라 불리는 모든 요소가 갖춰진 걸작이다. 은퇴 직전의 보안관이 ‘늙은이는 이해하기 어려운 세상’에 대해 탄식하지만, ‘이곳이 노인을 위한 나라가 아니다’라는 것을 정확히 아는 유일한 사람이다.

 

•     일    시 : 수요일 14:30~17:30 
•     장    소 : 전성기 삼봉로극장 시그나홀 
•     문    의 : ☎ 02-6333-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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