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농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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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철
한국일보 대표이사

 

정확히 25년전이다. 1997년 딱 이맘때, 우리나라엔 건국 이 래 최악의 경제참사가 벌어지고 있었다. ‘IMF사태’라 불렀 던 외환위기였다. 경제란 원래 상승과 하강의 끊임없는 반 복이다. 호황 뒤엔 반드시 불황이 오고, 고통스러운 침체의 시간이 지나면 상승 반전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1997년의 추락은 과거의 경기 패턴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123에서 123까지

나는 당시 금융담당 기자로서, 한국경제가 무너지는 광경을 현 장에서 목격했다. 사실 경제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는 징후는 그 해 초부터 감지됐다. 외환위기 시발점을 언제, 어디로 볼 것인 가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있지만, 가장 상징적 발화지점은 1월 23일 한보그룹 부도였다. 재벌규모 20위안에 있던 한보의 몰락 은 산업화 이래 수십년간 이어져온, ‘대기업은 결코 망하지 않 는다’는대마불사(大馬不死)의불문율이더이상작동하기힘 들어졌다는 시그널이었다. 몇 달 뒤, 그 신호는 현실이 됐다. 주 류재벌 진로, 미도파백화점의 대농, 한신아파트로 유명한 한신 공영 등 굵직한 대기업들이 도미노처럼 쓰러졌다. 그리고 연쇄 도산의 파도는 마침내 국민기업으로 일컬어지던 기아자동차를 삼켰고, 쌍방울과 해태마저 무너뜨렸다.

당시 재벌들은 자기 돈 없이도, 은행 돈 빌려 투자하고 확장하 던 시절이었다. 대기업 부도로 은행들은 천문학적 부실채권을 떠안게 됐다. 기업의 부실화는 곧 금융의 부실화였고, 기업-금 융의 동반부실화는 한국경제 전체의 부실화를 뜻했다. 이런 나 라에 돈을 투자할 외국인, 돈을 빌려줄 외국인은 없다. 있는 돈 마저 빼기 시작했다. 주가는 폭락했고 환율은 폭등했다. 환율방 어를 위해 시장개입 몇 번하니까, 300억달러 남짓했던 외환보 유액은 순식간에 바닥을 드러냈다. 남미 국가들 얘기인 줄만 알았던 국가 지급불능 사태가 우리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SOS를 칠 곳은 딱 한군데, 국제통화기금(IMF) 뿐이었다. 한국정 부는 IMF로부터 급전을 지원받는 대가로 초고금리 정책과 고강 도 구조조정, 시장개방을 약속했다. 그 협약이 맺어진 게 12월 3일이다. 이것이 1월23일(123) 한보철강 부도부터 12월 3일 (123) IMF체제 개시까지, 이른바 ‘123에서 123으로’ 이어진 비극의 과정이다. 지금 40 대 이상이라면 대부분 그 혹독했던 시절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대기업 중소기업 가릴 것 없이 숱한 기업들이 쓰러졌고, 살아남은 기업들은 생살을 도려내는 가혹 한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직장인들은 회사에서 쫓겨났고, 자영 업자들은 가게 문을 닫았다. 극단적 선택을 하는 가장, 해체되 는 가정이 줄을 이었다. ‘금 모으기’같은 감동적 애국 서사도 있 었지만, IMF사태의 본질은 피눈물 나는 잔혹극이었다.

 

트라우마

시간이 흘러도 악몽은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도 놀란다고 했던가. 불황만 닥치면 “혹시 또 IMF?”하는 섬뜩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외환위기 10년 뒤 찾아 온 2009년의 리먼사태 때도 그랬다. 최근 경제상황을 두고도 많은 우려가 쏟아진다. 성장률은 떨어지고, 물가와 금리는 치솟 고, 경상수지는 나빠지고, 여기에 주가와 환율은 요동을 치고. 특히 2012년 이후 10년 넘게 흑자행진을 이어오던 무역수지 (상품수지)가 올해 7~8월 두 달 연속 적자를 내고, 원/달러 환율 이 2009년 이후 13년만에 1,500원선까지 육박하자, 외환위기 공포가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다. 그 힘든 코로나 터널을 겨우 통과했는데, 또다시 불황이 도사리고 있으니 체감경기는 더 차갑게 느껴진다.

우리나라처럼 대외의존도 높은 경제에서 경상수지에 빨간 불 이 들어오고 환율이 치솟는다는 건 대외균형이 깨지고 있다는, 매우 불길한 전조임엔 틀림없다. 25년전 외환위기 전야에도 경상수지 적자가 폭발적으로 늘고 환율이 미친듯 급등하지 않았 던가. 10년 이상 비교적 안정된 거시경제지표만 보아왔던 국민 들로선, 갑작스럽게 찾아온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이 몹시도 당혹스럽고 걱정스러울 수밖에 없다.

