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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에 서울사대부고를 졸업한 18회에는 ‘여유회’라는 특이한 모임이 있다. 동기들에겐 너무나도 친숙한 이름이 지만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는 감이 잘 잡히지 않는 모양 이다. 이름 자체가 생경해서 그런지 졸부가 된 여유 있는 부자들끼리 모여 돈 자랑이나 하는 사치스런 모임으로 오 해하는 사람들도 간간이 있다.

 

벌써 10여년의 역사를 지닌 여유회는 동기들의 은퇴시기를 전후해 생겨난 모임이다. 인생 전반기엔 힘든 생업에 종사 하면서 오로지 일만 생각하며 치열하게 살아왔지만 후반기 에는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산 좋고 물 좋은 곳을 찾아 다니며 보다 여유 있는 삶을 구가해 보자는 취지에서 만들 어졌다. 칠순이 된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학창시절로 되돌 아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웃으며 몰려다니다 보면 뭇사람들 의 시선이 집중된다. 분명히 부부 모임을 아닌 것 같은데 남 녀가 아무런 내숭도 떨지 않고 자연스럽게 회동하며 희희낙 락하는 것을 보고 다들 무슨 모임이냐고 묻는다. 사대부고 동기 모임이라고 하면 남녀 불문하고 다들 “나도 남녀공학 을 다녀야 했었는데” 하면서 부러워하는 눈치가 역력하다.

 

동기생 모두가 회원인 이 모임을 맨 처음 제안하고 조직한 사람은 평생을 증권업계에 몸담아 오다 지금은 자타가 공 인하는 여행전문가로 변신해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정강 현 금융투자협회 동우회 회장이다. 친구들을 위해 국내뿐 아니라 해외여행을 직접 기획하기도 하고 어린 손자와 단 둘이 유럽 여행을 하기도 한 베테랑 여행가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결코 여행전문가가 아니라며 단순하게 여행을 즐 기는 여행애호가라도 불러달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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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회 종신 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노고단이 바라보이는 지리산 자락 섬진강 상류의 조그만 산촌에서 태어났다. 시 골에 살다보니 산 너머 세상이 무척 궁금하기도 했지만 기 적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위안을 삼아야 했다. 초등학교 4 학년 때인 어느 날 그림으로만 보던 바다를 육안으로 직접 보고 싶었다. 그러나 딱히 다른 방도가 없었다. 한의사로 일하던 아버지에게 바다구경 한번 하고 싶으니 데려가 달 라고 조르는 방법 이외에는 젊은 시절 만주에서 살다 해방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온 아 버지는 어린 아들의 소망을 듣고 흔쾌히 한의원 문을 걸어 잠근 뒤 아들과 함께 군산행 기차에 올랐다. 아들이 원하 면 그 무엇을 희생해서라도 해주고 싶은 심성 좋은 아버지 였다. 쳇바퀴 도는 시골 한의사 생활을 답답해하던 그분 역시 정 회장처럼 세상을 떠돌고 싶은 김삿갓 같은 사나이였 다. 주말이 되면 으레 시골 5일장 장꾼들의 전용차인 작은 트럭을 빌린 뒤 아들 형제는 물론이고 이웃 친구들까지 태 우고 가까운 섬진강댐이나 마이산 등 여러 곳을 순회하며 구경을 시켜줬으니 말이다. 정 회장도 “자식을 사랑할수록 여행을 시켜야 한다”는 아버지의 말씀을 회상하며 자신의 여행증후군이 아버지의 여행 DNA를 물려받은 것 같다고 말한다.

 

정 회장은 서울로 유학을 와 고교를 마친 뒤 꿈에 그리던 영화감독이 되어보려고 대학은 연극영화과에 지원했다. 전공을 살려 영화계에 투신, 한때 조연출을 맡기도 했지만 그의 인생행로는 따로 정해져 있었다. 1970년대 초 1차 오 일쇼크로 벤처사업에 실패해 실의에 빠져있던 시절, 일간 지에 실린 직원 채용 광고를 보고 온 한 친구의 권유로 증 권업협회 시험에 응시한 것이 인생의 갈림길이 됐다. 30 년 넘게 협회에서 일하다보니 자연히 업무와 관련해 증권 시장 선진국으로 출장을 가는 기회가 많았다. 특히 1992년 한-중 국교가 정상화된 이후엔 양국 업계 간의 교류증진을 위해 증권업계 사장단을 모시고 수차례 중국을 방문하면 서 중국의 역사와 문화에 심취하게 됐다. 그때마다 혼자 호 사를 누리는 것 같아 아내에게 항상 미안했다고 한다.

