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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계절

Another Year, 마이크 리,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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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할리우드가 전성기를 구가하던 1950년대, 영국에는 소위 키친 싱크 리얼리즘이라는 영국식 리얼리즘이 꽃을 피우고 있었다. 이 새로운 문예사조는 문학과 미술을 거쳐 영화계에도 당도했는데, 작은 제작비로 기층민의 삶을 다루는 가족드라마가 주를 이뤘다. 가족과 그 이웃의 이야기이니만큼 부엌과 주방을 중심으로 동선이 짜이게 마련이라 이런 별명이 붙었을 것이다. 이 전통을 오늘날까지 충실히 잇고 있는 감독이 마이크 리다.<비밀과 거짓말>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등 마이크 리의 수많은 걸작 드라마 가운데 <세상의 모든 계절>은 가장 심금을 울리는 멜로드라마다. 영화의 중심축은 런던 교외에 살고 있는 톰과 제리라는 장년의 부부이다. 이들은 각기 지질학자와 심리 상담사라는 전문직을 갖고 있으며, 정치적으로도 깨어있고, 첫사랑과 해로중이다. 변호사인 외아들도 부모를 존경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 4계절이 지나는 1년 동안 톰과 제리 부부의 식탁에는 손님들이 초대된다. 제리의 직장 동료 메리, 톰과 제리의 대학동창 켄, 톰의 형 벤이 차례차례, 따로 또 같이 부부의 행복한 부엌으로 온다. 영화의 기본 축은 톰과 제리부부지만 영화의 다이내믹은 초대된 사람들에게서 나온다. 그들의 불안정한 현재와 과거, 잘못된 선택, 지독한 외로움… 그중에서도 메리는 가장 중요한 동력이다. 메리는 50대 초의 독신녀(정확히는 이혼녀)인데 여전히 외모에 자신감이 있으며 새로운 연애를 기다린다. 톰과 제리의 식탁에 앉아있을 때 마다 메리는 이 가족의 일원이 되고 싶다는 염원이 생기고 염원은 착각을 부르는데, 마침내 큰 실수를 하고 만다. 행복한 사람들의 대화가 차츰 소거되면서 막막하게 허공을 응시하는 메리의 클로즈업 숏은 잊을 수 없는 엔딩 씬이다. 인생 초보자들이 이 영 화를 이해할 수 있을까? 마이크 리라는 현자가 빚어내는 인간 탐구 드라마의 매력은 유머감각과 ‘마이크 리 사단’이라 불리는 명배우들의 연기 앙상블이다. 너무나 리얼해서 연기가 아니라 일반인들의 생활 그 자체를 보는 듯하다. 리의 사단에 미남 미녀배우는 없는데도, 모두 할리우드에서 모시고 간다. <해리포터>도 이들이 없었으면 못 만들었을 것이라는 농담은 농담이 아니다. 그중에서도 메리 역을 해낸 레슬리 멘빌! 그 해 영국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지 못한 것이 아직도 납득되지 않는 명연기를 보여준다.

 

베스트 이그조틱 메리골드 호텔

The Best Exotic Marigold Hotel, 존 매든,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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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파이하고 브로드 밴드(고속 데이터 통신망)하고는 어떻게 다른가요?” 인터넷 주문 한 번 해보려다 좌절하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베스트 이그조틱 메리골드 호텔>은 타깃이 정확한 영화이다. 인생을 새로 시작할 각오가 대단한 노인들, 은퇴 이후 어떻게 살아남느냐의 문제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늙었다고 하찮은 존재로 취급당하기는 싫다’라는 대사처럼 늙은이들을 무시하는 세상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한다. 하지만 인도 변두리에 있는 메리골드 호텔의 젊은 사장은 호텔마케팅을 그 ‘하찮음’에 맞추고 있다. 그는 투자자에게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영국 노인네들을 아웃 소싱 해오는 것이 우리 영업 전략입니다. 영국 말고도 늙은이들을 싫어하는 나라는 많아요.” 인도행 비행기를 탄 7인의 영국 노인들, 7가지 사연은 다음과 같다. (이름은 캐릭터가 아니라 배우들의 이름이다)

 

• 주디 덴치: 평생 남편만을 바라보고 살다 얼마 전에 과부가 되었다. 남편이 유산은 커녕 빚을 남겨준 덕에 살던 집을 넘기고 오갈 데가 없다. 아들이 저희 집으로 들어오라고 하지만 내키지 않는다. 인도에 가면 직장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 매기스미스: 영국 아니면 그 어느나라도 싫다. 특히 인도는 음식 냄새도 싫고 다 싫다. 인도에서 저렴한 치료비로 엉덩이 관절 수술을 받고, 수술만 끝나면 곧 바로 귀국 할 생각이다.