 

 

펀더멘털이 달라졌다

그럼에도 나는 IMF사태 같은 일은 다시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 고 확신한다. 외환위기 근본원인은 기업과 금융의 동반 부실인 데 2022년의 한국 기업과 금융회사들은 그렇게 부실하지 않다. 대기업들은 강해졌고, 은행들은 탄탄 해졌다. 한국 경제에 외환 위기는 아주 비싼 수업료였다. 대기업들은 IMF사태를 맞게 되 자 부채를 줄이고 부실계열사를 정리했으며 지배구조도 뜯어 고쳤다. 파산 직전 공적자금을 수혈 받은 은행들은 먼저 자기자 본부터 확충했고 대출 프로세스를 바꿨다. 만약 IMF가 없었다 면, 우리나라 대기업과 은행들이 단기간에 이렇게까지 달라질 수는 없었을 것이다. 너무도 고통스러웠지만, 바로 그 고통을 통해 한국경제 체질은 근본적으로 바뀌었음을 누구도 부인하 지는 못할 것이다. 지금 경제문제의 핵심은 인플레이션이다. 코 로나로 인한 과잉유동성 영향이 크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 쟁만 끝난다면 에너지 원재료 가격은 어느 정도 안정될 것이고 인플레도 한 풀 꺾일 것으로 본다. 인플레가 잡히면 금리인상도 멈추고, 그러면 환율도 안정을 되찾을 것이다. 결국은 시간이 해결해 줄 것으로 믿는다.

 

그래도 불안한 이유는

그렇다면 한국경제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건가. 그건 결코 아니 다. 제2의 외환위기 같은 건 없겠지만, 과거와는 전혀 다른 심각 한 불안요소가 도사리고 있다. 우리가 어떻게 ‘IMF 조기졸업국’ 칭찬을 받을 정도로 외환위기에서 빨리 벗어나게 됐는지 한번 냉정히 생각해보자. 첫 번째는 미국의 도움이다. 국가부도위기 를 면한 건 IMF의 긴급지원 덕이었고, IMF가 그렇게 하도록 움 직인 건 미국 클린턴 행정부였다. 두 번째는 중국이다. 급한 불 을 끈 한국 경제가 조기 회복할 수 있었던 1등 공신은 수출이었 는데, 성장하는 중국시장의 힘이 무엇보다 컸다. 우리 정부, 우 리 국민의 노력을 과소평가하는 건 아니지만, 미국의 지원과 중 국시장이 없었다면 IMF 조기졸업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2009년 리먼 사태 때 동반 위기에 빠진 세계를 구한 건 각국의 공조였다. G7, G20 정상과 재무장관, 중앙은행 총재들이 수시로 만나 함께 공동대응에 나선 결과, 세계경제는 대공황의 위기에 서 벗어날 수 있었다. 문제는 그런 공조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 는다는 데 있다. 협력하던 세계는 어느새 각자도생의 정글로 바 뀌었다. 중국은 커진 경제력을 바탕으로 미국 주도의 세계 경제 질서에 도전하고 있고, 그러자 자유무역의 리더였던 미국은 보호주의의 첨병이 되어 버렸다. 미중 패권경쟁으로, 세계경제 번 영을 지탱했던 자유로운 공급망과 글로벌 분업체계는 사실상 와해되고말았다.

만약 지금 우리경제가 치명적 위험에 빠진다면, 25년전과같은 미국의 긴급 지원을 더는 기대할 수 없다. 한국 수출의 성장 동 력이었던 중국시장은 뭐든 팔 수 있었던 예전의 그 시장이 아니 다. 한국은 자유무역과 글로벌 공조의 최대 수혜국가중 하나였 기 때문에, 역으로 보호무역과 패권경쟁 시대의 최대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 이런 글로벌 질서의 구조적 변화야 말로 한국경 제의 진짜 위험요소다. 게다가 지금은 안보위기 상황이다. 우리 나라에 지정학적 리스크는 상존했지만, 전과 다른 건 지금 북한 은 핵 보유국이란 사실이다. 핵을 머리 위에 얹고 살아야 하는 현실. 미국도 과거의 미국이 아니고, 중국도 과거의 중국이 아 니며, 북한도 과거의 북한이 아니라면, 느끼든 못 느끼든 우리 는전혀새로운환경하에서살고있는셈이다.

이렇게 경제와 안보, 동시위기인 적은 없었다. 과연 우리는 이 격랑을 잘 헤쳐 나갈 수 있을까. 위기가 현실화됐을 때 풀어나 갈 비상계획은 갖고 있는 걸까. 찢어지고 쪼개진 우리 사회의 현실을 생각하면 더 어둡게만 느껴진다.

 

※필자 이성철(36회) 대표는 지난해 12월 1일자로 한국일보 대표이사 겸 발행인 편집인으로 임명됐습니다. 본 원고는 대 표이사취임전콘텐츠본부장때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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