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로 보는 영화 : 새로운 시작/가족/여행자 - 김현숙 영화평론가

by 선농문화포럼. posted Jan 3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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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이그조틱 메리골드호텔 (2012년, 존 배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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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이들을 싫어하는 나라가 많아요.

이들을 아웃소싱하면 성공할 거예요”

 

“와이파이하고 무선하고는 어떻게 다른가요?” “브로드밴드 (고속 데이터 통신망)하고는 어떻게 다른지요?” 인터넷 주문 한 번 해보려다 좌절하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메리골드호텔>은 타깃이 정확한 영화이다. 은퇴 이후 어떻게 살아남느냐의 문제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 인생을 새로 시작할 각오가 대단한 노인들의 이야기이다. 이 사람들의 공통점은 자존감이다. ‘늙었다고 하찮은 존재로 취급당하기는 싫다’라는 클레어의 대사처럼 늙은이들을 하찮게 취급하는 세상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한다. 하지만 메리골드 호텔의 젊은 사장은 호텔의 마케팅을 그 ‘하찮음’에 맞추고 있다. 그는 투자자에게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영국 노인네들을 아웃소싱 하는 게 우리 영업 전략입니다. 영국 말고도 늙은이들을 싫어 하는 나라는 많아요.” 존 매든 감독은 영화를 매우 편히 만들었겠다 싶다. 주디 덴치, 빌 나이, 매기 스미스 등 연기경쟁이 필요 없는 명배우들이 알아서 연기하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 온다.

 

 

레이트 나이트 (2019년, 니샤 가나트라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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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국이라는 풍경화, 앵커우먼이라는 인물화

 

현대 사회에서 커리어우먼의 삶과 스트레스를 다룬 3대 영화가 있다면 <워킹 걸>, <프리티 우먼>,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를 들 수 있다. <레이트 나이트>는 향후 이 목록에 추가될 작품이다. 셰익스피어 전문배우로 출발한 연기력과 지성적인 면모를 갖춘 에마 톰슨은 현재 영국 영화를 대표하는 여성 배우. 아카데미를 2번이나 수상했고, 왕실로부터 작위까지 받았다. 우리에게는 <남아있는 나날>, <하우즈 앤드>, <엠마> 등의 고전극과 시대극으로 잘 알려져 있으나 사실 본인은 코미디 경력에 자부심이 크다. 최근 1,2년 동안 사회풍자 코미디에서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이어즈 이어즈>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여자 버전인 영국총리역, <레이트 나이트>의 토크쇼 앵커우먼 역이 그것이다. 사실 머리 좋은 배우들에게는 비극이나 드라마보다 코미디가 어울린다! 성차별, 나이 차별, 인종차별의 3박자를 기반으로 만든 현실 감각, 56세 여성을 대하는 사회의 태도와 할리우드 쇼 비즈니스에서 56세 여배우를 대하는 태도를 포착한 지적인 코미디이다.

 

 

결혼이야기 (2019년, 노아 바움백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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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게 헤어지자, 우린 그럴 수 있어”

 

이 영화는 거의 흠잡을 수 없을 정도로 잘 만든 드라마이다. 주연급은 물론 3명의 변호사, 니콜(스칼렛 조한슨)의 가족, 찰리(아담 드라이버)를 방문한 법원 직원 같은 작은 단역까지 성격을 부여해서 재미있게 활용한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는 감독의 경험을 반영한 자전적인 영화이다. 첫째는, 바움백 자신이 여배우 제니퍼 제이슨 리와 8년간의 결혼 후 이혼한 경험이 있다. 여배우와 감독 커플의 이혼이라는 점, 둘 사이에 아들이 하나 있다는 점, 동료와 불륜에 빠지는 원인 제공자라는 점도 것도 공통점이다. 두 번째는, 영화의 찰리처럼 감독이 뉴요커라는 점이다. ‘두 도시 이야기’라고 불릴 정도로 중요한 세팅이다. 극중에서 찰리는 “우리는 뉴욕 패밀리” 라는 말을 여러 번 강조한다. 자신의 삶과 예술의 근거지가 뉴욕이라는 뜻인데, 노아 바움백 자신이 뉴욕에서 나고 자란 뉴요커로서 뉴욕 3부작(프란시스 하, 미스트리스 아메리카, 위 아 영)을 대표작으로 갖고 있다. 찰리에게 뉴욕이 왜 그리 중요한지, 니콜에게 LA가 왜 그리 중요한 지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뉴욕은 연극의 도시, 찰리의 도시이며, LA는 영화의 도시, 니콜의 도시이다. 뮤즈 역할에 지친 니콜은 “내가 점점 작아져간다”고 호소하지만 찰리는 귀담아 듣지 않을 뿐더러 결혼 생활에 이상이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작은 아씨들 (2019년, 그레타 거윅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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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째 영화화 된 고전, 최고의 각색

 