 

정 회장의 아내 사랑은 남다르다. 그는 철부지 고교시절 고 교 선배이자 독일어를 가르치던 처녀 선생님을 너무나도 흠모했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25살 연상의 중학교 스 승과 결혼했다지만 당시 한국의 문화로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의 간절한 소망이 하늘까지 닿았는지 선생님과 이름 석 자가 똑같은 지금의 아내가 그의 앞에 나 타났다. 총각시절 아내의 이름을 듣는 순간 바로 이 사람이 하늘이 내려준 내 배필이로구나 생각하고 다른 것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니 세상에 이런 로맨티스트가 또 어디 에 있겠는가.

 

나이 60이 되면서 시간의 여유가 생기자 그는 아내와 함께 여행을 하기 시작했다. 단둘이 가는 여행도 있었지만 마음 에 맞는 다른 친구들의 부부들과 함께 여럿이 함께 하는 여 행을 만들어 실크로드, 티베트, 몽골, 인도, 터키 그리스 등 지를 여행했다. “다른 부부도 그랬겠지만 부부가 여행을 하다 보니 서운했던 감정도 치유할 수 있었고 젊은 시절 가 족을 돌보지 못했던 시간에 대한 보상이 되어주는 것 같았 다”며 “한마디로 보약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여행지에 서 마주앉은 아내는 바로 나를 비춰주는 거울이었고 40년 가까이 살아온 아내의 모습은 나와 함께 한 모든 것을 그대 로 담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아내가 즐거우면 나도 즐겁 고 아내가 슬프면 나도 슬퍼졌다”고 심경을 털어놓았다. 그는 부부가 함께 맛보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경이로움이 새로운 활력을 샘솟게 해 아내와 함께 여행한 추억을 더듬 어 ‘문명의 흔적에서 삶의 허기를 채우다’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고 뿌듯해 한다. 그는 지난해 가을에도 고교 졸업 50주 년 여행을 기획, 동기생 48명을 이끌고 일본 홋카이도 단풍 여행을 갔다. 시쳇말로 끝내주는 대설산 소운코 계곡의 단 풍을 혼자서만 즐긴 것이 못내 미안했던지 금년에는 아내 와 함께 다시 가기로 하고 이미 27명의 친지들을 모집했다 니 아내 사랑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간다.

 

우리 속담에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말이 있다. 영어로 여 행을 뜻하는 ‘travel’이라는 말도 노고와 진통을 뜻하는 ‘travail’에서 왔다고 하니 동서를 막론하고 여행이 힘든 일 임은 분명한 것 같다. 정 회장도 힘들기는 자신도 마찬가지 라고 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인프라가 잘 갖춰진 선진국보 다는 오지 여행을 즐긴다. 가장 인상적인 여행지로 티베트 를 든다. “아직도 원시적인 인간의 삶과 유적들이 온전히 남아있는 곳입니다. 시리도록 푸른 하늘과 설산아래 노란 유채꽃과 초록의 들판. 잠자리가 조금 불편하고 많이 걷기 는 하지만 한 살이라도 더 젊었을 때 의미 있는 여행을 도전 해보라”고 권한다. 역사에 유독 관심이 많은 정 회장은 여 행 전 역사공부가 필수라고 한다. 그래서 며느리로 역사 선 생님을 맞이했는지도 모르겠다. 특히, 피지배국의 누락된 역사가 최고 관심사다. “티베트의 시가체 마을의 한 식당에 서 남은 음식을 구걸하던 티베트의 어린 아이들을 보며 과 거 토번국 시절 당 태종까지 위협하며 위세를 떨치던 티베 트의 사라진 역사에 슬픔이 느껴지더군요. 우리나라 역시 비슷한 고통을 겪은 탓인지 강력한 힘에 의해 통제를 받고 있는 소수민족을 바라보고 있으면 많은 생각이 듭니다. 이 들의 과거, 그리고 현재를 앞으로도 지켜보고 싶습니다.”

 

해가 거듭될수록 제2의 인생을 살아가는 그의 열정은 더욱 강해지고 있다. 몇 년 전부터는 가곡 수업도 듣고 있다. 원래 노래 잘하기로 소문났지만 프로에게서 배우기까지 하 니 이젠 성악가로 데뷔하고 싶은가 보다. 그는 수업을 계 기로 매년 가을 상명대에서 가곡발표회도 갖고 있다면서 계획된 인생은 아니었지만 스스로 여유를 찾아가는 과정 에서 많은 것들을 얻고 있다고 소개한다.

 

1973년 증권업협회에 입사한 정 회장은 재직 중 MBC에서 다년간 시황방송을 하기도 했고 한국증권연수원 원장과 협회 전무이사를 거쳐 2000년에 퇴직했다. 이후 건설증권 대표이사, 코스닥등록법인협의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고 현재는 금융투자협회 동우회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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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현채 前 연합뉴스 논설실장 / 언론중재위원회 중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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