 

• 빌 나이 & 페네로페 윌튼 부부: 딸에게 은퇴자금을 빌려줘서 빈털터리다. 오랫동안 불화했던 부부, 인도에 장기 여행을 와보니 알겠다. 더 이상은 함께 살고 싶지않다.

 

• 톰 윌킨슨: 전직 판사. 어려서 가족이 살던 인도는 마음의 고향이자 이루지 못한 첫사랑이 있는 곳. 옛 연인을 수소문하는 일이 이번 여행의 목적이다.

 

• 클레어 임리: 여러 번 결혼했지만 아직도 혼자다. 손주나 길러주며 뒷방살이하고 싶지는 않다. 인도에 가면 마하라자(고대 인도의 군주)가 널렸을테니 한명 쯤은 내 남자가 되겠지.

 

• 로날드 픽업: 나 정도의 외모와 신사 매너, 비아그라라면 아직도 원 나잇 스탠드 정도는 가능 할 테지. “난 한 번이라도 젊었던 시절의 그 느낌을 찾고 싶을 뿐이야. 하룻밤이라도 내가 누구에게 매력 있게 여겨졌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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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 경쟁이 필요없는 명배우들(여왕에게 작위를 받은 배우가 둘이나 있다!), 특히나 페네로페 윌튼과 톰 윌킨슨이 명연을 보여준다. 한국영화의 최전성기가 언제인가라는 질문을 한다면  <살인의 추억>, <올드보이> 등 창의적인 감독들이 출현했던 2003년이라고 대답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할리우드 영화의 최전성기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오즈의 마법사>, <역마차>가 나왔던 1939년이다. 이 세 작품은 할리우드의 제작능력과 관객 동원력이 마침내 영화의 본 고장인 유럽을 뛰어 넘었음을 증명하고, 미국이라는 나라의 본질을 영화 언어로 정의한 기념비적인 영화들이다.

 

이 중에서도 <오즈의 마법사>는 문화유산으로 등재 돼 미국 팝 아트의 아이콘이 됐다. 최근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흑인노예들을 다루는 방식 때문에 거부되는 것을 보면 시간을 이겨내고 클래식의 반열에 드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실감이 난다. 40권의 원작 소설 중 제 1권을 다룬 이 영화 이후 80년간 수많은 외전과 프리퀄*이 나왔고 뮤지컬, 드라마, 애니메이션으로 재해석되고 있다. 퀸시 존스가 연출하고 마이클 잭슨이 허수아비역을 했던 1978년 작 <마법사>(The Wiz)는 토니상 7개 부문을 받았다. 캔자스의 시골소녀 도로시가 태풍에 날아간 곳에서 허수아비, 양철 인간, 겁 많은 사자와 만나 자신들의 문제나 열등감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마법사를 만나러 오즈라는 신세계로 향하는 모험담이다. 이 단순하고도 천진한 아동극이 한 나라의 무의식을 사로잡는 불멸의 걸작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식 낙관주의, 상상력의 무한계, 그리고 이 영화가 활용하고 있는 ‘꿈’이라는 스토리텔링 장치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오디세이, 돈키호테, 허클베리 핀, 데이비드 커퍼필드 등 걸작들에서 보여주는 공통점이 오즈에도 있다. 심오한 깊이를 갖추고 있지만 표면은 지극히 단순하고도 명랑한 이야기로 펼쳐진다는 점, 용감하지만 결점이 있는 영웅들, 모험으로 점철된 여정, 미지와의 다채로운 조우라는 3박자 공식 말이다. 그리고 신화가 없는 나라 미국의 원형적인 캐릭터를 창조했다는 점도 주요한 이유다. MGM이 제작한 이 영화에는 무지개 너머(Over the Rainbow), 딩동! 마녀가 죽었다(Ding Dong! The Witch is Dead), 내게 만일 심장이 있다면 등 22곡의 명곡이 들어있다. 흑백으로 시작해 컬러로 펼쳐지는 에메랄드 시티를 처음 만나는 순간, 도로시의 붉은 색 루비 구두, 노란색 벽돌길이 등장하는 순간, 관객들은 영화라는 매체가 보여주는 마법을 경험한다. 도로시 역으로 국민 여동생이 된 주디 갈란드는 모든 골칫거리들이 레몬 방울처럼 녹아내리기를 소망하는 천진함과 그 이면의 고뇌, 불안정성을 탁월하게 소화했다. “자신이 지금 위대한 영화를 만드는 중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 듯 편안하고 여유롭다 못해 지금 연기하는 역할은 장난삼아 하는 것이라는 느낌마저 준다.”고 로저 이버트는 말한 바 있다. “사랑을 원하면 뒤꿈치를 3번 부딪히세요.”라고 말하는 영화아닌가.

