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부전과 살아가기: 유방암과 심부전 _ 김경희

by 선농문화포럼. posted Sep 05,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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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희
인천 세종병원 심장 이식센터장

 

 

 

 

 

 

 

 

 

 

 

 

 

5년 전, 외래를 보던 중이었다. 간호사가 다급하게 문을 열어 한 환자를 봐 달라고 소리쳤다. 외래를 기다리던 50대말의 여자 환자는 고개를 떨구고 푹 늘어진 채로 정신을 잃어 가고 있었다. 오랫동안 심부전을 앓고 있던 김모 환자는 지속해서 기력이 없고, 호흡곤란을 호소했다. 타 병원에서 아무리 치료를 해도 호전이 없어 이차 의견을 위해 본 병원을 찾아 외래를 기다리던 와중에 심부전에 의한 심한 혈압 감소와 탈수 등이 겹쳐 그만 정신을 잃게 된 것이다.

 

이미 수년 전부터 정상적인 기능을 할 수 없었던 환자의 심장은 회복될 가능성이 희박했고, 환자는 심장의 수축 기능을 높이는 승압제를 사용하면서 심장 이식을 대기하고 있었다. 입원한 환자의 심장 초음파를 살펴본 결과 심장은 거의 풍선처럼 부풀고 늘어져 있는 모양새를 띄고 있었는데, 이러한 모양을 미루어 보아 심장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환자는 20여 년 전, 아이를 낳은 후 유방암을 앓아 한쪽 유방을 절제하고 항암 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받았다. 안타깝게도 유방 절제술시 림프절 전이가 있어서 림프절 절제술도 함께 진행하게 됐는데, 수술 후 순환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서 한쪽 팔도 자주 붓고 아픈 증상도 생겼다고 했다. 겨우 유방암을 벗어나게 되어 행복했는데, 심부전을 앓게 되어 결국 심장 이식을 해야 한다고 하니 환자는 절망에 빠지고 말았다. 수술의 고통을 겪어본 환자는 더는 또 다른 수술을 받지 못하겠다고 선언하며 상태가 경미하게 호전되자마자 퇴원 수속을 밟았다. 그러나 환자의 심장은 병원 밖에서 단 하루도 버틸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결국 몇 시간만에 환자는 재입원하게 됐다. 환자의 심장은 승압제로 겨우 버티고 있었지만, 심장 이식은 여전히 장애물로 남아 있었다. 유방암 수술과 반복된 수혈은 환자의 몸에서 자가 항체의 생성을 유발했다. 이 경우 심장 이식을 하면 거부 반응이 발생할 확률이 높았기 때문에 환자의 몸 안에 있는 항체를 제거하는 약물을 투입하고 시술을 진행하는 것이 불가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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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암은 발생률이 해마다 늘어나고 있으며 재발률도 높아 여성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병 중 하나이다. 왜 유방암 환자 중 심부전도 함께 앓고 있는 환자가 많을까? 유방암 환자는 수술과 항암 요법 혹은 방사선 요법을 같이 받게 되는데, 유방암 치료에 쓰이는 항암 요법 중 아드리아 마이신을 이용한 항암 요법은 심근에 독성을 일으켜 심장 기능을 떨어지게 한다. 하지만 항암 요법은 유방암 치료에 있어 필수이기 때문에 항암 시작 전과 중간에 심장 초음파를 시행해 심기능을 면밀히 관찰하는 것이 중요하다. 심기능이 감소할 것으로 판단되면 다학제 협진을 통해 환자에게 약물을 바꿀 것인지, 심장 보호제를 사용할 것인지 숙고해 결정 해야 한다. 아울러 아드리아 마이신 만큼은 아니지만, 단백질의 특정 부분에 결합해 암세포를 공격하는 ‘허셉틴’ 또한 심장의 기능을 감소시킬 수 있다. 따라서 지속적인 심초음파를 시행한 후에 심장의 기능이 감소할 경우 혈액종양 내과 의사와 심장 내과의 토론을 거쳐 환자에게 추가적인 약물 혹은 변경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게 된다. 심부전을 제때 발견하지 못하고 방치하거나, 일찍 발견하더라도 유방암의 위험성이 커서 어쩔 수 없이 치료를 강행해야 하는 경우 김모 환자처럼 비가역적인 심근의 손상이 발생해 심부전에 빠질 수 있다.

 

5년이 지난 지금 김모 환자는어떻게 되었을까. 환자는 3개월 정도 승압제를 사용하면서 심장 이식을 기다린 후에, 항체를 없애는 치료를 받으며 심장이식을 성공적으로 받게 됐다. 심장 이식 치료 중간에 우울증이 발병해 환자 스스로 치료에 대한 의욕도 잃고 식사도 잘 못 하는 상황이 도래하기도 했다. 하지만 심장 이식 후 열심히 몸을 회복한 환자는 현재 손녀와 여행도 다니고 즐겁게 산책도 하면서 호흡곤란 없이 누구보다 건강하게 생활을 하고 계신다. 이식 후에도 약간의 우울증이 남아 있었지만 또 다른 삶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갖고 더 열심히 살도록 격려해 주는 건 의료진의 몫이기도 하다. 지난 봄날, 아름다운 벚꽃을 보면서 살아갈 수 있게 해 줘 감사하다는 환자의 말씀에 의료진 또한 큰 힘을 얻고 환자들을 살피게 된다.

 

 

- 환자 수기 – 68세 김모 환자 - 

 

심장을 이식 받고 저는 네 번째 봄을 맞이하게 됐습니다. 4년 전 이 맘 때가 생각납니다. 계단을 오르지도 못하고 간단한 집안일조차 숨이 찼습니다. 그때 누군가 병원을 세종병원으로 가 보라 했고, 그곳에서 김경희 과장님을 만나게 됐습니다. 과장님은 “지금 심장 기능이 정상인의 1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며 심장을 이식 받는 수밖에 없다.”라고 하셨습니다. 병명은 확장성 심근 병증이었습니다. 20년 전 유방암 수술과 항암 치료에 이어 이번엔 심장 이식이라니... 눈 앞이 캄캄해졌습니다. 다른 이의 장기를 받아야 하는 어려움, 경제적인 비용, 내 몸이 큰 수술을 견뎌낼 수 있을까 등 여러 걱정이 쌓일 때마다 이식을 포기하겠다며 퇴원을 고집하기도 했습니 다. 이런 저에게 김경희 과장님은 마음을 강하게 먹어야 한다며 다 잘될 거라고 용기와 희망을 주셨습니다. 이식 대기 중 각종 검사 및 불안감으로 우울감이 심해지는 고비도 있었지만, 과장님에 대한 신뢰와 심장전문병원 세종병원에 대한 믿음으로 견딜 수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병원도 중요하지만 어떤 선생님을 만나느냐도 중요한 것 같습니다. 반복되는 질문에도 따뜻한 말로 설명해 주시고, 퇴근 후 까지도 연락해가며 컨디션을 체크해 주셨습니다. 저런 작은 체구에서 굉장한 열정이 뿜어져 나온다는 게 믿기지 않았습니다. 주치의에 대한 믿음으로 이식 수술도 무사히 받고 잘 회복하여 퇴원한지도 벌써 4년이 됐습니다. 두 달에 한 번 정기 검진을 받으러 가는 날은 아침부터 신이 납니다. 건강하게 매 해 봄을 맞이할 수 있도록 외래 진료에서도 꼼꼼히 제 상태를 체크하고 늘 긍정적으로 얘기해 주시는 과장님이 있어 오늘도 행복합니다. 저와 비슷한 질환의 환자가 있다면 절대 포기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해 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