<작은 아씨들>은 수잔 손탁 등 현대의 많은 여성 저자들로 하여금 글쓰는 삶을 살겠다는 결심에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나의 미래의 자아를 보여주는 소설, 조(시얼사 로넌)를 흉내내기 위해 단편을 쓰기 시작했다”고 시몬느 보바르는 말한 바 있다. 시나리오를 쓴 그레타 거윅 감독 역시 <작은 아씨들>을 읽고 글쓰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21세기 여성감독으로서 초기 페미니스트 루이자 메이 올코트와 그의 분신인 주인공 조 마치와 동일시하고, 그 진의를 밝혀주고 싶은 마음이 담겨있는 영화이다. 원작 소설의 동력은 조가 로리(티모시 살라메)의 청혼을 받아들일까 아닐까하는 기대와 예측이지만, 영화는 이 문제를 초반에 정리하고 시작한다. 즉 마치 집안사람들이 뭔가 아쉬울 때마다 해결해 주거나 자매들의 자존심을 채워주는 이웃집 귀족청년 로리의 청혼을 이미 거절했다는 사실을 밝혀두고 시작함으로써 영화의 관심사는 연애가 아니라 여성의 삶, 예술가로서의 삶, ‘돈’이라는 현실에 있음을 명확히 한다. 영화는 뉴욕의 한 출판업자와 거래를 하는 조세핀 마치(시얼사 로넌)의 모습으로 열고 닫는다. 청교도적 목사부부의 4자매는 ‘견딜 수 있을 정도’의 가난 속에서, 가난을 연료삼아 삶을 데우는 이상적인 가족이다. 이웃의 저택에 사는 노신사와 그의 손자 로리는 자매들과 특별한 우정을 나눈다. 홈스쿨링을 하는 자매들이 연극놀이에 로리를 끼워 주면서 로리는 이 집의 군식구처럼, 다섯 번째 자매처럼 마치 가족의 식탁의 한자리를 자연스레 차지한다.

 

 

무산일기 (2011년, 박정범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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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에 다가온 연민

 

‘무성하게 우거진 산’이라는 뜻의 무산은 주인공의 고향이지만 이제는 민둥산이 되어버린 곳, 또 다른 무산을 찾아 남으로 왔지만 자본주의 사회 맨 밑바닥의 ‘무산자’가 되었다는 역설적인 제목이다. 이 영화가 개봉되었던 해, 일단의 전문가들은 그 해 최고의 영화로 선정하고 무서운 신인의 등장을 축하했다. 특히 해외 영화제에서 연달아 수상하면서 더욱 확고한 지위를 얻었다. 탈북자 영화의 전형적인 내러티브가 아니라 ‘캐릭터 스터디’라는 영화 본연의 길을 밟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나이키 점퍼를 칼로 그어 흰 충전재가 내장처럼 삐져 나올 때, 참혹하게 구타당하고 대문을 열자 나타나는 재개발 지역의 낭떠러지 씬들은 리얼리즘의 카메라가 도달할 수 있 는 높은 곳이다. 박정범 감독은 이 영화를 가리켜 “3년간 함께 자취했던 탈북자 친구에 대한 추모사와 반성문”이라고 말 한 바 있다. 추모사라고 하지만 감정에 지지 않아 건조하고, 반성문이라 하지만 가르치려하지 않는다. 단 한 번의 플래시 백도 없이 직진하는 일기장이다. 나이키 점퍼와 주인 없는 개를 통해 뿌려놓은 복선들을 하나하나 수거하고, 공장 사장님 에게 잘 보여 취직하고 싶은 승철(박정범)이 사장이 마시던 커피 잔을 설거지 하는 뒷모습을 담아낸 컷들을 보면 감독이 얼마나 조용히 세상을 관찰하는 사람인지 알 수 있다. 스스로 대본을 쓰고 주인공 역을 맡아 열연했다.

 

 

그랜 토리노 (2008년,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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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보수주의자의 얼굴

 

<그랜 토리노>는 좌파 엘리트들이 주도권을 잡고 있는 할리우드의 거의 유일한 보수주의자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손수 새긴 묘비의 문장이다. 즉 <그랜 토리노>의 코왈스키 캐릭터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젊은시절부터 맡아 왔던 캐릭터들의 총합인 동시에, 개인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정치사회적 신념 의 종합판이다. 정부나 공적 영역에서 지켜주지 못하는 정의의 문제를 사적 영역에서 해결하려는 자경의 정신, 헌법적 권리인 총기소유권과 책임의 문제 같은 것들이다. 이는 연방국가 미국의 공권력이 미치지 못했던 시공간 인웨스턴 카우보이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수없이 맡아 연기했던)의 도덕률이자, 공무집행자 더티 해리(이스트우드 주연의 형사 영화) 스타일의 탈법적 처단 방식을 연상케한다. 사실 이민자에 대한 편견, 기독교식 구원에 대한 회의, 위대했던 미국에 대한 향수를 지닌 코왈스키를 단순히 보수주의로 규정할 수는 없다. 엄밀히 말해,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지향하는 바는 리버테리안에 가깝다. 모든 간섭으로부터 자유롭고자 하는 정신이다. 그리하여 그가 십자가를 지고 대속자로서의 최후를 택하는 엔딩은 숭고하며 장엄하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보수주의에는 여타의 보수주의자에게 볼 수 없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와 그의 캐릭터들은 모두 ‘참회하는 인간들’이라는 점이다. 참회의 한복판에는 죄책감이 있다. 함부로 살상한 죄이다. 용서받지 못한 자들은 숭고한 결단과 희생에 의해 죄의 사함을 받는다.