 

주디

Judy, 루퍼트 굴드,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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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나 영국 영화가 유독 선호하는 소재중의 하나는 나이든 할리우드디바의 굴곡진인생사다. 마릴린 먼로 이야기가 자주 리메이크되는 이유다. <주디>는 할리우드 스타가 영국에서 겪는 일을 다룬 영국영화이다. 오랫동안 하고 싶었던 아이템이었을것이다. 그러나 주디 갈란드는 마릴린 먼로 보다 힘든 프로젝트다. 주디는 연기자인 동시에 훌륭한 가수였기 때문이다. <보헤미안 랩소디>의 라니말렉, <레이>의 제이미 폭스가 프레디 머큐리, 레이찰스를 연기하며 오스카를 거머쥐었지만 뭔가 아쉬웠던 것도 사실이다. 노래는 모두 다른 이가 부르고 립싱크 했기 때문이다. 2020년 <주디>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러네이 젤위거가 이룬 성취가 놀라운 것은 이 때문이다. 그녀는 그 모든 노래를 모두 라이브로 소화했다. 뿐만 아니라 주디 갈란드의 귀신이 슬쩍 들어왔던 것처럼 모사 연기의 한 경지를 보여준다. 유령을 본 듯 오싹한 순간은 한 번 더 있다. 주디의 10대 시절을 연기한 여배우 달시 쇼의 모습은 실제 주디의 모습과 너무나 흡사하다! 이 영화는 <오즈의 마법사>의 여주인공 도로시를 연기했던 주디 갈란드의 생애 마지막 공연을 다루는 전기 영화이다. 2살(한국 나이로는 4살이겠지만)때 부터 무대에 올랐던 주디는 미국 연예계 최고의 엔터테이너라고 할 수 있다. 노래 실력 뿐 아니라 연기력도 정상급이었다. 여러 번 만들어진 영화 중에서 주디 갈란드가 주연을 맡았던 1954년작이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인정받는 이유도 그녀의 연기력 때문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주디 만큼 스산한 삶을 산 스타도 없을 것이 다. 유별난 부모(아버지는 게이였고, 어머니는 딸이 배역을 따내도록 성상납과 낙태를 강요했다.), 스튜디오의 학대(하루 18시간촬영, 살찌지 말라고 식욕억제제와 신경안정제를 강제 투여했다.), 애정없는 결혼 생활(5번 결혼해 4번 이혼했고 양육권 분쟁까지 했다), 쉬지않고 일했지만 파산해 빈털터리로 사망했다. 영화 <주디>는 47살의 주디가 재기하기 위해 런던의 나이트클럽에서 5주간 공연했던 말년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현재의 주디와 과거 <오즈의 마법사>를 촬영했던 시절의 어린 주디를 교차 편집하는 구성이다. 과거의 주디 스토리에서는 도로시가 노란 벽돌 길을 따라가는 오프닝 시퀀스의 프러덕션 디자인과 어린 주디의 연기가 좋고 현재의 스토리에서는 런던의 게이 커플과의 하룻밤이 아름답게 그려져있다.

 

김현숙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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